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08)
작가귀환-108화(108/250)
만약 누군가 웹소설 작가 얘길 소설로 쓴다면, 2권을 넘기기 힘들 거다.
글을 썼다. 대박이 났다. 또 글을 썼다. 돈을 벌었다. 돈을 썼다. 또 글을 썼다.
이 반복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처음엔 재밌어도 무뎌지게 되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제 소설을 쓰면 그게 웹툰이 되고 드라마가 되어도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소설에도 영향이 간다는 걸 알기에 매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가. 다른 할 일이 많아서.’
24시간 소설만 쓰면 시야가 좁아지고 예민해지거나 날카롭게 성격이 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녹화장에도 다녀야 했고 아카데미 가서 강의도 했다. 고시원에서도 오며 가며 사람들을 만났다.
이것도 모자라서 일본까지 발을 뻗었다.
“내가 말하는 거 잘 통역해야 해. 의미가 달라지면 작품 방향이 바뀌니까.”
여동생(진) 해리와 미팅 중이다. 일본에서 공멸의 칼 도입부 초고가 넘어왔는데, 이걸 내가 아는 방향으로 가이드해 줘야 했다. 내가 말하면 원고 자체에 해리가 일본어로 피드백을 적었다.
“근데 오빠.”
“어?”
“결혼식이요. 두 달 남았는데,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글쎄. 뭐 할 게 있나?”
두 분 다 재혼이고 장성한 자식까지 있는데.
“선물이라도 해 드리고 싶어서요.”
“음, 선물?”
두 분이 뭐가 필요하시지?
잘 모르겠다. 나는 이런 쪽으론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네가 결정하면 내가 돈을 낼게.”
“그게 뭐예요.”
“뭐긴, 내 역할이지. 그러면 내가 결정할 테니까 네가 낼래?”
“저 돈 없는데요.”
“그러니까 너는 노동력, 나는 돈. 공평하지?”
해리는 자존심이 강해서 놀리는 맛이 있다. 예진이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건 이 녀석에겐 존경심이 없다는 거다. 학벌이 너무 좋으면 벌어지는 사회 초년생의 흔한 모습일 것이다.
공멸의 칼 원고 피드백을 마무리하고 나는 해리와 헤어져서 식당으로 갔다.
진성이가 있었는데 영웅이는 보이지 않았다. 지리산 엘프가 곧 촬영이라서 연기 연습에 몰두하는 중이란다.
“여어.”
“점심 드셨죠?”
“아니.”
“2시인데요?”
“그러니까 왔지.”
“그렇게 불규칙하시면 나중에 속병 날걸요?”
어, 그래서 9년 후에 죽어.
하지만 나는 그 전에 병원에 갈 거다. 근데 이것도 불확실한 게 지옥에 갇혀서 온갖 스트레스 받았으니 없던 병도 생겼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왜 피 토하고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내 나이 서른넷이었는데 병사는 이상한 일이었다.
‘팀장 놈을 만난 것 자체가 사고니까 사고사였을지도.’
진성이 식판을 줬다.
“어때요, 요즘은?”
“인기 많지.”
“좋아요?”
“나쁠 건 없으니까.”
아이돌 진성이보다 내 인기가 더 많은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것도 잠깐이란 걸 알고 있다.
본래 대중의 관심은 언제 시들해질지 예측할 수 없다.
웹소설도 마찬가지다. 연재 중엔 인기가 영원할 것 같아도 완결하면 귀신처럼 잊힌다.
“그분은요?”
“뭐가?”
“형님 인기 많아져서 그분도 좋아하세요?”
“모르겠는데?”
“음…….”
진성이는 나름 심각한 고민이었는지 미간을 좁혔다. 나를 통해서 뭔가 간을 보고 있는 건가?
“드세요.”
“왜 이것밖에 안 줘?”
밥을 반만 펐나?
“더 줘.”
“그것만 드세요. 그래야 저녁 제때에 먹죠.”
“치사하게 밥으로 이럴래?”
진성이 맞은편에 앉아 진지한 눈동자로 나를 봤다.
“서운해한다거나 조급해한다거나 그런 기색 없어요?”
“어.”
숟갈로 두어 번 뜨면 다 없어질 것 같아서 젓가락으로 아껴 먹으며 대답했다.
