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17)
작가귀환-117화(117/250)
기획, 편집 일 하다가 빡쳐서 이 사달을 벌였는데, 또 편집을 하고 있었다.
그는 묘한 자괴감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 일어서기 직전에 쪽지가 왔다.
‘오?’
며칠 전에 어떤 작가에게 보낸 쪽지의 답이었다.
사실 스토리는 형편없었는데, 문장력이 괜찮아서 접촉했다. 이 작가는 이대로 두면 웹소설 작가로 이름을 날리긴 불가능할 거다. 하지만 이곳엔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가 답장을 했다.
‘남자인가? 아마도 그렇겠지?’
대상의 성별도 중요했다. 아무래도 여자면 납치할 때 더 많은 주의가 필요했다.
【오백만 원까진 선금도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가능성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적은 돈일지 몰라도 무명 작가에겐 생명 줄과 같은 돈일 것이다.
메멘토모리쯤 되면 월 몇천, 그 이상도 벌겠지만, 90% 이상의 작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투잡을 뛰어야 하는 냉정한 세계였다.
【언제 뵐 수 있습니까?】
기다리고 있었는지 답장이 바로 왔다.
【저는 내일도 좋습니다.】
마침 서울 산다니까 바로 만나 보자.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일단 그 작가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아야 했다.
‘마침 꼭 필요했는데 잘됐어.’
오늘 밤은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약속 장소에 간 그는 황당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
“하하하! 이 친구들도 지망생인데, 꼭 따라오고 싶다고 해서요. 괜찮으시죠?”
셋이나 있었다. 저들이 그의 얼굴을 본다고 해서 별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냥 만났다가 헤어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까.
‘빌어 처먹을.’
하지만 저놈을 납치하면 둘은 목격자가 된다.
“그럼요…….”
셋은 최근에 작가 사무실을 만들었다고 했다. 다음 달에 메멘토모리 아카데미 2기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하는데, 여기까지 듣고 나니 이놈들은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네요. 그 아카데미에 들어가시면 전속 계약을 하셔야 할걸요. 그러면 저희와는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어어, 그래요? 저는 몰랐는데요.”
좀 알아보고 다녀라. 울컥했지만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혹시라도 기회가 되면 다시 뵙길 희망하겠습니다.”
오늘은 실패였다. 세 놈이나 나올 줄도 몰랐고, 건장한 남자 여럿은 그도 감당할 수 없었다.
‘계속 일이 틀어진단 말이야.’
작가는 본래 혼자가 편한 놈들이고 외로움과 고독에 몸부림친다. 그런 녀석들은 거주지만 알면 잠복했다가 낚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셋이 살면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티 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이라니…….”
전부터 작가들이 모여서 사무실을 차리는 일이 종종 있어 왔다. 하지만 그 어떤 사무실도 끝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누군가 잘되면 시기 질투가 판을 치고, 한껏 예민해지는 순간엔 서로 멱살을 잡는 일도 허다했다.
그래서 저놈들도 오래가진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차를 몰았다.
“너흰 평생 혼자여야 하는 종자들이라고.”
어지간히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그가 증오심을 표출했다.
*
*
*
매주 토요일은 이제 내게 과거와 마주하는 시간이자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애착 작가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들이 가장 처절하게 힘겨웠을 때의 표정이 겹쳐 보였지만, 내 트라우마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것도 체감했다.
그 일등 공신은 누구보다도 7번이었다.
“괜찮겠습니까?”
“네!”
모임이 끝나고 우린 그녀의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봄이 와서인지 그녀가 먼저 제안했다. 집구석에 처박혀서 매일 글만 쓰는 작가들에겐 이런 장거리 산책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녀와 밤거릴 걸으며 생각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
우린 햄버거 하나에 눈물 콧물을 흘렸고 깨끗한 수건이나 옷을 원했으며 돈이 아닌 다른 가치로 살았었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던 내게 이런 일상은 선물 같은 것이었는데, 초심을 지키라는 팀장 놈의 말도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아참, 대표님. 로맨스 써 보신다고 전에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웹툰을 제작하고 있어서 잠깐 멈춰 놓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저도 보고 싶었는데.”
