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2)
노 클래스-2
이성민이 가질 수 있었으나, 가지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 류의 기억에 대해서는 뚜렷하다. 잠들기 전에 몇 번이나 생각하곤 했다. 내가 만약에 그런 기회를 얻었다면? 그런 IF스러운 생각은 하다 보면 끝이 없고, 전생의 이성민은 구질구질한 노 클래스로 시작한지라 언제나 기회에 대해 목이 말랐다.
이성민의 기억 상, 13년 전의 제나비스에서는 이성민의 빌어먹을 처지를 개선할 수 있을만한 기회가 세 개나 있었다. 덕분에 이성민은 빠르게 당장 해야 할 목표를 정할 수가 있었다.
우선 확보해야 할 것은 무골武骨이다.
무골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무공을 쉽게 익힐 수 있는 골격을 말한다. 과거의 이성민은 무공을 익혔고, 그 경험을 살리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무공을 익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노 클래스는 대부분의 스킬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무골까지 얻는다면 그 속도에 가속이 붙는다. 앞으로 찾아 올 기회에 대한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는 무골부터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잡아야 한다.
무골의 획득 조건은 간단하다. 아무 스킬도 익히지 않을 것. 그것은 굉장히 쉬우면서도 어려운 조건이었다. 스킬은 어찌 보면 굉장히 얻는 것이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성민이 사람을 3명 죽인다면 ‘살인’ 스킬을 얻게 된다.
현재 이성민은 아무런 스킬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무골을 얻을 조건은 충족된다. 이성민은 전생에서의 기억을 최대한 되짚어가면서 거리를 가로 질렀다. 새삼스레, 이성민은 자기 자신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성격이라는 것에 대해 감사를 느꼈다.
찾았다.
무병 접골원. 이성민은 그 낡아 빠진 간판을 올려 보았다. 13년 전의 이성민은, 무골에 대한 소문을 듣자마자 무병 접골원을 찾아왔었다. 가진 전 재산을 털어가며 ‘시술’을 부탁하였으나, 시술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을 들었었다.
그때 얼마나 억울했던지.
“골격 개조 시술을 받기 위해 왔습니다만.”
무병 접골원에는 아무런 손님도 없었다. 이성민의 기억 상 이 접골원은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앞으로 머지않아서… 어떤 운 좋은 노 클래스가 골격 개조 시술을 받게 되면서 손님이 가득 차게 된다.
하지만 그래봤자 반 년이다. 반 년 후에, 무병 접골원은 문을 닫는다. 골격 개조 시술을 받지 못하게 된 무림인이 원한을 이유로 접골원의 의원을 살해하기 때문이다.
“…골격 개조 시술?”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이성민을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하긴, 놀랄 만도 하지. 다 크지도 않은 꼬마가 대뜸 들어와서 골격 개조 시술을 해달라고 하다니. 하물며 지금 시기는 골격 개조 시술이 알려지기도 전이다.
“네.”
“…대체 어디서 듣고 온 거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노인이 중얼거린다. 알고 있다. 애초에 골격 개조 시술을 처음 받은 놈도 단순한 우연으로 그 시술을 받게 된 것이다. 목이 뻐근해서 아무 생각없이 접골원에 들어갔는데, 의원이 돈을 안 받을 테니 한 번 받아보겠냐고 권했었다지. 물론, 이 시술의 효능이 알려지고 난 뒤에는 찾아온 노 클래스들에게 돈을 받아 처먹었지만.
“할 수 있지요?”
노인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묻는다. 노인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이었으나, 일단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허허… 설마 이렇게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돈은 되었네. 이 시술을 사람에게 직접 하는 것은 처음이거든. 대신에, 부작용에 대해서는…”
“상관없습니다.”
이 시술에 부작용은 없다. 이성민이 주저 없이 대답하자 노인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말이다, 꼬마야. 골격 개조 시술은 받고 싶다고 해서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너는… 그러니까… 노 클래스냐? 다른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노 클래스고, 스킬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3년 전에 따져 물었었다. 그냥 하면 될 것을 왜 조건 따위가 있는 것이냐고.
