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00)
작가귀환-100화(100/250)
작가들 머릿속에서 핵전쟁이 일어나고 주인공이 어떤 처절한 일을 당한다고 해도 겉으로 보는 작가의 삶은 무척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쓴다. 가끔은 미친놈처럼 킥킥 웃다가 또 가끔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10권짜리 장편소설을 쓰려면 무엇보다 인내심과 지구력이 좋아야 하고 조급함이 없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런 부분은 나중을 위해 빼 둬야 한다는 거죠. 3권에서 완결이라면 모르겠지만 더 길게 본다면 아낄 건 아껴야 하거든요.”
신도림 작가의 소설이 100화가 되었다. 이제 곧 런칭을 앞두고 있어서, 오늘 우리 모임에선 합평을 해 주는 중이었다.
“7권 잡고 계시죠?”
“네.”
“그러면 이제 절반 막 지난 건데 분위기는 끝날 것 같잖아요. 특히 100화 이상씩 한꺼번에 런칭할 때는 이 구간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지금까지 빌드업한 것들을 이제 메인 스토리에 올려서 완결 때까지 쭉 달리는 그런 기분으로 쓰셔야 해요.”
옆에서 이명한이 물었다.
“저도 그렇습니까?”
“남성향은 상대적으로 3권쯤 더 쓰시게 되겠지만 100화 언저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건 똑같죠. 여기까진 첫날 한꺼번에 몰아서 볼 수 있어도, 다음부턴 매일 기다려도 한 편씩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더 조여야 해요.”
“아……. 메인 스토리라 하시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좋습니까?”
“흑막이 등장해도 되고, 복수물이면 그 대상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도 되겠죠. 성장과 성공에 기반을 둔 작품이라면 가장 큰 열쇠나 발판을 깔아 두고요.”
“중간 보스 같은 거네요.”
“맞아요. 그 중간 보스를 잡고 나온 아이템으로 최종 보스를 물리칠 수 있다. 이런 걸 독자에게 어필하면 좀 더 보게 되겠죠?”
가장 좋지 않은 것이 ‘끝난 줄 알았지?’ 뒤통수치면서 더 강한 놈 나오고 그놈 물리쳤더니 ‘또 끝난 줄 알았지?’ 반복하는 거다.
몇몇 일본 만화는 이런 식으로도 흥행했지만, 우린 연재 소설이다. 매일 매 편 재미있어야 하고, 가끔은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숨을 돌려 줘야 했다.
반짝반짝.
애착 작가들이 눈빛을 빛내며 얘길 듣고 있었다. 다들 소설 얘기할 때가 가장 살아 있는 것 같다.
“로맨스 판타지는 여성향 소설에서도 가장 길게 쓸 수 있기 때문에 남녀의 사랑만 가지곤 쓸 게 없어요. 빌런도 잘 잡아야 하고, 필요하다면 전쟁이나 액션도 들어가야 하죠. 그래서 평소에 다양한 장르를 읽어 두셔야 합니다. 여기 이 부분, 86화에서 늑대 인간과 싸울 때 뭔가 좀 어색하지 않아요? 여성분들이 볼 때는 이만하면 됐다고 여길 수 있어도, 무협이나 헌터물을 본 독자라면 약하다고 생각할 거거든요.”
사랑도 절반쯤 스토리도 절반쯤 진행하는 것이 100화라면, 가장 재미있는 지점은 7권쯤 되겠다.
절정으로 치달았다가 끝나면서 여운을 주면 완결이다. 또한 휴일에 몰아본다고 할 때도 7권쯤 보면 독자도 지친다.
“아…… 고쳐 볼게요. 죄송해요.”
“작가님이 죄송할 건 하나도 없죠. 지금도 재미있어요. 잘 쓰셨어요. 더 잘되라고 조언해 드리는 겁니다. 아시겠죠?”
“네!”
연애를 해서인가 신도림은 많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 성격은 변하질 않아서 소심했는데, 정반대인 사람이 우리 모임에 한 명 있었다.
“우왕! 제 소설도 합평받고 싶어요!”
희애가 손을 번쩍 들었다.