“때가 되면 바로 보여 드릴게요.”
웹툰은 제작이 오래 걸리기에 동시에 런칭하려면 아직 몇 달은 남은 것 같았다. 댕댕이 작가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지만 본래 로맨스 판타지가 품이 더 들 수밖에 없었다. 드레스 하나 그리는 것에 반나절이 꼬박 걸리기도 했다.
그녀가 말했다.
“가끔은 거짓말 같아요. 제가 작가가 된다는 것도. 이렇게 대표님하고 걷는 것도.”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 데이트는 이렇게 소박했지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전엔 일 얘기만 했는데, 이젠 사소한 것들도 조금씩 공유하는 영역을 넓혀 갔다.
빨간불 신호에 교차로에서 기다리는데,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나를 알아봤다.
“아앗! 혹시?”
“현우 아닌가? 맞는 거 같은데?”
아차, 아직 ‘나도 솔로’의 인기가 한창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뛰었다. 이럴 때는 전술이고 뭐고 줄행랑이 최고다.
옆 골목으로 돌아서 멈췄다.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괜찮아요. 재미있어요. 연예인하고 사귀는 사람들 기분이 이렇겠죠?”
나는 연예인도 아닌데 나도 솔로가 상상 이상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제 듣기론 시청률 30%에 육박한단다.
나를 1기의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는 편집이 더해져서, 이젠 아까처럼 사람들은 더 퀸이 아닌 나도 솔로로 나를 기억했다.
김 PD가 의도한 것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편집이 무서운 거다. 본래의 나보다 100배는 더 매력적인 남자로 비치고 있었다.
“이쪽은 한적해서 좋네요.”
그녀가 웃자 나도 웃었다.
‘차를 사야 하나?’
시선이 많아질수록 행동반경이 줄어들었다. 나는 욕먹어도 괜찮지만, 곁의 사람들이 그래선 곤란했다.
“아! 바람 쐬니까 좋다.”
그녀가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만끽했다.
“계속 집에서 소설만 써서 그런가, 요즘 이상한 꿈을 계속 꾸거든요.”
“무슨 꿈인데요?”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 아주 답답한 곳에 갇혀 있어요.”
“…….”
“빠져나올 수도 없고, 저는 한참을 울기만 해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입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단 내가 과거로 온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니, 그녀가 그런 꿈을 꾸는 것도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심했나 봅니다.”
“그런가 봐요. 첫 작품이니까 무조건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컸고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잘 안 되니까.”
킹치만 모든 작가가 다 그런걸. 아, 또 나도 모르게.
“그걸 견디는 게 작가겠죠.”
“대표님도 그래요?”
“저는 더하죠. 사람들의 기대가 큰 만큼 충족시켜야 하니까요. 아마 조금만 성적이 좋지 않으면 물어뜯는 사람들이 한 트럭은 될 겁니다. 퇴물이 됐다느니 감이 떨어졌다느니.”
“설마요.”
“그래서 매일 노력하는 거고요.”
문학은 서점에 들어가는 순간 잘 팔리든 못 팔리든 작품으로 남겠지만, 우린 끝날 때까지 성적을 봐야 했다. 이게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거다. 흥행까지 해야 하니까.
“저도 그와 비슷한 꿈을 자주 꿉니다. 오래됐죠.”
“작가들은 다 그런가 봐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서일 수도 있겠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렇구나.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대표님도 그렇다니까, 이상하게 편해졌어요.”
“예, 꿈이잖아요. 두려워할 이유가 없죠. 그게 실제로 일어난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일은 없습니다.”
나는 체험했기에 트라우마가 됐지만, 그녀는 무시해도 된다. 내가 옆에 있을 거고, 팀장 놈은 어떻게든 잡을 거다.
