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15)
비밀-2
“…?”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이성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위지호연을 바라보았다. 이성민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위지호연의 얼굴은 무덤덤하기 짝이 없었다.
“…뭐라고?”
“나는 여자라고.”
위지호연이 손을 들어 스스로를 가리켰다. 이성민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위지호연은, 자기가 여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성민이 빽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소란에 주방에 있던 잭과 루라가 머리를 쏙 내민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위지호연은 주방을 향해 예의바르게 그렇게 말해두고서, 이성민을 돌아보며 눈가를 찡그렸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자는 것이냐?”
“아니! 놀라니까 소리를 지르는 것이지!”
“흠, 하긴 그렇겠군.”
이성민의 대답에 위지호연이 머리를 끄덕거린다. 그 무덤덤한 반응에 이성민은 할 말을 잊었다. 그는 전생의 기억을 짚어 보았다. 소천마 위지호연. 위지호연이 여자라는 소문은 없었다. 아니, 전생의 기억은 제쳐두고서도. 이성민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위지호연을 바라보았다.
높은 콧대. 가늘고 긴 속눈썹. 커다란 눈망울. 새하얀 피부. 체격이 작기는 하지만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르게 보인다.
“…지, 진짜로?”
“진짜로. 내가 이런 것으로 거짓말을 하겠느냐. 아니면 방에 가서 내가 바지라도 벗어 줘야 믿겠느냐?”
위지호연이 쿡쿡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짚이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위지호연은 예쁘장하게 생겼다. 저대로 큰다면 꽃미남이 되겠지.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은 여자라고 생각하니… 다르게 보인다.
‘그러고 보니 같이 목욕한 적도 없었어.’
이 여관은 공동 욕탕을 쓴다. 이성민은 사냥과 수련을 끝내고 잠들기 전에 항상 목욕을 했지만, 위지호연은 이성민과 함께 목욕하려 들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서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소천마 위지호연은 생각보다 지저분하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뿐이다.
“가슴이 안 나왔는데…”
“붕대를 감고 있다.”
위지호연이 무복의 앞 섬을 살짝 들춰 보이면서 말했다. 과연, 가슴을 칭칭 감고 있는 새하얀 붕대가 보였다.
“아직 많이 튀어나오지 않았거든. 앞으로 더 커질지는 모르겠다만… 기왕이면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군. 가슴에 살덩이를 달고 있자니 영 거북살스러워.”
“…말도 안 돼…”
이성민이 다시 중얼거렸다. 위지호연이 사실은 여자였다니.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남장을 한 거지?”
“위대하신 교주께서 그것을 바라였다. 나는 천재적인 자질과 무공을 익히기에 이보다 더 적합할 수 없는 무골을 타고났지만, 안타깝게도 여자였지. 교주께서는 내 자질과 무골이 아까우셨던 모양이야.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남자로 살라고 강요하셨었지.”
아마, 그것이 교주이자 아버지에게 들었던 첫 번째 명령이었을 거야. 위지호연이 덧붙이면서 웃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마교가 없지. 위대하신 교주님도 없고. 내가 남자로 지낼 이유가 없어. 그래도… 13년을 남자로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버릴 수가 없더군. 아마 앞으로도 남장은 할 거야. 이 가슴이 붕대로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커지지 않는 한은 말이지.”
그랬으면 좋겠군. 위지호연이 중얼거렸다. 이성민은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서 위지호연을 바라보았고, 위지호연은 이성민의 시선을 받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게 내가 가진 비밀이다. 너의 비밀은 뭐지?”
“…으음…”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여자, 여자라고… 소천마 위지호연이 여자라고. 이성민은 흐려진 이성을 어떻게든 붙잡았다.
“…나는…”
저런 말을 듣고서 말해주지 않겠다고 강짜를 부릴 수도 없다. 이성민은 한숨을 삼키면서 말했다.
“나는 회귀자回歸者다.”
“뭔 개소리냐?”
위지호연이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묻는다. 그 말이 가슴에 조금 얹히는 기분이기는 했지만, 이성민은 참을 인자를 그리면서 위지호연의 말을 넘겼다.
