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27)
작가귀환-127화(127/250)
이건 더 다듬어서 연재하는 거로 하고.
“촬영, 다음 주지?”
강철의 부대는 보름에 한 번 촬영이 있다.
본래는 3박 4일간 몰아서 하려고 했다가, 우리 애들 스케줄에 맞춰 준다고 이렇게 바꿨다는 얘길 김 PD에게 들었다.
-하! 진성 씨! 진국 씨!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덕분에 좋은 그림이 많이 나왔어요! 다음 주에도 오늘만큼만 잘 부탁합니다!
지난 촬영 때 김 PD는 감동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긴 그날 진성이와 진국이가 보여 준 괴력은 인간의 수준을 넘은 것이라서, 편집으로 한 번 더 잘 살려 주면 얘들은 큰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주가 진검 승부죠, 후후.”
진국이 벌써 기대된다는 표정이었다.
남들은 부담감 때문에 잠도 못 이룰 것 같지만, 얘네는 어디 놀이공원으로 소풍 가는 분위기였다.
“산악 행군하면 좋겠다. 오랜만에 땀 좀 빼게.”
“에이, 형님. 그건 너무 쉽잖아요. 혹한기가 아니라서 요즘 날씨론 극한까지 못 가요.”
산악 행군이 쉽냐…….
“아, 태훈 형님은 연습하고 계신대요? 전에 보니까 체력 많이 떨어지셨던데.”
“알아서 하겠지. 걔도 수색이니까.”
“현역 때 폼 찾으려면 남은 기간 잘 쓰셔야 할 거예요.”
“그래야겠지.”
두 사람 얘길 들던 예진이 물었다.
“산악 행군이 뭐야?”
설명은 진국이 했다.
“군장 메고 산 타는 거예요. 원래 먹고 자는 것도 산에서 다 해결하는 게 진짜배기인데, 매복하면서 진성 형님이랑 밤새우던 게 가끔 그리워요.”
“그날 뱀도 잡았잖아.”
“맞아요! 하하!”
얘들이 대충 넘어가서 그렇지 군장만 해도 FM으로 꾸리면 40kg 언저리다. 거기에 총까지 소지하고 산길을 오르면, 지옥 체험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근데 뱀은 왜 잡은 건데?
“이러다 날 새겠네! 자! 오늘도 파이팅합시다! 벌써 12시라고요!”
예진의 말에 진성이와 진국이가 급히 일어났다. 군대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두 사람이 황급히 나가자 예진이 말했다.
“작가 모임 때 제가 도울 일 없어요?”
“응, 걱정하지 마.”
예진은 너무도 바빴기에 내 애착 작가 모임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하는 게 옳다.
“네, 아카데미 다녀올게요. 저녁에 뵈어요.”
“고생하고.”
“대표님도요!”
오늘 그녀가 온다. 내 연애가 다소 정체전선에 머물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급히 서둘러서 좋을 건 없다는 생각이다. 오래 기다린 만큼 사소한 것 하나도 망치긴 싫었고, 조급함보다는 넉넉함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나도 슬슬 가 볼까?’
오늘은 저 아래 번화가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가끔은 장소의 변화도 주변서 모임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
작가로서 완성형은 언제 어디서든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집필할 수 있는 기동력과 집중력이었다.
이게 되면 디지털 노마드로 전직할 수 있는데, 세계 여행을 하면서도 실시간으로 소설 연재를 이어 갈 수 있는 엄청난 직업을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와이 해변에서 마티니 마시며 소설을 쓰는 그런 장면, 얼마나 멋들어지는가?
그래서 이번 모임부턴 그냥 수다나 떠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집필해 보는 시간도 갖기로 했다.
아이디어 회의도 하고 서로의 고충도 토론하다 보면 훨씬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내 애착 작가들이 빨리 성장했으면 한다.
그걸 위해 강압적으로 뭘 한다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좋은 루틴을 삶에 스며들게 해 주고 싶었다.
아직 없는 개념인가? 어쨌든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 그다음 단계엔 작가의 컨디션이나 심리 상태도 분리해 낼 수 있는 몰입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게 되면? 다작까지 뻗어 나가는 거다.
내 애착 작가들이 여기까지 가려면 아직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뭐든 한 걸음부터가 중요하다. 우리의 소설이 그러하듯이.
