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남자를 내던지고 실실 쪼개며 기루를 나오던 건달들은 말을 탄 장건을 보고 멈칫 굳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장건의 삿갓 아래 멀뚱한 시선을 마주 보고는 자기들끼리 돌아보다가 불쑥 말했다.
“뭘 보쇼? 그냥 가던 길 가쇼.”
장건은 그들의 퉁명스러운 표정을 가만 바라보다가 슬쩍 손을 들어 기루를 가리켰다. 마치 자신의 목적지가 그 기루라고 말하는 듯한 동작이었다.
굳어있던 건달들은 그 손동작을 읽어내고는 다시 자기들끼리 돌아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허, 이 환한 대낮부터?”
“젊은 양반이 존나 급하신 모양인데. 그럼 기왕 가는 거 이딴 구석진 곳 말고 저기 감산루로 오라고. 거기가 진짜 최고의 기루니까.”
“허이구, 딱 보니 떠돌인데 거길 올 돈이 있겠어? 괜한 헛소리 그만하자구.”
마지막에 떠든 건달은 장건에게 더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여겼는지 성큼성큼 걸어서 바닥을 기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멱살을 잡아끌어선 이미 엉망으로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착착 때리며 말했다.
“이 씹새야, 다시 말해봐라. 네가 방금 뭐라 했었지?”
멱살이 잡힌 남자는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덜덜 떨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건달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말을 못 해! 보호세를 내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고! 아깐 그렇게 당당히 떠들더니 왜 인제 와서 못 하는데!”
“아, 아니오. 보호세를··· 보호세를 바치겠소. 그러니···”
“이 새끼가 왜 말이 바뀌어? 아깐 내기 싫다며? 이미 무림맹과 감산 조합에 보호세와 회비를 내는데 왜 우리한테도 세금을 내야 하냐며? 근데 왜 말이 바뀌어 새꺄!”
건달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남자의 뺨을 호되게 후려쳤다. 짝도 아니고 쩍-하는 소리가 나며 남자의 몸이 휙 돌며 나뒹굴었다. 얼마나 무식하게 때린 것인지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대신 비명을 지르며 달려간 것은 엉뚱하게도 장건 옆에 있던 관량이었다.
“야 이 개 같은 새끼야-!”
그 녀석은 남자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눈이 획 돌아 무작정 그 건달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은 어린 소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한 움직임으로 달려가 대뜸 건달의 머리를 걷어차려 했다.
하지만 그 놀랍다는 것은 결국 어린아이를 기준으로 했었을 경우일 뿐이었다. 건달은 왼손을 들어 관량의 다리를 가볍게 붙잡고는 그대로 들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량은 덕분에 거꾸로 매달려 버둥거리게 되었다.
“이 애새낀 뭐야?”
“이거 놔, 이 엿 같은 새끼야!”
건달이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부서진 창문 안쪽에 있던 태평루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기겁을 했다.
“량아! 안 돼!”
“저 녀석이 하필 지금···”
건달은 그 소리를 들으며 다리를 잡힌 채 버둥거리는 소년과 나자빠진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남자의 얼굴이 엉망이 되지 않았다면 이 소년과 닮았을 법했다. 건달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놓으라고! 죽여버린다!”
“애새끼가 입은 또 왜 이렇게 험해? 이 새끼들이 아주 쌍으로 지랄을 하네.”
그렇게 중얼거린 건달은 고개를 살살 내저으며 오른 주먹을 들었다. 어린아이건 어른이건 이미 그를 공격했으니 얌전히 보내줄 순 없었다. 당장 주변 기루들의 창문 사이사이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시선이 많았다.
그리고 애가 다치면 태평루에서 더 겁을 먹을 터였다. 건달은 소년의 내장까지 다치게 할 생각으로 주먹을 꽉 쥐며 자신의 접싯물처럼 얕은 내공까지 담았다. 어른도 정통으로 맞으면 한동안 피똥을 싸며 고생할 주먹이 꽉 쥐어지며 파르르 떨었다.
그때 조조 위에 타고 있던 장건이 풀썩 바닥으로 내려섰다.
어째선지 그 별것 없는 동작에 그 주변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주먹을 후려치려던 건달도, 그 주변에서 실실 웃던 나머지 둘도, 기루 안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기루 사람들과 거꾸로 매달려 있던 관량까지 모두 장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삿갓에 반쯤 가려 눈이 보이지 않았고 입에 문 연초에서는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그 연초를 가볍게 빨았다가 입에 문 그대로 흐-하고 연기를 뿜었다.
“···거 신경 끄고 볼일이나 보러 가쇼. 괜히 나서봐야 좋은 꼴 못 볼 거요.”
관량을 붙잡고 있던 건달은 흘끗 그의 허리에 매달린 칼을 보고는 그리 말했다. 하지만 장건은 대답 대신 연초만 한 번 더 빨아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애 내려놔.”
