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일 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갈우선 지부장은 장건이 내려오는 동안에도 우울한 표정이었다. 그는 비선과 장건이 무슨 대화를 한 것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것인지 내려온 장건을 보고 짧게 말했다.
“갑시다. 지부에서 무사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그렇게만 말하고 나가려는 그를 장건이 잡았다.
“지부로 돌아간다고?”
“···돌아가야지. 지금 거기 모여있을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둘이 가서 뭘 하겠소?”
확실히 조금 전 위에서 그가 했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은신처에 모여있는 회룡단 조직원들은 백여 명이 넘었다. 똑같은 수의 도적단이었다면 무림맹에서 토벌대를 구성해 출격시켰을 숫자다. 그런 사파가 도시 안에서 생기는 걸 막지 못했으니 갈우선 지부장은 아마 이 일이 끝나는 대로 파면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의 얼굴에 단순히 슬픔이나 분노만 담겨있지 않은 이유였다.
하지만 장건은 붙잡은 어깨를 놓지 않았다.
“그럼 안내만 하시오.”
갈 지부장의 얼굴에 황당함이 떠올랐다.
“당신 제정신이오? 당신이 뭐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는 몰라도, 그냥 양민 백 명에게 쇠스랑 하나씩만 들려서 공격해와도 혼자 그걸 이겨낼 고수는 몇 없소. 아니, 그 전에 그 백 명을 모두 이겨낼 체력이 있는지도 모르겠군. 일 대 일 결투나 하수 서넛을 상대로 싸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안내만 하시오.”
갈 지부장은 장건의 차분한 말투에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가, 금방 다시 말을 이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군··· 그럼 그 앞까지만 안내하겠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성큼성큼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장건이 그 뒤를 따랐고, 기루 안에 있던 점원만 그들의 등 뒤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들이 기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밤비가 그쳤다. 그동안 내린 비로 축축한 동시에 서늘한 공기가 장건과 갈 지부장의 옷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먹구름이 하늘을 가려 달과 별은 반짝이지 않았다. 원래라면 늦은 시간에도 장안의 불야성을 떠올리게 하던 감산의 밤은 최근의 상황과 밤비, 서늘한 공기로 사람들이 움츠러들고 집 안에 숨으며 어느 때보다 고요해졌다. 그 어둑한 감산성의 밤거리 한가운데를 두 사람은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어두워서 길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법도 한데 갈 지부장은 잠시도 머뭇거리는 순간 없이 앞장서 길을 이끌었다. 그들은 기루 거리를 빠져나와 객잔 거리에 접어들 수 있었다.
완전히 냉각되어 가던 기루 거리와는 다르게 객잔 거리는 그래도 아직 여기저기 불이 켜진 객잔들이 보였다. 원래 더 늦은 밤까지 영업하던 곳이 기루 거리였음을 생각하면 이상한 풍경이었다. 한참 걷던 갈 지부장이 걸음을 멈췄다.
“저기 보이나? 황선각, 제양루. 모두 아직 등불이 켜져 있군.”
그의 손이 가리킨 곳에는 큼직한 객잔 두 채가 작은 골목을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대로에서 뻗어 나온 소로는 두 객잔 사이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고, 밝은 두 객잔의 빛에 그 안쪽은 더 짙은 그림자가 져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다.
갈 지부장이 말했다.
“비선의 말대로라면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하네. 하지만···”
장건은 멈춰선 지부장을 지나쳤다. 갈 지부장은 그 등을 보며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불이 켜진 두 객잔도 조심하게. 나라면 저기에 병력을 매복시키고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을 감시할 테니까.”
그 말에 장건은 삿갓 끝을 잡고 살짝 까딱여 주고 계속 나아갔다. 갈 지부장은 이 주변에서도 유난히 밝은 두 객잔의 모습에 꿀꺽 침을 삼켰다가, 얼른 몸을 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장건이 뭘 얼마나 잘 싸울지는 몰라도 그 소동으로 왕 씨 형제가 다른 장소로 도망치기 전에 지부의 무사들을 이끌고 와야 했다.
장건은 등 뒤에서 멀어지는 그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두 객잔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사잇길로 들어서기 전 지점에서 우뚝 멈춰 서서 고개를 들었다.
좌우에 우뚝 서 있는 두 객잔은 마치 거대한 일주문의 기둥처럼 보였고, 어둑한 먹구름 하늘은 그 기둥에 얹혀있는 지붕 같았다. 그 안으로 이어진 골목 안쪽은 검게 물들어 보이는 것이 없었다.
묘한 분위기였다. 그저 건달 놈들 숨어 있는 장소라 생각하기 힘든 음울한 기운과 알 수 없는 어둑함이 가득한 장소였다.
