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5)
노 클래스-5
숲에는 다양한 몬스터들이 살아가고 있다. 대화가 불가능한 몬스터도 있고,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한 몬스터도 있다. 사냥으로서의 어려움을 따지자면 전자가 훨씬 쉽다. 지성이 없는만큼 놈들은 본성에 의존하면서, 무식하고 단순하다. 거대한 토끼, 멧돼지 등등.
아, 물론 놈들이 ‘진짜’ 토끼고 멧돼지인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렇게’ 생겼다는 말이다.
사냥 자체는 그런 짐승형 몬스터가 쉽지만,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생각한다면 지성을 가진 몬스터 쪽이 좋다. 고블린, 오크 등. 상대하는 것이 까다롭기는 하여도, 놈들을 쓰러트린다면 잡다한 부가 수익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블린, 오크의 이빨과 피는 마법적인 재료로서 쓰인다. 놈들의 조악한 장비들은 대장간에 팔아넘긴다면 용돈 정도의 값어치는 벌 수 있다. 운이 좋은 경우, 돈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와 만날 수도 있다. 놈들이 가진 돈이라고 해 봐야 그들에게 죽은 희생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겠지만 말이다.
우선 준비를 해야 한다. 이성민은 어깨에 걸쳐 들고 있던 창을 양 손으로 잡고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허리 뒤쪽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았다. 투척용으로 구입한 것이 아닌, 어제 이성민을 등처먹으려 했던 놈을 죽이면서 얻은 단검이다.
이성민은 2미터가 넘는 길이를 가진 창대를 자신의 키에 맞게 잘랐다. 단검으로 단단한 창대를 자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긴 했지만, 단검으로 톱질을 해대니 잘리기는 잘렸다. 절단면이 거칠기는 했지만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이성민은 자른 창대를 등에 비껴 메고서 창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단검 한 자루. 투척 단검 세 자루. 창 한 자루. 그리고 곤봉 한 자루. 전생에서 처음으로 사냥터에 나섰을 때와 비교하자면 압도적으로 좋은 장비다. 방어구가 부족하다는 것이 흠이긴 하였지만, 가진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전생에서는 몽둥이 하나 들고 나왔었지…’
세 명의 노 클래스와 동료가 되었고, 그들과 함께 사냥터로 향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서 이성민은 쓰게 웃었다. 좋은 기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토끼를 잡아 보자. 이성민은 양 손으로 창을 잡고서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고블린이나 오크에게 싸움을 걸 생각은 없다. 오크는 인간보다 강인하고, 고블린은 인간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독침을 쏘고 무리를 짓는 등 까다롭다. 지성 쪽으로 보자면 오크보다 고블린이 낫다.
하지만 토끼는 여러모로 쉬운 상대였다. 몸집이 비대하기는 하여도 그래봤자 중형견 정도의 사이즈. 공격법이라고 해 봐야 몸통박치기를 하거나 앞니로 물어뜯는 정도다. 긴장하지 않는다면 노 클래스도 몽둥이 하나로 때려잡을 수 있는 것이 토끼라는 놈이다.
얼마 걷지 않아 수풀이 바스락거리더니 회백색의 털을 가진 토끼가 튀어나왔다. 중형견보다는 조금 사이즈가 작다. 다 큰 놈이 아니라 어린 놈이다. 현재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에는 최적의 상대였다.
토끼가 빨간 눈을 데룩 굴리더니 이성민을 본다. 놈들은 선공을 하지는 않는다.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면 주변의 풀을 뜯고 몇 번 뛰어다니다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이성민을 과감하게 만들었다. 이성민은 빠르게 내공을 끌어 올리면서 일뢰주법을 펼쳤다. 일뢰주법은 경신법이면서 보법이기도 하다. 경신법의 기본은 발바닥에서 내공을 내뿜으면서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다.
이성민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14살의 움직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몸 전체를 가속시키면서 이성민은 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추혼창법 일식一式, 일격일살一擊一殺. 이성민의 왼 손이 창대를 받친다. 포신砲身이다. 앞으로 쏘아낸 창이 포신 역할을 하는 왼 손바닥 위를 미끄러진다. 창이 충분히 앞으로 나아갔을 때에, 이성민의 오른 손이 창의 끄트머리를 팍하고 치면서 밀어냈다.