“대표님 덕분에 계속 소설을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요.”
믿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작가에겐 가장 큰 기반일 것이다.
그녀와 꿈 이야기를 해서일까? 내가 팀장 그놈이라면 어떨까? 생각해 보면서 돌아왔다.
7번과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나는 어른이었고 대표였으며 작가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지켜야 할 약속도 늘어났다.
‘작가 지망생을 찾아야겠지. 거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그 전에 일단 작가를 가둘 공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갖춰지면, 그 안에서 원고가 생산된다.
그놈은 밥을 주며 모두를 감시했고 우린 짐승처럼 먹고 쓰길 반복했다.
먹고 싸나 먹고 쓰나 비슷할 것 같지만, 그렇게 배설한 글은 그놈에게 가차 없이 지적당했다.
【이것도 소설입니까? 차라리 똥을 싸세요.】
그놈의 목표는 뭐였을까? 돈? 그게 전부였다면 어느 시점에 평생 먹고살 돈을 벌었을 거다.
하지만 그놈은 내가 죽는 그 순간에도 나를 대체할 1번을 말했었다.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거다.
그러면 욕심인가?
어차피 100억이든 200억이든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돈은 의미가 없다.
10년간 30명 넘게 작가를 굴렸으니까 그 정돈 벌었을 거고 우리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전기세가 가장 많이 차지할 정도로 부담이 없었겠지.
밥, 단무지, 똥국은 10년간 한결같았는데, 이것만으로 놈을 찾아내기엔 불가능했다. 너무 흔한 재료라서 그렇다.
‘그걸 알아야 역추적할 텐데.’
수사관들이 범인을 프로파일링하려면 동기도 중요하지만, 놈이 뭘 원하는질 파악해야 했다.
‘모두에게 원한을 가졌을 린 없고.’
세상만사 돈, 치정, 권력, 정치, 명예, 종교에서 모든 사건 사고가 벌어진다.
놈은 대체 어떤 카테고리였을까?
‘묻지 마는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고시원이었다.
“…….”
1년간 내가 이룬 것들이 저 안에 다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곧 2막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나는 과거로 돌아온 회귀자였으며 이 개념을 소설에 써먹는 작가였다. 아이러니한 일이긴 하지만, 재미만 있으면 독자에겐 좋은 일이다.
예진에게 전활 걸었다.
“웹툰 작가님들 전화번호 내게 보내 줄래?”
-직접 설득하시려고요?
막힌 일은 직접 부딪혀 보는 게 답이었다.
*
*
*
진성과 진국은 방송국에 와 있었다. 아이돌이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오늘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크흐, 재미있겠는데요? 우리 수색의 힘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겁니까?”
진국인 벌써 흥분해 있었다.
알고 보면 녀석은 아이돌보다는 전사에 가까웠는데, 그간 성향에 맞지 않게 예쁜 척하느라 쌓인 게 많았나 보다.
김 PD가 진성을 보며 웃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자칫 다칠 수도 있는데요.”
“저흰 원래 뭐든지 목숨 걸고 합니다.”
“아아, 그렇게까지 하실 일은 아니고요. 어디까지나 예능이니까요, 예능.”
김 PD가 슬쩍 둘을 자극했다.
“그런데 두 분, 수색대 나오셨다던데, 해병대나 다른 특수부대원들하고 경쟁이 되시겠습니까? 까놓고 말해서 1시즌이라서 여성 시청자의 이목을 끌 외모 때문에 두 분을 모시긴 했는데, 첫 회에 탈락해 버리면 오히려 아이돌 이미지에 악영향이 있지 않을지…….”
말을 하던 김 PD가 슬쩍 입을 다물었다. 진성이와 진국의 눈빛을 본 것이다.
‘광기가…….’
그는 몰랐다. 애초에 진성이가 고시원에서 뭘 하던 놈이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