문득 장건은 허리 뒤에 꽂아두었던 평원 부족의 검은 창 촉이 어느 순간부터 부르르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잠시 창 촉에 손을 얹어 그 떨림을 느끼고 있자니 옆에 있던 객잔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안에서는 점소이로 보이는 남자가 대야를 들고나오다가 장건을 발견하고 덜컥 굳었다. 그가 말했다.
“···거기서 뭐하쇼?”
장건의 눈이 그를 향했다. 그는 이미 저 점소이가 객잔 문 뒤에 숨어 자신이 여기 멈춰선 순간부터 지켜보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저 모습은 연기일 터였다.
“왕 씨 형제, 저기 있지?”
“왕 씨? 뭔 소리쇼? 혼자요?”
장건은 그 질문에 왼손으로 칼집을 붙잡는 것으로 대답했다. 점소이 또한 그 대답으로 충분했는지 어리둥절하던 표정을 빠르게 지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자인 것 같은데. 너 뭐 하는 새끼야?”
“안에서 피 냄새가 나는군.”
점소이로 위장하던 자는 그 말에 움찔 놀랐다. 그리고 그와 함께 좌우 객잔 안에 숨어 있던 자들이 벌컥 문을 열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 수가 스물쯤 되었다.
“아이 시발. 이 새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객잔 찾냐?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냐, 여기 둘 다 영업 끝났는데.”
“우리가 끝냈지. 흐.”
낄낄거리며 몰려나온 자들의 손에는 크고 작은 날붙이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작은 칼이나 도끼, 간혹가다 장도를 들고 있는 자도 있었다. 그리고 그 날붙이들에는 모두 대충 닦아낸 피가 묻어 있었다.
점소이로 위장하던 자는 옆으로 다가온 이에게 도끼 하나를 받아 들며 의기양양해져서는 말했다.
“뭐, 객잔 찾던 거면 재수가 없었던 거라고 생각하쇼. 우리가 이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놈들은 싹 모가지 닦아버리라는 명령을 들어서 말이요.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장건은 주변을 대강 포위한 건달들을 쭉 둘러보다가 그 말을 듣고 입가만 당겨 씩 웃었다.
“그래. 사는 게 다 그렇지.”
그 웃음과 말에 낄낄대던 건달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허허. 이 새끼, 겁나서 제정신이-”
말을 하던 점소이 위장남은 순간 그의 허리춤에서 뭔가 번쩍인 동시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 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끔뻑거리던 사이에 갑자기 시야가 기우뚱, 곧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는 그렇게 어리둥절한 채 죽었다.
“···뭐, 뭐야 시발!”
그 뒤에 있던 무뢰배는 머리와 몸이 나뉘어 풀썩 쓰러진 동료의 모습에 깜짝 놀라 외쳤다. 그리고 이어진 장건의 칼날은 그대로 그의 목도 잘라버렸다.
장건은 그들이 깜짝 놀랄 시간이나, 대응할 순간을 주지 않았다. 처음 한 놈의 목을 친 후 거침없이 움직여 놈들의 숫자를 줄여나갔다.
그렇게 넷이 쓰러져서야 정신을 차린 건달들이 대뜸 고함을 지르며 장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무공을 좀 익혔는지 급격히 빨라진 움직임을 보이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 빨라진 움직임으로도 장건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그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혹은 두 눈 말고도 주변을 확인할 다른 감각이 있다는 것처럼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공격해오는 건달들의 날붙이를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했다.
건달들이라는 태생상 그들 중 깊이 무공을 익힌 자는 없었고, 그 한 번의 공격이 빗나가면 커다란 빈틈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장건은 처음 둘의 머리를 칠 때와는 다르게 그 빈틈을 향해 가볍게 칼을 찔러넣기만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목이나 심장에 구멍이 뚫린 놈들은 헉하고 숨 한 번 들이켜며 풀썩 쓰러져 피를 줄줄 흘리다 죽었다.
일고여덟이 그렇게 쓰러지자 장건 가까이 있던 놈들은 모두 바닥에 몸을 뉘었다. 조금 떨어져 있던 덕분에 장건의 움직임을 모두 볼 수 있었던 자들은 대번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시발. 고수잖아···”
“무, 무림맹은 안 움직인다며? 절대 안 움직인다며···?”
그중 한 놈이 버럭 소리쳤다.
“썅! 안으로 튀자! 우리끼린 감당 안 된다!”
놈이 그렇게 외쳤지만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장건도 그 자리에 서서 피 뚝뚝 떨어지는 칼을 늘어뜨리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흘낏거리며 장건은 물론 자기들끼리도 눈치를 보던 그들은 곧 들고 있던 날붙이도 내던지고 우르르 골목 안으로 도망쳤다. 장건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그는 골목 말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는 놈에게 따라붙어 그 등판에 칼을 꽂아주었다. 셋이 그렇게 더 죽었다.
