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89)
이해가 늦다.
검귀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가슴을 꿰뚫고 들어 온 창은 검귀의 등 뒤로 길게 나와 있었다. 검귀는 두 눈을 끔벅거리면서 자신의 가슴을 내려 보았다. 창간은 상처에서 뿜어진 피로 붉게 젖어 있었다.
시선은 조금 더 아래로.
손에 쥔 검은 힘없이 아래로 쳐져있다. 붉은 검강이 어둠 속에서 흩어진다. 검귀는 뭐라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나온 것은 목소리가 아닌 붉어 끈적한 피였다. 몇 번이나 피를 토한 검귀가 바르르 떨리는 눈으로 이성민을 보았다.
“어떻게?”
검귀가 물었다. 짧은 질문이었다. 그것은 이성민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어떻게?’
어떻게 한 것이지? 모르겠다.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순간. 스스로와 이어 간 문답.
나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수행했다. 왜 수행했는가? 약하게 남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 전생과는 다른 모습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에. 이성민이 있다. 전생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여, 지금의 이성민이 있게 되었다.
이건 심득일까. 마음의 바람이 육체를 움직이게 하였는가. 알 수 없다. 이러한 심득을 겪어 본 경험은 많지 않았다. 아이네와의 싸움에서 강기를 발현했을 때에는, 이보다 조금 더… 확실한. 그런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소가 뒷걸음질을 쳐서 쥐를 잡은 것처럼.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행동이, 의도하지 않은 일초가 검귀의 공격을 꿰뚫고 그의 몸을 꿰뚫었다.
불과 몇 초 전의 기억이다. 검귀의 검은 이성민의 창보다 빨랐다. 검귀의 검은 이성민의 창보다 짧았다. 그럼에도 거리의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검귀의 접근을 허용했다. 결국에는 검귀의 검을 막지 못하여, 그대로 진행되었다가는 검귀의 검에 몸이 두동강 났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이렇다. 이성민의 창이 검귀의 검을 꿰뚫었다. 그 일련의 과정을 이성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엇을 한 거지?’
“커흡!”
검귀가 피를 토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서 검을 휘둘렀다. 힘없이 휘두른 검은 이성민을 노리기에는 무디고 늦었으나, 가슴을 꿰뚫고 있던 창을 잘라내기에는 충분히 예리했다. 몇 걸음 더 물러 선 검귀는 꽉 다문 입술 사이로 피를 줄줄 흘리면서 가슴을 꿰뚫은 창을 붙잡았다.
“자네는… 대체… 무엇을…?”
검귀가 더듬거리며 묻는다. 서로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귀는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었다. 본래라면 이성민의 공격이 검귀의 검보다 빨랐다고 하여도, 호신강기에 가로막혔어야
한다. 그것이 옳다.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그것이 뚫렸다.
어째서?
“크으욱…!”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검귀는 치명상을 입었다. 아무리 만월의 밤에 뱀파이어의 불사력이 드높아진다고 하나, 검귀는 뱀파이어의 격을 따지자면 그리 높지 않았다. 검귀가 강력했던 것은, 그가 뱀파이어 이전에 초절의 고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검귀는 이전까지 흡혈을 제대로 해오지 않았다. 그가 원하고자 했던 것은 늙지 않는 육체였고, 뱀파이어가 됨으로서 그것은 얻었다. 전성기 때의 육체. 젊은 육체를 원하기는 하였으나, 인간이 인간의 피를 탐한다는 것은 이전까지 인간으로 살아왔던 검귀가 범하기에는 힘든 배덕이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면서, 검귀는 그 인간성을 스스로 베어냈다. 살고 싶었다. 더, 더 멀리 가고 싶었다. 화산의 산문을 넘어 성하 도인을 죽였을 때. 검귀는 마음속에 남아 있던 최소한의 인성을 베어냈다. 그래서 죽인 시체의 피를 빨아 마시면서 이곳까지 왔다.
제법 많은 피를 마시기는 하였지만, 뱀파이어로서의 격을 끌어 올리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가슴을 꿰뚫은 중상. 인간이라면 이미 죽어버렸을 상처다. 그럼에도 버티고 있는 것은 오늘이 만월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길지 않다.
길 수가 없었다.
