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29)
작가귀환-129화(129/250)
요즘 가장 핫한 소재라서 예진 역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저희 아카데미 작가님들한테도 다 보시라고 권해 드렸어요. 대표님 작품하고 함께요.”
‘그 용사가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는 법’과 ‘군대에서 축구한 썰’처럼 파격적인 작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이게 볼 때는 쉬워도 새로운 장르나 소재를 잘 살린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잘했어. 뭐든 봐야 돼. 특히 잘되는 건 더더욱.”
인풋 없이 아웃풋을 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걸 상쇄할 만한 재능이나 경험이 있을 때 외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
누군가는 그냥 뚝딱 만들어도 사람들이 큰 호응을 해 주는 작품을 쓰기도 하지만, 그건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그거, 대표님 작품 진짜 아니죠?”
예진이 웃으며 물었다.
“이번엔 아니라니까.”
농담인 걸 알면서도 입맛이 씁쓸했다. 두 작품의 연재 시기와 분위기, 소재가 너무도 일치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 사람이 하는 기획작처럼 보일 것이다.
“이런 형태로 우리도 공격적으로 나가야 해. 기존의 클리셰와 소재만 밟아 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상상력을 실체화할 수 있도록. 나도 강의 때 더 신경 쓸게.”
나 혼자선 세상을 이길 수 없다. 동료가 필요하고, 그 동료를 모을 수 있는 풀은 갖춰 가고 있다.
‘아카데미 작가님들하고 애착 작가들을 더 도와줘야겠어.’
이러다간 시대에 뒤떨어지는 작품만 생산하는 집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고여 버리면 아무리 깨끗했던 물이라도 썩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아카데미 반을 더 세분화하는 건 어떨까요? 지금은 여성향, 남성향 이렇게 뭉뚱그려서 운영하잖아요? 가령 남성향에서도 현판, 정통 판타지, 무협, 스포츠 이렇게 나누면 더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지 않아요?”
“가르칠 사람이 부족할 건데?”
“찾아봐야죠.”
“해 주면야 우리에겐 큰 힘이 되겠지.”
“알았어요. 추진해 볼게요. 2기가 끝나기 전에 특강으로라도 장르를 나눌 수 있게요.”
생각난 김에 바로 처리하려는지 예진이 옥상에서 내려갔다.
그걸 본 영웅이 말했다.
“소설 쓰는 거 어렵죠?”
“어렵지.”
“뭐가 가장 힘들어요?”
“음, 한 3년 차까진 정신력 유지하는 거?”
“정신력이요?”
“너도 그날그날 기분이 다르잖아. 가까운 사람이 아프거나 아니면 내가 힘들 수도 있고.”
“아…….”
“그럴 때 나는 울어도 소설 속 주인공은 밝아야 할 때가 있겠지?”
“연기네요.”
“맞아. 너처럼, 우리도 연기해야 해. 내 기분대로 써 재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근데 왜? 관심 있어?”
“아뇨.”
녀석이 웃으며 손사래 쳤다.
“저는 연기가 더 좋아요.”
“그래그래. 우리 서로 잘하는 거 하자.”
말은 안 했지만, 예진도 엄청나게 힘들 거다.
본래 사람 상대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아카데미도 수많은 학생이 있고, 우리 소속 작가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고시원에 사는 사람도 다양했다.
그 모든 걸 통제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팀장 놈도 악마가 되었던 거고.’
사람이 선하기만 하면 호구라고 불리는 시대다. 사기꾼도 많고 무조건 남 탓을 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이건 앞으로 10년 후 더 심해질 거다.
‘의리, 낭만. 그런 건 점점 사라지는데.’
소설에선 그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
*
*
【안녕하세요. 저는 메멘토모리 고예진 이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불쑥 인사드리게 된 경위는 다름이 아니라 작가님을 저희 아카데미 특강 강사로 초빙하고 싶어서입니다. 업계 최고 수준으로 강사료를 맞춰 드리겠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는 독자로서 작가님의 경험과 노하우가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확인하시면 꼭 회신 부탁드립니다.】
“허, 허……?”
