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96)
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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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끝나고 등장한 갈우선 지부장은 현장을 둘러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당장 자기 아들을 업고 의원을 찾아 떠났다. 결국 현장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정리해야 했다.
그동안 장건은 지하실을 빠져나와 위로 올라갔다. 사당 문밖으로 나가보니 그쳤던 밤비가 다시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장건은 연초를 물고 사당 처마 아래 서서 비를 맞고도 바쁘게 움직이는 무림맹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연초를 반쯤 태우고 있으니 슬그머니 그의 옆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감산 지부의 조원식이었다.
“···확실히 훈장을 받을 만한 분이셨군. 혼자 회룡단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지부장의 아들까지 구했다니.”
“아들이 여기 있을 줄은 몰랐소.”
“운이 좋았다는 거요? 그렇다고 그 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아마 우리 지부에서도 훈장을 준비할 것이오. 포상금이랑.”
조원식은 툴툴 웃다가 자기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밑에 죽어있는 놈들, 그중 둘은 왕 씨 형제라는 걸 알겠소. 원래 알던 얼굴이니까. 그럼 그 세 번째 인물이 당신이 쫓아온 사람이겠군. 맞소?”
“그렇소.”
고개를 끄덕인 조원식은 문득 장건이 연초를 태우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꼼지락거리며 한 대 말기 시작했다.
“일단 그 셋의 시체는 지부로 가져가 정밀히 검시할 것이오. 형식적이긴 하지만 그를 통해 본 단에 보낼 문서를 작성할 수 있겠지. 그럼 본 단에서도 지원이 나올 것이고, 이후에는 이 감산성에서 마인들의 뿌리를 모조리 뽑아버릴 수 있을 것이오. 이미 황군의 색출이 있었음에도 또 나온 것으로 보아 이번엔 정말 양민과 무림인, 상인 할 것 없이 꼼꼼히 조사해야겠지··· 근데 불은 어디 있소?”
말을 하던 조원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건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당 바깥에 모닥불이나 무림맹 무사들이 들고 다니는 횃불은 있어도 연초에 불붙이기 좋은 조그만 등잔불은 보이지 않았다.
장건은 그의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멀뚱히 그를 바라보다가 다 태운 연초를 탁 튕겨 버려버리고는 사당의 처마를 벗어나 부슬부슬한 밤비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보시오! 장건! 어디 가시오!”
“내가 더 할 일은 없어 보이는군.”
“아니 무슨··· 어디로 가는지 말해줘야 포상금이라도 전해주지!”
장건은 등 뒤의 외침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터벅터벅 여기저기 바쁜 무림맹 무사들을 지나 회룡단을 처리한 골목으로, 그리고 또 거기서 실려 가고 잡혀가는 무뢰배들을지나 일주문처럼 보였던 두 객잔 사이로 걸었다. 옅은 비가 그의 얼굴을 축축하게 덮었다.
그대로 객잔 거리를 빠져나가려던 장건은 문득 객잔 앞 거리에 자신이 내던진 삿갓이 굴러다니고 있는 걸 발견했다. 다가가 주워들어 툭툭 털어내며 살펴보니 그가 던진 이후로 누구한테 밟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는 그걸 적당히 털어 머리에 썼다. 얼굴에 줄줄 흐르던 빗물을 가리기엔 별문제가 없었다.
이후 그는 그렇게 밤비를 맞으며 아직도 어둡기만 한 감산성의 거리를 걸었다. 이제 시간은 밤보다는 새벽에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무림맹 무사들이 뛰어다니던 객잔 거리를 벗어나자 그 넓은 감산 거리에는 담벼락 아래 웅크린 거지와 술주정뱅이 외에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계속 걷던 장건은 곧 기루 거리에 들어섰다. 뜨문뜨문 불빛이 빛나는 기루들을 지나 장건이 도착한 곳은 무림맹 비선과 만났던 기루였다. 그 앞에 이르러 텅텅 두드리니 곧 천천히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이미 한 번 그를 맞이했던 점원이 놀란 기색을 지우며 문 앞에서 비켜섰다. 장건은 그를 지나서 곧장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사님, 겉옷과 모자는···”
점원이 그를 불렀지만 장건은 대답 없이 계단을 올랐다. 꼭대기 층에 도착하니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비선은 한쪽에 있는 긴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길쭉한 곰방대를 피우고 있었다. 그녀는 올라온 장건을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청사는 어찌··· 다치셨나요?”
말을 하던 그녀는 피와 빗물이 축축한 장건의 모습을 보고는 곰방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얼른 다가와 그의 오른 어깨와 가슴팍을 살폈다.
“다치셨군요. 잠시 기다리세요, 약이 있으니.”