단순한 관통상이 아니다. 이성민의 창에는 강기가 실려 있었다. 몸을 꿰뚫은 강기는 검귀의 기혈을 파괴하여 내력을 진탕시켰고, 죽음에 이르러야 옳을 치명상은 뱀파이어의 생명력으로 버텨낸다.
그것이 꺼져간다. 상처는 재생되지 않는다. 무리하여 창을 뽑아냈으나 뻥 뚫린 상처는 계속해서 피를 토해낸다. 검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처를 지혈하고자 혈도를 누르려 했으나, “후… 후하하… 하하하…!”
결국에는 웃고 말았다. 컥컥거리며 피를 토하던 검귀는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피를 계속해서 삼킨다.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인다. 떨리는 손이 결국에는 혈도를 짚어 피를 강제로 멈추게 만들었다.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는 기분이구나.”
검귀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가진 붉음이 엷게 변해 있었다.
“그래… 그런 기분이야. 분명히, 나는 앞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더… 더 멀리 갈 수 있었는데. 넘어져 버렸어. 신경쓰지 않았던 돌부리에 발이 걸려서…”
검귀가 피에 젖은 입술을 일그러트리면서 쿡쿡 웃었다. 비틀거리며 걷던 검귀는 내려 놓았던 검을 다시 들었다.
“하지만… 후… 흐흐흐… 이해를 벗어난… 무武였다. 자네의 수준으로는 절대로 펼칠 수 없는… 그런 무였어. 자네의 창은… 아아. 내가 방금 전에 본, 나의 몸을 꿰뚫은 자네의 창은. 성하 도인의 검보다 빨랐고 성하 도인의 검보다 강했고 성하 도인의 검보다 고요했다… 아아…”
검귀의 눈에서 붉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검은 색으로 돌아 온 눈동자는 뱀파이어의 눈이 아닌 인간의 눈이었다. 동시에 검귀의 몸에서 새하얀 기류가 솟구쳤다.
“더… 보여다오.”
검귀가 끓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내가 절대로 도달할 수 없어 보이던 그 굉장함을. 다시 나에게 보여다오.”
검귀는 진원진기를 격발시켰다. 검귀는 이곳에서 살아 도망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이 상처를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 십 명의 피를 마시지 않는 한 목숨을 구제하는 것은 힘들 것이며, 지금의 몸 상태로몇 십 명을 더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검귀는 검을 쥐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선다. 전신이 무겁다. 뱀파이어가 되어 인간이 아니게 된 후로 느끼지 못했던 늙음의 무게가, 그보다 더한 무게가 되어 검귀의 몸을 짓눌렀다.
아니. 이것은 늙음의 무게가 아니었다. 죽음의 무게였다. 동시에 보고자 했으나 볼 수가 없게 된 이상理想의 무게였다.
“나에게. 너를 보여다오.”
그럼에도 검귀는 체념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이성민이 보았던 그 어떤 순간보다도 환한 열망을 담은 눈으로 이성민을 보고 있었다.
모르겠다.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검귀는 잠력을 격발시켜 자신의 생명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자멸할 겁니다.]모르겠다.
[하하, 그건 그렇고… 굉장하군요. 이성민님이 설마 검귀를 상대로 승리할 줄이야! 설마 이 싸움을 통해서 무공에 큰 진보를 거둔 것입니까?]모르겠다.
검귀가 다가온다. 이성민은 썩둑 잘린 자신의 창을 내려 보았다. 떨그렁. 이성민은 창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새로운 창을 꺼내 쥐었다.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 방금 전에 ‘내’가 어떻게 한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대체 어떻게 검귀를 꿰뚫었는가. 검귀가 말하는, 이해를 벗어난 무라는 것을 이성민 본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도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귀가 이성민을 본다. 검귀의 두 눈은 이성민에게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자신이 없다.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성민은 검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아.
당신은 사법을 사용하는 지저분하고 위험한 자가 아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여 포기하여 눈을 돌린 도망자도 아니다.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좋으니 그를 극복하고자 했을 뿐이다.
나와는 다르다.
