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75)
대뜸 밥을 달라고 청한 것이었는데, 소림의 승려들은 거절하지 않았다. 스칼렛은 보란 듯이 이성민을 향해 히죽거리며 웃었고, 이성민은 괜히 뻘쭘해져서 입맛을 다셨다.
아직 점심시간이 되기는 이른 탓일까. 안내 된 식당에는 식사 중인 사람이 적었다. 그 얼마 없는 사람들도 머리를 민 승려들이었다. 스칼렛은 털 한오라기 없는 승려들의 머리를 신기하다는 듯이 보았고, 이성민은 그런 스칼렛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무례입니다.”
“내가 뭔 말을 했다고.”
스칼렛이 투덜거렸다. 적당히 빈 자리에 앉자, 그리 오래지 않아 키가 작은 동자승이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소림의 음식은 생긴 것부터가 절밥처럼 보였다. 간이 조금 싱겁기는 했지만,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오히려 이쪽이 스칼렛의 입맛에 맞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식당 내의 승려들은 이성민과 스칼렛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의 침묵 덕분에 이성민과 스칼렛도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조용한 식사가 끝날 즈음에,
“이성민님.”
동자승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접시를 비우고 차를 마시고 있던 이성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동자승을 바라보았다. 동자승은 합장을 하면서 꾸벅 머리를 숙였다.
“방장께서 부르십니다.”
“…나를?”
“예.”
방장이라면 괴불 불영대사를 말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남궁희원이 불영대사에게 말을 전해 준 모양이었다. 이성민이 스칼렛 쪽을 보자, 젓가락을 쯥하고 빨고 있던 스칼렛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다녀 와.”
“스칼렛님은?”
“난 적당히 이 근처나 둘러보고 있을게. 어차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아냐?”
“그건 이야기를 해 봐야 알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가보기나 해.”
스칼렛이 젓가락을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이성민은 살짝 머리를 끄덕거리고서 몸을 일으켰다. 동자승은 이성민이 일어서자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나갔다.
이성민이 동자승을 따라 식당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동자승이 걷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을 ‘걷는다’고 해야 할까. 동자승이 펼치는 것은 기묘한 신법이었다. 동자승이 한 걸음 앞으로 뻗을 때마다 자그마한 몸뚱이가 휙휙하고 앞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보통의 신법이 몸을 빨리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면, 동자승이 펼치는 신법은 걸음과 걸음 사이의 공간이 접히는 것 같았다.
내공에 부족함이 거의 없고, 신공절학에 들어가는 무영탈혼을 익힌 이성민이었지만 동자승의 걸음을 간신히 쫓는 것이 고작이었다. 동자승은 소림의 뒷문을 빠져나가더니, 그 뒤로 이어진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성민은 동자승이 대체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불영대사를 만난다던 남궁희원과 다른 세가의 후계자들은 뒷문으로 나가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불영대사를 향해 가는 것이 맞습니까?”
“네.”
이성민이 큰 소리로 묻자 동자승이 화답했다.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게 되었다. 동자승은 나무 사이사이를 작은 동물처럼 빠르게 가로질렀고, 이성민도 동자승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서로가 경신법을 펼쳐 달린 탓에 소림과는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동자승의 걸음이 멈춘 것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작은 동굴의 입구였다.
“이곳입니다.”
동자승은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돌렸다.
“불영대사는 이 안에 있습니다.”
말의 끝맺음과 함께 동자승은 합장을 했고, 이성민의 눈앞에서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이성민은 흠칫 놀라 동자승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안개는 이미 흩어져 사라졌다.
[뭐하고 있는 게냐.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전음이 아니었다. 이성민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그 진원지를 확인할 수 없게끔 만들고 있었다.
[아해야. 이 안쪽이란다.]목소리가 끌끌거리며 혀를 찼다. 동굴의 안쪽이다. 이성민은 긴장하여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천천히 동굴의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몸을 살짝 낮춰서야 간신히 동굴의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동굴의 안쪽에서 불빛이 비춰지고 있었고, 이성민은 그것을 방향표로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걸어 들어갈수록 동굴의 천장은 높아져서, 얼마 걷지 않아 허리를 꼿꼿이 피고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과연.”