“몇 편이나 쓰셨죠?”
“이제 12편이요! 원래는 더 썼었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고치느라구.”
“최소 50편은 쓰셔야 합평을 하죠.”
“허억…… 50편이나요!”
“네, 원래 웹소설 이전에 종이책 출판할 때는 1, 2권이 대여점에 같이 들어갔었거든요. 그래서 2권까지가 중요하니까, 지금의 50화 분량으로 계속 디벨롭했다고 해요. 지금은 100화 이상 런칭이라 더 살벌해졌지만.”
팀장 그놈에게 주워들은 정보로 작가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까놓고 말해서 매일 연재하는 시장이니까, 어느 한 편도 중요하지 않은 구간은 없겠지만 더 신경 써야 하는 지점은 반드시 있는 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100화 기념으로 제가 맛있는 거 사겠습니다.”
“우왕! 역시 우리 대표님! 뭐 먹어요?”
고생은 신도림 작가가 했는데 희애가 더 난리였다.
갈빗집으로 가는 길.
자연스럽게 나는 7번 작가, 그녀와 보폭을 맞췄다.
“신도림 작가 소설 때문에 고민이 많아진 모양이네요.”
얼굴만 봐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그녀의 표정을 가장 많이 관찰했던 사람이 바로 나다.
“네. 너무 잘 쓰셔서…….”
“작가님도 다른 쪽으로 재능이 있으니까 남이 가진 걸 부러워하기보다는 내 장점을 살린다고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 저도 신도림 작가처럼 글 못 써요. 하지만 제 독자들을 위해 특화되지 않았습니까?”
“위로해 줘서 고마워요.”
“누군가에게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작가님의 글이 최고일 겁니다.”
*
*
*
“와, 이 씨발 새끼. 진짜였네.”
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처맞은 뒤로 3번 작가는 계속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번 그 소설보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도발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 새끼는 인풋이 없었다. 웹소설을 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죽여 버릴까…….”
이놈이 10년 후에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런 놈을 10년이나 수발할 가치가 있을까?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살인마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기에 오늘도 참았다.
마이크를 켰다.
“3번 작가님, 오늘부터 하루에 10시간씩 제가 보내 드린 소설 읽는 겁니다. 소설은 2시간만 쓰세요.”
모니터에 끄덕거리는 3번 작가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까 울화통이 터졌다. 저놈은 편하게 소설이나 읽고 자빠졌는데, 이쪽은 밥 대령해야 하지 전기세 내야 하지 소설도 골라서 보내 줘야 한다.
‘참자. 저런 새끼도 작가로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신이 준 시련이라고 생각했다.
‘잉여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부지런한 개미도 20%는 일 안 하고 논다. 밖에 나갔던 일개미가 돌아오지 않으면 놀던 개미를 투입한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20% 정도는 사회악이다. 시스템을 파괴하려 하고 이용하려 하며 남을 등쳐 먹을 궁리만 했다.
‘해도 해도 정 안되면 노예로 부리고.’
발목에 족쇄 채워서 주방에서 살게 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사람이 늘어나면서 슬슬 귀찮아지려 하고 있었다.
소설을 열 작품 추려서 3번 작가에게 보냈다. 그러면서 놈이 아까까지 쓴 글을 눈으로 훑었다.
【나는 졸라 쎈 드래곤이다. 내가 어느 정도냐면 브레스 한 방에 왕국이 날아간다. 하지만 나는 귀찮았다. 그래서 잠을 많이 잤다. 천 년쯤 잤다. 아니, 만 년인가? 그래, 만 년이라고 하자. 숙면을 취하면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그런데 잠에서 깨 보니 인간들이 번성하고 있었다. 내가 살 때는 좁밥 찌끄래기 놈들이었는데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녔다. 귀찮아서 다 죽여버릴까 하다가 재미있는 게 보여서 서울로 갔다. 탑이 있었다. 사람으로 변신해서 1층에 들어갔다.】
“또 탑이냐, 개새끼야.”
그런데 도입부 스토리 자체는 요상하게 끌린다. 이걸 뒤에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문제겠지만, 글빨을 좋은데 스토리가 약한 작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흠.’
