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38)
작가귀환-138화(138/250)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고 새벽 4시에 알람을 듣고 일어났다.
지정된 샵에 가서 헤어스타일링과 메이크업을 하고 아침 8시에 방송국에 들어갔다.
리허설은 오후 2시였지만 남은 시간 동안 연습에 매진해야 했다.
대기실은 숨 막힐 정도의 긴장감이 감돌았고, 10명의 참가자는 입술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같은 심정이었다.
오늘은 개인전이다. 함께 상경한 절친도 이번 무대는 따로 올라가야 했다.
혜리는 여전히 그 아름다운 보컬로 승부를 할 생각이었고 미애는 걸크러시+퇴폐적인 섹시미를 발산할 것이다.
당연히 의상도 그렇게 입었다. 검은색 스타킹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고 가죽 소재의 상의를 걸쳤다.
이렇게 해도 혜리의 통기타 하나를 이기기 어렵겠지만, 미애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절반 안에만 들면 돼.’
며칠간 춤도 미친 듯이 연습했다.
대한민국에선 솔로 여가수의 수가 많진 않았지만, 한 번씩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오늘 그녀가 준비한 곡은 번화가 뒷골목 소녀의 사랑 이야기였다.
남들은 노는 애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지만, 겉모습이 어떻든 소녀의 사랑은 똑같다는 것이 주제였다.
6개월 전에 그녀가 직접 작사, 작곡했던 노래였고, 오늘 무대를 위해 다시 편곡했다. 본랜 혜리가 보컬이었는데, 그 부분을 빼야 했기 때문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그녀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연습하자 혜리가 다가왔다.
“내가 먼저네.”
“응.”
리허설 순서 얘기다.
“그렇게 떨려?”
“당연하잖아. 마지막이니까.”
혜리가 섬마을 소녀 콘셉트라면 미애는 도쿄 어딘가에서 볼 법한 차림이었기에 두 사람이 함께 있으니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이쁘다.”
부럽다는 듯 혜리가 미애의 스타킹을 손으로 쓸었다.
“너도 예뻐.”
부스스한 혜리의 곱슬머리도 귀여웠다. 노랗고 커다란 개 같달까?
이때 대기실 문이 열렸다.
‘엇? 대표님이다!’
‘이사라 대표님도 있어!’
‘민 팀장님이야!’
모두의 시선이 문가로 쏠렸는데, 양손 가득 종이 가방을 들고 온 메멘토모리 대표가 테이블에 그걸 내려놓고 말했다.
“간식 좀 사 왔습니다.”
떡볶이, 순대, 튀김, 김밥까지 한가득이었다.
옆에서 민 팀장이 웃으며 사람들을 봤다.
“무대 선다고 쫄쫄 굶은 거 아니까 다들 와서 먹어요. 밥심으로 버텨야 하는 게 아이돌이에요. 앞으로도 대기실에서 뭘 먹는 걸 적응해야 하니까, 입맛 없어도 조금 들어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우르르 다가오는 표정엔 조금이라도 눈도장을 찍겠다는 간절함까지 있었다. 카메라가 돌고 있지 않아도 다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두 시간 남았으니까 조금은 괜찮겠지.’
정오가 막 지나고 있었다. 혜리는 재빨리 좋은 자리를 선점하더니 와구와구 떡볶이를 흡입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미애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흔들었다.
“우왕, 진짜 맛있어. 미애야! 빨리 이거 먹어 봐! 김밥 안에 돈가스가 들어 있어!”
민 팀장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그럼 이따 만나요.”
“고맙습니다!”
그들이 나가자 참가자들만 남겨졌다.
카메라가 계속 돌고 있어서 감정싸움을 하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모였던 이들이 금세 흩어졌다. 남아서 먹는 사람은 미애와 혜리가 유일했다.
우물우물, 양 볼 가득 순대를 넣고 혜리가 말했다.
“진짜 맛있다. 서울은 순대도 맛있네.”
생각해 보니까 이게 오늘 첫 끼니였다. 워낙 새벽부터 움직여서 뭘 먹을 틈이 없었다.
“천천히 먹어.”
“그러고 있는 거야.”
