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43)
오우거-1
오우거.
에리아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존재하고 있다. 오우거도 그 중 하나이지만, 오우거는 두 발로 땅을 걷는 많고 많은 몬스터들 중에서 손에 꼽히는 강력함을 가진 몬스터다. 놈들은 마법에 대한 내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날붙이로는 베어낼 수 없을 정도의 질긴 가죽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법 높은 지능까지 갖추고 있어서 상대하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개체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마법을 사용하는 오우거도 있을 정도다.
용병 길드는 에리아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등급을 매겨 놓았는데, 그 등급은 해당 등급의 용병이 토벌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매겨진다. 보통의 오크의 등급은 E. 오우거는 최소 A에서 시작한다.
전생에서의 이성민은 오우거 토벌 의뢰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우거는 위험한 몬스터다. 목숨 아까운 줄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우거라.’
이성민은 턱을 어루만졌다. 실력검증을 위한 의뢰로서 베른이 가지고 온 것은 오우거의 토벌이었다. 베헨게르 외곽의 숲에서 오우거가 목격되었다는 정보가 들어왔고,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용병 길드 쪽으로 토벌 의뢰를 넣은 것이다.
“당신이 따라 올 필요가 있습니까?”
마차가 달린다. 이성민은 맞은편에 앉은 루드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루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침 한가하기도 하고. 지부장이 부탁하기도 했거든. 한 번 눈으로 직접 봐 달라고.”
“내가 뭔 수작이라도 부릴 것 같아서 의심스러운 겁니까?”
“아니. 그런 것은 아니야. 어제 네가 보여주었던 검기는 진짜였으니까. 그냥… 피차 똑같은 거야. 나도, 지부장도. 너라는 녀석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루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낄낄 웃었다. 루드는 용병단에 소속되지 않은 자유 용병이기에, 의뢰가 없을 때에는 남는 것이 시간이다. 이성민은 루드가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성민은 루드를 알고 있다. 전생에서도 몇 번을 보아왔다. 하지만 교류는 없었다. 자유 용병에 S급의 등급을 가진 루드는, 베헨게르의 용병 길드 안에서도 굉장히 이례적인 존재였다. 밑바닥 출신의 C급 용병이었던 이성민과는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교류라곤 없었다.
용병 길드의 1층에 자리잡은 주점. 전생의 이성민은… 주점에서 창녀를 끼고 술을 마시던 용병들과 같은 부류였다. 바 테이블의 앞에 앉아 비싼 술을 홀짝거리는 루드나 다른 상급 용병들을 보면서, 질투와 시기를 품으면서도 그것을 감히 소리높여 말하진 못했었다.
그런 별세계의 사람이 살가운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속으로 무슨 꿍꿍이를 가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성민은 경계하고 의심을 하되 그렇다고 하여 루드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다. 므쉬의 산에서 백소고에게 그것을 배웠었다.
“네가 도달한 경지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는 어려. 노 클래스 출신에 에리아에 온지 4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잖아?”
“경험이 부족하여 실수할 지도 모른다는 겁니까?”
“그렇지. 너무 자존심 상해하지는 마. 지부장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네 안전 정도는 보장해두고 싶거든. 너 정도 실력의 고수가 용병이 되겠다고 찾아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니까.”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따라오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호의나 선의인 것도 아니다. 이성민은 루드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창밖을 힐긋 보았다. 풍경이 스치고 있었다.
“또래에 걸맞지 않게 과묵하군. 원래 말이 적나?”
“네.”
사실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므쉬의 산에서 했던 침묵의 수행의 여파일 뿐이다. 이성민은 침묵에 익숙했다.
산에서의 수행은 이성민에게 많은 것을 안겨 주었지만, 마냥 이득만 준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감각의 둔화였다. 언제나 잡음을 듣고 악취를 맡았다. 시각마저 금제하고서 이성민은 ‘피부’로 느끼는 것은 예민하고 날카롭게 단련하였으나, 후각이나 청각 쪽은 단련하지 못했다.
실전의 부족성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고 있다. 산에서의 수행은 고독했다. 수행자는 서로를 해할 수 없다는 규율 때문에 대련같은 것도 하지 못했다. 실전 경험은 전생의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생의 이성민과 지금의 이성민은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 할 정도다.
하물며 ‘오우거’라는 상대는 전생의 이성민이 한 번도 상대해보지 못했던 거물이다. 전생의 경험에 크게 의존할 수 없는 상대인 것이다.
“오우거와 싸워 본 경험은?”
“본 적도 없습니다.”
해가 저물 즈음에 마차가 성문의 밖을 통과했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오우거가 출현했다는 숲은 성문에서 반나절은 더 마차를 타야한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대로 간다면 밤이 깊을 때 도착하게 될 텐데… 괜찮은 겁니까?”
“토벌을 의뢰한 마을에서 하루 묵을 거야. 그러다가 밤에 오우거가 습격해 온다면… 그때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지.”
루드에게 긴장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성민과는 다르게, 루드는 이미 S급 용병이다. 오우거 토벌에 대한 경험쯤은 이미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우거라고 뭉뚱그려 말하기는 하지만, 몬스터는 같은 개체라고 하여도 완전히 같지는 않아. 일부 오우거 중에서는 마법을 사용하는 놈들도 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마을에서 목격되었다는 오우거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정보는 없었지만, 그래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아. 나는 네 감시역이면서 보호를 맡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너를 도울 생각은 없어. 네가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야 널 도와 줄 거야.”
“알고 있습니다.”
이성민이 대답했다. 해는 이미 저물었고 마차는 계속해서 달렸다. 루드는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서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가방 자체가 아공간 포켓이었던 것인지, 루드는 가방의 안에서 큼직한 빵을 꺼냈다.