건달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관량을 붙잡고 있던 건달은 눈썹을 와락 찡그리며 힘을 모으던 주먹을 그대로 다시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때 장건이 고개를 살짝 들어 삿갓 아래 두 눈을 그와 마주쳤다.
건달의 몸이 움찔 굳었다. 그는 장건의 두 눈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칼날이 뻗어 나와 그의 몸뚱이를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무공이 어느 정도 이상이었다면 그것이 황군이나 세가 무사에게서나 볼 수 있을 고수의 기세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뒷골목 싸움질이나 하고 힘없는 양민을 핍박하기나 했던 건달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도리어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덜컥 화가 치솟는 걸 느꼈을 뿐이다.
물론 그 분노와는 다르게 건달은 붙잡고 있던 관량을 툭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는 듯 푸하하 웃었다.
“이건 또 뭐 하는 새낀지 모르겠네. 너 뭐냐? 뭐, 협객 그런 거냐? 왜 남의 사업 하는데 끼어들어서 지랄이야?”
장건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쓰러진 남자를 향해 기어가 기절한 그를 붙잡고 흔들며 다급히 외치는 관량에게 향해 있었다.
“아부지! 정신 차려봐요, 아부지!”
“···이 새끼가 지금 내 말 무시해? 뒈지고 싶냐!”
건달은 자신을 무시하는 장건의 모습에 그렇게 버럭 외치고는 슬쩍 다른 두 사람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이미 긴장하고 있던 그 둘은 와락 치켜들어 장건을 덮쳤다.
둘 다 뒷골목에서 오래 굴러먹은 자들인지 기습에 능숙한 움직임이었다. 그 재빠름은 둘의 기습을 예상하였다 하더라도 얼른 반응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 기습을 맞이한 장건의 대응은 짧은 끊어치기 두 방이었다.
거의 한 번으로 들리는 타격음이 퍼퍽- 울리고는 허리를 낮춘 채 달려들던 건달 둘 모두 덜컥 멈췄다가 스르륵 앞으로 쓰러져 버렸다. 두 놈은 모두 눈이 게게 풀려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가 움직이는 걸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건달은 엿 됐다는 것을 깨닫고 안색이 창백하게 굳었다.
“고, 고수···”
건달 둘을 가볍게 쓰러뜨린 장건은 성큼성큼 남은 건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가슴께 위로 들려서 부들부들 떠는 그의 주먹에 손바닥을 얹었다.
“애 내려놓으라고 했잖아.”
“···내, 내려놨는데요.”
장건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었어.”
“아니, 그게 뭔, 끄, 끄아앗!”
장건의 손이 건달의 주먹을 우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나름의 내력이 담긴 채 꽉 쥐여 있던 건달의 손은 기름이라도 짜이는 것처럼 우드득 소리를 내며 찌그러졌다. 그는 너무 아파서 뭐라 말도 못 하고 자연스레 무릎을 꿇어버렸다.
그를 꿇어 앉힌 장건은 쥐고 있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네 친구들 들고 꺼져.”
건달은 으그러진 오른손을 붙잡고 덜덜 떨다가 장건을 올려다보았다.
“···다, 당신··· 감당할 수 있겠소?”
“왜? 네 친구들 더 불러오려고?”
장건은 그를 내려다보며 왼손으로 가볍게 칼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건달은 그 모습에 다시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얼른 눈을 내리깔고 무릎걸음으로 기어 다른 건달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기절한 그들을 하나는 들쳐메고 하나는 질질 끌다시피 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건달들이 도망치는 동안 장건은 관량과 기절한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좀 보자.”
“예, 예?”
아주 짧지만 장건의 실력을 보게 된 관량은 그의 말에 어벙하게 되물었다. 하지만 장건은 물고 있던 연초를 휙 털어버리고 그들 옆에 앉아 기절한 남자의 목덜미를 짚었다.
잠시 맥을 확인한 그는 기절한 남자의 눈꺼풀까지 뒤집어 확인하고는 손에 묻은 피를 남자의 옷에 대충 문질러 닦았다.
“그냥 기절한 거다. 쉬게 두면 돼.”
“괘, 괜찮다고요?”
관량은 엉망이 되어 있는 자기 아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잔뜩 부어오른 것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엉망이긴 하군. 하지만 목숨에는 지장 없다.”
장건은 관량의 머리를 헝클어버리며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서자 기루 안에서 망설이던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 남자에게 몰려왔다.
“얼른 안으로 모셔! 한 사람은 가서 의원 모셔오고! 얼른!”
그들은 기절한 남자를 기루 안으로 모셔가고 부서진 창살과 어지러운 기루 앞을 깔끔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장건이 한 발 떨어져서 그걸 바라보고 있으니 누군가 다가와 대뜸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협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루주는 물론이고 관량이도 크게 다쳤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협.”