미애도 옆에서 조금씩 거들었다. 긴장 때문에 뭘 먹으면 토할 것 같았지만, 막상 입에 넣으니까 맛있었다.
“아! 이제 살겠다!”
혜리 혼자 2인분은 먹어 치운 것 같았다. 어묵 국물까지 시원하게 들이켜더니 티슈로 입을 닦았다.
“이거, 남으면 싸 가도 되나?”
너무 많은 음식이 남아서 못내 아쉬운 것 같았다.
“…….”
이게 소설이었다면 저쪽에서 빌런 여자애가 ‘돼지 같은 게.’라며 중얼거리는 게 들렸겠지만, 현실에선 그렇게 나쁜 사람은 없었다. 모두 혜리를 보며 귀엽다는 듯 웃었다.
떡볶이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나? 그저 지금은 먹히지 않을 뿐이다.
“리허설 한 시간 전입니다!”
FD가 들어와서 외쳤다.
*
*
*
나는 이사라와 카페에 왔다. 대기실에 들러서 응원도 하며 방송 분량도 확보했고, 리허설을 참관할 필요까진 없어서 미뤄 뒀던 일 얘길 했다.
“사상 최강의 아이돌도 드라마화 못 했는데, 서자의 반지라니. 후……. 사람 맞아요?”
“전부 다 드라마화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할 거잖아요.”
“운이 좋으면 그렇게 되겠죠?”
이사라가 곱게 나를 째려봤다. 얄미운 모양인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집필을 게을리할 순 없지 않은가?
“더 퀸이 오늘 시청률 22%로 마감하면, 연일 대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도 솔로는 보셨죠?”
“네, 인기 많더라고요.”
“바로 정규 편성해서 출연자 모은다고 해요. 대표님도 투자하실 거죠?”
“그래야죠.”
손만 대면 뻥뻥 터지고 있으니 남들이 볼 땐 신기할 거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어서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다. 아마 몰랐다면 백 번은 고민했겠지.
“강철의 부대까지 흥행하면, 올해 큰 수익을 낼 수 있어요. 돈 벌면 뭐 하실 생각이세요?”
“글쎄요. 아마 회사 소속 작가님들 웹툰을 더 만들지 않을까요?”
웹툰은 돈이 든다. 영화나 드라마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웹소설 작가가 웹툰을 만들긴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게 웹소설 작가들의 꿈처럼 되는 시기가 오면, 이제 웹툰이 되냐 마냐에 따라 소설 판매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걸 돕고 싶었다.
“걸 그룹은 언제 데뷔시킬 예정이세요?”
“올해 안에요.”
“투자는 필요 없고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언제든 궁하면 말씀하세요. 대표님 하시는 일은 뭐든 숟가락 들고 갈 테니까요.”
노골적으로 말해도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는 건 그녀라서다. 돈보다도 의리와 신의가 더 깊었다.
“진짜 투자라고 한다면 사실 다른 게 있습니다.”
“네? 뭔데요?”
“애니메이션이요.”
“어? 이제 그쪽까지 손대시려고요?”
“본격적인 건 아니고, 한 작품만 먼저 제작해 보려고요.”
나이 좀 있는 사람은 ‘만화영화’ 정도로 인식할 수도 있겠지만,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만들려면 드라마에 버금갈 정도로 돈이 들었다.
그렇게 자금을 때려 부어서 만들어도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했는데, 유일하게 큰 소비를 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번역해서 세계시장에 내놓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만큼 확실한 원작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있습니다.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으실 겁니다.”
“좋아요. 그건 본격적으로 일이 추진되면 회의해 보죠.”
“돈이 더 들어도 국내외 최고의 기술자들로 팀을 구성해야 합니다.”
“총제작비를 얼마 보세요?”
“100억이요.”
“후…… 생각 이상인데요?”
“극장판이나 여러 굿즈 사업까지 추진하려면, 더 들 수도 있고요.”
우리나라에선 100억이면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었다.
한류를 타고 해외시장에서도 잘 팔렸고, 공중파에서 10%의 시청률만 넘겨도 광고료로 버틸 수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애니메이션이 성공했던 사례가 있었던가요?”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 확신하신다고요?”
