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90)
90화
눈빛 한 번으로 회룡단을 무장해제 시킨 장건은 고개를 돌려 아직도 바닥에 엎드려 있는 자 씨 형제를 바라보았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마주 보던 자명, 자운 형제는 그 눈빛에 벌떡 일어섰다. 다리를 다친 자운은 절뚝거리면서도 형을 부여잡고 바로 섰다.
장건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정리해.”
“예? 아, 예!”
눈치 빠르게 장건의 말을 알아들은 자명이 날붙이를 놓고 엉거주춤 서 있는 회룡단 조직원들을 객잔 한구석으로 몰아넣고 다친 흑혈파 조직원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장건의 주먹에 의식이 없었던, 혹은 없던 척 하던 자들도 슬금슬금 일어나 그를 도왔다.
그렇게 대충 뒷정리를 떠맡긴 장건은 엎어져 있는 왕삼에게 다가가 발로 뒤집었다. 의식이 없는 그가 철푸덕 천장을 보고 누웠다.
“마공은 쓰지 않았군.”
정확히는 그럴 틈을 주지 않은 것이지만, 장건은 왕삼이 그럴 틈조차 잡지 못했던 것으로 보아 마공을 익히지 못한 놈이거나 어쩌면 예전 서위량이 그랬던 것처럼 외부 인사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청사, 흑사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 아주 관련이 없었던 놈은 아닐 것이다.
장건은 맞은 부위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왕삼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들어 그의 몸뚱이를 푹 찔렀다.
“···얼씨구.”
혈을 눌러 기절한 그를 깨우려 했던 장건은 그 혈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왕삼의 피부가 무슨 곰이나 멧돼지처럼 뻣뻣하고 두터워서 그 아래 혈도를 쉬이 감지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장건은 다시 한번 혈도를 깊게 찔러보다가 관둬야 했다.
더 깊이 찌를 수도 있었지만, 그럼 그건 혈도를 찌르는 게 아니라 그냥 몸뚱이에 구멍을 뚫겠다는 짓거리나 마찬가지였다. 장건은 굽혔던 상체를 바로 세우며 헛웃음을 흘렸다. 혈도가 제대로 잡히질 않으니 많은 혈을 짚어야 하는 분근착골을 쓸 수 없다는 말이고, 그럼 이놈을 심문하려면 조금 더 고전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살을 째고, 소금을 뿌리고, 손톱을 뽑고, 뼈를 부러뜨리기. 끔찍한 짓이고, 또 귀찮은 짓거리기도 했다.
장건이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으니 그때 자운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와 말했다.
“저, 무사님, 상태가 심각한 아우들이 있어서··· 의원을 좀 불러와야 할 것 같은데요. 사람을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장건은 그렇게 하라고 휘휘 손을 내저었다. 자운은 허리를 푹 숙였다가 물러났고, 장건은 다시 왕삼의 품을 뒤지며 그의 피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일단 만져보지 않고 겉으로만 보면 왕삼의 피부는 그저 햇볕에 타서 까무잡잡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만져보면 무슨 사람 피부의 말랑말랑함이 느껴지지 않고 전혀 다른 생물의 것처럼 묘하게 무른 단단함이 있었다.
장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단하고 칼날이 들지 않는 피부, 외공. 그의 머릿속에는 들어 있지만 실제 이 세상엔 없는 무공이었다. 장건도 한창 그런 것을 찾아보기도 했고, 본인 몸에 일종의 실험을 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여타 다른 무공과 달리 피부의 질김이나 강도를 바꾸는 것은 그의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성공하진 못했다. 그에 장건은 전날 만났던 마인들이 타인의 심장을 먹거나 끔찍한 짓거리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은 것처럼 마공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조금 더 오랜 연구가 필요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이 왕삼이라는 놈은 마공을 일깨운 것 같지 않았다. 거기에 의식이 없으니 지금 이건 무슨 기공을 활용한 것도 아니란 이야기니, 결국 무슨 방법을 통해 피부 자체를 이리 바꿔 버렸단 말이었다.
“흠.”
잠시 생각을 정리한 장건은 놈의 품에서 나온 돈주머니를 확인해 보았다. 은전 몇 닢이 들어있긴 했지만 그 외에 특별함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돈을 챙겨 넣고 왕삼의 상태를 살폈다. 이번엔 피부를 본 게 아니라 언제 정신을 차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였다. 얼굴을 찰싹 때려보았지만 왕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때 그의 귓가에 객잔 밖에서 철퍽철퍽 흙탕물 튀는 소리가 들렸다. 한두 사람이 뛰는 것이 아니라 십수 명이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였다. 잠시 후에는 한 중년 남자가 박살 난 객잔의 문 안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모두 동작 그만! 무림맹이다!”
