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12)
작가귀환-112화(112/250)
“앉으세요. 제가 드릴게요.”
“오! 땡큐!”
좋았어! 그렇게 하는 거야!
저게 연기든 아니든 중요한 건 첫 예능 데뷔 무대라는 것이다.
시청률이 20%는 나오는 방송이니까 무조건 영웅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근데 이제부터가 관건이었다.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역동적인 무얼 하면서 분량을 뽑는 것도 아니다. 밥 먹는 거, 말하는 거, 이런 거로 재미를 창출해야 했다.
‘……걱정할 거 없나.’
주변을 보니까 그저 영웅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 같다. 이런 외모지상주의자들 같으니라고. 편집해서 나갈 때는 온갖 미사여구가 자막으로 달리겠지.
엘프가 나타났다!
뭐 우리 드라마에 도움만 된다면야. 얼마든지.
“이거 밥 먹고 먹어.”
나, 자연스러웠니?
주머니에서 작은 통을 하나 꺼내서 영웅에게 줬다.
“이게 뭐예요?”
“비타민. 새로 나왔는데 휴대성도 좋고 그냥 씹어 먹어도 돼. 상큼하더라.”
“감사합니다.”
그래, PPL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상업의 노예다.
영웅과 이렇게 밥을 먹고 있는데 진성이 들어왔다.
“형님, 그 소식 들으셨어요?”
“무슨 소식?”
“저희, 미국 가게 됐대요.”
우린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시청자들에게 어필해 줘야 한다.
“와! 잘됐네!”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미국이라니…….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좋아할까요?”
“음악이란 게 문화도 언어도 국경도 초월한다잖아. 할 수 있어.”
너무 국어책 읽었나? 흠흠, 좀 웃자.
“팬분들 실망하지 않게 준비 잘하자.”
“네.”
내가 꼭 해야 할 것들은 다 몰아친 것 같으니까 이제 평범한 일상을 얘기하면 됐다.
우리 셋은 도란도란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돌은 노래하고 배우는 연기하며 작가는 글을 쓴다. 참으로 뻔한 대화였지만, 흔한 직업은 아니어서 이게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것이다.
어쩌다 보니 군대 얘기가 나왔다.
“크, 다시 가고 싶네요.”
진성의 말에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진짜냐? 이런 생각을 하는 전역자라고?
영웅이 진성에게 물었다.
“그렇게 좋으셨어요?”
“아, 너는 미필이지? 군대라는 게 사회에선 경험할 수 없는 아주 많은 것들이 있거든. 나는 그게 좋았어.”
“어떤 것들이요?”
“팀웍이랄까. 지금도 우리 애들하고 같이 다니긴 하지만, 군대는 소속감이 남다르잖아. 총도 쏘고 수색도 하고 그러니까. 지뢰 잘못 밟으면 발목 하나 그냥 날아가는 동네야, 거긴. 서로에게 목숨을 맡겨야 해.”
“허…….”
진성이 얘긴 사실이었다. 나도 같은 수색대였다.
“불특정 다수가 만나서 군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에게 의지해야 하고 그 시간을 통해서 형제보다 친해져. 물론 사소하게 힘든 것들도 있지만, 다 감수할 만큼 멋지지.”
너는 국방부 홍보대사 해야겠다.
“멋있어요, 형. 저도 기회가 되면 가 보고 싶네요.”
“후회하지 않을 거야.”
진성이 엄지를 척 올려 드는 걸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아니야, 진성아. 보통 사람은 훈련소 들어가자마자 후회할 거라고.
녀석이 나를 보며 물었다.
“형님도 좋았죠?”
어, 그래…….
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
*
*
5번 작가가 왔다.
20대 중반의 남성이었고 키가 작았으며 살집이 있었다. 안경이 반쯤 깨졌는데 그는 눈을 뜨자마자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스윽, 주변을 몇 번 둘러보더니 질끈 눈을 감기도 했다.
이게 정녕 현실인가?
만화책에서 보던 일이 내게도 일어난 건가?
그는 중얼거렸는데 지켜보는 CCTV로 팀장은 흐뭇하게 웃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벌써 다섯이었다. 이번에 온 5번 작가는 일본의 ‘라이트 노벨’ 형태의 소설을 쓴다. 그게 아직 우리나라에선 주력이 아니었지만, 마니아층이 형성되어서 잘만 하면 돈을 번다.
