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아니, 이게 무슨···”
처음 부서진 마차를 발견했을 때, 저량과 훈마, 심지어 장건까지도 그 주변에 흩뿌려진 살점들이 사람의 것이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살점들의 모양이 자세히 보이는데 상황을 모를 수는 없었다.
“···세상에, 우욱!”
시체 조각들을 바라보던 저량은 창백해진 얼굴로 두 눈을 꾹 감으며 돌아섰다. 훈마도 차마 그 난장판 안으로 들어가진 못하고 머뭇거렸다. 장건만 조조의 등에서 내려 뚜벅뚜벅 현장 안으로 들어섰다.
끔찍한 현장이었다. 마차는 마치 거인이 자기 덩치만 한 몽둥이를 내려치기라도 한 것처럼 바퀴가 주저앉아 박살이 나 있었고, 그 주변으로 역시 마차만큼이나 산산조각이 난 사람의 살점이 흩뿌려져 있었다.
장건은 살점이나 마차의 조각을 밟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 현장 한가운데 공처럼 모여있는 머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건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죽은 자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머리는 총 여섯이었다.
그들의 얼굴엔 모두 끔찍한 고통과 공포, 절망이 그려져 있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던 장건은 고개를 돌려 다시 주변을 확인했다. 그리고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하다가 일어나서는 현장을 빠져나왔다. 저량만큼은 아니어도 많이 심란해 보이는 훈마가 그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되시오?”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건 저들이 죽고 난 이후에 한 짓이오. 물론 살아있을 때도 끔찍한 짓을 하긴 한 모양인데, 어찌 되었든 이 난장판을 만든 건 분노의 표현으로 보이는군.”
훈마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분노? 그럼 원한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훈마는 똑바로 바라보기 힘겨움을 이겨내며 그 주변을 다시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난장판에서 더 뭔가를 알아내긴 힘들어 보였다. 장건은 왼손으로 자기 목덜미를 긁으며 말했다.
“정확히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소. 시신의 얼굴들을 보았을 때 특별히 인상적인 얼굴은 없었소. 여자도 있었고, 노인도 있었지. 그것만 보면 그저 흔히 있는 개척자 가족의 얼굴일 뿐이오.”
“평범한 사람들이란 이야기군···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원한에 저리 끔찍한 몰골이 되었고···”
목덜미를 긁적이던 장건의 왼손은 자연스럽게 내려와 칼집을 잡았다.
“확실한 건 그냥 도적들이 벌일 짓거리는 아니란 것이오. 적어도 하는 짓만 보았을 땐 악귀가 맞군.”
그때 마차 뒤에서 헛구역질하던 저량이 덜덜 떨며 다가와 말했다.
“여러분, 빠, 빨리 지나갑시다. 여기 더는 못 있겠소··· 빨리···”
훈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저량을 부축해 마차로 이끌었다. 그 모습을 보던 장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른 하늘엔 한가득 구름이 채워져 있었다. 그것만 보자면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나, 장건은 기이함을 느꼈다.
시체들의 상태를 보아선 이 난리가 난 지 벌써 하루는 지났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벌판에 이렇게 시체가 늘어져 있다면 진즉에 온갖 청소부 동물들이 날아와 깔끔히 살점을 치워버리고 백골만 남아있어야 했다. 그러나 하늘 어디에도 날개를 펄럭이는 날짐승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장건은 이내 칼을 놓고 푸르륵 투레질하고 있는 조조에게로 몸을 돌렸다. 이 지랄을 벌인 게 마궁의 마인인지, 아니면 그저 정신 나간 도적놈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장건은 반드시 그 존재와 마주칠 것이란 예감을 받았다.
장건은 조조에 타고 저량과 훈마는 마차에 올랐다. 그들은 끔찍하고 기이한 살육 현장을 벗어나 다시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량은 꽤 큰 충격을 받았는지 힘이 없어 보였다. 하긴 그냥 시체도 아니고 사람이 무슨 종잇조각처럼 마구 찢어 흩뿌려진 현장을 보았으니 그럴 만했다. 당장 장건도 속이 좋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죽은 이들을 보고 난 후 아무런 대화 없이 그저 묵묵히 달리기만 했다. 본래 시답잖은 이야기라도 하며 시간을 죽이려 했음을 생각하면 웃긴 일이었다. 물론 셋 중 그렇게 생각하며 진짜 웃는 사람은 없었다.
점심마저 건너뛰고 무작정 움직이던 그들은 오후 한창이 되어 슬슬 걸음을 멈췄다. 조조는 그럭저럭 괜찮은 듯 보였으나 마차를 끄는 두 말이 많이 지쳐버렸다. 계속 마부석에 앉아있던 훈마도 잠시 쉬어야 함을 느꼈다.