그는 빗물에 축축하게 젖어선 물을 뚝뚝 흘리며 그리 외쳤다. 거기에 둥근 무림맹 패를 앞으로 들이밀고 있으니 정말 다급히 달려와 다급히 현장에 들이닥친 무림맹 무사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객잔 안 사람들은 모두 그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자명과 몇몇은 회룡단 조직원들의 손을 뒤로 묶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피 흘리며 쓰러진 조직원들을 보살피고 있던 와중이었다. 장건은 붙들고 있던 왕삼을 툭 놓으며 허리를 폈다.
안으로 들어서며 객잔 안 상황을 보게 된 남자는 슬그머니 무림맹 패를 내리며 말했다.
“어··· 그러니까··· 좋아, 그럼 일단 너희들을 모두 체포하겠다.”
그의 뒤로 비에 젖은 채 헥헥대는 무림맹 무사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그들의 복식을 보아선 무림맹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태 조직 간 싸움을 하며 무림맹 털끝도 보지 못했던 건달들은 모두 멍하니 그들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질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정신이 좀 돌아온 자명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거, 진짜 무림맹이쇼?”
“그럼 미쳤다고 무림맹원을 사칭하겠나? 자네 나 누군지 몰라?”
“···조원식? 진짜 무림맹 조원식이네?”
자명에게 조원식이라 불린 중년인은 넌 누군데 날 그렇게 부르냐는 식으로 자명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얼굴을 훔쳐 물기를 지우고는 객잔 안을 둘러보았다.
“벌써 여럿 죽었군. 전부 체포해! 오늘 회룡단을 모조리 잡아들인다!”
그 말에 자명이 다시 나섰다.
“아니 잠깐. 좀 기다려 보시오. 회룡단은 저기 묶여있는 놈들이고, 우린 그쪽 조직원들 아니요!”
“뭐? 뭔 개소리야! 체포에 저항하면 우리도 무력을 사용할 것이다! 전부 저항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아니 시발! 여태 한 번도 등장 안 하다가 왜 갑자기 오늘 나타난 거야?”
“왜긴 이 새끼들아! 수십 명이 그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람을 찔러 죽이는데 진짜 모를 줄 알았냐!”
“지금까진 모른 척했잖아!”
자명과 그 조원식이라는 사람이 버럭버럭 말로 싸우는 동안 장건은 허리띠에 손가락을 걸치고는 안으로 들어선 무림맹원들을 살펴보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푹 젖은 그들은 추위와 긴장 때문인지 잘게 떨며 말싸움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장건이 보기에 열댓 명 있는 그들은 모두 이제 막 스물이 넘었을까 싶은 애송이들이었다. 두 눈에는 불안감이 가득했고, 밧줄을 든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정말 무림맹에서 지금 감산성을 공포로 몰아넣는 뒷골목 조직을 소탕하려 들이닥쳤다기에는 너무 초라한 모습이었다.
“아니! 어쨌든 난 회룡단 아니라고! 흑혈파라고!”
“흑혈파? 흑혈파도 똑같이 체포 대상이다! 감산성을 혼란에 빠뜨린 건 너희도 똑같아! 뭣들 해? 다 체포해! 묶으라고!”
조원식이 그렇게 다그쳤지만 그의 뒤에 선 맹원들은 눈치만 보며 머뭇거렸다. 조원식은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맹원 하나에게 다가가 그 손에 들려있던 밧줄을 빼앗아 들고 성큼성큼 자명과 다른 흑혈파 조직원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지, 진짜 우릴 다 잡아넣겠다고?”
아직 장건에게 걷어차인 복부가 뻐근하던 자명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조원식은 무림맹 감산 지부에서 나름 끗발을 날리는 고수였다. 몸이 멀쩡한 동생과 함께 맞서도 이길 수 있을까 싶은 사람인데 이렇게 싸울 수는 없었다.
“잠깐 기다리시오.”
그때 지켜보던 장건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성큼성큼 나아가던 조원식은 그 목소리에 우뚝 멈춰서고 장건을 돌아보았다. 조금 전 다급히 객잔을 들이닥친 와중에도 그의 눈에 제일 띈 것이 장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도 흑혈파냐? 건달이든 양아치든 뒷골목 조직원들에게 예외는 없다. 얌전히 가자.”
“난 조직원이 아니오. 그 양아치들한테 볼일이 있어 온 사람이지.”
“뭔, 시발. 볼일? 나도 너희들한테 볼일 있다! 체포하는 거! 엉뚱한 소리 말고 허리에 찬 칼 내려놔!”
버럭 소리 지르는 조원식의 모습에 장건은 고개를 살살 내젓고는 품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조그맣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내 조원식을 향해 가볍게 튕겨 보냈다.