저놈은 그쪽으로 재능을 타고났다.
‘성녀님의 여동생이 귀여워’라는 작품을 연재 중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며 살 수 있는지 읽으면서 감탄까지 했다. 분명한 건 저놈은 여동생이 없을 거란 거다.
내용은 간단하다. 이세계 성녀의 몸에 빙의한 현대의 ‘남자’ 고등학생이 여동생과 좌충우돌하는 모험 성장물이었다.
일단 남자가 여자의 몸에 빙의한 것도 모자라 여동생이 히로인이라는 게 참으로 대단하다.
놈의 머리를 갈라서 해부해 보고 싶었지만, 참고 데려왔다. 분명히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테니까.
‘나는 옳은 일을 한 거야.’
원래 이렇게까지 사명감을 가지진 않았는데, 저놈은 사회에 있는 것보단 여기가 세상에 안전할 것 같았다.
“크크큭.”
1번과 2번은 꾸준히 소설을 쓰고 있고, 3번은 4번과 협동하고 있었다.
5번이 들어왔으니까 장르도 다양해졌다. 이렇게 계속 작가를 늘려 가면 조만간 여러 작품을 세상에 낼 수 있을 것이다.
‘저놈 안경부터 맞춰 줘야겠네.’
놈이 반항하는 바람에 접촉이 있었다. 겉보기엔 얌전할 것 같지만 저런 놈이 행패를 부리면 더 무섭다.
보통 사람은 머릿속에 ‘이만큼만’이란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저놈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욱신.
그래서 그도 찰과상을 입었다. 이 고통에 대한 건 앞으로 천천히 갚아 줄 것이다.
‘너는 단무지 절반이다.’
작가를 관찰하는 건 재미있다. 놈들과 파트너로 일할 때는 저들이 갑의 위치라서 늘 당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지켜보면 참 별거 없이 살아가는 놈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냥 컴퓨터 앞에서 온종일 글을 쓴다. 그러니까 가끔 사회와 소통할 때 자기만의 세상에서 지껄이는 거다. 예민하고 까칠할 수밖에.
【행동 강령 잘 지키세요. 우리까지 피해 주지 말고 –1】
【1번 작가님은 말을 왜 그렇게 하세요? 5번 작가님 혼란스러우실 텐데 –4】
【저 사람이 문제 일으키면 우리 특식까지 영향을 받으니까 그러죠 –1】
이래서 당근과 채찍이 중요하다. 1번은 특식의 노예가 됐다. 4번은 나름 정의감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가 바닥을 보일 것이다.
5번이 의자에 앉았다. 긴장하는 것 같더니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절대 서로 만날 수 없는 건가? -5】
【그렇습니다. 힘드시겠지만 버티셔야 해요. -4】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쓴 5번이 씨익 웃었다.
【특식이란 게 뭐지? -5】
【가끔 나오는데 햄버거나 치킨 같은 겁니다. -4】
【호오, 나쁘지 않군. 너희는 언제 왔지? -5】
본래 잡담 금지지만 팀장도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워서 지켜봤다.
【근데 왜 반말? -1】
【너는 닥쳐라. 쓰레기와는 상종하지 않는다. -5】
【뭐? 쓰레기? 죽고 싶냐? -1】
“흐흐흐…….”
【나는 오늘부터 사령관이다. 내 지시를 잘 따라야 여기서 탈출할 수 있다. 알겠나? -5】
【미친놈……이냐? -1】
어째 정상인 것들이 하나도 없지만 그만큼 재능을 보이는 웹소설 작가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평소엔 평범을 가장하지만 이렇게 민낯을 보여도 될 때는 가차 없었다.
【닥쳐! 미물! 너는 앞으로 노예 1호다. 거기, 여자. 너는 앞으로 나를 모시도록 해라. -5】
【…………. -2】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5번은 현실 도피를 한 건지 아니면 상황을 즐기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진짜 미쳐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재밌긴 했다.
