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172)
거구의 남자는 피를 뿜으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는 몇 개의 노점상을 몸으로 뭉개고서야 땅에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그는 피 섞인 기침을 내뱉으면서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올렸다.
“추성……!”
노기 어린 외침을 받은 추성은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추성에게 공격을 받은 남자는 이 거리를 지배하고 있는 대요괴였다.
적귀의 밑에 있었고, 야나가 새로이 어르무리의 주인이 되자 다시 머리를 숙이고 얌전히 지내던 놈이다.
“예전만 못하구나.”
추성이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날카로운 이빨과 사나운 시선은 명백한 살의를 담고 있었다. 요괴는 어르무리에서 도망쳤던 추성이 왜 돌아온 것인지, 그리고 왜 자신을 공격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추성이 자신을 정말로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기에,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왜 나를 죽이려는 것이냐?!”
“야나가 어르무리를 비웠다.”
추성이 내뱉었다. 추성과 함께 어르무리에 들어왔던 괴인은 지금은 추성의 곁에 없었다.
그 역시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추성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괴인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추성은 알고자 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까지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요괴가 요괴를 먹는 것.
그것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뱀파이어는 다른 뱀파이어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확실하게 힘을 늘릴 수 있다.
그것은 다양한 인외종 중에서도 뱀파이어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 중 하나였다.
그들의 흡혈은 강력한 에너지 드레인이고,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피는 생명과 힘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요괴는 인외와 몬스터의 경계에 걸친 존재이지만, 뱀파이어와 같은 특혜를 받는다.
요괴가 인간을 먹는 것은 죽기 직전 인간이 품은 공포를 삼키는 것.
그 공포는 요괴에게 있어서 힘이 된다. 인간뿐만이 아니다. 요괴가 요괴를 먹는 것 역시 똑같이 적용된다.
피투성이의 요괴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당연한 말이지만, 요괴는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추성과 정면으로 맞서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야나를 피해 도망쳤다고는 해도, 추성은 어르무리에서 손에 꼽히는 대요괴였다.
결국 요괴가 택한 것은 몸을 돌려 도망치는 것이었다. 추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껄껄거리며 웃었다.
추성이 손을 뻗는다. 그러자 시뻘건 열풍이 도망치려던 요괴의 등을 덮쳤다.
“끄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살 익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모여든 요괴 중에서 추성의 사냥을 막으려 드는 요괴는 아무도 없었다.
열풍은 요괴의 몸을 모조리 집어삼켰고, 이윽고 시뻘건 불꽃이 되어 요괴의 몸을 불태웠다.
요괴는 불꽃 속에서 발버둥 치면서 비명을 질렀다. 추성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불 속에서 발버둥 치는 요괴를 향해 다가갔다.
그가 입을 쩍 벌리자, 요괴는 불타는 모습 그대로 추성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하하!”
추성은 뱃속 가득 느껴지는 포만감에 큰 소리로 웃었다.
이런 시답잖은 놈도 대요괴랍시고 나대는 꼴이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릇 요괴란, 보다 포악하고 욕망껏 행동해야 한다.
심장이 뽑힌 적귀는 한때 인간이었기 때문인지 어르무리를 관광도시처럼 만들어버렸고, 적귀의 뒤를 이은 야나도 통제하지 않는 듯이 굴면서도 요괴들끼리의 다툼은 무시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귀도, 야나도 없다. 그러니 거리낄 것은 없다.
추성은 이쪽을 보는 요괴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대요괴의 죽음에 겁에 질려있었다. 추성은 그런 요괴들을 향해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면서 열풍을 일으켰다.
“웃음이나 파는 광대 새끼들!”
추성은 커다란 목소리로 일갈하며 열풍을 휘둘렀다.
콰아아아!
노점상들이 불탄다. 시뻘건 불꽃이 일렁거리면서 주변의 건물까지 집어삼켰다.
요괴들이 아우성친다. 요괴들만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야시장을 즐기기 위해 나온 인간들도 갑작스런 불길에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 * *
야시장에서 일어난 소란에 대해 이성민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야나와 만났던 요정, 그 정원에 숨겨진 공간에 있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요력을 다루는 호흡법과 자하신공을 결합하려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결국 그런 욕설을 내뱉고야 만다. 전혀 다른 두 개를 결합하는 것이다.
