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161)
제갈태령은 턱주가리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남궁희원의 말씨가 본래부터 명문세가의 소공자답지 않게 거칠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제갈태령은 남궁희원에게 대놓고 저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이…”
“왜. 좆같아?”
남궁희원이 제갈태령을 노려 보면서 내뱉었다.
“네가 괜히 똥고집을 부려대면서 이곳까지 오는 중에 대체 몇 명이나 뒈졌는지 기억은 하나? 처음에는 오십이 가까웠던 이들은 이제 스물 남짓하게 남았다. 네가 이끌던 현환충검대는 전멸했고, 남궁세가의 창천검광대와 당가의 암야흑무대도 상당수가 죽어 버렸지. 네놈이 고집을 부린 덕에!”
“그건…”
“아, 물론! 진즉에 네놈의 병신같음을 알지 못하고 이곳까지 따라 온 우리도 머저리 천치들이지.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여기서 귀창을 잡겠답시고 더 해봐야 모조리 개죽음일 뿐이란 말이다. 목숨 구걸? 마음대로 생각해라.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다던데, 나는 개죽음을 당하느니 사는 것을 택하겠다.”
남궁희원은 그렇게 내뱉고서 이성민을 보았다. 이성민은 가만히 서서 남궁희원과 시선을 마주했다. 남궁희원은 잠시 호흡을 고른 뒤에 이성민을 향해 꾸벅 머리를 숙였다.
“아우. 아니, 귀창. 이 남궁모는 더 이상 그대를 쫓지 않겠소. 예전의 별 것 아닌 인연을 생각해 줄 수 있다면, 이 남궁모가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시겠소?”
남궁희원은 더 이상 이성민을 아우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성민은 그런 남궁희원을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소.”
남궁희원은 홱하고 몸을 돌렸다. 모용서진이 신경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남궁희원이 모용서진을 강제로 데리고 돌아가려 한다면, 후에 제갈세가에서 모용서진은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남궁희원은 씁쓸함을 느끼며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결국은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궁희원은 남궁희원이기 이전에 남궁세가의 소공자다. 용기를 내서 모용서진을 어찌 한다고 한들, 그 뒤에 있는 것은 파란뿐이다.
“남궁세가로 돌아가자.”
“이 숲에서 빠져나갈 자신이 있단 말이냐?”
제갈태령이 거친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 말에 남궁희원은 제갈태령을 힐긋 돌아보며 말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내 생각에는 귀창을 죽이려다가 죽는 것보다, 이 숲을 헤매는 것이 더 나아보이거든.”
“나, 나도.”
당아희가 바짓단을 움켜쥐고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주변의 시선을 살피며 바쁜 목소리로 말했다.
“당가로 돌아가겠어요.”
“아희, 너까지…!”
“제갈 오라버니… 미안해요. 하지만 이 이상은 힘들 것 같아요.”
이 나이를 먹었는데,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지려버렸다. 다른 것들은 제쳐두고서라도 당아희는 속옷과 바지를 갈아입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이곳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남게 된 것은 제갈태령과 모용서진, 그리고 흑견주와 흑견대원들 뿐이었다. 이성민은 제갈태령이 아닌 흑견주를 보았다. 흑견주와 흑견대원들은 적귀의 난입에서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들이 뛰어났다기 보다는, 굳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움직였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이성민이 물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이성민 쪽이다. 제갈세가의 앞마당인 데븐이라면 모르겠으나, 이 숲에서 이성민이 제갈태령을 겁 낼 이유는 없었다. 제갈태령은 피가 흐르는 입술을 계속해서 씹었다.
“거…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 같소만.”
침묵하고 있던 흑견주가 입을 열었다. 그는 제갈태령의 얼굴을 힐긋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무림맹 쪽에 제가 잘 이야기를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소이다. 모두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오. 헌데… 내가 글재간이 없어서 말이외다. 괜찮다면 올려야 할 서편에 대해 제갈 대협의 조언을 구하고 싶소만…”
그 말은 제갈태령의 귀를 활짝 열게 하기에 충분했다. 제갈태령이 신경쓰고 있는 것은 세가와 세간의 평판과 자신의 명예다. 그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맹에 올리는 서찰에 관여할 수 있다면, 이 일을 어떻게든 포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알겠소.”
제갈태령은 못이기는 척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돌렸다.
[새끼, 좆같은 놈이네. 이쪽에서 아량을 베풀어 살려주겠다는데 마치 자기가 봐주는 것 같은 태도로군.]‘내버려 둬.’
제갈태령이 고집을 부리지 않고 돌아가 준다면 이성민으로서도 좋은 일이다. 괜히 시빗거리에 휘말리게 된다면 앞으로가 귀찮아 진다.