이야기를 해주었다. 회귀한 사실에 대해서. 전생의 돌이라는 것을 손에 넣었고, 죽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위지호연은 뭔 개소리냐고 말한 주제에 정작 이성민이 제대로 설명을 하자, 가만히 이성민의 말을 들었다.
“그렇군.”
이야기가 끝나고서, 위지호연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믿을 수밖에. 이 세계도 그렇고, 마법이나 뭐… 그런 것들. 믿을 수밖에 없어. 중원에서라면 개소리로 치부하겠지만, 여기서는 다르구나.”
위지호연이 중얼거렸다. 그, 아니, 그녀는 잠깐 동안 허공을 올려 보았다.
“전생에서의 나는 어땠느냐?”
“…뭐?”
“전생에서도 내가 있었을 것 아니냐. 나는 어땠지?”
“어떠고 자시고…”
이성민은 전생의 기억에 남아 있는 위지호연의 모습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렇다고 해 봐야 전생에서 위지호연과 직접 마주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위지호연에 얽혔던 소문에 대해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군. 잘 살고 있었던 모양이군. 적어도 13년 동안 나는 죽지 않았다는 말이구나.”
“그렇… 겠지.”
“그리고 계속해서 남장을 하고 있었고.”
위지호연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아마. 13년이 흐른 뒤여도 내 가슴은 그리 커지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건 다행이군.”
농담으로 하는 말인지 진담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궁금한 것이 있어. 왜 나한테, 죽이지 말아달라는 말을 한 것이냐?”
“…너와 내 만남 따위는 인연이나 우연 같은 것이 아니었어. 나는 네가… 그, 소천마 위지호연의 처음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네가 소환되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 광장에 있었고, 너를 보고 있었던 거야.”
“아, 그렇군. 그 만남이 거짓이었으니까. 내가 이용당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에 분개하여 너를 때려 죽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냐?”
정곡이었다. 이성민은 대답 대신에 침묵했다.
“그것 참 이상한 생각이구나.”
위지호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해 보거라. 너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나를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지. 그런 너에게 흥미를 느껴 먼저 다가간 것은 나다. 먼저 친구가 되자고 한 것도 나다. 너에게 자하신공을 가르치고 무공에 조언을 해 준 것? 하하! 그것도 내 쪽에서 먼저 그리 하겠다고 한 것 아니냐. 너는 나한테 아무 것도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 쪽에서 먼저 너한테 그리 말했을 뿐이다.”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위지호연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너는 잔걱정이 많구나. 이미 한 번 죽음을 겪어 보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냥 그런 성격인 것인가.”
“둘 다.”
“흐흥. 어찌 되었든,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다. 오히려 너에게 더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 죽어서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흥미로운 일이고, 내가 품었던 너의 모순에 대해서도 납득이 가는 군. 13년. 아니, 무공을 배운 시간은 10년인가? 10년이면 익숙해 질 만도 하지. 10년을 붙들고 있어서 아직도 그 수준이라는 것은 안타깝지만.”
“이런 씨발.”
위지호연의 중얼거림에 이성민은 욕설을 내뱉었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팩트 공격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네 말에 따르면, 네가 겪은 전생에서의 나는. 제나비스에 소환되고서 한 달 만에 이 도시를 떠나고, 3년 동안 잠적했다는 말이구나.”
“응.”
“3년 동안 내가 무엇을 했을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위지호연과 지금의 내가 같은 인물은 아닐거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이나… 원하는 것은 같겠지. 아마 그 3년 동안, 나는 그리 대단한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이곳 저곳 여행을 했겠지.”
“여행?”
“위지호연이라는 인간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였던 것은 자유다. 마교라는, 교주라는. 그런 억압에서의 자유. 나는 이 세계로 소환된 것이 기쁘다. 내가 바라였던 자유를 얻었으니까.”
그것은 위지호연의 진심이었다.
“지금도 그래. 나는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거든. 일주일 동안 이 도시를 떠돌았다. 자유를 만끽했지. 하지만 이 도시도 좁아. 더 많은 것을 보고 싶고 많은 것을 겪고 싶다.”
“…떠나겠다는 거냐?”
“조만간 떠날 생각이었지. 그런데… 너는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이냐?”
위지호연이 이성민을 향해 물었다.