동굴의 끝에는 노승老僧이 정좌하여 앉아 있었다. 걸어 들어오는 이성민을 본 노승의 눈이 가늘어졌다. 깊은 주름과 기다란 수염이 노인이 살아 온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너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사랑을 받고 있구나.”
노승이 중얼거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알면서도 묻는구나. 아해야. 내가 정말 누구인지 몰라서 묻는 게냐.”
노승이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이성민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괴불 불영대사.”
“맞다. 내가 괴불 불영이다.”
불영대사가 웃음을 흘렸다. 소림의 방장이라기에 법력높은 고승을 상상했으나. 막상 이성민이 앞에 있는 불영대사에게 느낀 것은, 오래 된 늙은 요괴같다는 인상이었다.
“방금 그건 뭐였습니까.”
“법술이다.”
불영대사가 말했다. 그 대답도 신경이 쓰였지만, 이성민을 거슬리게 한 것은 불영대사가 중얼거린 다른 말이었다.
“괴력난신… 이라는 것은 뭡니까?”
“괴이怪異, 용력勇力, 패란悖, 귀신鬼神.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불가사의한 존재와 현상. 그 모든 것을 칭하는 말이지.”
“괴력난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은?”
“의미 그대로란다, 아해야. 너는 괴이를 품고 용력의 보살핌과 패란의 가호를 받아 귀신의 어여쁨을 받고 있구나.”
그렇게 말하는 불영대사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으나, 이성민은 즐겁지 않았다. 괴력난신이라는 것이 뭔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에 대해 캐물어봤자 불영대사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돌려 말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주면 안 됩니까?”
“아해야. 내가 그것이 가능하였다면 이미 육신을 벗고 혼백이 하늘에 올라 신좌에 앉았을 게다. 오랜 세월 살아오기는 하였으나 아직 한참 멀었지.”
결국 이번에도 제대로 말해줄 수가 없다는 것 아닌가. 이성민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그, 괴력난신이 뭐시기. 설마 불영대사께서도 내 인과율이 비틀어져있음을 보고 있는 겁니까?”
“인과율? 그건 뭔 소리인지 모르겠구나. 아해야. 내가 말하는 괴력난신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란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불가사의한 존재와 그에 해당되는 모든 현상이지.”
그렇게 말하는 불영대사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수염이 풍성한 노인이 그런 표정을 지으니 묘하게 어울렸다.
“…나는…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그에 대해 나 자신은 해답을 줄 수가 없지. 필멸의 굴레에 들어가 있는 모든 인간은 너에게 해답을 줄 수 없을 것이다.”
“…필멸의 굴레… 신이라면 대답해 줄 수 있는 겁니까?”
“네가 말하는 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신이라면, 그들은 대답해 줄 수 없겠지.”
불영대사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과 말은 묘한 울림을 품고 있었다. 이성민이 표정을 굳히고서 물었다.
“어째서?”
“그들 역시 인간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너를 사랑하는 괴력난신이 무엇임을 알고 싶다면, 그래. 한 번 죽어보는 것이 빠르겠구나. 그렇다면 너는 그 불가사의한 존재에게 가까워질 수 있을 터이니.”
“뭔 말도 안 되는…”
이성민이 중얼거렸다. 불영대사가 살짝 눈을 감았다. 잠시 뒤 불영대사의 눈이 떠졌을 때, 그의 눈은 검은자 없이 새하얀 백색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이성민과 불영대사의 눈이 마주쳤을 때, 이성민은 헉하고 숨을 삼켰다.
“북쪽으로 가라.”
불영대사가 소곤거리는 말은 이성민의 머릿속에 울렸다. 숨이 멈춘다. 심장은 뛰지 않았다. 눈을 깜박거리려고 해 보아도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았다.
“북쪽. 만년설이 녹지 않는 곳. 인연이 있다면 귀인貴人과의 만남이 있겠지. 아니. 반드시 그리 되리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멈췄나? 아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5년 뒤. 겨울이 더욱 얼어붙을 때. 그때.”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불영대사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잠깐 머리를 기울이던 불영대사의 두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고서야 느려졌던 시간이 가속되었다. 이성민은 눈을 깜박거리고,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방금 그건…”
“묻지 말라.”