그는 3번 작가의 글을 복사해서 1번 작가에게 보냈다.
【뭔데요, 이 쓰레기는? –1】
스윽 훑어보더니 바로 의견을 냈다. 그래, 옳은 반응이다. 200글자도 안 되는 거 정독해도 3분을 못 넘긴다.
【제가 보내 드릴 때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 소설 안에 어떤 재미가 있는지 파악하세요. 물론 스토리는 그대로 쓰셔도 되고 좋은 것만 뽑아서 가지셔도 됩니다.】
【하, 이딴 것도 소설이라고? 그래서 이 뒤는 어떻게 되는데요? –1】
【모릅니다.】
【ㅅㅂ, 장난하나 –1】
욕을 했지만, 이번엔 봐주자. 그의 심정도 똑같으니까.
‘차라리 서로의 작업을 바로 확인할 수 있게 공유 프로그램을 찾아봐야겠어.’
그도 진화하고 있었다. 작가들의 능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배우면서 동반 성장 하는 거지.’
사실 ‘3번 작가를 어떻게 작가로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명제부터 출발하다 보니까, 뭐든 안 하곤 못 배길 것 같아서 그랬다.
‘저 폐급도 느끼는 게 있을 거야.’
간절히 빌었다. 교회라도 다녀야 하나 생각했다.
그는 이 공간에서 항상 절대 ‘갑’이었는데, 시스템을 부수는 건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었다.
*
*
*
“이레귤러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쓰였던 캐릭터 코드였습니다.”
나는 강의 중이다. 처음 아카데미 웹소설반을 시작할 때는 100명이었는데, 이제 37명 남았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 데뷔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착각, 계약, 먼치킨, 흑막, 빌런. 어떤 것을 사용하셔도 좋지만 모든 것에 절대적이라고 단정해 버리면 파고들 틈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강한 빌런도 사연이 있어야 하고, 작가는 그 사연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 이레귤러가 규격 외 존재라는 뜻이죠?”
“우리 소설에선 그렇게도 쓰이고, 틀을 벗어난, 상식 밖 존재란 의미로도 쓰입니다. 작가 설정 허용 범위가 어디까지냐에 따라 다르겠죠.”
더 알기 쉽게 설명해 줬다.
“소설 도입부에서 마법 아카데미에 들어간 주인공이 마력 테스트를 합니다. 그런데 기계가 오류가 납니다. 사람들은 주인공을 형편없다고 놀리겠지만, 우리 독자들은 다르게 생각하겠죠?”
아까 그 학생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기계로도 측정할 수 없는 이레귤러.”
“바로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 주인공은 이제 세계관에서 가장 특별한 힘을 가지게 되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하자면 출생의 비밀 같은 것들이 필요하겠죠. 중요한 건 이 비밀이 도입부에 나와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겁니다. 그건 완결 전에 풀어 줄 떡밥이니까. 이제 주인공은 마법 아카데미에서 생활합니다.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교수들이 놀라워하고, 친구들은 자랑스러워하죠. 어디서 본 스토리 아닌가요?”
학생들이 ‘네!’ 하고 외치며 웃었다. 너무도 유명한 해외 소설을 뼈대만 가져와 웹소설 도입부로 만든 거다.
“어렵게 생각하면 끝도 없지만 작가가 쉽게 접근해야 소설을 보는 독자 역시 쉽게 이해합니다. 우린 이 점을 놓쳐선 안 되고요. 독자는 웅장한 서사를 보려는 게 아닙니다. 오늘 재미가 있냐 없냐, 오직 이거죠. 그게 흥행을 가르고 작가 인생도 바꿉니다.”
은둔 고수가 세상에 나오거나 드래곤이 깨어나는 스토리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풀어 갈 수 있다.
다만 그 시작점에서 독자가 기대하는 것을 정확하게 읽어서 조금씩 갈증을 풀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필력이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한 걸음 한 걸음 탑을 올라가듯 한 글자 한 글자 쌓아 올리는 끈기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나는 모두를 향해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