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329)
335화 79. 행방(2)
뱀파이어 퀸이 저택에 틀어박힌 것은, 주원으로 하여금 행동의 자유를 얻게 만들었다.
무신이라는 인간과 싸워보고 싶다고 도시를 떠난 주원은 반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네로는 주원이 남긴 말을 명심하고 지켜왔다.
그냥 있는 것.
체페드의 중앙지구. 영주의 저택은 10년 전부터는 주원의 것이었고, 반년 전부터는 네로의 것이었다.
네로는 그 거대한 저택의 한가운데에서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그냥 있으라고 했다, 그냥.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그냥 있어야 하는가? 체페드를 습격한 놈은 단둘.
실질적으로 날뛰고 있는 것은 창을 휘두른다는 놈뿐. 차라리 누구인지 모른다면 좋았을 텐데. 도시를 습격한 둘은 너무 유명해서, 네로가 도저히 모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어르무리의 구미호 야나. 예전, 프레데터의 검은 별 중 하나였던 요괴 두령 적귀의 심장을 뽑은 장본인.
당시 어르무리를 지배하던 적귀는 야나의 도전을 받았었다. 비록 적귀가 프레데터의 검은 별 중에서는 약한 축에 들었다고 해도, 둘 사이에 벌어진 싸움은 싸움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방적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귀창 이성민.
‘게르무드에서 봉인이 풀어진 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대체 어떻게 게르무드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봉인이 풀어졌다는 것은 알고 있다. 네로의 수하인 라이칸슬로프들 중 일부도 라오셴과 함께 봉인을 풀기 위해 게르무드로 내려갔었기 때문이다.
귀창 이성민이 데스나이트 군주인 볼란데르를 쓰러뜨렸다는 것은 에리아 전역에 퍼진 소문이다.
네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가 아무리 주원의 심복으로서, 손에 꼽힐만한 힘을 가진 라이칸슬로프라고는 해도. 데스나이트 군주인 볼란데르와는 가진 힘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야나까지 이성민을 돕겠답시고 뒤에 함께 움직이고 있으니. 체페드의 모든 라이칸슬로프를 긁어모은다고 해도 저 둘을 막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라이칸슬로프는 호전적이다.
그 말은 맞다. 그들은 인간이면서 짐승에 가깝고, 짐승 중에서도 난폭하고 투쟁적인 짐승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네로는 난폭함과 투쟁보다는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었다.
그렇기에 네로는 주원의 심복이 될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네로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저택에는 라이칸슬로프들이 모여 있었다. 네로가 명령만 한다면, 그들은 주저 없이 저택을 뛰쳐나가 이성민과 야나와 싸우다가 죽을 것이다.
네로는 그런 명령을 내릴 생각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주원의 명령을 떠올린다.
주원은 자신이 없는 동안 이 도시가 변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반년 동안, 네로는 그런 주원의 명령대로 도시의 뒷배에 서 있어 왔다.
이성민과 야나와 맞선다면 이 도시의 라이칸슬로프들은 전멸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네로는 한숨을 내쉬며 명령을 기다리는 라이칸슬로프들에게 명령했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해라.”
그 말에, 라이칸슬로프들이 크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수화를 시작했다.
네로는 그것을 보며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 이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지.
손님 맞을 준비.
네로는 그 뜻 그대로 말을 한 것인데, 라이칸슬로프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니…… 그냥 그대로 있어. 진짜 손님으로 맞이할 생각이니까.”
표정에 불만이 묻어나오기는 했지만, 라이칸슬로프들은 네로의 명령에 불복종하지는 않았다.
라이칸슬로프들 사이에서 위계질서는 절대적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예외가 있어서, 이전 두령이었던 호원이 주원에게 죽임당하기는 했지만.
네로가 단순히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어서 주원의 심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만한 힘이 있기에 주원은 네로에게 이 도시를 맡겼다.
라이칸슬로프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더 이상 습격이 오지 않자, 이성민은 야나를 힐긋 돌아보았다.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야나의 말에 이성민은 머리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함정임을 알아도 멈출 수는 없었다. 이성민에게 있어서 백소고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네로가 어디에 있는지는 안다. 중앙지구의 영주 관저. 예전에는 도시 안에서 이동하는 것에도 마차를 탔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성민은 경공을 펼쳐 단숨에 저택의 관저를 향해 뛰었다. 그 뒤에서 야나가 아홉 개의 꼬리를 늘어뜨리며 이성민을 따랐다.