말을 세우고 훈마와 저량이 마차에서 나와 허리를 폈다. 저량은 아침과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는 장건과 조조를 보며 말했다.
“힘들지 않소? 종일 말을 탔는데 멀쩡하시군.”
“방랑자는 그런 여정에 익숙해져야 하는 법이지.”
장건은 옅게 웃으며 그리 말했고, 덕분인지 저량도 약간 안색이 밝아졌다. 그는 허리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하··· 여길 벗어나면 당장 무림맹 지부부터 찾아가야 할 것 같소. 내가 보았을 땐 당장 무림맹 타격대를 파견할만한 일로 보이오만.”
“타격대든 순찰대든 누가 오긴 와야겠지. 사람이 그리 끔찍하게 죽었는데.”
“정말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소. 진짜 악귀일 것일까? 혹 그들이 아니겠소?”
“그들?”
장건의 반문에 저량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들. 옛 초패마왕의 뜻을 이어가는 자들 말이오. 그들은 천 년 동안 끝끝내 멸종하지 않았지. 게다가 내 듣기로 이 신대륙에 그들의 뿌리가 이어졌다던데? 약간 황당하지만 제국의 영향력이 닿지 않을 정도로 먼 동쪽에 그들이 자신들만의 왕국을 건설했다는 이야기도···”
그때 갑자기 조조가 길게 울며 앞발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으나 장건은 당황하지 않고 고삐를 잡았다. 그리고 왜 난리냐고 핀잔을 주기도 전에 저 먼 동쪽 언덕에 선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장건은 자기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고 그 무언가를 향해 집중했다. 곧 내공이 두 눈으로 휘돌아 시야를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언덕 위에는 검은 연기에 휩싸인 커다란 흑마와 거기 올라탄 존재가 있었다.
숯처럼 새카만 몸과 피처럼 붉은 얼굴, 머리 위에는 몸처럼 검은 깃털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덕분에 그 존재는 온몸이 새카만 와중에 새빨간 주둥이를 벌린 괴물로 보였다. 그리고 장건이 보기에 그 괴물의 모자는 신대륙 원주민의 지위 높은 자가 흔히 쓰는 깃털 장식 모자처럼 보였다.
그 순간 장건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중-원-인-!]그의 머릿속에 우레가 치며 순간이지만 눈앞이 흐릿해졌다. 동시에 그 붉은 얼굴의 존재는 마치 한 동작처럼 빠르게 활을 들어 시위를 당기고, 놓았다.
장건이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지 이십 년은 넘었다. 이 세상에 진짜 무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어릴 때부터 깊이 빠졌으니까. 괜히 가문에서 그에게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덕분에 그의 몸은 공격과 방어, 반격과 재반격 등 싸움과 무예에 관해서 본능의 영역까지 확장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그 순간 반사적으로 칼을 뽑아 자신의 머리를 노리는 화살을 비껴낼 수 있었다.
챙-하는 높고 쾌청한 소리가 울리더니 이후 튕겨 나간 화살은 그대로 마차의 상단부로 날아갔다. 이후 화살은 무슨 대포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차 상부를 박살 내 버렸다.
꽝! 하고 터지는 소리에 훈마와 저량은 얼빠진 표정으로 몸을 낮췄다. 하지만 그건 본능적인 행동이었을 뿐이고, 둘 모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건은 띵한 머리와 윙윙 울리는 칼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방금 느낀 어마어마한 힘에 손목이 떨렸다. 칼이 부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는 흐려지는 눈에 애써 힘을 주며 앞을 확인했다. 저 먼 언덕에서 야수처럼 달려오는 흑마와 그 기수가 보였다. 달리는 그들의 뒤로 검은 연기가 잔상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장건이 머리가 어지러운 와중에도 애써 말했다.
“마차에, 타시오···!”
“뭐, 뭐? 장 무사?”
그는 단전의 내공을 완전히 일깨워 전신 혈도로 내달리며 버럭 외쳤다.
“마차를 타고 달려! 당장!”
그 외침에도 저량은 어벙한 표정을 지었으나 다행히 훈마가 정신을 차리고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 후 그를 그대로 하부만 남은 마차 안에 내던지고는 마부석에 올라타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말들에게 채찍질했다. 이미 놀란 상태에서 다시 화들짝 놀란 말들이 당장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전신을 치달리는 내공을 느끼던 장건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어둑해져 있었다. 마치 비가 오기 직전의 모습처럼 회색의 구름이 해와 푸른 하늘을 가리고 침침한 천장을 만들어 답답함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아래서 달려오는 검은 연기의 괴물은 그 답답함과 합쳐져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을 주었다.
“···대낮에 등장하는 악귀라. 끝내주는군.”
머릿속 괴성의 충격에서 벗어난 장건은 칼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칼날에 이가 하나 빠진 것이 보였다. 화살인 척하는 대포알을 막아낸 것치고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눈이 달려오는 붉은 얼굴을 보았다.