제갈태령과 모용서진이 흑견대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저들이 숲을 잘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으나, 그에 대해서는 이성민이 더 이상 생각할 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럼 이제…”
숲에서의 볼일은 모두 끝났다. 허주의 보물도 취했고, 공포의 잔재를 소멸시키면서 추가적인 요력도 얻어 두었다. 이제는 숲을 떠나 어르무리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광천마가 알고 있는 부족을 찾아 떠나면 될 것이다.
“흡!”
그 순간이었다. 시체들 틈바구니 속에서 누군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일에 이성민과 광천마, 루비아가 놀라서 그쪽을 보았다.
“씨발, 뒈질 뻔 했네!”
일어나서 외치는 것은 알라두르였다. 적귀에게 가슴이 꿰뚫렸던 그는 상처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개놈의 새끼, 내 심장이 오른쪽에 있었다고는 상상도 못했겠지!”
알라두르는 뚫렸던 가슴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내뱉었다. 적귀에게 가슴이 뚫린 것은 죽음에 이를 치명상이기는 했지만, 운 좋게도 알라두르의 심장은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있었다. 버텨 봐야 개죽음일 것을 직감하고, 얌전히 죽은 척 누워서 엘릭서로 상처를 치유했다.
“살아있었나?”
이성민은 알라두르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의식조차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알라두르가 죽은 척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보면 모르쇼? 살아있지!”
“왜 지금 일어선 거지? 내가 떠난 후에 일어서면 되었을 것을.”
“에이,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형씨가 떠난다면 나는 이 엿 같은 숲에 혼자만 남게 되잖소. 그 이후는 개죽음일 것이 뻔하고!”
“그래서?”
“나를 좀 데리고 가 주십시오.”
알라두르는 주저하지 않고 자리에 무릎을 꿇고서 머리를 처박았다. 그 빠른 태세전환에 이성민은 멀뚱히 눈을 뜨고서 알라두르를 내려 보았다.
“…당신을 데리고 가라고?”
“나는 여태까지 저 무식하기 짝이 없는 무림인들과 함께 당신을 추적했소. 이 숲이 묘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당신과의 거리는 계속해서 벌어졌지. 내가 생각하기에는 당신은 이 숲 안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은데… 맞지 않수?”
“맞아.”
“그러니까 데려가 달라는 거요.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소.”
“돈은 나도 많은데.”
“아, 좀. 나도 예전에 인연을 생각해서…”
“당신과 인연이라고 해 봐야 돈주고 거래를 한 것이 전부인데.”
“그러니까… 나는 보기 보다 재주가 많은 사람이오. 특히 뭔가를 찾는 일은 내 밥벌이수단으로 쓰고 있을 만큼 훌륭하지. 당신은 뭔가 찾고 싶은 것이 없수?”
그것은 돈보다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다. 이성민은 빙긋 웃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찾고 싶은 것은 있지.”
광천마의 기억에 의존하여 요력을 다루는 부족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일에 탐색과 추적에 능숙한 알라두르의 도움을 받는다면 일이 보다 쉬워질 것이다. 악령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모습을 흔들면서 걷기 시작했다.
‘이쪽… 으로…’
악령들이 길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
여전히 숲은 미로였다. 하지만 제갈태령은 성큼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세간의 평판에 대한 문제는 덮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제갈태령의 기분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남궁희원에게 들은 모욕을 떠올리며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남궁희원과 같이 갈 것을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나?”
삭히지 못한 분노가 향한 대상은 곁에 있는 모용서진이었다. 힘없는 걸음으로 제갈태령을 따르던 모용서진은 움찔 어깨를 떨며 제갈태령을 힐긋 보았다.
“차라리 그랬다면 나도 마음이 편했겠지. 깔끔하게 당신을 제갈세가에서 방출시킬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어요.”
“하! 꽤나 주저하던 것처럼 보이던데. 왜? 이제 와서 몇 년 전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 후회하고 있나?”
제갈태령이 이죽거렸다. 모용서진은 침묵했다. 혼인을 올리기 전까지만 하여도 제갈태령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가식이었겠지만, 적어도 당시의 모용서진이 보기에는. 가볍고 오만하던 남궁희원보다는 진중하던 제갈태령에게 마음이 갔었다.
“…다른 사람들이 듣고 있잖아요. 그만하세요.”
“그런 이목을 신경 썼다면 자신의 행동에나 더 신경을 쓰지 그랬나?”