“그건 또 뭔··· 아니··· 무림맹 훈장이네?”
조원식은 반사적으로 그걸 받아들고는 멍청한 얼굴이 되었다. 그건 여섯 꼭짓점을 가진 별 모양의 황금 훈장이었다. 가운데에는 검은색 글씨로 무림武林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감산 대도시에 들른 김에 팔아치울 생각으로 품에 넣어두었던 물건이었다.
장건은 멍해진 조원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놈들 체포하는 건 알아서 하시고, 뭣 좀 물어봅시다.”
“어··· 무, 물어보시오.”
“저놈 말대로 여태 나선 적 없다면서 왜 갑자기 나타난 것이오?”
“···그건 본 지부의 내부 사정 때문이오. 맹원이 아닌 이에겐 지부장의 허락이 없다면 말해줄 수 없소.”
그는 받아 든 훈장을 흘끗 내려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혹, 맹원이시오?”
장건은 고개를 저었다. 그에 조원식이 금방 실망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장건은 그에게 다가가 훈장을 집어 들며 말했다.
“지부장이 허락해야 한다고? 그럼 갑시다. 이놈들 묶는 건 도와줄 테니.”
조원식은 다시 멍청한 얼굴이 되어 장건을 바라보았다.
* * *
여전히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밤거리에 줄줄이 묶인 회룡단, 흑혈파 조직원들이 무림맹으로 끌려갔다. 부상이 큰 이들은 나중에 의원의 치료 이후 잡아 올 심산으로 무림맹원을 남겨 두었고, 지금 이들을 끌고 가는 것은 조원식과 장건이 전부였다.
하지만 회룡단 조직원들은 칼도 들지 않았던 자기들 부단주를 몇 번 쥐어박는 것으로 때려눕힌 장건에게 대들지 않았다. 이미 가볍게 얻어 맞았던 흑혈파 조직원들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다른 부상자들은 모두 객잔에 남겨두었지만 왕삼만큼은 특별히 장건이 들쳐메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의식을 차리면 그때부터 알아낼 것이 많았다.
거리를 지나던 감산의 양민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길가 가장자리에 붙어서 웅성거렸다. 대부분은 이게 진짠가 싶어하는 표정이었고, 일부는 이제야 무림맹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면 껄껄 웃었다.
어쨌든 장건과 조원식은 그렇게 암흑가 조직원을 줄줄이 엮어 무림맹 감산 지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감산 지부는 거대 도시의 지부답게 언 듯 보기에는 부잣집 장원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담벼락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 너머에 큼직한 건물들이 보였다. 조원식이 안으로 들어가니 안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서 우르르 몰려나왔다.
조원식은 그들을 보며 거만하게 허리를 펴고 서서는 말했다.
“큼, 큼. 뭣들 하고 있나? 이놈들 받아 가서 다 철창 안에 집어넣게! 지부장님께 가서 손님이 왔다고도 전하고!”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뭐가 괜찮아? 원래 우리 일 한 것뿐인데! 난 떳떳해!”
“···알겠습니다.”
뒤에서 보던 장건은 감산의 골칫거리들을 잡아 왔음에도 무림맹 지부원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밝지 못한 얼굴의 지부원들은 조원식의 손에서 밧줄을 받아 조직원 수십 명을 줄줄이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끌려가는 사람 중 자 씨 형제는 장건을 애처롭게 돌아보았지만, 장건은 가볍게 무시해주었다. 조원식이 그를 돌아보았다.
“자, 갑시다. 지부장은 본인 사무실에 있을 것이오.”
장건은 그의 안내에 따라 장원 한쪽 큼직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조원식은 그 건물 문앞에 서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곧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안쪽에는 탁자 여럿과 그 위에 종이가 잔뜩 늘어져 있고, 한 남자가 벽을 보며 등을 보이고 있었다.
“···지부장,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 지금 손님을 모셔올 상황인가?”
지부장이라 불린 이는 조원식의 말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조원식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보이는 중년인이었다. 얼굴에 피곤이 잔뜩 묻어있었는데, 그 피로와 깊게 팬 주름이 합쳐져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자네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건달 놈들을 체포해? 그것도 회룡단 조직원을?”
“···전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왜 그 일을 지금 하느냔 말이야! 그딴 양아치 놈들은 나중에라도 정리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도 뭘 모르는 신입들만 데리고 갔다며!”
조원식은 지부장이 소리를 지름에도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 양아치 놈들이 지금 감산을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아무리 아드님이 위험하다지만 무림맹으로서의 본분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 말에 지부장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장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을 꺼낸 조원식도 아차 하는 표정이 되어 입을 가렸다.
둘의 시선을 받은 장건은 뚱한 표정으로 목덜미를 긁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