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251)
서른한 번째로 맞는 생일이다.
생일 축하를 위해 여러 곳에서 다양한 위인들이 모였지만, 당아희의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녀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축하에 대한 말과, 이제는 진지하게 시집을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부모님과 친척들의 질문에 의례적인 말로 화답하며, 연회가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모용과 남궁, 제갈세가는 제각각 불행을 겪었다.
남궁희원은 가문을 떠나 소식이 끊어졌고, 제갈태령과 모용서진은 죽었다.
특히나 꼴이 안쓰럽게 된 것은 모용세가였다. 김종현 토벌에 참가한 모용세가는 가주인 모용대운과 모용세가의 정예무사들 대부분이 끔찍한 죽음을 맞았고, 간신히 살아남은 모용찬은 몰락한 가문을 재건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나약했다.
게다가 그것뿐만이 아니라 모용대운이 숲에서 살해당하기 전.
딸에 대한 복수심으로 인하여 광증(狂症)을 겪은 것으로 인한 책임까지 모용찬에게 떨어져 버렸다.
무림맹은 독단으로 마법사 길드를 공격해, 그들과의 관계를 망치고 백결무혼단을 마음대로 휘두른 모용대운을 대신해 모용세가에 죄를 물었다.
그렇게 모용세가는 몰락 직전까지 갔다. 모용찬에게는 무림맹이 묻는 책임을 회피할 능력도, 항변할 말재간도 없었다.
늙은 모용세가의 장로들이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 나섰으나 무림맹은 강압적으로 나서서 죄에 대한 처리를 이행했다.
모용세가의 재산과 땅은 몰수되었고, 세가의 무사들은 힘을 잃은 가문을 버리고 떠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백결무혼단의 단주인 취걸도 징계를 받았다.
단주이면서도 부하들을 버리고 숲을 도망친 죄. 취걸은 그를 두고서 귀창을 잡기 위해서였다며 항변했지만, 취걸의 항변은 그를 변호하지 못했다.
귀창을 잡기 위해서, 라는 핑계를 댄 주제에 귀창이 숲 밖으로 나가는 것도 포착하지 못하고, 그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으니 오히려 더 엄한 추궁을 받아버렸다.
당아희의 경우에는 무림맹 쪽에서 별다른 압력을 받지는 않았다.
별다른 활약을 하지는 못했어도, 당아희는 숲에 남았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사실 그녀의 경우에는 도망치기는 했지만, 숲을 벗어나기 전에 다른 백결무혼단의 생존자들과 합류한 덕이 컸다.
‘이건 기회야.’
당아희는 머리를 굴렸다. 촉망받았던 세가의 후기지수 중에서 건재하게 남은 것은 당아희 자신뿐이었다.
현재 젊은 무인 중에서 크게 주목받는 이들은 없고, 당가라는 든든한 배경은 아직 빛이 바래지 않아 당아희의 등 뒤를 밝히고 있다.
‘오늘. 귀창은 이곳에 올 거야.’
당아희는 어느 정도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현재 에리아의 무림에서 가장 큰 소문을 이끌고 다니는 것은 귀창 이성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몇 년 동안 통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갑자기 사마련주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것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또한 과감하게도 원수인 모용세가주와 무림맹 휘하 백결무혼단이 참가한 토벌대에 잠입하는 것으로 모두를 기만하기도 했다.
‘귀창을 잡는다면.’
당아희는 작은 흥분을 느끼며 가슴의 고동을 즐겼다.
귀창을 생포하여 무림맹으로 이송한다면, 독접 당아희의 이름은 세상 전역으로 울리게 될 것이다.
무림맹 내에서도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될 것이며, 당가의 여식으로서가 아닌 한 명의 무림인으로서의 밝은 미래가 약속될 것이다.
당아희는 자신의 위치를 제법 잘 파악하고 있었다. 어차피 여자인 그녀는 당가의 가주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잘 해줘 봐야 두 가지뿐이다. 명성과 권력을 겸비한 미남자에게 시집을 가서 안주인이 되던가, 아니면 스스로가 큰 명성과 권력을 가진 여류 고수가 되던가.
당아희가 바라는 것은 둘 다였다. 욕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녀는 귀창에 대한 일들에 대해 함구했다.