【사령관이래. ㅋㅋ 덕후 뭐 그런 건가? -3】
【3번, 너도 노예로 강등되기 싫으면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해라. 너희는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됐지? 혹시 여긴 가까운 ‘미래’인가? -5】
【헐, ‘미래’는 일부러 그렇게 강조해서 쓴 거임? 소름. -3】
【인류가 끝났고 우리는 마지막 생존자라면 납득이 갈 만한 상황이야. 너희, 밖을 본 적 있나? 정보를 통제하면 속이는 것쯤은 어렵지 않지. 아, 어쩌면 너희조차 가짜일지도 모르겠어. 나는 아포칼립스 주인공이었나? -5】
【주인공 얼굴은 아닌데 거울 안 보고 삼? -3】
안경을 고쳐 쓴 그가 얼굴을 돌려 CCTV를 봤다.
“어쩌면 이곳은 우주선일 수도 있겠군. 나는 누구에게 감시당하고 있는 거지? AI인가? 아니면 그냥 시스템?”
하도 진지해서 대부분이 멍하니 그를 지켜봤다. 3번만 ‘컨셉충이네!’ 낄낄거리며 배꼽을 잡았다.
“좋아. 시스템. 내가 살려면 어떤 미션을 해야 하지?”
【소설을 쓰세요.】
행동 강령에도 나와 있잖아. 읽으라고!
【그렇군. 그런 건가. -5】
팀장은 이제 그만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잡담 금지입니다. 어길 시 앞으로 한 달간 특식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으름장에 채팅창이 깨끗해졌다. 5번은 실실 웃는 것 같더니 미친 듯이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 모니터를 보던 팀장이 피식 웃었다.
“역시 잘 쓰네.”
미쳤든 뭐든 여기선 소설만 재미있게 생산하면 된다.
*
*
*
웹소설은 크게 남성향, 여성향으로 갈리고 거기서 남성향은 메이저 장르와 마이너 장르가 있었다.
어느 것이 옳다가 아니라 대중적 선호도의 차이였는데, 일본에서 따온 설정이라도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거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장단점이 있었다.
나는 라이트 노벨 형태의 웹소설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이쪽은 서칭하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글세상에 신기한 작품이 며칠 사이에 고속으로 베스트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용사가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는 법】
제목도 글세상의 다른 작품과 차이를 보였는데, 그게 눈에 띄는 효과가 있었다.
이제 연재를 시작한 지 3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13화가 올라왔다.
글이 빠르든 비축분이 있었든 사정까진 모르겠지만 반응은 신선하다는 평이다.
‘아포칼립스 코드가 빠졌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거야.’
여타 라이트 노벨의 주류처럼 이계에 가서 깽판 치거나 성녀와 노닥거리는 거였다면 글세상에서 베스트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간간이 그런 유의 작품이 올라오지만 단 한 번도 잘된 케이스가 없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흥행 중이었다. 내 데이터에 의하면 앞으로 5일만 꾸준히 연재한다면 3위권도 노려 볼 수 있었다.
‘재밌네.’
내가 인정할 만큼 이 작가는 라이트 노벨의 색을 최대한 빼고 담담하게 아포칼립스를 다루고 있었다.
망해 버린 세상에서 한 남자가 생존자를 찾아 나서며 좀비 같은 언데드와 싸워 나가는데, 제법 몰입도가 있다.
‘여자’가 전혀 나오지 않고 있어서 더 좋다. 누군가는 이것을 왜색이라고 하는데, 여성을 라이트 노벨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순간 메이저와 마이너가 갈린다.
다소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지만, 13화까지는 어쨌든 잘 지키고 있었다.
‘인벤토리 사용하는 것도 좋고, 아이템 설정도 괜찮아.’
용사는 세상을 탐험하면서 언데드를 죽일 때마다 특성을 발전시키고 스킬을 얻으며 아이템도 줍는다.
이건 오직 그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영웅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도 ‘오직 나만’이라는 남성향 코드를 잘 넣은 거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지점이 남성 독자들에겐 먹힌다.
‘이것 때문에 호불호가 있는 것 같지만, 나중엔 더 많은 것들이 나올 테니까. 과도기인 거지.’
이렇게 좋은 작품이 나올 때면 나도 기분이 좋다. 완결까지 쭉 재미가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댓글을 달아 주었다.
-잘 보고 갑니다! 재미있습니다!
혹시 쪽지를 보내 볼까? 계약 안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