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222)
“와, 새끼. 엄청 변했네. 키도 크고, 어깨도 넓어지고. 얼굴도 변하고.”
한스가 시시덕거리며 손을 뻗었다.
이성민은 마주 웃어주면서 한스의 손을 맞잡았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냐? 돌아올 만한 곳이 아닌데.”
“베헨게르 쪽에 볼일이 있어서 이 근처에 왔습니다. 그러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제나비스에 들렀고요.”
“옛날 생각은 무슨. 여기서 얼마나 살았다고?”
한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았다.
“네 소문은 가끔 들었다. 그게 너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말이야.”
“무슨 소문 말입니까?”
“귀창.”
한스가 주변을 슬쩍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 좋은 소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여러 가지 오해가 많은 소문이지요.”
“그 말은…… 네가 귀창이라는 것이군. 맙소사.”
한스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13년 전의 그 꼬맹이가 귀창이라는 별호를 가진 유명인이 되었다고. 참……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른다니깐.”
한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돗자리에 깔아 둔 물건들을 힐긋 보았다.
“13년 전에 말이야. 워낙 옛날이라 기억은 잘 안 난다만, 내가 너한테 나름 잘해 주었던 것은…… 뭐랄까. 이상하게 남 보는 것 같지가 않아서였거든. 나는 동생도 없는데, 만약 동생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그래, 꼭 그런 기분이었어.”
괴력난신의 가호 때문이다.
“뭐 기분은 그랬지만, 나는 네가……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미리 잘 보였던 거지. 물건도 싸게 팔아주고. 나는 이 도시에서 많은 이계인들을 보고, 노 클래스들을 봤었는데. 노 클래스 중에서 너만큼 독하고 빠르게 크는 놈은 거의 본 적이 없었어.”
그럴 만도 했다. 당시에 이성민이 가지고 있던 재능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재능은 없었어도 전생의 지식을 통해 이성민은 빠르게 성장할 수가 있었다.
거기에 위지호연과 친구가 되는 기연까지 얻었으니 다른 노클래스들과 비교가 안 되는 것이 당연했다.
“잭 아저씨는 만났냐?”
“아뇨. 이제 가려 합니다.”
“그러면 빨리 가 봐. 나도 슬슬 손님들 올 시간이니까. 그래도 뭐, 다시 얼굴 보니까 좋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서 더 좋고.”
한스가 웃으며 말했고, 이성민은 품 안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한스가 재빨리 손을 들어 올리더니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됐다.”
“뭐가 말입니까?”
“괜히 은혜 갚는답시고 돈 같은 건 주지 말라고. 13년 전의 일이니 기억도 잘 안 나고, 너한테 해줬던 것 중에서 엄청 대단하다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
“하지만…….”
“괜찮다. 나도 돈 궁해서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도 이미 나 먹고살 돈은 다 모아놨거든? 그냥 할 일 없고 심심해서 이러고 있는 것이지.”
한스가 그렇게까지 말하면서 거부하자, 이성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대신, 그는 한스에게 받았던 아공간 포켓을 건네주었다.
“그렇다면 예전에 받은 것만이라도 돌려드리겠습니다.”
“새끼.”
한스는 피식 웃더니 이성민에게서 받은 아공간 포켓을 열어 보았다. 그러더니 그 안에 손을 쑥 집어넣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내가 너한테 보석들을 준 기억은 없는데?”
한스는 아공간 포켓에서 큼직한 보석을 꺼내며 이죽거렸다. 이성민은 쓰게 웃으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당신의 입장에서는 대단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하여도. 당신이 나에게 해주었던 것들은 당시의 나에게는 충분히 대단한 것들이었습니다. 당신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당시에…… 나는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을 겁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과해. 이 정도로 많이 받고 싶지는 않다고.”
한스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아공간 포켓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가 꺼낸 것은, 이성민이 넣어 둔 보석 중에서 가장 크기가 작은 놈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것 하나만 잘 판다면 평생 먹고사는 것에 지장은 없을 것이다.
한스는 꺼낸 보석을 자신의 아공간 포켓에 넣으면서 투덜거렸다.
“억지로 주려 하니 안 받을 수도 없고.”
“받아 남한테 맞아 죽지는 말고.”
“예.”
한스와 조금 더 잡담을 나눈 뒤에, 이성민은 광장을 떠났다. 한스와 함께 제나비스에서 일 년 동안 신세를 졌던 잭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제나비스는 제법 변했지만, 잭의 여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관 건물을 보수한 것 같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옛날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지금 시간이라면 여관 손님들이 아침을 먹을 때인가. 이성민은 13년 전에 먹었던, 이곳에서의 아침을 떠올리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잭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자, 긴 머리를 묶은 여자가 주방 쪽에서 머리를 내밀고서 웃고 있었다.
루라.
잭의 딸로, 이성민보다 한 살 나이가 많다. 자연스레 이성민은 13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숙박이신가요? 아니면 식사?”
“오랜만이야.”
두른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오는 루라가 묻자, 이성민은 피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 말에 루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야? 손님이냐?”
주방의 안쪽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한스도 늙기는 했지만, 본래부터 중년이었던 잭은 13년이 지나면서 노인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13년 전만큼 체격은 건장했다. 이성민은 잭을 향해 꾸벅 머리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누구……?”
잭이 그랬던 것처럼, 한스와 루라도 이성민을 기억하지 못했다.
너무 많이 변해버린 탓이다.
이성민이 자신을 소개하자 루라의 입이 쩍 벌어졌고 한스도 두 눈을 크게 떴다.
놀람 뒤에는 둘 모두 반가움을 보이면서 이성민을 식탁으로 안내했다.
