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97)
“던전이 개방되었다고 합니다.”
조심스레 다가 온 독고귀검이 위지호연에게 그 말을 전해 주었다. 위지호연은 감고 있던 눈을 뜨고서 독고귀검 쪽을 보았다. 그녀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흑룡포가 어둠 속에서 꿈틀거렸다.
“던전?”
“예. 장소가 이곳에서 가깝습니다.”
독고귀검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위지호연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독고귀검을 응시했다. 그 싸늘한 시선에 독고귀검은 살짝 몸을 떨었으나, 위지호연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독고귀검은 위지호연의 시선에서 깊은 경외를 느끼며 머리를 숙였다.
“취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독고귀검은 진심을 담아 그를 간언했다. 던전이라는 것은 자연재해처럼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그렇게 발견되는 던전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온갖 종류의 신비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분명한 것은 던전에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취할 필요가 있나?”
위지호연이 중얼거렸다. 혼잣말 같기도 하였지만, 독고귀검에게 질문하는 것이기도 했다. 독고귀검은 그 질문을 내심 기쁘게 여겼다.
1년 전. 위지호연은 북쪽에서 혈천마 백무선과 격돌했고, 승리를 거두었다. 북쪽 도시 트라비아를 지배하고 있던 백무선과 혈천맹은, 위지호연에게 패배를 맞으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백무선은 왼 팔이 잘려 외팔이가 되었고, 백무선을 중심으로 세를 키우고 있던 혈천맹은 반토막 났다.
그리 되면서 위지호연의 명성은 더욱 커졌다. 그 당시에 이십 명이었던 천마군도 그 수가 크게 늘어났다. 물론 위지호연은 그것이 탐탁치 않아, 추종하는 천마군을 버리고서 혼자 행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독고귀검을 비롯한 몇몇의 뛰어난 고수들은 위지호연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독고귀검은 스스로를 위지호연에게 반드시 필요한 충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위지호연의 압도적인 강함에 크게 매료되었고, 머지 않아 위지호연이 이 뭔지 모를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독고귀검이 위지호연에게 품고 있는 것은 신앙 자체였다.
“이것은 운명이라고 생각됩니다. 개방된 던전은 이곳에서 그리 머지 않은 곳이고, 당신이 이곳에 있습니다. 그 던전의 주인은 바로 당신인 것입니다.”
독고귀검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정상적인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열의만이 앞선 말이었지만 독고귀검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흠.”
위지호연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던전이라는 것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위지호연은 제법 긴 시간 에리아를 떠돌았으나, 아직까지 던전을 겪어 본 적은 없었다. 던전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 보다는 던전에서 무엇을 겪게 되는가가 위지호연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다.
“가볼까.”
호기심이 위지호연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머리를 끄덕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위지호연이 움직인다. 그러자 주변에 웅크리고 있던 그녀의 추종자들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고귀검은 천천히 걷는 위지호연의 등을 보다가, 먼 곳을 힐긋 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을 보는 독고귀검의 시선에는 노골적인 적의가 담겨 있었다.
“어우.”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던 남자가 너스레를 떨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시선 한 번 살벌하시군.”
구파일방의 많고 많은 후기지수들. 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이를 하나만 꼽아 보라면 사람들은 대답을 망설인다. 하지만 하나가 아닌 셋을 말하라면, 견문이 있는 자들은 머뭇거림 없이 대답할 것이다.
소림의 지학.
무당의 청명.
개방의 취걸.
그들 셋은 각 문파의 성명절기를 모두 익히고, 문파의 모든 어른들에게 무공을 지도받아 문파의 미래를 위해 준비된 이들이다. 저들 중 지학과 청명은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문파의 본산에서 무공 수련만 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취걸은 다르다.
“어쩌시겠소?”
취걸이 머리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기척을 죽이고 있었다.
“소천마. 저 괴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무슨 대화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던전으로 향하는 것이겠지.”
취걸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침묵하고 있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희도 가야죠.”
묵섬광 백소고였다.