*
*
*
‘내가 매력이 없는 걸까?’
그녀는 침울해졌다. 작가 모임을 다녀오면 늘 즐거웠는데 최근 몇 주는 심란했다. 특히 신도림, 김철수 작가는 곁에서 보기만 해도 꿀이 뚝뚝 떨어지는데, 왜 이쪽은 무미건조할까?
‘날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물론 그의 눈빛을 보면 절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감정이 엿보였다. 그가 우연을 가장해 곁에 다가올 때면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하지만 결정적이며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왜 스킨십이 없지?’
혈기 왕성한 20대 남자라면 안달이 나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손을 잡았으면 뽀뽀도 하고, 그렇게 진도를 빼다 보면…….
화끈!
부끄러운 생각에 그녀가 두 손으로 뺨을 잡았다.
꺄아! 대체 어디까지 생각하는 건데!
그러다가 또 침울해졌다.
여자인 그녀도 이런데 그는 왜 부처님처럼 굴까? 설마 이쪽에서 먼저 다가가 주길 바라는 걸까?
그녀가 인터넷에 검색했다.
[스킨십 : 정서적 효과를 기대하여 인간 간에 신체를 접촉하는 일.]이런 사전적 의미는 알고 있었기에 더 아래로 내렸다.
-남친이 목석이에요.
-제 여친이 혼전순결입니다. 어디까지 허용되나요? 아시는 분?
-우리 부부가 스킨십이 너무 없어요. 정상인가요?
수많은 고민들이 줄을 이었다.
어떤 커플은 남자가, 어떤 연인은 여자가 고민이었는데, 연애를 글로 배우는 건 지양해야 한다지만 읽다 보니 남 일 같지가 않았다.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를 절대 가만두지 않습니다.
-성욕을 어떻게 참음?
-분위기를 잡아 보세요. 그런데도 넘어오지 않으면, 그건 신체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다들 비슷하게 산다. 몇몇은 장난처럼 대꾸했지만, 질문자들은 심각한 고민이었다.
“좋아하는 여자를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고…….”
심장을 바늘로 콕 찌른 것 같았다. 뜨끔한 느낌이 썩 유쾌하지 않아서 그녀가 다른 글을 봤다.
-현명한 여우의 티 안 내고 홀리는 기술.
괜히 침까지 꿀꺽 삼키며 몰입하게 되었다.
-첫 번째, 청결. 아무래도 여자가 더 작은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의식하지 못하는데 정수리! 냄새! 매우 중요해요! 남자 친구 코가 내 정수리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데이트 전 샤워는 기본 중의 기본!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한다면 정수리만이라도 샴푸 하고 말리세요!
“……헉, 정수리만 샴푸……?”
생각도 못 했던 주제였다.
남들은 이런 것까지 신경 쓰며 데이트하는 건가? 그보다 정수리만 샴푸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아무튼 작성자가 고수의 풍모를 풍기기에 더 봤다.
둘째는 ‘웃는 얼굴로 대하라’였는데, 일리가 있어서 그녀도 거울을 보며 어색하게 웃는 연습을 했다.
-세 번째! 자연스러운 터치! 오늘 얘기가 티 안 내기니까 명확한 범주 안에서만 움직여야겠죠? 그가 재미있는 얘길 해 주면 웃으면서 그의 팔을 살짝 때린다든지, 호응해 줄 때 그의 몸 쪽으로 기댄다든지! 여기서도 물론 정수리 관리하셔야 해요! 이렇게 정수리가 시시때때로 노출된답니다!
두 손을 올려 정수리를 가렸다. 하도 정수리, 정수리 하니까 괜히 찔렸다.
이 사람은 정수리 때문에 남자 친구와 이별이라도 경험했던 걸까?
하지만 ‘자연스러운 터치!’는 달달 외워 두면 한 번쯤은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덥석 팔짱 끼지 마시고요! 그보다 반걸음 정도 뒤로 따르면서 옷깃을 살짝 잡아당긴다든지 하면 그가 눈치채고 손을 깍지 끼든 어깨동무를 해 오든 할 거예요! 이럴 때 살짝 입술을 벌려 보세요. 기습 키스까지 진도가 나갈 수도 있답니다!