인사를 하는 사람은 젊은 여인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꾸밈없는 모습이 도리어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장건은 허리를 숙인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장건이오.”
“아, 장 대협이셨군요. 전 장아영이라고 합니다. 장 대협께는 다시 한번 이 태평루를 대신해서-”
“그냥 무사나 이름으로 부르시오. 대협이라 하지 말고.”
장아영이라 이름을 밝힌 그녀는 잠시 멈칫하며 장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차분한 얼굴을 확인하고는 다시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장 무사님. 그렇게 하지요. 조금 전부터 보아하니 량이의 안내를 받아 숙박을 위해 오신 듯한데,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소란이 있었는데 영업을 하는 것이오?”
장아영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 소란은 소란 축에도 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소란마저도 이미 마무리가 되었는데 어찌 기루가 문을 닫겠습니까?”
그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장건도 피식 웃었다.
“잘 됐군. 그럼 며칠만 묵어가겠소.”
“예, 장 무사님. 태평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렇게 장건은 감산성 기루 태평루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건달과 싸우는 동안 시큰둥해 보이던 조조는 자신을 마구간으로 이끌어가는 태평루 여인들의 손길에 히죽거리며 연신 콧김을 뿜었다. 최근 들어 만나는 암말들에게 자꾸 거부당하자 이젠 말이고 사람이고 상관없이 여자면 다 좋은 모양이었다.
기루 안으로 들어가며 녀석을 본 장건만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살살 내저었다.
* * *
장건은 잘 차려진 한 상을 앞에 두고 술잔을 홀짝였다.
그는 루주와 그의 아들을 구한 답례로 태평루의 사 층 방 하나를 배정받았다. 이 층, 삼 층과 달리 사 층은 방이 셋뿐인 특실이었다. 그 후 식사를 먼저 하겠다 하니 차려온 상이 지금 그의 눈앞에 한 상이었다. 거기에 처음 그에게 인사를 했던 장아영이 따라 들어와 옆에 앉다니 술잔까지 채워주고 있었다.
하지만 장건은 그 호화스러운 식사와 여인을 눈앞에 두고도 배가 부를 정도로 적당히 집어 먹은 후에는 그저 술잔을 홀짝일 뿐이었다. 사실 그는 지금 그 마궁의 청사靑蛇라는 놈을 어떻게 찾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들판의 악령에게 얻은 검은색 창 촉은 비랑의 말대로라면 그 청사라는 놈이 가까워진 순간 잘게 진동하며 놈이 주변에 있음을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과거를 보여주며 힘이 많이 흩어진 창 촉이 청사와 얼마나 가까워져야 진동을 줄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장건은 사막에서 바늘 찾는 식으로 창 촉 하나만 들고 이 감산성을 온종일 떠돌아야 할 수도 있었다.
장건은 장아영이 채워준 술잔을 훌쩍 들어 마셨다.
그는 그렇게 무식하게 감산성을 떠돌아다닐 생각 없었다. 그 청사라는 놈을 잡아 족치는 것은 족치는 것일 뿐이고, 그것에 무슨 평생을 바칠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생각의 폭을 조금 더 넓힐 필요가 있었다.
기억의 마지막에 청사는 감산성의 선이 망가져 그것을 고치러 간다고 했었다. 장건은 그 이야기에서 본래 이 감산에 있었을 마궁의 끈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현금 마차를 털며 싸우게 되었던 서위량. 그의 뒷배가 감산 상행 조합장 손 누구였었다. 장건은 그가 손 씨였던 것만 기억했다.
어쨌든 그때 서위량이 죽으며 그에게까지 내려와 있던 마궁의 끈이 감산에서도 드러났던 모양이다. 아마 그 암룡대라는 이들이 움직였을 것이고, 황군도 움직였을 것이다. 감산에서의 뱀 머리가 날아갔으니 새로운 머리가 온 것일 터였다.
장건은 새로 채워진 술잔을 다시 들이켰다.
그렇다면 청사를 찾는 일은 꽤 복잡해진다. 이 감산에 마궁의 세력이 남아있다면 그들은 전날 있었던 황군의 추적과 칼날에 머리를 잃고 흩어져 몸을 숨긴 자들일 것이고, 거기에 새로운 머리인 청사가 합류했다면 그만큼 더 은밀하고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만약 황군에게 감산의 세력이 완전히 소탕되어 버렸다면 청사는 처음부터 다시 그 끈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쪽도 강화된 암룡대의 눈을 피해 움직여야 함은 같으니 찾기 힘든 것은 같을 것이다.
장건은 장아영이 다시 채워준 잔을 상 위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렸다.