영주 관저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함정치고는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이성민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등에 걸친 창을 잡았다.
“싸울 의사는 없습니다.”
문을 지나 도착한 저택의 홀. 라이칸슬로프들이 홀 전체에 빙 둘러 서 있었다.
이성민은 우두커니 서서 홀의 맞은편에 서 있는 라이칸슬로프를 보았다.
갈색의 장발을 목 뒤에서 한 가닥으로 묶어서 내려뜨린 라이칸슬로프는, 여태까지 이성민이 보았던 라이칸슬로프들과 여러 가지로 다른 인상을 주었다.
그는 육체가 우락부락하지도 않았고, 야성미 넘치는 옷을 입고 있지도 않았다. 머리카락부터 잘 정돈되어 있었고, 입은 옷은 구김이 적어 각이 잡혀 있는 검은 턱시도였다.
반무테의 안경 너머로 가느다란 눈이 보인다. 그는 사심 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성민을 향해 살짝 머리를 숙였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군요. 저는 네로라고 합니다. 주원 님이 부재중인 동안 이 도시를 맡고 있지요.”
“……싸울 의사가 없다?”
이성민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이해가 안 되는데. 나는 무턱대고 이 도시를 습격했고, 이곳까지 오는 길에 꽤 많은 라이칸슬로프들을 죽였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네로는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그는 죽은 라이칸슬로프들에게 애도를 보내는 것처럼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았다.
“그래서, 이 선에서 끝내자는 겁니다.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끝내자?”
“당신에게는 원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네로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렇기에 이런 일을 벌이는 것 아닙니까. 설마, 귀창. 당신이 프레데터의 힘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싶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니겠지요?”
마치 떠보는 것 같은 질문이었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이 도시의 라이칸슬로프들은 당신을 막을 수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프레데터 전체가 당신을 막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건 협박인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성민은 네로를 빤히 보면서 말했다.
“1년 전에. 이 도시에…… 묵섬광 백소고가 왔을 겁니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묵섬광 백소고?”
네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1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묵섬광…… 백소고. 아. 네로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를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까?”
“예.”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네로는 잠깐 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그런 네로의 모습을 이성민은 놓치지 않았다. 가슴 깊은 곳에 있던 불안감. 그것이 부푼다.
그 소름 끼치고 역겨운 감정에 이성민은 빠득 이를 갈았다.
이번에도, 야나는 이성민을 말리지 못했다. 전류가 튀기는 것이 늦다. 이성민은 어느 틈엔가 네로의 목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이전의 라이칸슬로프들은 이성민의 속도에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네로는 아니었다.
그는 기겁하며 상체를 젖히고 다리를 움직여 뒤로 쭉 물러섰다.
쉭.
네로의 목을 틀어쥐려는 이성민의 손이 허무하게 허공을 잡았다.
피해?
이성민의 몸 안에서 우릉거리며 벽력의 소리가 울렸다. 내공과 요력이 몸을 일으킨다.
찌지지직!
기혈을 타고 흐른 전류가 이성민의 속도를 더욱 올렸다.
“자, 잠깐…….”
네로가 급히 양손을 들었다.
빠바바박!
삽시간에 터진 연타가 네로의 몸을 뒤로 쭉 밀어냈다. 그러자 홀을 빙 둘러 서 있던 라이칸슬로프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네로가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시나마 우두머리인 네로가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라이칸슬로프들이 짐승의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들려 하자 야나가 움직였다.
푸확!
그녀의 등 뒤에서 흔들리던 아홉 개의 꼬리가 홀 전체로 쏘아졌다.
야나의 꼬리가 홀 전체를 휘감았다. 야나는 나긋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움직이지 마시죠.”
그 꼬리 너머에서 라이칸슬로프들이 흉성 가득한 눈으로 야나를 노려 보았다. 그 사이에 네로는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이성민은 네로를 내려 보면서 내뱉었다.