“너는 이미 한 번 이 세계에서 살았다. 13년간 살았고, 죽었지. 기연을 얻어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너는 이 인생에서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
위지호연의 질문에 이성민은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성민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주제였다.
“전생에서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 기억을 토대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이냐.”
“…전생보다 나은 삶.”
“일주일 동안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보았다. 노 클래스들. 그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숲으로 사냥을 가는 것은 아니더구나. 나름대로, 살기 위해서 다른 노동을 하고 있더군. 그렇게 살 생각은 없냐?”
“…아깝잖아.”
이성민이 투덜거렸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전생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정보는 죄다 메모해 놨어.”
“탐욕스럽군. 뭐,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만… 그래서 결국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이냐. 전생보다 나은 삶? 애매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무언가 목적은 없나?”
“그런건… 모르겠어.”
이성민은 잠깐 동안 고민하다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전생의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만을 생각했다. 네가 틈 날 때마다 말하는 것처럼, 나는 재능이 부족해.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했다. 재수없게 죽어서… 다시 살아났지만. 솔직히 목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그냥, 전생과 비슷하게 살겠지.”
“그렇군.”
위지호연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딱히 이성민의 방향성에 대해서 조언을 해 줄 생각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위지호연의 나이는 고작해야 13살이고, 이성민은 27살이다. 13살에게 인생에 대한 조언을 듣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그런데 너. 나랑… 계속해서 친구를 하겠다는 거냐?”
“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 애초에 정신 연령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계속 반말을 하겠다는 것이다.
“위로 가자.”
위지호연이 몸을 일으켰다. 이성민은 앞서 걷는 위지호연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위지호연의 방으로 들어갔다. 생각해 보면 위지호연의 방에 들어와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구천무극창九天武極槍을 전수해주마.”
위지호연이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만큼은 일대종사였다. 위지호연은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성민을 응시했다.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그냥 의자 가져다가 앉아라. 친구인데 무슨.”
위지호연이 투덜거리자, 이성민은 의자를 끌어 와 위지호연의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창법 중에서는 이게 제일이다. 일백 년 전에 창왕槍王이라 불리던, 창이라는 무기로 천하를 오시했던 무인이 쓰던 무공이지. 이름부터가 광오하지 않느냐. 구천에서 제일가는 창이라 하여 구천무극창. 그만큼 대단한 창법이기는 하지.”
“너무 어려운 무공은 내가 못 익혀.”
“나도 안다. 네 재능은 하찮으니까. 자하신공이 그러하듯, 구천무극창 역시 신공절학이다. 네 재능으로 건드렸다가는 평생 가도 못 익힐 것이야.”
“재능 없는 것은 알겠는데 꼭 그렇게 말을 해야 하나?”
“사실인 것을 어찌 하겠느냐.”
위지호연의 되묻는 말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 네게 맞춰서 개량을 해주마. 제법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이것은 네가 그대로 익히는 것보다는 뜯어 고친 것을 익히는 것이 나을게야.”
“…할 수 있다는 거냐?”
“나는 천재다.”
위지호연이 근엄한 얼굴을 하고서 대답했다.
“마교의 교주께서도 인정한 사실이지. 완전히 뜯어 고치는 것도 아니고, 진입장벽을 조금 낮추는 선에서… 그 외에 쓸만 한 창법을 조금 섞는 식이라면 개량할 수 있다. 그래봐야 처음에만 조금 익히기 쉬운 것이지, 근본적인 것은 바꿀 수 없어. 구천무극창을 만든 창왕 역시 절대적인 무인이었고 또 천재였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무공을 개량하겠다니. 그만큼 위지호연이 이성민과는 태생이 다른 천재라는 것이다.
“이름은 구천무극창 성민식晟敏式으로 하자.”
“대체 왜?”
“너를 위해 맞춘 창법이니 네 이름을 넣어야지. 구천무극창 성민식. 좋지 않으냐?”
“그게 좋다고?”
“꼬우면 네가 만들어라. 나는 이 이름이 마음에 드니까.”
위지호연이 강짜를 부렸다. 이성민은 뭐라고 반발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수고를 감수하고서 만들어주겠다는데, 이름이 불만족스럽다고 불만을 터트리기에는 조금 미안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