쪽지를 확인한 그는 어처구니없단 표정으로 웃어 버렸다.
메멘토모리 그놈에게서 연락이 온 것도 황당했는데, 이젠 고예진 이사란다.
“바보냐……?”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작가를 육성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왜 경쟁자를 늘리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작가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기에 어차피 아카데미가 오래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뭐, 하긴 그만큼 내 작품이 좋단 뜻인가?”
고예진의 쪽지는 1번 작가와 5번 작가 모두에게 왔다.
이번엔 운이 참 좋았다. 만약 ‘군대에서 축구한 썰’이 혼자만 이슈가 되었다면 이렇게 빨리 치고 올라갈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페이스메이커가 나타난 게 아닌가?
본래 육상 경기를 할 때도 맨 앞에서 끌어 주며 달리는 사람이 가장 힘들었다. 그걸 메멘토모리가 해 준 거다.
“내일이면 엎치락뒤치락하겠어.”
그가 모니터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서자의 반지가 2등, 군대에서 축구한 썰이 3등이었다.
이제 하루 뒤면 1위 각축전이 벌어진다. 여기에서 최대한 많은 독자를 확보해야 성공적인 유료 전환이 될 것이다.
‘퀄리티가 조금 아쉽지만 이만하면 성적은 대박이지.’
1번 작가의 한계가 뚜렷해서 아직 메멘토모리처럼 능숙하게 스토리를 이끌어 가거나 연출을 잘하진 못했다.
하지만 1번에겐 이 특수환 환경이 주는 압박과 처절함이 있었다. 그 치열한 감정이 고스란히 주인공에게 묻어 축구로 승화되니 독자들이 좋아하는 거다.
‘나도 더 꼼꼼하게 봐야겠지.’
오늘부턴 철야에 돌입해야 할 것 같았다.
1번 작가의 부족함을 그가 다 채우고 있었다. 어떤 날은 1번 작가보다 그가 집필 및 수정한 시간이 더 길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편집이 아닌 공저 형태까지 영역을 넓혔고, 동시에 5번 작가의 작품도 계속 신경 써야 해서 점점 수면 시간이 줄고 있었다.
“내일, 승부를 걸어 봐?”
순수하게 글을 잘 쓴다는 것만으론 시장에서 반드시 1위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여러 조건이 맞물려서 다소 필력이 부족해도 큰 사랑을 받는 작품이 있는 것처럼 그 요소들을 안다면 내 것으로 의도할 수도 있었다.
첫 번째 요소는 물 들어왔을 때 노 젓기였다.
24시간 기준 마지막 화 조회수가 1만이 넘어야 1위 진입권인데, 이렇게 1만이 되려면 12시간은 지나야 한다. 그러니까 12시간이 되기 전에 1편을 더 올리면 이전에 올렸던 편이 24시간이 되어 사라질 때 새로 올린 12시간짜리가 빠르게 상위권으로 붙어서 또 경쟁하는데, 쉽게 말하면 하루 2편을 올려야 유리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지금도 메멘토모리라는 괴물과 경쟁하느라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변화를 주려면 12시간이 아니라 8시간, 혹은 6시간으로 연재 주기를 단축해야 했다.
하루 3~4편을 올려야 하는 가혹한 주기를 버틸 수 있는 작가는 거의 없었지만, 각성한 1번이 13,000글자 정도 써서 넘겨주면 그가 편집 단계에서 늘려서 15,000글자 이상으로 만들어서 2편이 3편이 되는 공을 들이고 있었다.
무조건 늘리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어떤 날은 1번 작가의 원고가 너무 허접해서 10,000글자를 써 오면 7,000글자로 줄이기도 했다.
이런 날까지 감안해서 비축분도 만들어 두어야 했고 갑자기 6번 작가처럼 글을 못 쓰는 최악의 상태도 염두에 둬야 했다.
뭔 소설 하나 쓰는 데 이렇게 다변화하고 골치 아프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러니까 장편 작가가 어려운 거다.
예전 출판 시장처럼 시간을 넉넉히 두고 완성해서 종이책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매일 투쟁하고 경쟁하는 플랫폼 위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음…….”