이성민은 루드가 권한 빵을 함께 나눠 먹었다. 평범한 호밀빵이었지만 미각의 금제가 사라진 이성민에게 있어서는 천상의 음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맛있었다.
“무공을 익혔다고 했지? 무기는 쓰고 있나?”
“네. 창을 씁니다.”
“창이라! 좋은 무기지. 난 칼을 써. 개인적으로는 창수와는 싸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창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기거든.”
루드는 쉼없이 이성민에게 말을 걸었다. 루드가 하는 이야기는 이성민이 큰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루드가 칼을 쓴다는 것쯤은 이성민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좋은 녀석인 것 같기는 한데, 말상대로서는 재미가 없군.”
한참을 혼자 떠들던 루드가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 말에 이성민은 쓰게 웃어버렸다.
“과묵한 편이라.”
“자기 스스로를 과묵하다고 하는 녀석 중에서 진짜로 과묵한 녀석은 본 적이 없어. 대부분은 이거지. 그냥 너랑 대화하기 싫다는 거.”
“그런 것은 아닙니다.”
“농담이야.”
루드가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밤이 깊을 즈음에 마차는 마을에 도착했다. 루드가 앞장서서 마차에 내려, 마중을 나온 마을의 촌장에게 이성민을 소개했다. 이야기를 듣던 촌장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직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나이와 실력은 크게 상관이 없죠. 이 마을 사람 전원이 덤벼도 이 녀석이 다 죽일 수 있을 걸요.”
루드가 이성민의 어깨를 두드리며 히죽 웃었다. 촌장은 지저분한 수염을 가진 늙은이였다. 그는 루드의 말에 어깨를 살짝 떨다가, 이성민과 눈을 맞추었다. 이성민은 무덤덤한 눈으로 촌장을 보다가 살짝 머리를 숙여보였다.
“…크흠. 방은 마련해 두었습니다. 원하신다면 식사도 가져다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촌장이 이성민과 루드를 안내한 곳은 촌장네 집의 빈 방이었다. 간단하게 짐을 풀고 바닥에 앉은 루드가 이성민에게 물었다.
“술이라도 한 잔 할까?”
“아니오.”
“왜. 나이가 어려서? 웃기지도 않지. 나이랑 술이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는 용병이 세상에 어디 있어?”
루드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가방에서 큼직한 술병을 꺼냈다.
“술은 좋아. 긴장을 풀어주거든…”
루드는 흥얼거리면서 병나발을 불었다. 이성민은 그런 루드를 보면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단전 속의 내공을 한 번 건드려 보기는 하였지만, 대주천은 돌리지 않았다. 루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보초를 서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해줘야 하지?”
벌컥거리며 술을 마시던 루드가 술병을 내려놓았다.
“우리가 받은 의뢰는 오우거의 토벌이지 마을의 보호가 아니야. 물론 저들이 돈을 더 주면서 보초를 서서 마을을 보호해 달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 줄 용의는 있지. 하지만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해줄 수는 없잖아. 호구도 아니고.”
이성민 스스로도 납득하고 있는 이야기다. 그 역시 용병이었기 때문이다.
“용병을 움직이는 것은 인정이나 선의가 아니야. 돈이지.”
루드가 낄낄 웃으면서 술을 들이켰다. 이성민은 그 말에 가만히 머리를 끄덕거렸다. 알고 있다. 몇 년 전의 이성민이라면 애초에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백소고가 잊지 말라고 했던 것들이 마음에 살짝 걸렸을 뿐이다. 하지만 크게 구애되지는 않았다. 이성민과 백소고는 다른 사람이다. 백소고가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이성민이 착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백소고는 이성민에게 말했었다. 은혜를 잊지 말라고. 마을 사람에게 은혜를 입은 적은 없다. 용병이니까, 의뢰를 받아서. 이 마을에 온 것이 전부다.
그것이 전부다.
밤 중에 습격은 없었다. 이성민은 습관처럼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악몽이 사라져 잠은 편안했지만, 몇 년 동안 잠을 거르다시피 한 탓에 이성민은 일찍 일어나는 것에 익숙했다.
한쪽 구석에서는 루드가 몸을 웅크리고 잠에 빠져 있었다. S급 용병인 루드가 어깨를 끌어안고 웅크리고 자고 있는 것은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성민은 방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빈 술병을 힐긋 보고선 조용히 방을 나왔다.
새벽의 찬 공기를 호흡한다. 뒤뜰로 나선 이성민은 닭장 속에 웅크리고 있는 닭들을 보았다. 닭들은 이성민을 빤히 보기만 할뿐 울어대지는 않았다. 이성민은 들고 나온 창을 천천히 들었다.
란나찰.
구천무극창이 아닌 란나찰을 펼친다. 천천히, 천천히. 동작 하나하나를 의식하면서 전신 근육을 긴장시킨다. 기본적인 동작임에도 이성민은 조금도 건성으로 하지 않았다.
“성실하군.”
루드가 나온 것은 새벽이 지나고 아침 해가 높이 떠오른 후였다. 루드는 크게 하품을 하면서 이성민에게 다가왔다.
“조금 더 자지 그랬어? 숲속 돌아다니다 보면 피곤할 텐데.”
“잠을 깊게 자지 못하는 성격이라.”
“내가 밤 중에 코를 심하게 곤 탓은 아니고?”
“그건 아닙니다.”
이성민의 대답에 루드가 피식 웃었다. 그는 이성민이 쥐고 있는 창에 시선을 한 번 주었다. 특별할 것은 없는 창이었다. 다만… 심하게 낡아 있었다.
“무기도 바꿔야겠다.”
“예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자, 안으로 들어가자.”
루드가 이성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밥 먹고 숲에 가야 하니까.”
“네.”
이성민은 창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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