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커흑··· 이, 놈··· 어떻게···”
나가떨어진 남궁여준은 왈칵 피를 토하며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두 눈을 껌뻑거리며 자신이 장건의 손과 자신의 거리를 잘못 보았는지 되새겨보았다. 그러나 분명 장건의 손은 그의 몸에 닿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 거리가 몇 장씩 되던 것은 아니었으나 동시에 절대 닿을 수 없었어야 할 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덜덜 떨며 내려다본 그의 가슴팍은 시커멓게 타버린 옷깃과 그 아래 선명하게 찍힌 손바닥 자국이 남아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기도와 폐가 타버리는 듯한 고통이 그를 덮치고 있었다.
손바닥을 앞으로 뻗은 그대로였던 장건은 천천히 자세를 바로잡으며 툭툭 왼손을 털었다. 그리고 부러진 칼을 칼집에 끼워 넣고 쓰러진 남궁여준을 향해 다가갔다. 남궁여준은 본능적으로 장건에게서 멀어지려 고통에 겨운 표정으로 꿈틀꿈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래봐야 장건이 성큼성큼 걷는 것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이, 이것이··· 황군의 무, 공···”
남궁여준은 다가오는 장건을 올려다보며 그리 말했다. 하지만 장건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황군 무공 아닌데. 항룡십··· 아니, 아직 다른 초식은 없으니 그냥 항룡장降龍掌이겠군.”
“···뭐?”
남궁여준은 그 대답에 멍청한 표정이 되었으나, 장건은 그에게서 눈을 떼고 자신의 오른 어깨를 살펴보았다. 방금 왕이의 칼에 찢겨나간 상처가 쓰라려 오고 있었다. 대충 어깨를 움직여보니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까딱했으면 목이 달아났을 상처이기도 했다.
찢어진 옷깃을 매만져 상처를 덮고 있으려니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남궁여준이 쿨룩 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무슨 뜻이냐? 네놈··· 황군이 아니라고? 그, 그럼 무림맹이냐?”
“이건 내가 자주 하는 말인데, 이 넓은 세상에 거기 아니면 고수가 없겠냐? 시야를 좀 넓게 가져. 대양을 건너 세계가 확장된 지 백 년이 넘었는데 왜 그렇게 편협하냐?”
삼매진화의 활용이 제대로 성공해 기분이 좋아진 장건은 시답잖게 가벼운 핀잔을 했다. 남궁여준은 그 말을 듣고는 다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물었다.
“황군도, 무림맹도 아니라고···? 그럼?”
“그럼은 무슨. 영약 하나 때문에 죄 없는 사람 수십을 죽여놓고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나?”
“···그 빨간 원숭이들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거냐? 너 같은 고수가?”
“세상일 참 모를 일이지. 안 그래?”
장건은 그렇게 말하며 마무리를 위해 남궁여준에게 다가갔다. 그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검은색 창 촉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그때 장건의 눈에 남궁여준 옆에 있는 석관이 보였다.
조금 전 장건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기 전까지 남궁여준과 왕 씨 형제가 둘러싸고 있던 석관이었다. 그들이 이 감산성에서 무슨 짓을 벌이려는 것인지 크게 관심이 없던 장건은 굳이 그게 뭐냐 묻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그 석관과 안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니 장건도 자연스럽게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석관에 누워있는 남자는 꽤 잘생긴 얼굴에 왼손이 없었다. 그리고 양발의 발가락도 하나씩 모자랐다. 장건은 그렇게 신체 일부가 모자랄 사람 하나를 알고 있었다. 감산 지부장이 애처롭게 찾던 아들이었다.
걸음을 멈춘 장건은 남궁여준에게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이 친구, 여기 지부장 아들 맞나?”
“크, 그걸 왜 나한테 묻지? 내가 순순히 말할 것 같은가?”
남궁여준은 입가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덜덜덜 떨면서도 애써 여유로운 척 그리 말했다. 하지만 장건은 애써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냥 몸을 돌려 석관으로 다가갔다.
석관 안에는 지부장의 아들로 추정되는 남자가 벌거벗고 누워있는 것 외에도 뭔가 맑은 액체가 얕게 깔려 있었다. 장건은 그 남자의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일단 살아있는 것인지 확인할 생각에서였다.
그때 그 손길을 느낀 것인지 남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아무런 전조도 없이 눈을 번쩍 뜨니 장건도 살짝 당황해서 멈칫했다. 석관 속의 남자와 장건의 눈이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공격! 그놈을 공격해!”
그 순간 남궁여준이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오른손이 번뜩 장건의 가슴팍을 노리고 치켜들었다.