다른 이들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무림맹이나 당가 식구들에게 말한다면, 귀창을 잡을 만한 수단을 미리 준비할 수 있었겠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안 해도 되는 것이다. 당아희만의 실력으로는 이성민을 쓰러뜨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당아희에게는 믿는 수단이 있었다. 무림맹의 그 어떤 척살단보다 믿을 만한 수단이.
당무기.
그녀의 고조부는, 지금으로부터 이백 년 전의 인물이다.
당가가 낳은 최고 실력의 고수였지만, 당무기는 가주가 되지 못했다.
출신이 미천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당무기는 가문보다 스스로의 무공을 더욱 중히 여겼기에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고, 어느 순간 당가를 떠나 그대로 종적을 감추었다.
당무기가 모습을 감추고서, 당시 당가의 직계가 연이은 사고로 죽음을 맞아, 당무기의 핏줄이 직계가 되었다.
당아희와 당무기가 처음 만난 것은, 그녀의 나이가 열 살이 되었을 때였다.
사고로 여읜 딸을 닮았다면서. 당무기는 당아희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이 너의 고조부 되는 사람이라 소개했다.
‘고조부님이라면.’
당아희는 당무기가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가진 고수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포함해서 그 누구에게도 당무기와의 만남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절대로 가족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고조부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왔었기 때문이다.
당아희는 그 순진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 뿌듯했다.
덕분에 오늘 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당무기의 도움을 빌어 귀창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연회가 끝나고. 당아희는 일찌감치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아직 자정까지는 시간이 남았고, 평소 같은 생일이었다면 자정에 당무기와 잠깐의 만남을 가지는 것조차 귀찮고 번거롭다 여겼을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십대 소녀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녀는 어서 빨리 자정이 되어, 고조부와 만나고 싶었다. 고조부와의 만남에서 이런 기대감을 느끼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가 대체 어떤 신비로운 물건을 선물로 줄지에 대한 기대보다, 당무기가 이성민을 쓰러뜨려 주는 것에 대한 기대감.
당아희는 침대에 누워 방긋거리며 웃었다.
이성민은.
그런 당아희를 보고 있었다. 이성민이 당아희의 방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공밖에 모르는 머저리인 줄 알았더니.]‘굳이 쓸 필요가 없으니까, 여태까지 쓰지 않았을 뿐이야.’
이성민은 그렇게 답해주면서 손바닥 아래의 수정 구슬을 내려 보았다. 들키면 어떻게 하나 싶기는 했는데, 당아희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에레브리사에서 구입한 초소형 마법 아티펙트다.
길어야 하루밖에 수명이 안 되지만, 설치한다면 그 장소의 영상과 소리를 엿들을 수 있다.
이성민은 연회 중의 당가에 몰래 침입했고, 미리 파악해 둔 당아희의 방에 숨어들어 아티펙트를 설치했다.
당아희의 방 안은 다양한 귀중품과 장식물이 많았기 때문에, 아티펙트를 숨길 장소를 물색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쉽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성민은 배게를 끌어안고서 킬킬거리며 웃어대는 당아희를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아티펙트가 작다고는 해도, 이성민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다.
자신보다 하수인 당가 무인들의 이목을 속이고, 그녀의 방 안에 들어갔다 나온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기는 했지만. 아티펙트를 숨긴 장소가 영 불안하여 들키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었다.
[팔자 좋은 계집이로군.]‘아무 의심도 없는 것이 오히려 수상한데.’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흔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저 계집은 그런 사람이 아닌 모양이고. 게다가…… 굉장히 들떠 있는 것 같은데. 생일이라 좋은 것인가?]‘……나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성민이 그런 생각을 할 즈음, 당아희는 자신의 망상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보내는 찬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악명 높은 귀창의 팔다리를 자르고 단전을 폐한 뒤에, 개처럼 질질 끌고서 무림맹에 입성한다.
모두가 귀창을 홀로 잡은 당아희에게 극찬을 보낼 것이고, 무림맹주 흑룡협이 직접 나와 당아희의 공을 치사한다.
‘누구랑 결혼할까. 무당의 청명? 도사기는 하지만 지금 젊은 무인 중에서 가장 잘난 것은 청명인데. 지학은 대머리라서 싫고…….’
당아희의 망상 속에서 팔다리가 잘리고 단전이 폐해졌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성민은, 당아희가 킬킬거리며 웃는 것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 얼빠진 모습 전부가 연기 아닐까.
방 안에 아티펙트가 설치되었다는 것을 이미 파악했는데,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서 나를 기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내가 암존을 습격하러 갔을 때. 미리 대기하고 있던 흑룡협이나 창왕이 나와 나를 죽일지도 몰라.’