그때 이유를 들었다. 스킬은 육체를 변화 시킨다. 그렇게 변화를 거친 육체는 골격 개조 시술을 받을 수 없다.
지금의 이성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는 현재 아무런 스킬도 익히지 않은 상태다.
“따라 오거라.”
노인은 접골원의 문을 걸어 잠그고서 이성민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옷을 벗고서 이 위에 눕거라.”
이성민은 주저하지 않고서 옷을 벗었다. 옷을 벗으니 지금의 자신의 몸뚱이가 얼마나 나약한지 확실히 알았다. 근육이 적다. 전생의 몸뚱이에는 가득 새겨져 있던 흉터가 없다는 것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성민은 호흡을 고르면서 침대 위에 누웠다. 우선 무골을 얻는다. 그 다음부터는 머릿속으로 기억하고 있는, 얻지 못했던 기회들을 얻는 것에 주력한다.
“조금 아플 게야.”
노인이 소매를 걷어 올려 침을 들었다. 아픔이야 익숙하지. 이성민은 피식 웃으면서 눈을 감았다.
아플 수밖에 없는 시술이다. 기존의 골격을 아예 비틀어버리면서 강제로 무골을 만드는 것이다. 산체로 뼈가 비틀리고 기존과는 다른 형태로 맞춰지는 것은, 노인이 말했던 것처럼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성민은 비명 하나 지르지 않고서 통증을 견뎌냈다. 오히려 이성민은 이 통증이 기쁘게 느껴졌다. 이것으로 이성민은 13년 전과는 다른 스타트 라인에 서게 되었다. 그래봤자 처음부터 무공이나 마법 따위를 익힌 놈들에게는 뒤처진 시작이지만, 적어도 같은 노 클래스들보다는 확연하게 앞선 스타트 라인을 갖게 되었다.
[하급 무골을 획득하였습니다!]통증이 잦아들었을 때, 이성민의 머릿속에서 그런 메시지가 울렸다. 이성민은 즉시 상태창을 열어 이번에 얻은 ‘하급 무골’에 대해 확인해 보았다.
이름: 이성민직업: 노 클래스
스킬:
하급 무골.
무공을 익히기 위한 골격. 그리 대단한 골격은 아니지만, 범인凡人보다는 빠르게 무공을 익힐 수 있습니다.
“끝났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성민은 숨을 고르면서 몸을 일으켰다. 하급 무골.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 대단한 무골은 아니다. 하지만 노 클래스에게 있어서는 간절한 골격이다.
애초에 무골은 얻는 것이 굉장히 힘든 스킬이었다. 노 클래스의 빠른 성장 보정과 무골의 무공에 대한 성장 보정이 곂쳐진다면, 하급 무골이라고 하여도 중급 이상의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성공했군. 살아있는 인간한테 써보는 것은 처음인데… 허허! 돈은 받지 않겠네. 대신에, 소문이나 제대로 내주게.”
노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성공을 확인하였으니 이 시술을 통해 한 몫 단단히 벌어들이겠다는 심산이겠지.
하지만 이성민은 알고 있다. 노인은 반 년 뒤에 죽는다. 무골 시술을 받지 못한 무림인이 홧김에 휘두른 칼에 맞아 죽는단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 사실을 굳이 노인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말한다고 하여도 노인은 이성민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것이다. 이성민은 겉으로 보기에는 14살의 소년일 뿐이다. 노인을 위해 말해 줄 의리도 크게 없거니와, 이성민의 설득도 듣지 않을 것이다.
이성민이 이곳에서 받은 시술에 대해 입을 닥치고 있다고 하여도. 어차피 머지 않아 이 접골원에서 무골 시술을 받는 사람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소문이 나겠지.
차라리 이성민이 노인을 죽이면 어떨까. 그렇다면 제나비스에서 무골 시술은 아예 없던 것이 된다. 그 수혜를 받은 사람은 이성민만 남게 된다.