휙 칼을 털어낸 장건은 놈들이 도망친 골목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그들이 열고 나온 객잔을 바라보았다. 가서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계산대 위에 엎어져 죽은 사람이 보였다. 비단 옷을 입고 풍채가 좋은 것을 보니 객잔의 주인이었던 것 같았다. 객잔 안은 환했지만 조용했다. 여기저기 시체 두엇이 널브러진 것 외에는 손님이 없어서였다.
천천히 객잔 안을 살펴보던 장건은 곧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나와 보니 소로 저 안쪽에서 횃불을 들고 우르르 몰려나오는 자들이 보였다. 흔들리는 횃불에 그들 수십이 든 무기가 시퍼렇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장건은 그걸 보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하는 짓이나 무장 상태나 저건 이제 도적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정신 나간 마인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정말 저런 무뢰배들로 감산을 점령하려 한 것일까?
아들을 납치해 지부장을 협박함으로써 무림맹을 잠시 억누를 수는 있어도 감산성은 이 신대륙의 경동맥에 해당하는 중요한 도시였다. 결국 감산의 뒷골목을 통일했어도, 그리고 장건이 오지 않았어도 이 도시의 암흑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싹 소탕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감산성의 상공업과 무역이 냉각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마공을 익힌 미치광이들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그때 우르르 길을 가득 채우며 몰려온 자들이 장건을 앞에 두고 멈췄다. 그들 중 제일 앞에 있던 자가 한 걸음 더 나와서는 외쳤다.
“누구냐, 네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장건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큰 칼을 들고 나선 이는 그 칼만큼이나 우락부락한 덩치를 가진 자였다. 그리고 그 뒤에 선 자들도 큼직한 창이나 칼, 검을 들고 장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을 쭉 둘러보던 장건은 왼손을 들어 삿갓 끈을 풀며 말했다.
“피차 통성명이나 할 처지는 아닌 것 같군. 쉽게 말하지.”
그는 끈을 풀어낸 삿갓을 한쪽으로 휙 던지고 그들에게 칼을 겨눴다.
“무기를 버리고 엎드려라. 지금부터 서 있는 자는 살려두지 않겠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회룡단 조직원들은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들었다는 것처럼 우하하 웃기 시작했다. 수십 명이 그렇게 웃으니 좁은 길이 단숨에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장건은 그 웃음소리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겨눴던 칼을 늘어뜨리며 터벅터벅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이건 뭐, 웬 고수가 쳐들어왔다길래 놀랐는데, 우스갯소리나 하는 놈이었군! 얘들아! 쳐라! 빨리 처리하고 술이나 마시자!”
그의 외침에 크게 웃던 곧 자기들 무기를 치켜들고 장건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건 날붙이의 두려움을 전혀 모르는, 그저 뒷골목 막싸움을 하던 자가 큰 칼을 들었을 때 보여주는 움직임 그 자체였다.
그리고 장건은 앞으로 한 발 불쑥 나아가는 것으로 그 어설픈 칼질 안으로 파고들어 왼 주먹으로 짧은 일격을 가했다. 제일 앞에서 달려들던 건달은 그대로 가슴이 움푹 내려앉으며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가 바닥으로 완전히 엎어지기 전, 좁은 골목에서 장건의 칼이 거침없는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골목, 흔들리는 횃불 아래 검붉은 핏줄기들이 사방으로 치솟았다. 잘려 나간 손목과 팔이 날아다니고 왈칵 쏟아진 피는 골목을 만들던 벽에 진득한 그림을 그렸다. 때때로 장건의 칼날이 건달과 그 벽을 함께 갈라 반짝이는 불씨가 눈을 어지럽히며 튀었다.
제일 앞에서 크게 웃다가 달려들었던 자들은 쩍 갈라진 자신의 가슴팍을 부여잡고 쓰러져서는 컥컥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조금 전까지 밤비가 내렸던 바닥에 이번엔 핏물이 쏟아지며 피 섞인 흙탕물이 되었다.
그리 밝지 못했던 횃불은 장건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도리어 너무 빠른 그의 움직임에 흐릿한 잔상과 시퍼런 칼날만 보여 귀신이 날뛰는 듯 보였다.
좁은 골목에 제한된 시야, 저 앞에 죽어가는 자들과 그들이 뿜어내는 피. 회룡단의 건달들은 자신들이 마치 어느 동굴 안에 칼 쓰는 귀신 하나와 갇혀있는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들의 숫자에서 느끼던 유리함은 그렇게 촛불 꺼지듯 훅 사라지고 남은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뿐이었다.
“시, 시발!”
결국 원래부터 용감하지 못했던 건달들은 들고 있던 무기를 얼른 내던지고 진흙탕이나 마찬가지인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개중에는 그 진흙 속으로 파고들려 버둥거리는 자도 있었다.
장건이 골목 끝 대문 앞에 섰을 때, 그 대문을 열고 몰려나왔던 자들은 모두 진창 속에 엎어져 있었다.
슬쩍 그들을 돌아본 장건은 휙 칼을 털어내며 대문을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