“뭐하는 수작이지?”
“무…… 무슨 소리입니까?”
“일부러 맞고 있잖아. 나를 기만하는 거냐?”
“그게……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네로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하지만 이성민은 그런 네로의 태도를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부러 맞아 쓰러진 주제에, 네로는 그 와중에 치명적인 타격은 모조리 피하거나 막았다. 적당히, 맞아도 되는 공격만 맞고서 약한 척하며 땅에 뒹굴었다.
“……묵섬광 백소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성민은 네로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네로는 여전히 머뭇거렸다.
“말 해……!”
이성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로는 급히 외쳤다.
“이, 일 년 전에. 이 도시에 주원 님이 있었을 적에. 묵섬광 백소고가 이 저택을 습격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이성민과 야나가 대놓고 도시의 성문부터 라이칸슬로프들을 제압하여 들어온 것과는 다르게, 묵섬광 백소고는 아주 은밀하게 이 도시로 숨어들어 왔다.
그녀는 도시를 경계하고 있던 라이칸슬로프들의 이목을 완전히 속이고 도시 안을 가로질러, 단번에 영주 관저 안까지 들어왔다.
“그녀는 주원 님의 목숨을 노렸지요.”
주원의 방.
백소고는 그곳까지 들어갔다. 어울리지 않게도, 그녀가 택한 방법은 암살이었다.
주원이라는 괴물을 상대로 전면전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백소고는 이해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선 주원은 방안에서 은신하고 있던 백소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백소고의 손은 주원의 가슴을 꿰뚫었다.
만약 주원이 인간이었다면, 승부는 거기에서 끝이 났을 것이다.
심장이 찢겼음에도 주원은 죽지 않았다. 순식간에 상처를 재생한 주원을 보았을 때. 백소고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소고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그 어떤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주원을 죽일 생각이었기에.
“……그…… 다음은?”
“묵섬광 백소고는 패했습니다.”
네로가 이성민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본래라면 죽여야겠지만, 주원 님은…… 묵섬광 백소고에게 흥미를 가졌습니다. 그것이 틈을 만들었지요. 결정적인 순간에 백소고는 주원 님의 손아귀에서 도망쳤습니다. 저희는 쫓아가겠다고 하였지만, 주원 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지요.”
그럴 필요가 없다.
“……어째서……?”
“독입니다.”
어떤 기억이, 이성민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흑룡협은 옆구리에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엘릭서로도 치유하지 못하는 상처.
북쪽 숲에서 김종현이 처음으로 대학살을 벌였을 때. 흑룡협은 김종현을 막기 위해 이 숲에 왔었고, 주원도 그 숲에 있었다.
이성민은 주원을 흑룡협에게 보내어, 그 둘이 싸우게 만들었었다.
흑룡협은 주원에게서 도망치는 것에 성공했지만, 주원과의 싸움에서 그의 독에 중독되었다. 드래곤의 강인한 몸뚱이로도, 엘릭서로도 그 독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했다.
독.
그 독이 백소고에게도.
“쫓을…… 필요도 없이 죽게 될 것이라고. 주원 님은 그렇게 말하셨습니다.”
제발, 제발.
이성민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래서. 백소고가 죽었다고? 주원의 독 때문에? 1년 전에 주원과 싸웠고, 주원의 독에 중독당했다고 했다. 1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면.
“아니야.”
이성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어디로…… 어디로 갔지?”
백소고가 죽어서는 안 된다.
“저, 저희도 모릅니다. 주원 님이 쫓을 필요가 없다고 했으니까…….”
“말…… 말해라. 주원의 독. 그것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건 저도 잘…….”
네로가 이성민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성민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떻게, 어떻게. 우선 백소고를 찾아야 한다. 죽었다면? 아니, 죽었을 리가 없어. 죽어서는 안 된다. 그래, 일단 백소고를 찾는 것이 먼저다. 그러니까…… 어떻게?
이성민의 눈에, 손목에 채워진 팔찌가 보였다.
이성민은 급히 요정마를 소환했다. 이성민이 요정마의 위에 올라타자, 야나도 이성민을 따라 그 뒤에 올라탔다.
“요정의 숲으로.”
요정마가 공간을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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