“흠, 원래 자극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내 연애에 관심 꺼 줄래?”
“제가 일등 공신인데요?”
“아직 전쟁 안 끝났다. 이겨야 공치사를 하지.”
“형님 인기 많잖아요. 정 안되면 아무나 골라잡으세요.”
“너도 인기 많잖아. 아무나 골라잡지, 그래?”
“어후, 제가 실수했네요.”
“그게 됐으면 이러고 있겠냐.”
국민표준남과 아이돌이 이러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웃기겠지?
“허……. 벌써 다 먹었네. 더 줘.”
“반찬 드세요. 시금치는 손도 안 댔네.”
“밥 줘. 먹을게. 짜단 말야.”
“아우, 애도 아니고.”
“넌 우리 엄마냐?”
진성이 밥주걱을 들고 리필해 줬다. 내가 먹을 거로 10년 서러워 본 사람이다. 이러지 말자.
“대신 저녁은 꼭 드세요. 거르는 것도 습관 돼요.”
“응.”
여자는 진성이 같은 남자를 만나야 편하게 살 거다.
“너, 내 여동생 만나 볼래?”
“해리 씨요?”
“응.”
“저 아이돌인데요.”
“몰래 만나.”
“……진심이세요?”
“나랑 사귈 순 없잖아. 너는 진짜 좋은 남자야. 남 주기 아까워서 그래.”
“다 드셨으면 이제 가세요.”
“아직 시금치 남았어. 먹으라면서.”
“아오, 한가하세요?”
“아니, 근데 너랑 놀면 재밌어.”
진성이 못 말리겠다는 듯 킥킥대더니 커피를 탔다.
“저는요, 지금이 너무 좋거든요.”
“나도 니가 좋아.”
“장난 말고요. 이 식당도, 옥상도, 디엠 애들도, 모든 것이 꿈 같아요. 그런데 괜히 어색해질 필요 없잖아요.”
“그런가?”
진성이 얘길 듣다 보니까 번쩍!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하나 있었다.
“참으면 다 좋은데요. 들쑤셔 봐야 불씨만 날리죠.”
참아……?
나는 그녀를 매우 오래 봐 왔다. 그래서 지난 모임 때 그녀가 보인 표정이 낯설었다. 적어도 내 기억엔 없는 얼굴이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잘 먹었다!”
부리나케 일어나서 식당을 나갔다. 어쩌면 그녀가 힘들어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
*
*
【게이트가 열렸다. 사람들이 죽었다. 으악! 으악! 쾅! 쾅! 나는 태어날 때부터 초능력이 있어서 다 피했다. 몬스터 웨이브는 7일 밤낮으로 계속되어서 지구의 50%가 죽어 버렸다. 나는 초능력자라서 견뎠다. 남은 사람들은 친한 애들끼리 모여서 길드를 만들었다. 국가라는 것이 사라졌고, 나처럼 초능력자들이 대우받는 세상이 됐다.】
4번 작가는 고민했다.
‘이번에도 진지하게 쓰는 거겠지?’
3번 작가의 모니터를 보는 여러 사람이 지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천재 아니면 바보인 것 같은데.’
처음엔 무시하려고 했는데 자꾸 보다 보니까 3번 작가의 소설엔 특별함이 있었다.
문제는 딱 저만큼만 쓰고 뒤를 못 이어 간다는 거다.
4번 작가는 완벽한 기회가 올 때까지 팀장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 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소설을 써야 했다.
여길 오게 된 계기도 어쨌든 소설을 썼으니까 사건이 벌어진 건데, 그는 능숙한 작가가 아니었다.
“하…… 어렵네.”
원래 쓰던 판타지를 다시 쓰려니까 맥이 빠졌다. 썼던 걸 또 쓴다는 건 지루할 뿐이었다. 그때의 감성, 그날의 느낌이 하나도 살지 않았다.
“뭘 써야 하나?”
저 3번도 글을 쓰고 있는데 자신만 못 하면 팀장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런 변수를 노리고 있긴 하지만 최악은 피하고 최선을 찾으려면 일단 뭐든 써야 했다.
‘햄버거 또 먹고 싶은데.’