불영대사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말하였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단다. 방금 전에 내 몸에 깃든 것은 내가 아닌 신령神靈이다. 낄낄! 머리 민 중인 내가 부처가 아닌 신령을 말하는 것은 조금 우습다만.”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불영대사는 여태까지 이성민이 만나 온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특히 방금 전, ‘신령’이 깃들어 했던 말. 북쪽, 만년설이 녹지 않는 곳. 5년 뒤, 겨울이 더욱 얼어붙을 때. 이성민은 그 말을 생각하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왜 나한테 이런 말을?”
“낄낄! 아해야, 너는 자꾸 내가 대답할 수 없는 것을 묻는 구나. 대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답할 수가 없는 것이란다. 대부분의 존재가 너의 의문에 답을 내려주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불영대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검룡. 그 건방진 꼬마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소림의 무공서를 가지고 있다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백보신권과 나한보법, 달마심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 대단한 무공서들도 아니구나. 소림의 대표 권법이라 한다면 백보신권이고 대표 보법은 나한보법이며 대표 심법은 달마심법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흔해 빠졌다는 뜻이란다.”
불영대사의 말을 들으면서 이성민은 품 안에 두었던 세 권의 무공서를 꺼냈다.
“그 흔해빠진 것들을 어떻게 얻었느냐?”
“…시체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시체. 누구였느냐?”
“…제온입니다.”
“제온. 그래. 소림의 속가 중에 그런 녀석이 있었지.”
베헨게르에서 위명을 떨치던 소림의 속가제자 제온. 그에 대한 소림의 방장, 불영대사의 감상은 그것이 전부였다. 불영대사는 이성민에게 받은 무공서들을 대충 뒤에 던져두었다. 이곳까지 들고 온 무공서들이 설마 저런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기에, 이성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옛다. 받아라.”
불영대사가 품을 뒤적거리더니, 종이에 둘둘 쌓인 무언가를 이성민에게 던졌다. 이성민은 양 손을 뻗어 엉거주춤 그것을 받았다.
“대환단이다. 먹어라.”
불영대사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 말에 이성민은 움찔 놀라 종이를 열어 보았다. 불영대사의 말대로였다. 그 안에는 청량한 향기를 내뿜는 대환단이 들어 있었다.
“흔해빠진 무공이라면서, 왜 대환단을 주시는 겁니까?”
“아해가 줘도 지랄을 하는 구나. 왜. 싫으면 소화단으로 바꿔주랴?”
“아니, 싫다는 것은 아니고…”
이성민이 찔끔하여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 말에 불영대사가 크게 웃었다.
“위지호연.”
대뜸 뱉은 이름에 이성민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한 달 쯤 전에. 위지호연이라는 이름을 쓰는 여자아이가 이곳에 왔었다.”
“…예?”
“위지호연. 소천마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더구나. 참 묘한 일이야. 내가 본 위지호연이라는 아이는 소천마라는 별호로 불릴 아이가 아니었다. 현재 이 세상에서 ‘천마’라 불리는 아이가 그 여자아이를 포함하여 셋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위지호연이라는 아이야말로 ‘천마’라는 별호에 가장 근접해 있었단다.”
불영대사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검룡 남궁희원은… 광천마 벽원패야말로 천마라는 별호에 걸 맞는 인물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소림의 방장인 불영대사는 소천마 위지호연이 천마라는 별호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아이는 패왕의 운명을 가지고 있더구나. 초월적인 농간에 휘말리지 않는 이상 그 아이는 절대적인 존재에 오르겠지. 나는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나 그 아이만큼 강력한 천명과 자질을 가진 아이를 본 적이 없단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그 아이가 이성민이라는 이름을 말하더구나.”
불영대사의 두 눈이 샐쭉 휘어졌다.
