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105)
“…괜찮은 것인가?”
장득수는 조금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취걸도 마찬가지였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렇게 하게 되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희 셋이서 위지호연을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저희는 실패했습니다. 누군가는 살아서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취걸의 목소리는 낮았다.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이 섞였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자기위안과 살아야 한다는 갈망이 있었다.
“저는 백소저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죽을 수 없습니다. 개방… 개방을 위해서.”
알고 있다. 이것이 결국에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에는 죽는 것이 두려워 도망칠 뿐이다. 취걸은 죽은 혈혈노파의 시체를 힐긋 보았다. 저 잔학한 마두조차도 죽기 직전에는 죽고 싶지 않다고,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했다.
죽고 싶지 않다. 그것은 모두가 똑같다. 하나 뿐인 삶이기 때문이다.
“장득수님은 어떠십니까.”
“…죽고 싶지는… 않지. 부끄러움을 알면서도 살고 싶네.”
이제 와서 체면을 따지는 것이 무어가 중요하겠나. 장득수는 기가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취걸이 쓴 웃음을 흘렸다. 그는 품 안에 손을 넣어 둘둘 말린 스크롤을 꺼냈다.
“운이 좋았습니다.”
이것은 혈혈노파가 가지고 있던 스크롤이다. 살점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아, 혈혈노파가 던전의 도플갱어 중 하나를 죽이고서 얻은 듯 했다. 백소고가 가지고 있던 아티펙트를 이용해서 스크롤에 새겨진 마법을 분석했다.
‘던전 탈출.’
사용한다면 즉시 던전에서 탈출이 가능한 마법이 새겨져 있고,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인원은 셋이었다. 혈혈노파는 죽기 직전까지 이 스크롤에 어떤 마법이 새겨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백소저가 원망할텐데…”
“책임을 지겠습니다.”
취걸이 대답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 앉아 쓰러져 있는 백소고를 보았다. 이성민을, 사제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그렇게 외치던 백소고를 기습적으로 점혈하여 정신을 잃게 만든 것은 취걸이었다.
‘나를 원망하십시오.’
취걸은 짧게 만났던 이성민을 떠올리면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스크롤을 찢었다.
[함께 사용할 인원을 지정해 주십시오.]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에 대해, 취걸은 장득수와 백소고의 이름을 말했다.
*
아프다.
통증을 자각했을 때, 이성민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어떤 식의 공격이었는지 분석할 여유는 없었다. 이성민의 머릿속에서 허주가 고함을 질렀다.
[정신 차려라! 계속해서 오고 있으니까!]이성민은 즉시 몸을 일으켰다. 도플갱어가 발을 크게 들더니 바닥을 내리 찍었다. 살덩이로 이루어진 바닥이 파도처럼 요동치더니 거대한 힘이 이성민을 덮쳤다. 이성민은 이를 악물고서 몸을 날렸다.
콰아아앙!
방금 전까지 이성민이 있던 자리에 초토화되었다.
[어떡하지? 어, 어떡해요?]루비아가 불안한 듯 웅웅거리면서 목소리를 낸다. 모른다. 이성민은 급히 창을 휘둘렀다. 꽈앙! 도플갱어가 내지른 장력이 이성민의 창과 부딪혔다. 창을 잡은 왼쪽 손목이 비틀린다. 왼쪽 팔 전체가 찌르르 울리면서 감각이 둔해졌다.
‘손이…!’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억지로 불어넣는다. 오른 손을 중심으로 잡고서 창을 한 바퀴 돌린다. 창준과 창두, 그 두 개가 순차적으로 도플갱어를 덮친다.
도플갱어의 얼굴은 무심했다. 오리지널보다는 못한 도플갱어였지만 그렇다고 괴물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흑룡포를 쓰지 않는 것은 도플갱어가, 아니, 위지호연이 상대를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즉, 여태까지는 단순히 상대를 가지고 놀았다는 뜻이었고 앞으로는 상대를 적수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죽이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것은 이성민에게 있어서는 끔찍한 불행이었다. 이성민의 공격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도플갱어의 손에 가로막혔다. 전신에 검은 호신강기를 두른 도플갱어는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파괴의 화신이었다. 비록 그것이 위지호연 본인이 아닐 지라도.
벌려 뻗은 손이 커보인다. 가벼운 손목의 흔들림, 그것이 수백의 잔상을 그린다. 변? 환? 허? 실은 어디지?
[중앙을 중심으로 해서 오른쪽으로 열, 왼쪽으로 일곱…]허주가 뭐라고 말은 했지만 느리다. 듣는 것으로 이해하고 대응하기에는 위지호연의 공격이 너무 빠르다. 하나에 맞춰 요격하는 것보다는 전체를 막기 위해 창을 돌렸고, 결과적으로는 늦었다. 이성민은 피를 토하면서 뒤로 날아갔다.
허주가 투덜거린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여기서 죽으면 주인님을 만날 수 없는데… 의식 너머에서 루비아가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좀… 닥치고 있어 봐.”
이성민은 숨을 몰아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조금 후들거린다.