이미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팀장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었지만, 꾸덕한 감자튀김과 시원한 콜라가 계속 떠올랐다.
그런데 이때.
【3번 작가의 스토리, 작가님이 사용하셔도 됩니다.】
팀장에게서 채팅이 날아왔다.
‘그런 짓을 하라고? 도둑질이잖아.’
【아까 유심히 보시는 것 같던데요. 어떻습니까? 어차피 3번 작가는 내일이면 또 다른 소설을 쓸 텐데요. 그냥 버리기엔 아깝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
3번은 별생각이 없는 남자였다.
【우리는 공동체입니다. 다 같이 잘되면 좋죠. 특식도 자주 나갈 테고요. 3번 작가님 눈치 보지 말고 좋은 소스 있으면 얼마든지 갖다 쓰세요.】
‘특식…….’
그는 3번 작가를 보았다. 겨우 그거 써 놓고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 사람은 절대로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이게 다 모두를 위한 거야. 내가 나가야 다들 여기서 탈출할 수 있어.’
이 마당에 양심이랄 게 있을까? 조금이라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서로 머릴 맞대야 했다.
한편 3번은 졸다가 깨서 추릅, 침을 닦았다.
여기에 있다 보니까 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
시간 맞춰 밥을 먹고 불이 꺼지면 잔다. 일어나면 또 밥을 먹고 한참 소설을 보다가 글을 조금 써 본다.
묘하게 나쁘지 않다.
사실 그는 3억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는 잠시 미쳐서 될 대로 되란 식이었는데, 여기서 글을 써 보니까 절대로 하루 3편을 쓰진 못할 것 같았다.
뭐, 여기에 있으면 출판사 놈들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특식도 주니까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놀면 팀장이 토막 쳐서 산에 묻어 버린다고 했으니까 뭐라도 생산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글을 썼다.
【내 여동생은 작가 나부랭이다. 웹소설 같은 걸 쓰는데 비슷한 놈들끼리 모여서 어울려 다니곤 했다. 그럴 때마다 꼽을 줬는데 동생은 기어코 소설을 써 냈다. 하지만 더럽게 재미가 없었다. 심심해서 봤는데 이런 똥글은 처음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줬더니 여동생이 나를 패 버렸다. 그런데 맞다가 베란다에서 떨어져 버렸다. 여동생이 나보다 체급이 컸기 때문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렇게 죽었다. 그런데 눈을 떴더니 여동생이 쓴 소설에 들어와 있었다. 여기서 인생 다시 멋지게 살아 보자 했는데 곧 뒈질 예정인 엑스트라였다. 여주인공이 예뻤기에 나는 살아서 그녀와 사귀는 걸 목표로 했다. 이제 나는 남주를 죽일 거다.】
‘와, 대존잼. 개꿀잼.’
오늘도 일과를 마쳤다. 이렇게 스트레스 없이 사는 삶도 좋았다. 취업 안 해도 돼, 다른 사람 SNS 보면서 질투하지 않아도 돼, 여자들한테 잘 보이려고 꾸미는 것도 생략한다. 요즘은 그냥 3일에 한 번 씻는다.
‘오늘 글빨 미쳤네.’
그는 침대에 누워서 나머지 스토리를 상상했다.
남주를 죽이고 여주를 쟁취하면 끝난다. 소설 내용을 다 알고 있으니까 남주를 어떻게 궁지에 몰아넣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남주는 세계 최강 소드마스터이기 때문에 놈을 죽이려면 강해져야 했다.
‘쉽네. 웹소설.’
팀장이 보내 주는 소설을 읽다 보면 시간이 잘 갔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이제야 보기 시작했을까.
어쨌든 그는 여기도 꽤 편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알아? 나가게 돼도 그는 부자였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
*
*
그녀의 집 앞.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갑자기 연락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몇 번 데려다줘서 그녀의 창에 불이 켜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문자를 보냈다.
【지나는 길에 들렀는데 잠깐 괜찮아요?】
답이 바로 왔다.
【지금요?】
【네.】
【잠시만요!】
5분쯤 지났을까? 그녀가 모자를 눌러쓰고 내려왔다.
“어쩐 일이세요?”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를 보며 나는 웃었다.
“우리.”
인생에선 간혹 돌직구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연애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