종사급의 재능을 가진 천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성민에게는 불가능했다.
이성민 역시 문파의 종사와 비교해서 크게 밀리지 않을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익힌 무공에 매진해서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무공을 처음부터 뜯어고칠 필요는 없겠지만…… 자하신공에 호흡법을 넣는 것. 나로서는 불가능해.’
아직 하루밖에 되지 않기는 했지만, 더 시간을 들인다고 해서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없었다.
이성민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나도 무공은 잘 모른다.]이런 일에는 허주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허주는 강력한 힘을 가진 대요괴였으나, 그렇다고 허주가 무공에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통해 이성민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위지호연이었다.
위지호연은 13살 때에 무공을 뜯어고칠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성민이 익힌 자하신공 역시 위지호연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위지호연이라면 이성민이 고생하고 있는 문제쯤은 손쉽게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지호연은 지금 이성민의 곁에 없다.
“그만두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성민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는 외눈 안경 너머로 눈을 내리깔고서 이성민을 보고 있었다.
“내가 경고를 전했을 텐데. 인간을 포기하지 말라고. 내가 너무 돌려 말했나?”
외눈 안경의 남자는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를 벗으면서 중얼거렸다.
그 말을 통해 이성민은 남자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엔비루스.”
“맞네.”
엔비루스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초췌해 보이는 엔비루스는 발을 질질 끌며 이성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성민은 수염이 듬성듬성 난 엔비루스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몸을 일으켰다.
“조금 늦었군. 아니, 많이 늦었나?”
엔비루스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는 마술사의 것처럼 큼직한 모자를 손가락에 걸치고서 빙글빙글 돌렸다.
“하긴. 허주와 만난 이상 이렇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가능했더라면 내가 허주를 소멸시켰을 텐데…….”
엔비루스가 혀를 찬다.
그 말을 들은 허주가 요력의 불꽃이 되어 몸을 일으켰다.
이성민은 엔비루스를 빤히 보면서 물었다.
“……이제야 만나게 되었군요.”
“맞아.”
엔비루스가 대답했다. 그는 먼지 가득한 로브를 툭툭 털더니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네와 나는 닮은 점이 꽤 많아.”
엔비루스가 입을 열었다. 그는 검지 손가락으로 외눈 안경을 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자네 역시 데니르의 시련을 받았겠지. 얼마나 버텼나?”
“……2100년.”
“허어!”
이성민의 대답에 엔비루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는 크게 뜬 눈을 끔벅거리다가 다시 한번 탄성을 터뜨렸다.
“놀랍군. 2100년이라. 그 영역이면 정신력이 강하고 말고의 영역이 아닌데…… 나도 1000년을 버티는 것이 한계였어.”
엔비루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소리를 냈다.
“데니르의 시련뿐만이 아닐세. 자네 역시 인과율이 비틀어진 존재잖나. 나처럼.”
“당신은 왜 그렇게 된 겁니까?”
이성민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엔비루스는 그런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이 혼란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자네처럼 죽음에서 과거로 돌아온 것은 아니야.”
“그렇다면?”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그렇다고 인외도 아닌. 나는 그런 아주 애매한 존재일세.”
뜻 모를 말이었다.
“자네가 종언의 사도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네. 그것도 아주 맹목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말이야. 또한 자네에게 강력한 운명력이 얽혀 있다는 것도 알지. 하지만 말이야. 자네의 운명력에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
엔비루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니지. 거대한 운명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나였지만, 자네와 만나게 된 것으로 자네의 운명력에 휘말리게 되어 버렸어. 내가 자네와의 만남을 피하려 했던 것은 그런 이유였네. 그래서 루비아를 대신 보낸 것이었지.”
“내 운명력에 휘말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흐름대로 가겠지.”
엔비루스가 껄껄 웃었다.
“어떤 결말이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 체. 예정된 결말을 바꾸고자 발악하면서도 바뀌었는지 바뀌지 않았는지 알 수 없는…… 후후!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누군가가 짜 놓은 흐름대로 살게 되는 거야.”