“왜. 어릴 때 먹던 밥맛이 그립더냐?”
한스가 히죽 웃으며 하는 말에 이성민은 빙그레 웃었다.
이성민의 맞은편에 앉은 루라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이성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잘 컸네.”
“너도.”
“여전히 누나라는 말도 안 하고 말이야. 나 결혼한 건 알아?”
루라가 불쑥 말했다. 그 말에 이성민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루라도 어느덧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니까, 결혼했다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구랑 결혼한 거야?”
“네가 떠나고서, 이 도시에 소환된 노클래스랑. 진즉에 자기 분수를 알아서 모험을 떠나겠답시고 나대지는 않는 녀석이야. 조금 우유부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은 녀석이지.”
루라 대신에 한스가 대답했다.
“네 생각이 나서 이 여관에 좋은 조건으로 투숙하게 해주었고, 그 와중에 루라랑 눈이 맞아버렸지 뭐냐.”
“눈이 맞기는. 녀석이 나를 일방적으로 꼬셔댄 거지.”
루라가 투덜거렸다. 그렇게 말은 하였어도 지금의 남편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었다.
잘 지내고 있구나. 이성민은 조금 안심하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남편분은?”
“일하러 갔지. 남편은 목수야. 솜씨는 그저 그렇지만 열심히 배우고 있어.”
루라가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에 한스가 따뜻한 스프와 빵을 가지고 왔다. 그는 입맛을 쩝 다시며 말했다.
“아침이라 해둔 음식이 없군.”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성민은 14년 전처럼, 빵을 찢어 스프에 찍어 입에 넣었다.
그때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맛이 났다. 음식이 그리 많지 않아 식사를 마치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이야기에 자리가 길어졌다.
한스와 루라는 이성민에게 많은 것을 질문하였지만, 소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어쩌면 저들도 잭처럼, 소문이 무성한 귀창이 이성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성민도 그에 대해서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
이성민이 몸을 일으키자, 루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물었다. 그 말에 이성민은 머리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응. 다른 곳에 볼일이 있거든.”
“갑작스레 오고서는 빨리 가버리네.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하루 묵지그래? 네가 묵었던 방이 마침 비어 있거든.”
“아니, 괜찮아. 정말로 급해서 그래.”
거짓말은 아니었다. 사마련에 가기 전에 청색 마탑에 들러야 한다.
이곳에서 제법 거리가 먼 곳이니 서둘러 가야만 한다.
“아, 그리고.”
이성민은 품 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이곳에 오기 전에 구해 두었던 아공간 포켓이다. 그는 테이블 위에 아공간 포켓을 올려 두고서 말했다.
“이건 음식값이랑, 축의금이야. 너무 늦기는 했지만.”
“값을 치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남는 음식이었는데.”
한스가 그렇게 말했지만, 이성민은 내려놓은 아공간 포켓을 다시 챙기지는 않았다.
그는 루라와 한스를 향해 빙긋 웃었다. 그 웃음에 루라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뭐라고 더 말을 하려 하였지만, 이성민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파직!
둘이 보는 앞에서 이성민은 튀어 오르는 전류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아공간 포켓에는 제법 많은 보석을 넣어 두었다. 어쩌면 잭이 그랬던 것처럼 받지 않으려 할 수도 있으니, 이성민은 둘이 반발하기 전에 잽싸게 질풍신뢰로 여관을 빠져나갔다.
[은혜 갚기는 끝났냐?]허주가 물었다. 여관 밖에서 이성민은 경공을 펼쳤다. 그는 빠르게 제나비스의 성문을 지나면서 대답했다.
“응.”
[청색 마탑주라는 놈을 만나러 먼저 갈 생각이었지? 난쟁이들의 마을은 언제 갈 셈이냐?]난쟁이. 드워프를 말하는 것이다.
원래부터 이성민은 언젠가 드워프의 마을에 한 번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드래곤 하트는 정령의 여왕 덕에 먹을 수 있었지만, 드래곤의 비늘과 이빨, 뼈 등은 아직까지 가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를 가공하기 위해서는 드워프의 마을을 찾아가, 드워프의 족장을 만나야만 한다.
그렇게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무턱대고 드워프 족장을 만나러 갈 수는 없었다.
가는 길이야 알고 있었지만, 간다고 해서 드워프 족장과의 만남이 성사되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요정 여왕인 오슬라 덕에 해결되었다.
숲을 떠나기 전, 이성민은 오슬라를 만났다. 그녀가 가지고 있다는 호의에 대해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슬라는 호의에 대한 증명을 대놓고 요구하는 이성민이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거절하지는 않고서 이성민에게 몇 가지 도움을 건네주었다.
드워프 족장과의 만남을 가능해진 것 역시 오슬라의 도움 때문이다.
이성민은 아공간 포켓 안에 넣어 둔 오슬라의 편지를 떠올렸다. 드워프의 족장에게 오슬라가 직접 쓴 편지다.
‘드워프의 마을은 가는 길에 들를 수가 없어.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가도록 하지.’
[꼭 그렇지도 않잖아? ‘말’을 탄다면 금세 갈 수 있을 텐데.]‘세 번밖에 소환할 수가 없는데, 이런 일에 쓰고 싶지 않아. 언젠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사용하고 싶어. 그리고 난 애초에 드워프 마을에 가본 적이 없으니까 말을 소환한다고 해도 그곳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해.’
허주가 말한 ‘말’ 역시 오슬라에게 받은 것이다.
세 번밖에 소환할 수가 없지만, 소환한다면 이성민이 가본 적이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디라도 단숨에 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지금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제나비스의 성문을 지나고서, 이성민은 쉬지 않고 달렸다.
청색 마탑주, 샤오스가 있는 오둔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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