“던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제대로 준비도 갖추지 않고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오.”
“만약 위지호연이 던전을 공략하고,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면 그것이 더 위험할 겁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백소고가 아니었다. 덥수룩한 수염의 중년인이 진지한 눈으로 취걸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취걸은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아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감이 안 좋은데.’
감이라는 것은 불확실한 것이지만, 취걸은 자신의 감을 상당히 신뢰하는 편이었다. 사실 그 감을 믿어 여태까지 큰 이득을 보거나 불행을 피한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었어도, 내키지 않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독고귀검이 이쪽을 봤습니다. 독고귀검이 보았을 정도라면 위지호연도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여태까지 위지호연은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음에도 우리와 마찰을 빚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오만하고 무자비한 것처럼 보여도 미련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위지호연은 구파일방과는 단 한 번도 마찰다운 마찰을 빚지 않았어요.”
“소림이 위지호연에게 망신을 당했다고 들었는데?”
“소림은 그를 망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 모양이던 걸요. 오히려 불영대사는 위지호연에 대해 말할 때에 호의를 표했습니다.”
“소림도 갈 때까지 갔군.”
취걸과 백소고를 포함한 다섯 명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태까지 위지호연이 우리의 존재를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은, 우리가 무림맹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었소. 하지만 던전 안에서라면… 무림맹이라는 배경이 우리를 비호해 주지 못하겠지. 그곳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니까.”
취걸이 강하게 목소리를 냈다. 위험하다. 취걸이 믿고 있는 감이 그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취걸을 제외한 나머지 넷은 취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위지호연을 내버려 둘 수는 없소.”
“던전이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그 작은 괴물이 끔찍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소.”
“시간이 없어요.”
“지원을 부르는 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 하지만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위지호연이 던전을 공략한다면?”
“던전 안에 무엇이 있을 지는 모릅니다. 신공절학이 있을 지도 모르고 대단한 영약이 있을 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대마법이나 아티펙트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지. 던전에서 취하는 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힘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해.”
“위지호연이 그 힘을 취하게 둘 수는 없어요.”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백소고는 침묵했다. 취걸은 한숨을 삼키면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저들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지호연을 감시하라는 위험한 임무에, 저들은 직접 자원했다. 모두가 무림맹 내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힘을 가진 고수들이지만, 저들은 ‘정의’라는 애매모호한 것에 목숨을 건 미치광이들이다.
‘반한 쪽이 손해인 것이지.’
취걸은 백소고를 힐긋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백소고가 물러설 생각이 없다면, 취걸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취걸은 그렇게 말했다.
위지호연과 천마군. 백소고와 무림맹. 그들이 던전으로 향할 때, 이성민도 던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던전의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한다. 이성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던전에 가까운 곳에서, 던전이 개방되고 그에 대한 정보가 유통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정보는 구입했다. 던전이 열린 장소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정말로 갈 건가요?]루비아가 불안한 목소리로 이성민을 보면서 물었다. 루비아는 수인의 육체를 취하는 대신에, 자그마한 구체가 되어 이성민의 주변을 떠돌고 있었다. 애초에 사역마인 루비아가 고양이 귀를 가진 수인의 육체를 가진 것은 엔비루스의 취향 때문이었다.
“가야죠.”
이성민은 아공간 포켓에 손을 밀어 넣었다. 셀게루스가 만들어 주었던 창이 이성민의 손에 잡혀 뽑혀 나왔다. 소림에서 수행한 이후로 이 창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용해야 했다. 자격의 여부를 떠나, 지금부터 이성민이 겪어야 할 일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해야만 했다.
[…후우. 좋아요. 알았어요.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당신, 던전에 들어 가 본 경험은 있나요?]“없습니다.”
이성민이 대답했다. 사실 없는 것은 아니다. 전생에서 딱 한 번, 던전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죽었지.’