장건은 반사적으로 오른손의 창날로 그 손을 잘라버리려다가, 그럼 이 남자에게 남는 손이 없으리란 생각에 멈칫했다. 대신 재빨리 왼손으로 찔러오는 그 손을 잡으려 들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장건의 왼손은 아주 빨랐으나 송곳처럼 빳빳이 세워진 남자의 손가락은 기어코 장건의 가슴팍에 파고들었다. 물론 중간에 붙들려 깊이 파고 들어가진 못했어도 살갗을 찢어 피가 뚝뚝 흐르기엔 충분한 상처였다.
어처구니없다는 식으로 웃던 장건은 힘을 줘 남자의 손을 밀어냈다. 남자의 팔은 부들부들 떨며 장건의 손을 떨쳐내려 했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남자의 손은 쇠집게에 붙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쭉 밀려나야 했다.
장건은 무표정한 남자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거, 뭐더라. 갈운명? 갈원명? 어쨌든 정신 차려보시오. 당신 아버지가 당신 때문에 아주 곤란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도리어 장건에게 붙잡힌 그대로 와락 뛰어올라 발차기를 날렸다. 장건은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팔을 들어 그것을 막아야 했다. 그 발차기에는 적어도 사람 머리통은 부숴버릴 내력이 담겨 있었으니까.
석관을 박차고 일어난 남자는 연이어 장건을 공격했다. 몸 안의 내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가 일어난 석관이 박살이 났다.
남자는 힘이 넘치는 동작으로 장건을 차고, 밀고, 때리고, 붙잡으려 들었다. 괜찮은 권법이었다. 현묘하진 않아도 기본기에 충실한 움직임이었고, 넘치는 힘과 합쳐지자 무시 못 할 공격이 되었다.
물론 장건은 창날을 든 오른손을 반쯤 봉인한 채 왼손으로만 어렵지 않게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를 괴롭히는 건 남자의 넘치는 힘보다는 눈앞에서 덜렁거리는 그의 물건이었다.
“뭔데? 당신 갈 공자 아니오? 정신 좀 차려보시지?”
장건은 그를 가볍게 밀어내며 다시 말했지만 남자는 아무런 반응 없이 그를 죽이려 계속 공격해왔다. 그를 보던 남궁여준이 끌끌 웃으며 말했다.
“소용없다. 그놈, 갈원명은 이제 우리들의 충실한 하인일 뿐이다. 불완전한 대법이었다지만 그 정도도 막으려면 죽이는 수 말고는 없지. 평원에서 죽은 원주민들의 복수를 위해 왔다고 했나? 그런 야만인들을 위해 여기까지 오다니 협의심은 대단하지만, 그를 위해 상관없는 자까지 해칠 수 있겠나?”
남자의 주먹을 막아내던 장건은 남궁여준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뭔지는 몰라도 감산성 지부장의 아들이 납치되었던 것은 단순히 그를 통제하기 위함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당장 훌쩍훌쩍 잘만 뛰는 모습이 몇 주 동안 납치되어 고생하던 자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그때 남자의 내려찍기가 장건을 스치고 바닥에 내려꽂혔다. 깔끔한 모양이었던 바닥의 판석이 그 내려찍기 한방에 와작 박살이 났다.
그를 본 장건의 눈이 다시 꿈틀거렸다. 남자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세상에는 어떤 재능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가끔 있지. 그들은 대부분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재능을 모른다. 특별한 방법이 없다면 활용되지 못하고 그냥 사그라져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러나 우리의 신공이 있다면, 혹은 대법이 있다면 다르다. 그들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지···”
남궁여준은 몸을 일으며 석관에 등을 기대며 계속 중얼거렸다.
“···네놈이 방해한 구음사혈도 그중 하나였고, 지금 네 앞에 있는 갈원명도 그런 재능 중 하나다. 세 갈래 대혈이 다른 이들보다 더 크고, 훨씬 더 강한 양기를 타고 난 남자. 신공의 적격자지. 빨리 그를 처리하지 않으면 그의 힘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할 것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대충 상대해줄 수 있을 것 같나? 벌써 팔이 아파 오지 않나?”
갈원명을 상대하며 그 중얼거림을 모두 들은 장건은 찌푸린 눈살 그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놈들은 애초부터 회룡단으로 감산의 뒷골목을 통일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진짜 목표는 일차적으로 지금 앞에서 알몸으로 날뛰고 있는 갈원명이었을 것이고, 당장 그가 남궁여준의 명령을 듣는 걸로 보아선 무슨 대법이니 뭐니로 그의 정신을 억압한 것으로 보였다. 암흑가의 폭주로 혼란스러워진 감산성, 그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무림맹 감산 지부장, 그는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아들이 살아있음에 기뻐하겠지만, 그 아들은 이미 마궁의 하수인이 되어 있었다. 마궁은 언제든지 폭발시킬 폭탄 하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정확한 계획을 모두 알 수는 없어도 감산성이 개판이 나길 원했다는 건 분명했다. 혹 본격적으로 황군과 싸우기 전에 신대륙 도시들을 마비시키려는 것일까? 그 시작이 감산성이었던 것이고?