설명을 길게 해 봐야 의미 없었다. 포인트는 1번 작가가 글을 더 많이 빨리 써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그에게 채팅했다.
【유료 1위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죠? 가장 중요한 건 무료일 때 최대한 많은 사람을 끌고 가야 한다는 겁니다. 희망적인 것은 지금 작가님 작품의 기세가 좋아서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제 데이터대로 가면 일주일 후 유료 첫날 1위도 가능합니다.】
1번 작가가 그의 메시지를 읽고 움찔했다.
【유료 1등은 아직도 지리산 엘프?】
【그렇습니다. 500 차이로 2위가 5번 작가님 소설이고요. 참고로 작가님의 작품은 지금 무료에서 지리산 엘프 작가의 차기작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지금보다 1편만 더 쓰면 됩니다.】
【이미 두세 편씩 쓰고 있어!】
【그러니까 1편만 더요. 앞으로의 일주일이 작가님의 일 년을 결정합니다. 이런 기회가 다시 오는 것도 쉽지 않고요. 죽을 각오로 쓰세요. 작가님은 특별히 10일간 소등하지 않겠습니다.】
【잠도 자지 말고 쓰라는 거?】
【뭐가 더 중요한지 선택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댁이 해 보시든가!】
작가 놈들에게 계속 정보를 전해 주고 있었기에 자기들도 얼마나 좋은 판이 깔렸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이 흥행하면 싸가지가 없어질까? 숨겨 놓았던 본성이 튀어나오는 걸 수도 있겠지만 지금 자극하면 안 된다.
“후…… 참자. 하루 이틀도 아닌데.”
이놈들이 이래서 이런 사업까지 벌이게 된 거다.
무책임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제 잘난 맛에 사는 것들.
오죽하면 출판사 신입 PD 퇴사율이 1년에 70%에 육박할까? 3년 잡으면 85%까지 올라간다.
PD라고 하면 다들 처음엔 멋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입사했다가 혼자 40명씩 작가 관리를 해 보면 인간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낀다.
“…….”
그도 사람이었다. 그래서 분노를 풀 수단을 무의식중에 찾았다.
【언제까지 밥버러지처럼 살 겁니까?】
2번 작가에게 하는 쓴소리였다.
1번은 무료에서 잘되고 있고, 3번은 아이디어 뱅크로, 4번은 3번의 도우미로 활약하고 있다.
5번 6번은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니까 놔둬도, 2번은 전형적인 ‘대책 없음’ 유형이었다.
【나 원래 벌레 맞아요.】
【벌레는 유익한 것들이라도 있지요. 밥버러지라고요. 먹고 싸는 쓰레기요. 여기가 우스워 보이는 모양인데,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 방, 다른 분을 위해 비워 줘야죠.】
【안 되는 걸 어쩌라고요!】
【다들 안 되도 되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부모가 아닙니다. 투정 부리지 마세요.】
처음엔 2번이 여자니까 어떤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은 2번에게 관심이 없었다.
연애 감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패착이었다. 물론 반대로 해도 마찬가지다. 2번이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 역시 없었으니까.
아무 가치도 없다? 어떤 쓸모도 찾을 수 없다?
“쓰레기는…….”
뭔가 하는 것 같다가도 안 하고 또 고민하는 것 같다가도 포기하고. 이것만 반복하고 있는 2번은 눈엣가시가 되고 있었다. 차라리 3번은 가끔 웃기기라도 하지.
아무튼 물 들어왔을 때 노 젓기에 이어 두 번째 요소는 평정심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기인데, 독자 댓글에 휘둘리지도 말고 지금 성적에 낙관하거나 비관하지도 말고 앞을 보면서 묵묵히 달려가는 뚝심이었다.
이 부분은 어차피 1번이 아니라 그가 관장하는 영역이니까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든 피드백을 무시하란 건 아니다. 어떤 조언은 도움이 되고 어떤 비난은 무시해야 한다.
그걸 가려내는 것 또한 경험과 연륜이 필요했다.
“치워야지.”
2번 모니터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