제갈태령이 내뱉었다. 뒤를 따르는 흑견주와 흑견대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몇몇 흑견대원들이 주변을 살핀다. 제갈태령과 모용서진의 대화 외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자.]흑견주가 전음을 보냈다. 명령이었다. 흑견주를 포함한 열 명의 흑견대원들은 주저없이 몸을 날렸다. 그들은 빠른 경공을 펼쳐가며 앞서 걷던 제갈태령과 모묭서진을 덮쳤다. 인성은 둘째치고서라도 제갈태령은 초절정의 고수다. 그는 등 뒤에서 덮쳐오는 은밀한 살기에 반응하여 흠칫 놀라 몸을 돌렸다.
“무슨?!”
제갈태령은 그렇게 외치며 검을 뽑았다. 그 외침에 대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순차적으로 휘두른 흑견대원들의 검이 제갈태령을 몰아붙였다. 그 사이에 흑견주는 이미 모용서진을 공격하고 있었다. 모용서진은 강맹하게 덮쳐오는 흑견주의 쌍장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그보다 조금 늦게 검을 뽑았고, 그것을 휘두르기도 전에 흑견주의 쌍장이 모용서진의 가슴을 때렸다.
“커윽!”
모용서진의 입에서 피가 뿜어진다. 휘청거리는 모용서진을 향해 흑견주가 손가락을 구부려 휘둘러 쳤다. 뜨드득! 모용서진의 왼 팔이 그대로 뜯겨져 날아갔다.
“꺄아아악!”
모용서진이 비명을 질렀다. 한때, 모용서진은 화설이라는 별호로 불렸다. 그 시절과 비교하여 아이를 낳고 세월이 흐른 탓에 젊은 시절의 미모가 조금 바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모용서진은 아름다웠다. 그런 모용서진을 해치는 흑견주의 손길에는 자비가 없었다. 흑견주는 팔을 잃고 나뒹구는 모용서진의 목을 잡았다. 제갈태령의 기를 꺾기 위해 당장 죽이지는 않을 생각이었다만. 흑견주는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둘이 나누는 이야기를 보아하니, 모용서진을 붙들어 봐야 제갈태령이 기를 꺾지는 않을 것 같았다.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소.”
흑견주는 의례적인 변명을 늘어놓으며 모용서진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모용서진은 피거품을 물고 컥컥거리며 발버둥쳤다. 의식이 희미해져가는 동안, 모용서진은 남궁희원을 떠올렸다. 만약 남궁희원과 함께 돌아갔더라면? 아니, 몇 년 전에 제갈태령이 아니라 남궁희원을 선택했더라면. 그런 생각들이었다. 최후까지 모용서진은 왜 자신이 이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제갈태령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떠올리지 않은 채.
“갑자기 왜!”
모용서진이 죽었다. 제갈태령은 그를 보고서 고함을 질렀다. 몇 년 동안 함께 살았던 부인이 죽어서 보다는, 제갈태령은 왜 흑견대가 자신을 죽이려 드는 것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소.”
흑견주는 죽은 모용서진의 시체를 내던져 두고서 손을 옷깃에 벅벅 문질렀다. 제갈태령은 아홉 명의 흑견대원들의 합공을 받고 있었다. 위태롭기는 하지만 아직 버티고는 있다. 그래도 제갈세가의 소공자이고, 어린 시절부터 무공을 익혀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기 때문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기는 했지만. 오히려 이 편이 깔끔하고 괜찮겠군. 공작을 벌이기도 좋고…”
“무슨 말을…”
“제갈대협. 댁은 죽어야 한단 말이오. 너무 마음 상해 하지는 마시오. 나를 원망하려 하지도 말고. 댁의 죽음은 이미 제갈가주와 무림맹주 사이에 이야기가 끝난 일이외다.”
“…뭐? 아버님이…?”
“이상하단 생각은 안하셨소? 남궁세가와 당가의 지원을 받았다지만, 귀창과 광천마는 초절정의 경지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인데. 정말로 그 둘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요?”
흑견주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끌끌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뭐. 당신의 미련함을 알기에 제갈가주가 당신이 죽게 내버려 둔 것이겠지만 말이오. 그러니 원망 말란 말이오. 나도 결국 남이 휘두르는대로 휘둘러지는 칼날에 지나지 않거든. 칼자루를 잡은 것은 제갈가주와 맹주님이고.”
흑견주는 그렇게 말하며 성큼거리며 다가왔다. 흑견주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제갈태령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지금이야 간신히 버티고는 있지만, 흑견주도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다. 그까지 합공에 나선다면 제갈태령으로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사, 살려 주…”
“허참.”
흑견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기개있게 가시오, 기개있게.”
흑견주가 제갈태령에게 달려들었다.
“남자가 가오가 있지. 안 그렇소?”
제갈태령의 비명이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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