한층 가까워진 그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새빨간 얼굴 안에 검은자위 없이 흰자위만 번뜩이는 두 눈과 짐승처럼 쩍 벌어진 입, 그리고 그 입 안에서 꿈틀거리는 시커먼 그림자는 그가 단순히 물감으로 색칠해 위장한 인간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진짜 악귀일지도 몰랐다.
그때 다시 장건의 머릿속에서 천둥이 울렸다.
[중원인-! 죽여버리겠다-! 모조리 죽여버리겠다-!]하지만 이미 내공을 일깨운 장건은 방금처럼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래서 조금 전보다 가볍게, 그리고 부드럽게 또다시 날아온 화살을 옆으로 비껴낼 수 있었다. 이번엔 칼날의 이조차 나가지 않았다.
바닥으로 날아간 화살은 꽝-소리를 내며 흙을 한 무더기 뒤집어엎었다. 그 어처구니없는 위력에 헛웃음이 나올뻔 했던 장건은 다시 붉은 얼굴을 바라보며 툭툭 고삐를 당겼다.
“가자.”
그 말에 무슨 늑대라도 된 것처럼 머리를 치켜들고 길게 울부짖은 조조는 곧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훌쩍 달렸다.
시커먼 연기에 휩싸인 흑마와 조조 둘 모두, 마치 달리기만을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쿠구궁쿠구궁 땅을 울리며 거칠게 질주했다. 땅을 접기라도 하는 것인지 둘 사이 공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장건은 왼손으로는 고삐를, 칼을 쥔 오른손은 옆으로 수평을 그리며 두 눈으로는 흔들림 없이 악귀를 바라보았다. 그에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붉은 얼굴의 존재는 들고 있던 활을 그냥 놓아버리고 주변에 흩날리는 연기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놓아버린 활은 흩어져 검은 연기에 섞이고 그의 손에 잡은 연기는 휘리릭 모여 한 자루 단창이 되었다.
차분하던 장건의 눈썹이 슬쩍 찌푸려졌다. 당장 믿기 힘든 장면은 둘째치고 저 존재와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에서 알아듣기 힘든 괴성이 울리고 있었다.
[복수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중원인을 죽여버릴 거야! 아아! 어머니! 안 돼! 그러지 마! 복수해! 죽여! 아버지, 도망쳐요! 모든 것이 불타고 있어··· 그들을 믿지 말았어야 했어! 안 돼,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야! 그러지 마··· 아아, 정령이시여, 대지의 어머니시여···! 괴물 같은 놈들, 어찌 그분께 그런··· 이렇게 끝날 순, 없어··· 중원인에게, 중원인에게 복수해···! 복수해! 복수해! 복수해-!]죽어가는 자의 비명, 죽이는 자의 고함, 살갗을 베는 칼날의 울림, 불에 타 무너지는 기둥, 마치 지옥의 입구에서 올라오는 듯한 괴성들.
장건은 그 존재와 가까워질수록 귓가가 찢어질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공이 전신 혈도를 거침없이 휘도는 와중에도 그 알 수 없는 괴성은 장건의 머릿속을 짓이겨버리겠다는 듯 울려왔다. 도저히 점점 눈앞으로 가까워지는 단창과 기수에게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소리였다.
그래서 장건은 수평으로 들었던 칼을 높이 치켜올리며 천둥처럼 사자후를 토했다.
“닥-! 쳐-!”
동시에 우레의 뒤를 따르듯 벼락이 내리꽂혔다. 번뜩인 칼날이 검은 연기를 쪼개버렸다. 흑마와 붉은 얼굴의 기수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흐린 연기로 흩어져버렸다. 장건과 조조의 몸이 그 연기를 뚫고도 한참으로 앞으로 지나갔다.
장건은 급히 조조의 고삐를 쥐어 뜀박질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기수와 흑마가 칼날이 닿기도 전에 흩어진 것을 보았다. 칼을 쥔 오른손에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모든 중원인을 죽이겠다-! 모든 중원인을-!]그때 저 멀리서 다시 한번 괴성이 울렸다. 장건이 보니 그와 한참 떨어진 곳에서 흑마와 붉은 얼굴의 기수가 그에게 등을 보이며 달리고 있었다. 그 존재의 앞에서는 훈마와 저량이 탄 마차가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당장 한 놈도 도망치게 두지 않겠다는 거냐?”
장건은 굳은 얼굴로 그리 중얼거리고는 툭툭 조조의 옆구리를 찼다. 두 눈을 시퍼렇게 빛내며 푹-하고 숨을 토한 녀석은 흑마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장건의 귓가로 거센 바람 소리가 울렸다.
그의 두 눈과 칼날이 차갑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