“나는 위지호연, 그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그 아이가 가진 패왕의 운명과 자질은 머지않아 그 아이를 만마萬魔를 굴복시켜 그 위에 군림하는 천마로 만들겠지. 단순한 호기심이었단다. 필연적으로 거인이 될 아이가 이 세계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어떤 만남을 겪었는가?”
이성민은 침묵했다. 불영대사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고, 위지호연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위지호연이 ‘이성민’이라는 이름을 말했다는 것에 이성민은 진한 흥미를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든 친구. 유일한 친구. 그렇게 말하더구나. 그래서 이성민이라는 이름에 흥미를 갖게 되었단다. 설마 그 이성민이라는 아해가 괴력난신의 사랑을 받는 존재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불영대사가 킬킬 웃었다. 이성민은 그 노인의 웃음과, 불영대사가 했던 말에 가슴이 조금 먹먹해졌다. 태어나서 처음 만든 친구. 그리고 유일한 친구. 유일하다가는 것은… 위지호연과 헤어지고서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녀는 아직 이성민과 같은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는 뜻 아닌가.
“나는 오랜 세월을 살아왔단다. 일신의 무공은 이미 완성되었지만, 나의 자질로는 무공의 끝을 보아 필멸의 굴레를 벗을 수가 없었지. 하기에 이런 저런 많은 잡기에 손을 댔다. 괴불이라는 별호도 그리 생겼지. 낄낄! 소림의 방장으로 있는 늙은 중이 육식을 하고 술을 마시며 법술과 사법에 손을 대니 어찌 괴이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뭐, 무공의 끝을 보지 못한 나의 자질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신묘한 재주를 몇 가지 부릴 수 있게 되었거든.”
불영대사가 손을 들어 자신의 민머리를 쓸어내렸다.
“나는 네가 이곳에 올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 한 달 전에 위지호연이 이곳에 왔을 때부터… 나는 ‘이성민’이라는 아해가 이곳에 올 것임을 알고 있었지. 그래서 내가 위지호연, 그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앞으로 한 달 뒤에 이성민이 이곳에 올 것이라고.”
“…위지호연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뭔 상관이냐고 하더구나!”
불영대사가 크게 웃었다.
“아직은 너와 만날 때가 되지 않았다면서. 그런 주제에 나한테 하나 부탁은 하더구나. 만약 네가 이곳에 오고, 네 실력이 별 볼 일 없다면… 무공이나 조금 봐 달라고 말이다.”
위지호연과 만나기로 약속한 때까지 아직 6년이 남았다. 약속을 나누었던 것은 이성민이 14살이었을 때였고, 만나기로 한 것은 이성민이 24살이 되었을 때다. 아직 이성민의 나는 18살이었다.
“너는 기묘하구나. 괴력난신의 사랑을 받는 것은 둘째치고서… 너는 아주 기묘해. 심, 기, 체가 엉망으로 엉켜있어. 아해야. 내가 노파심에 일러주마. 이대로 가다가는 너는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주화입마입니까.”
“그래. 지금의 너는 언젠가 터질 폭약과 같단다. 오랜 세월을 살아 온 나로서도 너의 엉켜버린 몸뚱이와 혼을 건드릴 수가 없을 지경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른다.”
불영대사가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위지호연. 그 아이가 마음에 들어 네 무공을 보아주겠다는 부탁은 받기로 하였다. 네가 원한다면 소림에 남거라. 운이 좋다면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있겠지.”
“나를 지도해주시겠다는 겁니까?”
“심, 기, 체가 일그러진 네 몸뚱이를 뜯어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네 무공 정도는 봐 줄 수 있어. 그래… 하지만 이 노구를 이끌고 너를 하나하나 지도해 줄 수는 없지. 그러니까.”
지학아. 불영대사가 펼친 육합전성이 멀리 울렸다. 오래지 않아 잘생긴 청년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저 아이가 소림의 미래다.”
잘생기긴 했지만 머리에 털 한 오라기 없는 대머리라는 것은 똑같았다. 승복을 입은, ‘지학’이라 불린 청년이 이성민과 불영대사를 향해 합장을 하며 꾸벅 머리를 숙였다.
“가볍게 비무라도 해보거라.”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비무를 하자는 사람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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