“반반이죠. 세상일 모르는 거니까요.”
내가 우려하는 건 제작사가 한국이라는 거다. 원래대로 일본에서 만들어 유통했다면 대흥행을 했겠지만, 나로 인해 변수가 생겼다.
좋은 콘텐츠는 무조건 팔린다지만 그것도 여러 요소에 따라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알겠어요. 원고, 볼 수 있나요?”
“지금 수정 중입니다. 1권 완성되는 시점에 보여 드리죠.”
“네, 좋아요. 이 건은 그때 다시 이야기해요.”
사상 최강의 아이돌과 서자의 반지에 대해 좀 더 얘길 나누자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과연 이 IP가 얼마의 가치를 지녔냐 하는 것이다.
돈이 있어서 어디엔가 투자를 하려고 한다면, 부동산을 제외하고 기업, 사람, 콘텐츠 이 셋 중 하나를 떠올릴 텐데 가장 불투명한 게 콘텐츠이기도 했다.
이사라가 뭘 우려하는지 알기에 나도 채근하진 않았다.
공멸의 칼이 완성되면 투자자는 사방에서 날아들 것이고, 내가 그때까지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면 혼자 해도 되는 사업이었다.
“슬슬 일어날까요?”
다시 오늘의 일로 돌아왔다.
대망의 더 퀸 마지막 날이자, 생존자는 우리 식구가 되어 블랙잉크로 데뷔할 것이다.
이미 디엠을 키워 봤기 때문에 불안하진 않다. 어떤 방식이 먹힐지도 아니까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일이다.
남은 건 사건 사고 없이 우리 뜻대로 아이돌이 잘 자라 주는 거다.
사람에 투자하는 방식인데, 콘텐츠보다는 직관적이고 훨씬 컨트롤 영역이 많았다.
녹화장으로 돌아왔다.
이미 리허설이 끝나고 이제 최종 무대 점검만 남은 상황이었다.
나는 심사석에 앉아서 다른 이들과 인사를 나눈 뒤 민 팀장에게 물었다.
“곡은 알아보셨어요?”
“네.”
빠른 데뷔가 목적이었기에 민 팀장은 모든 준비를 갖추는 중이었다.
무대에 서려면 곡이 있어야 하고 안무도 짜야 하며 팀원 간의 호흡도 맞춰야 했다.
민 팀장이 선수이니 알아서 잘하겠지만, 대표로서 확인하는 절차는 필요했다.
“몇몇 후보군이 있는데, 내일쯤 함께 들어 보고 판단해요.”
“좋은 곡이 많나 봅니다.”
“딱, ‘이거다!’ 하는 게 없다는 말이기도 해서요.”
“그렇군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디엠은 연일 팬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 강철의 부대가 방송으로 나가면 더 파급력이 클 것 같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아이돌 팬덤 문화가 아니라 안방에 침투해서 모두를 감동시키면, 순식간에 얼굴이 알려질 것이다.
디엠은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이제 하나 봐요.”
조명이 맞춰졌다. 사회자가 나와서 마이크를 테스트했고 방청석이 고요해졌다.
더 퀸은 여자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이었는데, 자극적인 편집이나 사연 팔이 없이 순수하게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것이 시청자에게 어필됐고, 김 PD의 능력도 출중했다.
영화에서 감독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가 알듯이 예능에서 PD는 기둥이나 마찬가지였다.
-대국민 오디션! 그 마지막 무대의 막이 오릅니다! 과연 누가 여왕의 자리에 올라설 것인가! 오늘의 결과로 새로운 아이돌이 탄생할 텐데요. 이미 이곳은 뜨거운 열기로 뒤덮여 있습니다. 여왕의 탄생! 더 퀸! 바로 시작합니다!
심사석에서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충 누구를 찍어야겠다, 마음속으로 정해 뒀겠지만, 이 무대를 실패하면 말짱 헛것이었다.
저 어린 소녀들에겐 너무도 가혹한 부담이 되겠지만, 이걸 이겨 내지 못하면 앞으로 데뷔해서도 적응하기 어려울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잘하자.’
조명이 꺼지자 나도 숨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