[지랄하고 있네.]이성민의 생각에 허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저 계집과도 몇 번 만나봤었지. 너는 저 오줌싸개 계집이 그런 모략을 꾸밀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아니.’
[그런데 왜 쓸데없는 걱정에 심력을 소모하느냐? 말도 안 되는 생각하지 말고. 자정까지 시간이 꽤 남았으니 술이나 마시자꾸나.]‘어제도 마시게 해줬잖아.’
[술은 매일 마셔야 하는 것이다.]‘나는 아니야.’
허주의 호리병에서 나오는 술맛은 훌륭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특히나 오늘 같은 날은. 허주는 이성민이 술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자 투덜거리는 소리를 냈다.
[걱정도 많다. 무당의 검선이라는 새끼는 무당산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암존과의 싸움에서 검선이 개입할 가능성은 없다.]‘꼭 그렇지도 않아.’
이성민은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편한 것은, 암존이 당가와 이 도시를 떠날 때에 그를 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솔직히 자신이 없어. 암존이 당아희와의 만남을 끝내고서 경계 없이 돌아갈 것 같지도 않고.’
아마 높은 확률로 경계할 것이다. 당가에서 암존과 소통하는 것은 당아희뿐이라고 했고. 매년 생일에도 자정에 잠깐 당아희를 만나, 선물과 덕담을 말해준 뒤에 바로 사라진다고 했으니까.
‘나는 암존보다 강해. 하지만 암존의 은신을 간파하고 그를 추적할 자신은 없다.’
그렇다면, 전면전을 택할 수밖에 없다. 암존이 당가를 떠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암존이 당아희의 앞에 나타난 순간. 그 자리를 습격하여 암존을 쓰러뜨리는 것.
하지만. 이성민이 암존보다 강한 것이 확실하다고 해도, 죽지 않으려 발악하는 암존을 죽이려면 소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도시의 한복판에 있는, 당가의 안에서 소란이 이는 것이다.
자정이라고 해도 당가의 불은 환하게 켜질 것이고 사방에서 당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것까지는 괜찮다. 악명이 늘기는 하겠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다만, 소란이 벌어진다면. 그 소란이 무당까지 간다면. 그것이 은거하고 있는 검선을 움직이게 한다면?
[그래서. 안 할 거냐?]‘아니.’
이성민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암존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또 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은신의 고수를 확실하게 죽일 상황이 만들어졌는데, 혹시 모를 위험을 걱정하여 이 기회를 걷어차고 싶지는 않다.
암존을 죽인다면 천외천에는 무신을 포함하여 넷만 남는다.
‘최대한 빠르게.’
이성민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몇 년 전에, 루베스에서 싸웠던 암존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기척이 잡히지 않는 신출귀몰한 보법. 순식간에 날아오는 다양한 투척 암기. 그 외에도 몸에 두르고 있는 다양한 암기들. 암존이 도망치게 둬서는 안 된다.
* * *
자정이 되었다.
툭, 툭. 침대에 누워있던 당아희는 창밖을 두드리는 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반짝 떴다.
그녀는 벌떡 몸을 일으켜서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 바깥에 자그마한 돌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당아희는 방긋 웃으면서 창문을 열어, 그 아래로 몸을 날렸다.
뒤뜰의 나무는 당아희가 어린 시절에 직접 심은 나무다. 나무의 아래에 검은 무복을 입은 당무기가 서 있었다. 당아희는 고조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셨어요?”
“서른한 번째 생일이구나.”
당아희가 웃으며 건네는 말에, 당무기. 암존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올해는 네가 혼인할 것이라 생각했다만.”
“눈에 차는 남자가 없어서요.”
“그래. 어지간한 녀석이라면 감히 너를 데리고 갈 수 없겠지.”
암존은 고손녀인 당아희를 향해 애정이 듬뿍 어린 시선을 보내며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무엇을 줄까 많은 고민을 하였다만…….”
“고조부님, 선물보다는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
암존이 선물을 꺼내기 전에. 당아희가 그의 팔에 매달리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를 냈다.
“하나뿐인 고손녀의 부탁이라면 들어줘야지. 그래. 무엇을 부탁하고 싶으냐?”
“그러니까요. 어떤 녀석을 제압해 주셨으면 하는…….”
당아희의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파직.
어둠 속에서 자색 전류가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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