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242)
모용찬도, 모용대운도. 살아 있었다. 취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나는 악운에 강한 모양이로군.’
취걸은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죽을 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는다.
과거, 소천마를 따라 들어간 던전에서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물론 아직 토벌은 끝나지 않았지만, 취걸은 이 토벌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마법사 길드의 입장은 상관없다. 이만한 피해를 입었는데 토벌을 계속한다? 개죽음이 될 뿐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귀창도 이 안에 들어와 있겠지. 적색 마탑주를 보호하고 싶은 것이라면 말이야.
‘귀창과 전면 충돌은 안 돼…… 승산이 없다.’
모용가주가 어린아이처럼 다뤄지는 것을 보았다. 이 숲에 흩어진 백결무혼단과 모용세가의 무사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겠지.
그 상태로 이성민과 충돌한다면 개죽음을 면치 못한다. 만전의 상태로 덤빈다고 해도 개죽음일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초월지경에 오르기 위해서는 재능과 뛰어난 무공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늘이 점지해야만 한다.
천운. 그래, 천운이 필요한 것이다. 취걸은 이 이야기를 자신의 사부인 개방주에게 들었었다.
개방주 역시 긴 세월 무공을 익혀 온 개방의 최고 고수였지만, 아직까지 초월지경의 벽을 부수지 못했다.
천운이 필요하다고 말할 만큼 높은 경지가 초월지경이다. 여태까지 무공을 익힌 무인의 수가 몇이나 될까. 몇만은 아득히 넘겠지. 하지만 그중, 확인된 초월지경의 고수는 무당의 검선과 무림맹주 흑룡협, 사마련주 마황뿐이다.
‘거기에 귀창까지. 천운…… 천운이라.’
취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애매한 것은 그다지 믿고 싶지 않지만, 악운에 강해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을 보면…… 정말로 천운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어쩌면 나도 언젠가 초월지경에 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애매한 생각은 잠시 접어둔다. 취걸은 모용대운을 힐긋 보았다.
모용대운을 설득할 수는 없다. 그는 귀창을 죽여 딸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여기서 적색 마탑주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해. 그렇다고 토벌을 계속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일단 이 숲을 벗어나야만 한다. 취걸은 모용대운을 향해 다가갔다.
“무림맹에게서 받은 명령이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먼저 운을 띄웠다. 맹주의 명령을 핑계로 삼아 이 숲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 * *
구덩이 근처로 돌아온 김종현은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의 모자를 벗었다. 그는 이 숲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고, 앞으로의 일도 예상했다.
토벌이 실패했음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마법사 길드는 토벌을 포기하고 자리를 뜨겠지.
속이 구리기는 하지만 목숨을 던져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그것은 무림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방어 결계를 두르고 마족들을 호위로 돌렸다.
만약 누군가가 습격한다고 해도 무리 없이 그들에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민이 직접 온다면? 그가 올 이유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만. 만약 온다고 해도…….
얼마나 버텨줄까?
긴 시간을 버티지는 못하겠지. 방어 결계를 두껍게 씌웠고, 살아남은 마족 넷을 방패막이로 세워두기는 했지만 이성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괜찮다. 아주 잠깐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의식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김종현은 천천히 심장을 쌓아 놓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문은 계속해서 열리고 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시리고 불길한 마계의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다. 구덩이 한가운데에서 김종현은 뛰는 심장의 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반전의 마법. 이것은 종의 성질을 뒤바꾸는 마법이다.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하는 마법. 사용하는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언데드를 다시 사람으로 바꾸는 것도 일이 아니다. 아르베스가 기억 속에서 가장 탐냈던 것도 이 반전의 마법이었다.
그리모어의 마법을 다룰 수 없던 아르베스가 궁여지책으로 창안해 낸 것이 혼의 전이 마법이었지만, 그리모어를 다룰 수 있는 김종현이니 반전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단지. 그가 반전시키고자 하는 것이 너무 많은 대가를 요구했을 뿐이다. 그래서 일곱 개 마을을 전멸시켰고 토벌대를 이곳에 끌어들였다.