머리를 굴려보던 장건은 곧 푸-하고 짧은 숨을 내뱉고는 생각을 마무리했다. 어찌 되었든 마궁이 수작질을 벌이던 것은 이제 무림맹과 황군 모두 알게 되었으니, 굳이 장건이 나설 것 없이 자신들의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이 알아서 마궁과 치고받고 싸울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무리한 장건은 시커먼 마기를 줄줄 흘리기 시작한 갈원명을 바라보았다. 그의 회색빛 탁한 두 눈에는 아무런 이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갈원명이라는 남자가 저 안에 살아있기는 할까? 이런 식의 세뇌나 주술에 문외한인 장건으로서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장건은 이게 맞은 선택이기 바라며 여태까지의 수비적인 태도를 벗고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한걸음에 거리를 줄인 그는 마주 달려드는 남자를 향해 풀썩 주저앉으며 발차기로 하단을 쓸어버렸다.
다리가 걸린 남자가 그대로 반 바퀴 회전하며 공중에 떠올랐고, 장건은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주먹을 뻗었다. 벼락처럼 내려꽂힌 주먹이 남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남자는 그대로 뒤통수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어찌나 세게 박았는지 바닥 판석에 금이 갈 정도였다. 그와 함께 철푸덕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움직임을 멈췄다.
“···저리 쉽게?”
지켜보던 남궁여준은 애써 준비하던 마인이 너무 쉽게 쓰러지자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인도 마인이지만, 단숨에 그를 처리해버린 장건의 손속도 황당했다. 그래도 인질이었는데 너무 간단히 해치운 것이다.
그의 당혹감과는 별개로 장건은 얼른 남자에게 손을 뻗어 머리와 맥박을 살폈다. 판석을 박살낸 위력과는 별개로 머리에는 찢어진 상처 하나 없었다. 그건 판석을 부순 것이 그의 머릿속을 훑고 지나간 장건의 내력이었기 때문이었다.
“음.”
겉이 멀쩡하고 맥박마저 희미하게나마 뛰고 있는 것을 확인한 장건은 몸을 일으켰다. 의식을 잃긴 했지만 뭐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건 이제 그를 맡을 감산 지부장 갈우선이 알아서 할 것이다. 장건은 죽이지 않는 것으로 나름의 도의는 다 했다고 여겼다.
그 후 장건은 스르륵 몸을 돌려 석관에 등을 기대로 앉아있는 남궁여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황당한 눈으로 장건을 바라보다가 그의 오른손에 들린 검은 창 촉을 보고는 표정이 굳었다.
“···원한이 깃든 물건이군. 설마 그 잿더미에서 구한 것인가?”
“아니. 누가 시커먼 말을 타고 와서 배달해 주던데.”
장건은 남궁여준에게 천천히 걸어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남궁여준은 수염과 머리칼이 엉망이 된 몰골로 부들부들 떨며 장건을 노려보았다. 오른손으로는 가슴팍을 부여잡고 있었다.
“큭··· 황군이나 무림맹도 아니고, 전혀 엉뚱한 은원에 궁의 행사가 엉망이 되었군.”
“그렇게 착하게 살았어야지.”
“착하게?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천년의 억압과 학정을 알면서도 그리 말하는가?”
장건은 왼손으로 턱을 긁었다. 그렇게 당하고 살던 놈들이 똑같이 다른 약자들을 괴롭히는 게 말이 되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그걸 말해 이놈을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번쩍 창 촉을 들어 그의 가슴팍에 찍어버리고 일어섰다.
“끄억!”
남궁여준의 가슴팍에 틀어박힌 창 촉은 장건이 손을 놓았음에도 혼자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꿈틀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이 멎을 때까지, 꿈틀거림 하나 없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의 내부를 망가뜨렸다.
그의 죽음을 내려다보던 장건은 가볍게 코를 훑고는 품에서 연초를 꺼내 말았다. 거기에 불을 붙일 즈음 그가 부쉈던 입구가 소란스러워지더니 갈 지부장을 비롯한 무림맹 무사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연초를 한 모금 빨아들인 장건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갈 지부장에게 남자가 쓰러진 쪽을 슬쩍 턱짓했다. 그제야 자기 아들을 발견한 그가 소리를 질렀다.
“원명아!”
장건은 연초를 피우며 그가 아들을 살피며 무사들과 소란을 일으키는 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깨와 가슴팍 상처가 쓰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