[은혜도 모르는 놈 같으니. 내가 공격의 일부를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너는 방금의 일격으로 몸이 폭사했을 거다.]과연. 정면으로 당한 것과 공격에 실린 위압감을 생각하면 의외로 버틸만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막아 준 겁니까?’
[네가 이곳에 죽는다면 나도 난감해지니까. 핏덩이가 된 몸을 빼앗을 수도 없고 말이다. 그리고 네놈에게 묻고 싶은 것도 있다.]허주가 대답했다. 이성민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도플갱어는 이성민이 몸을 일으킨 것이 의외라는 듯이 눈을 깜박거렸다.
[시간이 꽤 흘렀다. 하지만 네놈이 도망치라고 보낸 여자는 돌아오지 않고 있어.]‘압니다.’
바보도 아니고. 취걸과 장득수를 데리고 오라고 보낸 백소고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시간이 꽤 흘렀음도 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안다.
백소고가 배신한 것일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원망스럽지 않나? 후회스럽지 않나? 네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네가 그 계집을 대신하여 죽을 필요는 없을 터인데. 나는 솔직히 납득이 잘 되지 않아. 네놈은 이미 한 번 죽음을 겪어 본 자가 아닌가?]몸상태를 추스를 틈도 없었다. 도플갱어가 다시 공격해 온다. 홱하고 뻗은 오른 손, 권拳인가 장掌인가. 아니, 수도? 예리하게 벼려진 강기가 목젖을 노려 온다. 이성민은 오른 손 안의 창을 빙글 돌렸다.
카가가각!
강기와 강기가 서로 맞부딪힌다. 밀린 것은 이성민이었다. 기울어지는 몸을 지탱하지 않고 자세 자체를 바꾼다. 동시에 창을 돌리면서 아래에서 위로 복사백탐을 잇는다.
통하지 않는다. 도플갱어는 몸을 살짝 움직이는 것으로 이성민의 공격궤도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겪어 보았기에 더욱 잘 알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갑작스럽고 허무한 것인지. 설마 이번에도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그럴 리가 없잖아.’
대답과 즉시 뛴다. 무영탈혼의 이보겁살. 강기를 폭사시키면서 바로 구천무극창의 사초인 구룡살생을 펼친다. 명확한 살의를 담은 강기의 줄기가 전면을 휩쓴다.
방어로 쓰던 흑룡포는 내려놓았다. 도플갱어는 방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사용하는 것은 오른 손 뿐. 도플갱어가 흉내 내고 있는 위지호연은 그런 사람이었다. 인정하여 흑룡포를 벗었다. 그렇다고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은 쓰지 않는다. 쓰는 것은 오른 손 뿐이다.
[대답해라. 네놈은 후회하고 있는가? 그 계집을 원망하고 있는가?]‘나는.’
대답을 끊어 내뱉는다. 이보겁살과 구룡살생은 도플갱어가 내지른 일장에 파훼되었다. 흩어진 강기의 파편 속으로 도플갱어가 뛰어 들어온다.
‘후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아. 애초에… 사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8년 전에 죽었을 테니까.’
무턱대고 들어간 므쉬의 산. 스스로를 과신하여 걸었던 과한 금제. 백소고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그 산에서 죽었을 것이다.
‘사저에게 구명 받았다. 사저와 지내면서, 사저를 죽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곳에 왔고 이렇게 남은 거야.’
[그 계집에게 반하기라도 한 거냐?]‘개소리하는군.’
[으하하!]허주는 뭐가 그리 유쾌한지 껄껄 크게 웃었다. 루비아는 여전히 신경 사납게 중얼거리고 있었고, 도플갱어의 공격은 매서웠다.
[조금 마음에 들었다. 네놈이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조금 도와줘 보도록 할까.]허주가 으스대듯이 말했다. 이성민은 그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본격적으로 무공을 사용하기 시작한 위지호연의 도플갱어는 지금의 이성민이 어찌 할 수 없을 수준의 괴물이었다. 헤어지고서 9년. 9년 동안 이 정도인가. 이성민은 피식 웃었다.
‘진원진기를 격발시켜도 상대가 안 돼. 도망치기에는… 늦었나? 앞으로 뛰어 볼까?’
[저만한 적을 두고 도망칠 수는 없지.]‘이기는 것은 힘들어. 말했을 텐데. 죽고 싶지는 않다고.’
[죽지 않아도 된다.]허주가 큰 소리로 웃었다. 이성민의 몸을 덮은 마갑에서 시뻘건 불길이 솟구쳤다. 이성민은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매개만 있다면 힘을 끌어오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지!]허주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마갑에서 뿜어진 불길은 이성민의 몸을 덮고 있었으나, 이성민은 그 불꽃에서 조금의 뜨거움도 느끼지 않았다.
“너… 뭐하는 거냐?”
[으하하!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반말을 하는 구나. 뭐, 상관없지. 나는 네놈이 조금 마음에 들었으니까.]도플갱어가 뛴다. 이성민의 구룡살생과 이보겁살과 격돌하여 파훼시켰던 위력적인 장법이 덮쳐온다. 일장을 때렸을 때 거대한 강기의 파도가 이성민을 덮쳤고, 이성민이 대응하기 전에 불꽃이 앞으로 나섰다.