심장이 뛴다. 모은 공포와 혼이 뒤섞인다. 문에서 흘러나오는 마계의 바람. 김종현은 처음 마셔보는 마계의 공기가 낯설지 않다 느꼈다.
그의 몸 안에 있는 소멸한 마왕의 마력이 고향의 바람에 기뻐하고 있었다.
김종현은 양팔을 활짝 펼쳤다. 공명된 고동 소리를 내며 뛰던 심장이 검붉은 핏물이 되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검붉은 핏물이 김종현의 몸을 적신다. 의식이 시작되었다.
김종현이 가진 인간의 육체가 붕괴하면서 제물의 심장과 혼, 공포로 새로운 육체를 구성하였다.
반전의 마법은 김종현이 가지고 있는 마왕의 마력을 통해, 그라는 ‘인간’을 인간이 아닌 마왕에 보다 가까운 존재로 바꾸어가고 있었다.
‘성공이다.’
고통은 없다. 그의 몸과 의식을 가득 채우는 것은 포악한 환희였다.
계획대로였다.
여기까지는.
콰르르릉!
높은 하늘에서 내리꽂힌 시커먼 빛이 김종현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완성으로 차근차근 나아가던 의식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뭐, 뭐야!?”
김종현은 실로 오랜만에 당황한 외침을 토했다. 그는 급히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는 급히 펼쳐 놓은 마법을 점검했다. 이성민은 아직 방어 결계를 돌파하지 못했다. 지금 김종현을 방해하고 공격한 것은, 이성민이 아닌 다른 누군가다.
김종현은 몸을 뒤덮은 핏물 속에서 급히 머리를 들어 올렸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 한복판을 덮고 있었다.
‘맙소사.’
구름 안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드래곤이었다.
김종현이 방어 마법을 완성하는 것보다 드래곤이 다시 한번 입을 벌려 브레스를 쏘아내는 것이 더 빨랐다.
이번에 드래곤이 노린 것은 김종현이 아니었다. 완전히 열려가던 문이 그대로 브레스에 노출되었다. 문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안 돼!”
김종현이 고함을 질렀다. 브레스를 쏘아낸 드래곤이 시커먼 빛에 휘감겼다. 빛이 사라지자 그곳에 있는 것은 널찍한 용포를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너 때문에 이 먼 거리를 날아왔다.”
흑룡협이었다.
영매에게서 다급한 부탁을 들은 것은 바로 어제였다. 귀창이 문제가 아니라고. 김종현의 의식을 막아야만 한다고.
그런 문제라면 가까이 있는 창왕을 보내면 되는 것 아닌가 반문하였지만, 영매는 ‘반드시’ 흑룡협 당신이 직접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영매의 말은 신령의 말. 거역할 수는 없다. 덕분에 흑룡협은 무림맹에서 이곳까지 먼 거리를 비행해야만 했다.
하루를 꼬박 날아 간신히 시간에 맞추었지만, 의식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체 왜 내가 직접 가야 한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에 영매가 그렇게까지 말한 것이겠지만. 흑룡협은 투덜거리면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반인반룡으로서 드래곤의 권능을 일부나마 쓸 수 있는 그였으나, 영매가 접신하는 신령의 뜻은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귀찮게 하는군. 흑마법사 놈.”
흑룡협은 구덩이 속 핏물에 잠겨 있는 김종현을 내려 보면서 중얼거렸다.
완성 직전까지 갔던 의식은 흑룡협의 개입으로 인해 완성되지 못했다.
반전의 마법은 한 번밖에 펼칠 수가 없다. 아무리 제물을 더 바치고 의식을 다시 거행한다고 해도 마법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가……!’
흑룡협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설마 드래곤의 방해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수백 년 전에 모습을 감춘 드래곤이 왜 갑자기 튀어나와 다 된 밥에 재를 뿌린단 말인가.