결국 장건이 할 일은 정공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도시의 밑바닥부터 시작해 음험한 움직임을 찾아내고, 그 줄기를 더듬어 올라가 그 끝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악령이 활동한 시기는 최근이다. 당연히 청사가 이곳에 온 것도 최근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최근 이 감산의 뒷골목을 기어 다니는 그림자의 뿌리 끝에는 그가 있을 것이다.
운이 좋았는지 감산에 들어서자마자 자연스럽게 감산 뒷세계와 부딪치게 되었다.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갈 방법과 명분을 얻은 것이다.
장건은 잔을 들어 입술에 대고 천천히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잔을 내려놓았을 때, 지금까지 잔을 채워주던 장아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장건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약간 당혹스럽다는 듯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말이오.”
“···장 대, 아니, 장 무사님께서 해결해 주신 소란에 대해서요. 그들이 왜 우리 루주님을 때리고 있었는지, 그들이 누군지, 그들의 뒷배에 누가 있는지 등등.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장건은 슬쩍 웃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그와 단둘이 마주하고 앉아 건달 놈들에 대해서 대비하는 그림을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장건이 혼자 밥 먹고 술 마시며 입을 다물고 있으니 당혹스러움을 느낀 것이다.
마침 생각 정리도 대충 마무리가 된 참이었기에 장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건달들과 루주에 관해 이야기해 보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먼저 방문이 열리는 것이 더 빨랐다.
장아영은 문을 열고 등장한 인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루주님?”
“···은인을 떠나보내기는커녕 상을 차리고 붙잡아 두다니, 이게 무슨 짓이냐?”
“아니, 루주님. 이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말은 안으로 들어서는 루주의 행동으로 가로막혔다. 루주라 불린 남자는 얼굴 여기저기 찢기고 멍이 들어 울긋불긋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얼굴 상태와는 다르게 부드럽고 정돈된 태도로 움직여 문을 닫고 장건의 술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먼저 머리를 깊게 숙이며 말했다.
“내 아들을 구해주셨다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답례품은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곧 고개를 들고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인께서 이 일에 더 얽히실 필요는 없으니, 이만 떠나 주시지요.”
“루주님!”
장아영이 그 축객령에 깜짝 놀라 루주를 불렀다. 하지만 엉망이 된 얼굴 상태에서도 그의 단호함은 분명했고, 장아영은 입술을 깨물며 장건과 루주를 번갈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루주의 굳은 눈빛을 바라보던 장건은 손을 뻗어 술병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내가 떠나면 그 건달들이 이 기루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당신이 살려면 날 붙잡는 게 상책이지. 왜 떠나라는 것이오?”
“지금 감산의 뒷골목 조직들은 혼란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왠지 모를 무림맹의 묵시 아래 제멋대로 세력을 키우고 부딪치고 있지요. 그리고 그 건달이 있던 조직은 그중에서도 꼭대기를 노리는 조직이고요. 아마 내일쯤 건달 수십 명이 날붙이를 들고 몰려올 겁니다.”
루주는 말을 하며 천천히 몸을 바로 세워 꼿꼿이 앉아 장건을 마주 보았다. 그 몸놀림과 태도는 단순히 루주의 주인으로서 보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장건은 어쩌면 그가 몰락한 가문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건이 말했다.
“내 목숨이 위험할 테니 도망가라는 것이군. 하지만 그건 내 질문의 대답이 아니잖소.”
루주는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대답했다.
“···요즘 세상엔 그게 자신과 상관있는 일이 아니라면 애써 나서는 인물이 별로 없습니다. 그 행동의 끝에 더 큰 고난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는 이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지요. 잠깐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지만 대협께서는 이미 내 아들을 구하며 그 고난을 짐작하신 모양인데, 나는 나와 내 기루 때문에 그런 의인이 다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장건은 혼자 채운 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며 가만히 루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기루를 운영한다는 남자치고 너무 맑았다. 그 울긋불긋한 얼굴과 맑은 눈빛은 얼핏 어울리지 않았지만, 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고난과 역경에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은 이를 볼 수 있었다.
빈 잔을 내려놓은 장건이 말했다.
“내 이름은 장건이오. 대협이라 부르지 말고 무사나 이름으로 부르시오.”
“예? 아, 예, 장 무사. 어쨌든 이만 떠나야···”
“난 가지 않을 것이오.”
장건은 놀란 루주와 장아영의 눈을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선의는 고맙지만 루주, 미안해야 하는 건 당신이 아니요.”
“···왜, 왜 그렇습니까···?”
“한동안 나 때문에 장사를 망치게 될 테니까.”
두 사람은 약간 멍해진 표정으로 꿈뻑꿈뻑 장건을 바라보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술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잔을 채운 장건은 그걸 가볍게 들어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훌쩍 들이켰다. 이제 남은 건 감산 암흑가의 무리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