“헙……. 키스……!?”
또 부끄러워져서 정수리에 있던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까 커피숍의 풍경을 떠올려 보았다. 작가들이 모여서 커피숍에서 집필하는 경험은 참으로 좋았다.
문득 얼굴을 들어 그를 보았을 때 그는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저렇게 할 수 있으니까 유명한 작가가 되었구나 하고 감탄도 했지만, 가끔은 그냥 눈이 마주치길 바랐다.
‘기회가 별로 없는데.’
이동 간엔 다른 작가들의 눈이 있고 비밀로 하자고 했던 건 자신이었으니 무를 수도 없었다.
“힝…….”
‘에라 모르겠다. 소설이나 쓰자.’ 하고 인터넷 창을 닫았는데, 핸드폰에서 소리가 났다.
띠링.
그녀는 무의식중에 핸드폰을 확인했다가 덜컥 몸을 움찔거렸다.
【잠깐 창문 열어 볼래요?】
“흡…….”
본능적으로 정수리에 손이 갔다가 여기가 더 높다는 걸 깨닫곤 황급히 거울로 뛰어갔다. 본래 화장을 즐기진 않았어서 아까와 별반 다를 건 없었다.
‘갑자기…….’
그가 왔다.
드르륵. 창문을 열었더니 그가 오른손으로 꽃다발을 치켜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른 손을 들었는데, 작은 종이 상자였고 유명한 제과 브랜드가 쓰여 있었다. 앙증맞은 조각 케이크인 것 같았다.
띠링.
또 메시지가 왔다.
【모임은 모임이고, 연애는 연애여야 할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앞으론 아무리 바빠도 꽃이 시들기 전엔 찾아올게요.】
그를 만나면 이것저것 써먹을 것들이 많았지만,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현관으로 뛰어가는 그녀의 얼굴엔 그저 웃음만이 가득했다.
*
*
*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가 5번 모니터를 보며 헛헛 웃었다. 1.5리터 콜라를 원샷하는 놈은 실제로 처음 봤다.
-꺼어어어어어억!
트림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것 같았다.
“허……. 허……!”
약속대로 콜라를 넣어 줬다. 고작 그거로 1위를 할 수 있다면 사이다도 세트로 줄 수도 있다.
“여러모로 신기한 놈일세.”
참, 가지가지 하는 5번 작가였지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데 콜라가 대수랴.
“후…….”
오래간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발가락이 잘리긴 싫었는지 6번 작가도 억지로 글을 썼다.
한번 당한 게 있어서 놈이 5권 정도 쓸 때까지 지켜볼 예정이었다.
그거도 그건데 1번이 대박이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군대에서 축구한 썰’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제목은 뒷부분을 어떻게 할지 계속 고민하겠지만, 썰로 끝낼지, ‘썰 품’으로 할지, ‘썰 푼다’로 갈지 선택지가 있었다.
3번은 더 이어 갈 능력이 없는 놈이라서 전체적인 스토리는 1번에게 맡겨야 하겠지만, 그가 편집하며 완성할 예정이었다.
‘군대 얘기만 해선 안 될 테지만, 축구라면 가능성이 있어.’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3번이 기특하다. 1번 작가는 파격적인 생각을 못 한다. 두 놈이 합쳐지면 참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니까 그가 잘 도와줘야 했다.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콜라를 처먹은 5번 작가가 이전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써 줬다. 그래서 이제는 하루 2편이 아니라 3편이나 4편도 연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메멘토모리와의 격차를 더 근소하게 좁힐 수 있었다.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연참은 독자를 즐겁게 하고 신규 독자 유입도 많아질 것이다.
원래 독자의 상당수가 넉넉한 분량이 연재될 때까지는 신작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을 확보할 수 있다면, 다음 주엔 1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좋아. 매우 좋아.”
저놈들 인성이 어찌 됐든 독자에겐 알 바 아니었다. 소설만 재미있으면 되는 거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5번 작가의 소설에 작가의 말까지 작성해서 연재분을 올리고 그가 느긋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았다.
그런데 책상 위에 놓아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
모르는 번호였는데 앞에 02가 찍혀 있어서 받을까 말까 고민이 됐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전활 받았는데, 좋던 기분이 한순간에 추락했다.
-경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