퍼어어억! 창 끝에 꿰뚫린 토끼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일격일살은 가속이 전부인 창술이다. 가장 먼저 몸을 가속시킨다. 창을 받친 왼 손은 포신의 역할을 하고, 창은 포탄이 된다. 오른 손은 공이치기 못의 역할을 한다.
일직선으로 쏘아내는 것이 전부인 만큼 변화를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밀어 전진하는 것이 전부이기에 단단한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토끼를 상대로는 충분했다.
‘손바닥이 쓰려…!’
이성민은 미간을 찡그리면서 왼 손을 내려 보았다. 창대가 쭉하고 쓸어낸 탓에 손바닥이 붉게 달아올라 화끈거리고 있었다. 오른 손 역시 마찬가지다. 거친 절단면을 때리면서 밀어낸 탓에 손바?닥이 욱신거린다.
“일단 굳은살부터 박아 넣어야겠어.”
14살의 피부는 너무 여리고 약하다. 이성민은 투덜거리면서 화끈거리는 손을 툭툭 털었다.
토끼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애초에 지금의 이성민은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공간 마법이 걸린 인벤토리는 제나비스에서도 팔고는 있지만, 지금의 이성민은 꿈에도 꿀 수 없을 정도로 고가에 거래 된다. 그렇다고 가방이 있는 것도 아니니, 오늘은 목표했던 대로 적당히 고블린 몇 마리를 잡는 것에 주력하기로 했다.
물론, 적응이 다 된 후에 말이다. 이성민은 숲을 돌아다니면서 혼자 다니는 토끼 몇 마리를 사냥했다.
그 과정에서 이성민은 여러 가지를 확인했다. 지금의 내공 수준으로는 이류무공인 추혼창법조차 제대로 펼칠 수가 없고, 장기전은 꿈에도 못 꾼다. 게다가 몸뚱이도 나약해서 창 몇 번 휘두른 것만으로도 지쳐버린다.
‘근력이 너무 부족해. 지구력도 그렇고… 기껏 처음으로 돌아왔는데 전생을 그리워하게 되다니.’
이성민은 투덜거리면서 옷깃을 찢어 손바닥을 칭칭 휘감았다. 무리해서 창법을 펼친 덕에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 고작 이 정도 움직인 것으로 지쳐버리다니! 이성민은 제 처지를 실감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물도 없고 식량도 없다. 가방이라도 있었으면 아침에 여관을 나서면서 빵이라도 몇 개 챙겨두었을 텐데, 가방도 없다. 이성민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걸으면서 천진심법을 운용했다. 제대로 가부좌를 틀고서 운기조식을 하는 것보다는 못 하지만, 몸을 격하게 움직이지 않고 얌전히 걷기만 하고 있으니 내공이 조금씩 차오른다.
숲 속 깊은 곳에 들어갈수록 고블린, 오크의 둥지와 가까워진다. 지금 상태로 둥지로 향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성민은 깊은 숲까지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이 넓은 숲의 지도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은 있어서, 이성민은 그것에 의존했다.
이성민은 바닥과 나무를 살피면서 걸었다. 이성민의 어깨 높이보다 조금 아래에, 둥그런 원이 그려져 있는 나무를 발견했다. 고블린의 영역 표시다.
고블린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고는 있지만, 이 숲의 고블린이 모두 한 부족인 것은 아니다. 놈들은 무리를 짓지만, 보통 고블린 한 부락의 인구수는 50마리 정도다. 놈들은 다른 고블린 부락과 경쟁하면서 이 숲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근방은… 동그란 원으로 영역 표시를 하는 고블린 부락의 영역이다.
이성민은 주변 나무를 살피면서, 이 근처에 표시 된 것은 동그란 원 뿐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 이후에는 영역의 최대한 끄트머리까지 이동한 뒤에, 옷소매를 조금 더 찢었다.