“……여태까지는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까?”
“그 운명에서 벗어난 것이 내가 인과율에서 비틀려진 이유일세.”
“기껏 벗어났는데 왜 이제 와서 내 앞에 나타난 겁니까?”
이성민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물었다.
운명력이라는 것. 이성민은 그리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은 운명을 떠나서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버려 둘 수가 없었기 때문일세.”
엔비루스가 대답했다.
“인간을 벗어나지 마라. 자네에게 했던 말이지.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400년 전에 죽음을 맞은 허주의 존재가 그만큼 강력한 것이기 때문이었어. 자네가 완전히 요괴가 된다면 허주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어. 그렇게 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지. 죽은 허주가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게 되는 것이니까.”
[이 개새끼가, 이 어르신을 뭐로 보고.]허주가 역정을 낸다. 이미 며칠 전에 야나가 이성민의 몸을 허주에게 인도하려 했었고, 허주는 그것을 거절했다.
“허주가 그럴 뜻이 아니라고 하여도.”
엔비루스가 다시 말을 내뱉었다.
“요괴가 되어 자네가 인간이 아니게 된다면, 대체 어떤 존재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그래서 더욱 위험한 것이고.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지. 특히 자네는 더욱 그래. 허주의 요력을 그대로 계승할 수 있지 않은가? 자네가 요력에 완전히 물들어 폭주하게 된다면, 자네는 허주가 아니면서도 허주만큼 강대한 요괴가 될 것이야.”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대비하여, 기껏 벗어난 운명에 다시 뛰어들었다는 말입니까?”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네.”
엔비루스는 그렇게 말하고서 손가락에 걸쳐 두었던 모자를 다시 머리 위에 썼다.
“자네의 운명력에 휘말리게 되어, 내가 기껏 벗어난 운명의 흐름에 다시 속하게 된다고 하여도. 자네를 한 번 만나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어. 가능하다면 자네를 막고 싶기도 했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걱정은 헛된 것이었단 말입니다. 나는 절대로 요괴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
엔비루스는 그렇게 되물으면서 큭큭 웃었다.
“운명이라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일세. 커다란 흐름 안에서 발버둥 치는 것이 우리 필멸자의 숙명이야. 특히나 자네는…… 그토록 강력한 운명력을 관장하는 무언가의 사랑을 받고 있어. 나는 운이 좋아 운명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자네는 절대로 운명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내가 하는 사고와 선택. 그 모든 것이 운명의 흐름에 맡겨져 있다는 겁니까?”
“그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네. 나도 그렇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흐르는 운명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엔비루스의 말을 들으면서 이성민은 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짜증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면서 엔비루스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하는 말은 애매하기 짝이 없습니다. 운명이고 뭐고. 나는 여태까지 그런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삶이 병신같은 운명의 흐름대로 흘렀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운명이라는 것은 애매모호한 것이니까.”
“애매모호한 것은 당신이 지껄이는 말이고!”
이성민이 고함을 질렀다.
“아직 일어나지도, 어찌 될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 나한테 지껄이지 마십시오. 멋대로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나를 가르치려 들지도 마시고.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겁니다. 운명이고 뭐고, 그딴 것에 놀아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럴까?”
엔비루스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지금 자네가 이러는 것도…….”
“좆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이성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더 커다란 고함을 질렀다.
그 말에 엔비루스는 침울한 눈으로 이성민을 보았다.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네. 그래도 나는 자네를 걱정했던 거야.”
“됐습니다.”
이성민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뱉었다. 대체 죽음에서 돌아오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여태까지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모두가 빙빙 돌려 말할 뿐이었다.
“……당신은 내가 속한 운명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모르지. 말하지 않았나? 필멸자는 운명의 끝에 대해 절대로 알 수가 없어.”
“그렇다면 내가 앞으로 어찌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
엔비루스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성민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물었다.
“……하나만 더 물어봅시다. 당신은 드래곤 하트를 다룰 수 있습니까?”
“드래곤 하트? ……다룰 수는 있네. 그런데 그것은 왜 물어보는가?‘
엔비루스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엔비루스와 만나 가득 차올랐던 짜증이, 그의 대답에 조금이나마 식혀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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