[봐라! 이것이 진짜 괴력난신이다!]허주가 웃는 목소리로 외쳤다. 꽈아아앙! 힘과 힘이 충돌했다. 위지호연의 강기가 애초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사라졌다. 불길은 조금도 뒤로 밀려나지 않고 앞으로 몰아쳤다. 도플갱어는 급히 양 손을 들었다. 가슴 앞으로 모은 손바닥 사이에서 피처럼 붉은 구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공을 던지듯이 앞으로 날렸다. 꽈아아앙! 격이 다른 두 힘이 충돌하면서 공간 자체가 뒤흔들렸다. 이성민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대체 뭐야…!”
[이해가 늦군, 미련한 놈! 내 힘의 일부를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네놈 혼자서 맞서 봤자 저 반푼이에게 죽어버릴 테니까!]“나를 돕고 있는 거냐…?”
[그렇다! 네놈을 죽게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래서야 효율이 좋지 않군. 힘은 빌려 주마. 그러니 네가 마음대로 써 보아라.]허주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솟구친 불길이 흩어지더니 이성민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이성민은 이해했다. 그때, 잠자는 숲에서 보았던 것은 불꽃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 위지호연의 공격을 밀어낸 것 역시 불꽃이 아니었다. 그것은 허주가 다스리는 거대한 힘 자체였다.
[요력이다. 본래라면 너희 인간은 다룰 수 없는 힘이지. 하지만 네놈이라면 다룰 수 있을 것이야. 네놈의 심장은 인간보다는 요괴의 것에 가까워 보이니까.]허주의 요력이 몸에 깃들고 심장이 그를 집어 삼킨다. 이성민은 헉하고 숨을 삼켰다. 노곤하던 전신의 피로감이 사라진다. 욱신거리던 통증도 가셨다. 부러진 늑골과 손목이? 멀쩡하게 움직였다.
심장에 깃든 힘을 통해 이성민은 요력의 성질을 이해했다. 이것은 내공도 아니고 마력도 아니었다. 요력은 파괴밖에 모르는 단순하고 무식한 힘이었으며, 인간이 다룰 수 없는 인외의 힘이었다. 본래는 공존이 불가한 요력과 내공이 이성민의 몸 안에서 공존한다. 그것은 서로 뒤엉키면서도 섞이지는 않았다. 물과 기름과 같은 두 개의 힘이 전신을 흐르면서 이성민은 기혈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견뎌라!]허주가 외친다. 도플갱어가 뛴다. 놀이상대에서 적으로, 그리고 호적수로 격이 올랐다. 그렇기에 도플갱어는 가진 전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뛰어나간 도플갱어의 몸이 다섯으로 나뉘더니 사방에서 덮쳐 온다. 그것은 하나하나가 실체를 갖춘 본인이었다. 이성민은 이를 악물면서 창을 움직였다.
분뢰추살.
요력과 내공이 섞인 분뢰추살은 이전에 펼친 분뢰추살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연달아 터지는 폭음과 함께 도플갱어의 분신이 박살난다. 그 중 본체는 이형환위를 통해 빠져나갔다.
[뒤!]허주가 위치를 알린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요력은 이성민의 전신 감각을 평소보다 더욱 예리하게 바꿔 놓았다. 이성민은 신음을 삼키고서 몸을 돌렸다. 창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 방금 전에 펼친 분뢰추살은 끔찍한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고, 그 초식을 펼친 이성민의 양 팔이 제 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뼈가 박살나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이성민은 잘 알고 있었다. 박살난 팔이 순식간에 재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문제다. 등 뒤로 이동한 도플갱어가 이성민의 가슴을 향해 양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보무흔. 이성민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걸음을 마저 뻗기도 전에 이형환위가 펼쳐졌다. 이성민은 그 경악스런 속도에 놀라면서도 몸을 통제했다. 일보무흔에서 두 걸음. 이보겁살. 요력과 내공이 뒤섞인 강기가 폭사한다. 도플갱어는 옆에서 들어오는 공격에 급히 양 손을 들어 방어를 완성했다. 하지만 완전히 버티지 못했다. 도플갱어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 순간에 이성민의 양 팔은 재생되었다. 이성민은 숨을 삼키고서 구천무극창을 펼쳤다.
구천무극창 오초, 절명섬絶命閃.
그것은 소리조차 갖지 않는 극한의 쾌를 담은 찌르기였다. 이성민이 정신세계에서 필사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검귀를 죽인 이상적인 찌르기에 근접한 공격이기도 했다. 정신세계에서는 이미 다시 도달하였었지만, 현실의 육체로는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공격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요력의 보조를 받는 몸뚱이가, 무리한 움직임도 가능하게 만든 몸뚱이가 최속의 찌르기인 절명섬을 완벽하게 펼쳐냈다.
노린 것은 가슴 정 중앙.
이성민의 창이 도플갱어의 가슴 정 중앙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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