당신은 나를 부럽다고 말했다. 나의 젊음에, 재능에 대해 그런 말을 하였다. 거짓이다. 나의 젊음도 재능도 거짓이다. 나는 일그러져있던 도망자이며, 열등감을 극복한 척 행동했을 뿐인 위선자이며, 나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심과, 모순에 가득 찬 자기만족을 품었을 뿐인 그런 약하고, 작은 인간이다.
창과 검이 부딪힌다. 진원진기를 격발시킨 검귀의 검강은 이전보다 눈부신 빛을 발했다. 하지만 느리다. 죽어가는 육체는 검귀가 바라는 검로를 그리지 못한다.
그런 검귀를 향해 이성민은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매섭게 구천무극창을 펼쳤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검귀를 죽이기 위해, 검귀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은 승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라고. 검귀는 그렇게 말했었다. 이성민도 그에 대해서 공감했다. 검귀가 도달한 무에 있어서 이성민의 존재는 돌부리 정도의 가치밖에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이성민의 창이 검귀를 꿰뚫을 수 있었던 것은 요행에 지나지 않는다.
안다. 알아서… 싫다. 하지만 도망쳐서는 안 된다. 이 승리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더라도 이 승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검귀는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위지호연에게 죽어야 할 검귀가 이곳에서 죽는다.
죽지 않아야 할 성하 도인이 검귀에게 죽었다.
이성민이 없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모순에 가득 찬 자기만족으로, 그런 책임감을 느끼면서.
나는 당신의 죽음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신이 보고자 했던 것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나의 걸음으로 당신이 보고자 했던 이상의 끝에 닿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해야만 한다. 검귀의 눈을 본다. 열망만이 가득한, 죽음에 가까워지는 그 눈을. 인간임을 포기하면서까지 향하고 싶었던 그 집념이 꺼져가는 눈을.
나는 그 눈을 가진 자를 죽이는 것이다.
“하.”
검귀의 검이 아래로 떨어진다. 이성민의 창은 검귀의 복부에 박혀 있었다. 검귀는 배에 박힌 창을 내려 보면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성민은 숨을 몰아쉬면서 검귀의 눈을 바라보았다. 몇 십 초의 공방은 결국 이성민의 승리로 이어졌다. 진원진기까지 격발시킨 검귀는 빠르게 죽어가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쉬운 승리는 아니었다.
“자네는…”
검귀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에… 나를 기만하는군…”
이성민의 손이 굳었다.
“자네의 창은… 아… 나를 죽인 자네의 창은… 이보다 더… 훌륭했어야 해. 더 빠르고… 성하 도인보다 더…”
중얼거리는 말은
“왜 내가 이곳에…”
저주였다. 한탄이었다. 이성민은 창을 놓았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선 이성민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검귀를 보았다.
이렇게 될 것임을 알았다. 검귀를 꿰뚫었던 이성민이 공격은, 지금의 이성민에게 불가능한 공격이었다. 순간에 얻게 된 심득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육체를 움직여 역랴을 뛰어넘은 공격을 행한 것이다. 이성민이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순간에 얻은 심득을 몇 번이고 회고하면서 정련해야 할 것이다.
“…미안합니다.”
이성민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검귀의 최후에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차라리 검귀와 싸우지 않았더라면. 시간을 끌어 검귀가 자멸하게 두었더라면… 적어도 저 무인이 마지막에 한탄과 저주를 쏟지 않게끔은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어르신이 생각한 것만큼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멋대로 기대받았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했다. 최선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부족했을 뿐이다.
나 자신이 너무 약하기에.
“나는… 더…”
검귀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소리를 낸다.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남긴 것은 한탄과 저주. 검귀는 이성민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죽는 순간까지. 이성민은 검귀에게 있어서 갑작스러운 돌부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성민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난…”
몸이 떨린다. 나의 약함이. 나의 부족함이. 이곳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위지호연이었다면, 지학이었다면, 남궁희원이었다면! 그들은 검귀를 만족시켜줄 수 있었을까? 저 무인이 최후의 순간에 저주와 한탄을 흘리지 않게끔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사제.”
울부짖고 싶었다.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참았다. 스스로의 나약함에 분노하면서도 울고 싶지는 않았다. 이 순간 울어버린다면 마음속의 중요한 무언가가 박살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많이 컸구나.”
목소리가 가까웠다.
그녀에게서는 꽃의 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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