하지만 분노하는 것과는 다르게 김종현은 들끓는 감정대로 행동하지 못했다.
의식이 완성되지 못하고 도중에 멈춘 탓에, 재구성되던 육체가 완전히 구성되지 않았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다행이다. 흑룡협이 조금만 더 빨리 나타나 문을 박살 냈다면, 육체가 재구성되기도 전에 의식이 실패하여 그대로 소멸해 버렸을 것이다.
“너를 죽이라는 말은 듣지 않았다만.”
흑룡협은 김종현을 내려 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영매에게 들었던 말은 의식이 완성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지, 김종현을 죽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흑룡협은 잠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접신을 통해 영매가 내리는 지령은 언제나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반드시’ 지령대로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죽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나서서 할 필요는 없겠지. 이곳까지 날아오는 것도 굉장히 수고스러웠는데. 흑룡협은 어깨 근육을 주무르면서 투덜거렸다.
진짜 드래곤은 폴리모프 마법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마법을 다루고 공간이동까지 해낸다지만, 흑룡협은 마법까지는 사용하지 못했다.
간신히 드래곤과 인간으로 형태를 바꾸는 것이 고작이고 공간이동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드래곤의 강인한 힘을 비롯하여 드래곤의 비늘과 뼈 등 육체적인 능력은 누군지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지만, 드래곤을 드래곤답게 만드는 용언과 마법은 물려받지 못했다.
흑룡협은 움직이지 못하는 김종현을 내버려 두고서 몸을 돌렸다. 이곳에 볼일은 없다.
‘아냐.’
흑룡협의 생각이 취걸에게 들었던 보고에 닿았다. 적색 마탑주. 굳이 척살단을 보내 소모할 필요는 없지 않나.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적색 마탑주를 직접 취하면 모든 일이 간편해진다.
‘쉽게 된다면 말이야.’
귀창과 격돌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흑룡협은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귀창을 죽일 생각은 없다. 영매에게서 그런 지령은 듣지 않았으니까. 무신의 뜻대로, 귀창의 처리는 창왕에게 맡긴다.
만에 하나……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적색 마탑주만 확보해 둔다.
‘마탑주들이 살아 있군.’
이를 어쩐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적색 마탑주를 납치하는 것은 그리 보기 좋은 꼴이 아닌데.
귀창과 엮어서 대충 핑계를 댈까. 애초에 취걸과 척살단을 보내라 했을 때부터 그런 핑계를 댈 생각이었다만.
아무래도 무림맹주가 직접 와서 적색 마탑주를 납치하는 것은 모양새가 나쁘지 않나.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흑룡협은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숲. 이미 수많은 토벌대원이 죽었다. 여기서 시체 몇 개가 더 추가된다고 하더라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대한 마법사 길드의 마탑주들이 떼죽음을 당해 시체가 되어버려도 저 잘나신 북쪽의 마왕이 벌인 참극이라고들 생각하겠지.
목격자를 모조리 죽여 버린다면 되는 일 아닌가.
* * *
당아희는 이성민의 뒤를 쫓지 못했다. 그가 달려나가는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 이성민은 당아희를 보호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숲의 어둠은 사라졌고, 숲 안을 활보하던 마수와 키메라, 언데드, 마족들은 김종현 주변으로 몰려갔기 때문이다.
더 이상 당아희를 지켜 줄 필요가 없다. 당아희가 목숨을 건져 몇 달 뒤 생일을 맞는다면, 그때를 기회로 삼아 암존을 만날 수 있다.
‘응?’
스칼렛의 위치를 향해 달려가던 중. 이성민의 걸음이 멈추었다.
쿠우웅!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린다. 오싹하고 밀려오는 소름에 이성민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 보았다.
흑룡협이 김종현을 공격한 시점이었고, 이성민이 하늘을 올려 보았을 때에는 몰려 있던 시커먼 구름이 흩어지고 있었다.
‘뭐지?’
이성민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먹구름이 흩어지는 하늘을 노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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