그리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다. 당시에도 초행으로 들어간 던전이라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름의 준비를 해두었다. 이성민은 전 재산을 털어 다양한 포션을 구입해 놓았다. 이성민은 무장을 확인했다. 등 뒤의 창과 함께 다양한 단검들이 이성민의 벨트에 매어져 있었다. 이성민은 그 위에 망토를 두르고서 가만히 심호흡을 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었다. 위지호연을 설득하는 것. 백소고를 설득하는 것. 위지호연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백소고는 가능한가? 백소고의 위치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였는데. 에리아는 넓다. 백소고와 위지호연이 이 근방에 있다는 정보는 구입했으나, 그것만으로 이 넓은 지역을 뒤져 그들과 만나게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해야 하니까.”
이성민은 전해들은 던전의 위치를 향해 달렸다. 구체로 변한 루비아는 이성민의 머리 옆을 맴돌면서 웅웅거렸다.
[우선 던전의 형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모든 던전은 확실한 끝이 존재하고, 그 끝에 도달하여 조건을 달성한다면 공략되죠. 문제는 ‘끝’까지 어떻게 도달하느냐! 던전은 미로일 수도 있고 숲일 수도 있어요.어쩌면 바다일 지도 모르죠.]
이성민은 기억을 더듬었다. 전생의 이성민이 들어가 죽음을 맞았던 던전은 지하의 미로였다.
[던전 안에서는 몬스터나 트랩 같은, 출입자를 위협하는 다양한 수단들이 존재해요. 던전 밖에서는 몬스터를 죽여봤자 시체가 남을 뿐이지만, 던전 안에서 몬스터가 죽는다면…]“나도 압니다. 던전에서의 몬스터는 던전 밖과는 다르게 확실한 전리품을 남기죠. 돈과 영약, 마법, 무공, 포션, 무기 같은 것들을.”
그래서 던전이 개방된다면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것이다. 그를 생각한다면 무림맹이 던전에 들어간 위지호연을 따라간 것도 이해가 된다. 위지호연이 던전을 토벌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본
래부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위지호연이 정말 손도 댈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릴 테니까.
“이곳이군.”
이성민은 걸음을 멈추었다. 바위 투성이의 지면에 붉은 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수정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이성민이 전생에 들어갔던 던전도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성민은 성큼거리며 수정을 향해 다가갔다.
손을 뻗어 수정에 대었을 때.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머릿속으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이성민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거렸다. 전신이 붕 떠오르는 것 같은 부유감이 이성민의 몸을 휘감았다.
풍경이 바뀌었다.
바뀐 풍경을 살펴 볼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성민의 발이 땅에 닿은 순간, 날카로운 살기가 이성민을 향해 폭사했다. 그 갑작스러운 공격은 이성민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성민은 급히 발을 뒤로 끌면서 창을 들어 올렸다.
쩌어엉! 커다란 소리와 함께 이성민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창을 잡은 양 손이 저릿거렸다. 초절정고수가 되고서 이렇게 묵직한 공격을 받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성민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공격을 가한 상대를 바라보았다.
“…넌 누구냐?”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거한이 이성민을 노려 보면서 물었다. 이성민은 거한이 잡고 있는 거대한 도끼를 힐긋 보았다. 무기도 묵직하기는 하지만, 이성민을 밀려나게 한 거력은 도끼의 무게 때문은 아니었다.
“…이성민이라고 합니다.”
“이성민?”
그 말에 거한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네가 검귀를 죽였다는 귀창鬼槍이란 말이냐?”
이성민은 그 별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문에 흥분하는 사람들은, 성하 도인을 죽인 검귀를 죽인 이성민에게 귀창이라는 별호를 붙여 주었다. 검귀를 죽였기에 귀창. 어울리지 않는 별호다. 당시 이성민이 검귀를 죽였던 것은 이성민 본인의 실력이 아니었다. 아마 검은 심장의 도움 덕분이었을 것이다.
“…맞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별호이기는 했지만, 이성민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어째서 네가 이곳에?”
그렇게 묻기는 했지만 거한은 더 이상 도끼를 휘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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