아니, 아니다. 굳이 죽일 필요는 없지. 이성민은 씁쓸함을 느끼면서 웃었다. 이성민은 자신한테 위해를 가하지도 않은 사람을 죽이려 들 정도로 썩은 인간은 아니다. 오히려 이성민에게 있어서 접골원의 노인은 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무시할 뿐이다.
“수고하십쇼.”
접골원을 나왔다. 침대에서 막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몸이 조금 뻐근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뻐근함은 줄어들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것으로 하나. 제나비스에서 이성민은 자신이 얻을 수 있었던 기회 중 하나를 얻게 되었다. 무골을 얻는 것. 이제는 두 번째 기회를 얻을 때다.
‘고서점古書店으로 가야 해.’
무골로 기본 되는 그릇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그릇은 비워져 있다.
사실 이성민은 당장이라도 그릇을 채울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13년 전에 익혔던 이류 무공들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고, 당장이라도 구결을 외운다면 이성민은 이류 수준의 내공심법을 얻게 될 것이다.
영능심법靈能心法. 당시의 이성민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익혔던 심법이었지만, 언제나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심법이기도 했다.
내공심법은 무공을 펼치는 것에 가장 기본 되는 내공을 쌓는 공부다. 문제는 한 번 익힌 내공심법을 버리고 새로운 심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기존에 쌓았던 내공을 모조리 버리거나, 아니면 그 심법을 극성으로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심법이 그런 극단적인 제약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성민이 익혔던 영능심법은 저 가혹한 제한을 내포하고 있었다.
전생에서의 영능심법의 성취는 8성. 이미 한 번 지나왔던 길이니 전생에서의 성취까지는 금세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성민은 영능심법을 대체할 수 있을 심법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천진심법天眞心法. 이 심법은 제나비스의 작은 고서점에 숨겨져 있다. 전생에서 이성민이 처음으로 제나비스에 도착하고서 일주일 뒤에 발견된 심법이고, 고서점에 천진심법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이성민은 부러움에 배가 아파서 밤 새 부들부들 떨었었다.
천진심법은 일류에 들어가는 내공심법이다. 내공이 쌓이는 속도도 전생에 이성민이 익혔던 영능심법보다 빠르다. 하지만 천진심법의 진정한 묘용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이 심법은 영능심법과 같은 제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언제든지 다른 심법으로 갈아탈 수 있단 말이다. 전생에서의 이성민은 10년 동안 영능심법을 익히면서 간신히 8성을 찍었는데, 천진심법을 익힌다면 극성까지 찍지 않아도 언제든지 그보다 좋은 심법으로 갈아탈 수 있단 말이다.
“찾았다…!”
한 시간 동안 고서점의 책장을 뒤진 끝에, 이성민은 드디어 원하던 것을 발견했다. 이성민은 감격으로 몸을 떨면서 책장을 넘겨 내용을 확인했다. 틀림없다. 천진심법이다. 전생에서의 이성민은 이 고서점에 이런 내공심법이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할 수 있다. 이성민은 천진심법을 소중하게 가슴에 끌어안고서 대금을 치렀다. 고서점의 주인은 이성민이 구입한 천진심법의 값어치를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이성민은 거의 헐값에 천진심법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돈이 남는다. 아까 죽였던 놈에게서 빼앗은 지갑에는 아직 상당부분 현금이 남아 있었다.
‘시간상으로는… 앞으로 1년인가?’
전생에서, 이성민이 제나비스에서 놓쳤던 세 번의 기회. 그 중 두 개를 얻었다. 무골을 얻었고, 천진심법을 얻었다.
다음의 기회까지는 앞으로 1년. 이성민은 지갑을 열어 남은 돈을 세어 보았다. 6만 에르. 제나비스에서 가장 싼 여관이라고 하여도 하룻밤을 지내는 것에는 2만 에르를 받는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잠만 잔다고 사는가? 먹고 마시는 것까지 한다면, 하루에 못해도 3만 에르는 들어갈 것이다.
즉, 이성민이 가지고 있는 돈은 끽해야 이틀을 버티는 것이 고작이란 말이다.
우선 돈을 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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