왼쪽 팔뚝 윗 부분을 살짝 베어냈다. 너무 깊이 베지는 않았다.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자, 이성민은 찢어낸 옷깃에 피를 잔뜩 묻히고서 한쪽 수풀에 던져두었다. 그 뒤에는 창을 내려 놓고서 땅 위에 데굴데굴 굴렀다.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한참을 구르자 이성민의 몸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그 뒤에는 피에 젖은 옷감을 던져둔 곳 근처에 오줌을 쌌다. 바짓단이 젖지 않도록 양 발을 크게 벌려 비틀비틀 걸으면서 주변에 오줌을 싼다.
이걸로 되었다. 이성민은 다시 옷깃을 찢어 상처를 단단히 동여메고서는, 가까운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어린 몸뚱이의 근력은 나무를 오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내공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다.
굵직한 나뭇 가지에 매달려서, 이성민은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이제는 기다리면 된다. 영역 다툼 중인 고블린들은 비교적 자주 영역을 순찰한다. 영역에 들어 온 먹잇감을 탐색하기 위함도 있고, 다른 부락의 고블린이 들어오지 않았나를 경계하기 위해서다.
나뭇가지 위에서 버틴지 30분 정도 되었을까. 경계를 도는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3마리에, 무기는 단검. 허리춤에 기다란 막대기를 달고 있다.
독침이다.
고블린의 신체 능력은 별 것 없다. 놈들이 까다로운 것은 무리를 짓기 때문이고, 교활하기 때문이며, 독을 능숙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놈들이 다루는 독은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닌 신체의 자유를 빼앗는 마비독이다. 지금의 이성민이 혼자서 세 마리의 고블린을 상대하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성이 많았기에, 이성민은 정면 공격은 피할 생각이었다.
고블린들이 냄새를 맡는다. 오줌 냄새, 피 냄새, 인간의 냄새. 놈들은 코를 킁킁거리면서 이성민이 오줌을 싸갈긴 곳까지 다가왔다. 이성민이 위치한 곳에서는 놈들의 정수리가 훤히 보인다.
이성민은 벨트에 꽂아 넣은 투척 단검을 뽑았다. 호흡을 몇 번 고른 뒤에, 이성민은 내공을 끌어 올렸다. 파악! 빠르게 던진 단검이 아래로 내리 꽂힌다.
“퀘엑!”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던 고블린의 뒷목에 단검이 꽂힌다. 그것을 확인한 즉시 이성민은 연거푸 단검을 던졌다. 위에서 아래로. 궤적의 흐트러짐 없이 떨어진 단검이 남은 고블린 두 마리의 목을 마저 꿰뚫었다. 이성민은 나뭇가지 위에서 뛰어내렸다.
제법 높기는 했지만, 내공으로 다리를 보호하니 뛰어 내릴 만 했다. 이성민은 허리 뒤의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는 고블린들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세 마리의 고블린이 죽었다. 이성민은 호흡을 고르고서 놈들의 뒷목에 꽂힌 단검을 뽑아냈다.
그 후에는 고블린의 시체를 뒤진다. 놈들이 가지고 있던 단검에는 피가 듬뿍 묻어 있었다. 굳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곳에 오기 전에 영역을 돌아다니던 무언가를 잡아 죽인 모양이었다. 아마… 노 클래스겠지. 이성민은 쓰게 웃으면서 놈들의 단검을 챙겼다.
단 검 세 자루와 독침을 쏘아내는 대롱 세 개, 독침 서른 개. 그 외에도 독병 세 개. 운이 좋았다. 놈들은 지갑을 가지고 있었다. 죽인 노 클래스에게 빼앗은 것이리라.
지갑에는 2만 에르가 들어 있었다. 이성민은 고블린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은 모두 챙긴 뒤에, 단검을 써서 놈들의 목을 주욱 찢었다. 다섯 개의 포션 병에 고블린의 피를 가득 채웠고, 놈들의 입을 벌려 이빨도 하나하나 뽑아냈다. 가방이 없기 때문에 뽑은 이빨은 주머니에 죄다 쑤셔 넣었다.
이것으로 오늘의 사냥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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