그녀는 방 한쪽 상자에서 걸쭉한 고약과 붕대를 가져와 장건을 앉혀놓고 웃옷을 벗겼다. 장건은 그녀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삿갓과 검을 내려놓고 그녀가 약을 발라주는 동안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주 앉아 약을 발라주던 그녀는 흘끗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감산 지부와 함께 움직이지 않았나요? 회룡단이라고 해봐야 결국 건달들이라 위험한 건 왕 씨 형제와 청사뿐이었을 텐데요.”
“왔다갔다 하기 귀찮더군. 그냥 혼자 갔지.”
“···그럼 혼자 회룡단 조직원과 마인 셋을 해치웠다는 건가요?”
장건은 그녀의 질문에 입을 다물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녀도 약을 바르던 손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눈매를 바라보던 장건이 말했다.
“진짜 얼굴이군.”
“···역용공은 그렇게 아무 때나 쓰는 기술이 아니에요. 너무 오래, 자주 쓰면 본래의 형태가 무너져 생명이 위험해지죠. 암룡대원이 정말 필요하다고 여길 때 쓰는 기술이라고요.”
“그 궁이라는 놈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암룡삼호는 이전 질문과 전혀 연결되지 않은 장건의 물음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약 바르던 손을 다시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충분히, 필요한 만큼.”
“충분히 알아서 감산성 안으로 들어오는 마인들을 방치했나?”
“···양굉에게 모든 정보를 뽑아낸 건 아닌 모양이군요. 암룡대는 정보수집 및 비밀공작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이지 타격대가 아니에요. 당장 신대륙의 모든 암룡대원을 모아와도 정면에선 무림맹 타격대 하나 이길 수 없죠.”
장건은 붕대를 묶기 시작한 그녀의 손길에 팔을 벌려주며 계속 말했다.
“그럼 결국 감산에서 황군이 빠져나가니 힘이 없어 손을 놓고 있었다는 거군.”
“손 놓고 있지 않았어요. 무림맹 지부를 움직이고 지원하려 행동하고 있었을 뿐. 사건이 더 길어졌다면 무림맹 본 단을, 급박하다면 외부에 다른 문파나 집단을 이용할 수 있었겠죠. 그들을 제압하진 못했어도 어디로 어떻게, 그리고 무슨 짓을 하려는 지 정도는 모두 파악하고 있었어요.”
“지부장의 아들이 무슨 짓을 당하고 있었는지도 알았나?”
붕대를 감던 그녀는 잠시 손을 멈추고 흘낏 장건의 눈을 확인하고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떻게 되었죠? 죽였나요?”
“죽이진 않았다. 하지만 의식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어떤 상태였는데요?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당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나요? 아니면 그냥 움직이는 인형처럼 보였나요?”
장건이 듣기엔 그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냥 인형처럼.”
“그럼 백치가 되겠군요. 그나마 괜찮은 결말이에요.”
“백치가 괜찮다고?”
그녀는 순간 붕대를 빙 둘러 두르기 위해 장건에게 안기듯 가까이 붙었다. 그녀는 그렇게 가까이 붙어 장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해치웠을 청사는 남궁이라는 성씨를 가지고 있었어요. 거슬러 올라가면 옛 주나라 시절까지 올라가는 오래된 가문이죠. 실제로 한 제국이 세워지기 전에는 성세가 굉장하던 이들이에요. 나라를 세우진 못했어도 여기저기 영향력을 끼치긴 했다고 하니까.”
갑자기 나온 역사에 장건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된 만큼 그들은 주술과 술법에 대단한 조예를 가지고 있었어요. 전국시대에는 심지어 하늘에 제물을 바치고 날씨를 바꿀 수 있었을 정도로 굉장했다고 하더군요. 요즘 도사들과는 비교가 되질 않죠. 하지만···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어요.”
오래된 가문, 잘못된 선택. 장건은 뻔히 알 것 같았다.
“네, 진이 무너지고 항우의 편에 붙은 것이죠. 처음에야 그 마왕이 당연히 이길 것 같았으니 그리 이상한 이야기도 아니고, 항우 쪽으로 움직인 옛 가문이 많아서 기류에 휩쓸렸을 수도 있는 일이긴 하죠. 어쨌든 그들은 그 마왕이 무너지며 같이 망했어요. 하지만 워낙 이뤄놓은 것이 많았던 덕분에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음지에서 음지로, 변방에서 변방으로 제국의 눈을 피해 다니며 그 질긴 생을 이어나갔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주술은 어둡고 음습하게 변했어요.”
그녀는 붕대 끝을 묶고 손을 뗐다.
“지부장의 아들, 갈원명에게 시도한 술법도 그런 어두운 술법이에요. 고문과 약물로 정신을 부수고 사악한 주술로 몸 안에 마공을 새겨넣는, 그렇게 함으로써 한 사람을 완전히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잔인한 술법··· 그러나 그 술법이 진짜 무서운 점은 그 당사자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인다는 것이죠. 웬만큼 친한 사람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꼿꼿한 자세로 앉은 그녀는 장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결국 갈 지부장은 움직일 수밖에 없었어요. 시간의 문제일 뿐 감산의 뒷골목은 결국 소탕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몇 주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무림맹은 이미 감산성 사람들에게 많은 민심을 잃은 상태고, 그렇게 도시를 정리하더라도 좋은 소리는 들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갈 지부장은 회룡단 본거지를 소탕하고 그곳에서 자기 아들을 발견하게 되었을 테죠.”
장건은 그 뒤 돌아갈 상황이 머릿속에 대충 그려졌다. 애지중지하던 아들을 발견한 갈 지부장은 아들이 어딘가 이상하더라도, 그리고 비선의 조언이 있더라도 그를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왕 씨 형제라면 몰라도 나름 지위가 있는 청사는 회룡단이 소탕되기 전에 빠져나갈 것이고, 그러면 감산 지부는 청사, 남궁여준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그자가 지부장의 아들을 이용할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감산 지부의 기밀을 빼낼 수도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를 암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망나니 짓이라도 해서 이미 흔들린 감산 지부의 민심을 더 흔들 수도, 더 나아가서 마공을 폭주시켜 난리만 피워도 감산성에서의 무림맹 영향력을 박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장건은 다시 그녀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인형처럼 움직이던 게 그 술법이 미완성이었다는 뜻인가?”
“맞아요. 그때 막으면 적어도 마인들의 하수인이 되는 건 막을 수 있죠.”
장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충분히 아는 것 같군.”
그녀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와 그들의 싸움은 당신의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오래되었어요. 최근 들어 표면으로 드러날 정도로 격렬해진 그들의 움직임도 대부분 파악하고 있죠.”
“대부분?”
그녀는 다시 한번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네. 전부 파악하진 못했어요. 요즘 인력이 많이 모자라서요. 그러니 동쪽에서 있었다는 일을 이야기해 보세요. 제대로 된 정보라면 우리 암룡대가 당신에게 빚 하나 진 것으로 칠 테니까.”
장건은 슬쩍 입가를 당겨 웃으며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미소를 지우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모든 것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저 여정 중 심각한 상처를 입은 그 부족의 사람을 만나 복수를 부탁받았고, 그가 알려준 단서에 따라 이곳까지 왔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들은 암룡삼호는 대번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장건도 그녀가 눈치챘다는 걸 알았지만, 더 말을 꾸미지는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그저 길에서 만난 원주민의 부탁으로 여기까지 왔고, 또 단지 그것 때문에 싸웠다는 건가요?”
장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묘해지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빚을 지운 셈인가?”
“···네. 그럴 만한 정보였어요. 언젠가 당신이 필요할 때 암룡대에서 도와주도록 하죠.”
“그럼 왜 황군이 감산에서 빠져나갔는지 알려줄 수 있나?”
곧바로 이어진 질문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황군의 기밀이에요. 난 당신을 도와준다고 했지, 원하는 걸 모두 알아봐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은근한 미소와 반듯이 선을 긋는 말에 장건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알려줄 것 같진 않았지. 그럼 그놈들이 뻘짓 못하게 알아서 잘들 좀 해보라고.”
장건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붕대를 감느라 벗어놓은 옷을 천천히 입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반만 남은 칼까지 허리에 차고 삿갓을 찾으려니 그건 암룡삼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녀는 그 삿갓을 들고 여전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조금 전 지은 그 묘한 미소 그대로 장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걸 마주 본 장건이 슬쩍 눈썹을 까딱거리니, 그녀가 말했다.
“소리를 듣자니 비가 더 거세졌군요.”
“옷이 더 젖겠군.”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들고 있던 삿갓은 한쪽으로 휙 던져버리며 장건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말리고 가는 방법도 있죠.”
“···감산 지부에서 날 찾을 텐데.”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걸 생각했으면 굳이 오늘 나를 찾아올 필요가 있었나요?”
장건은 고개를 끄덕이고 겉옷을 벗었다.
“그건 그렇군.”
그는 애써 입었던 옷을 다시 벗었다. 그녀 말대로 옷을 말리려면 옷을 잘 펴서 어디 널어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 방 안에 있던 두 사람 다 사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입고 있던 옷 모두 바닥에 엉망으로 굴러다녔다.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가 방 안 소리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