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48)
작가귀환-148화(148/250)
“후우우우…….”
두 손으로 얼굴을 거세게 때렸다.
짜악!
손가락 선이 자국으로 남을 정도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라리 잘됐잖아.”
8번은 상황을 이해했다. 납치된 거다.
근데 이게 꼭 나쁘다고 볼 순 없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부모님은 그녀를 돈 나오는 구멍 정도로 인식했고, 학창 시절에도 계속 알바를 하며 돈을 바쳐야 했다.
그나마 웹툰 작가의 꿈이라도 없었다면 진즉 죽어 버렸을 것이다.
“먹여 주고 재워 주는데 개꿀.”
심지어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하던 커뮤니티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가님은 7번 작가와 함께 웹툰을 완성하면 됩니다.
어제 알바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차가 따라왔다. 먼저 가라고 비켜 줬는데 문이 벌컥 열렸고, 그녀의 얼굴에 커다란 천이 덮쳐 왔을 때 정신을 잃었다.
‘어제 그 사람인가?’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그를 본 것 같긴 한데,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다.
-며칠 마음을 다스릴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소설과 웹툰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구상해 보세요. 하지만 작가님의 시간이 무한한 건 아닙니다. 일을 해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점. 명심하세요.
‘작가…….’
이렇게 불릴 수 있다니 가슴이 뛰었다.
어려서부터 가정 폭력을 당해 와서 그녀는 표정이 없었다.
학교에선 재수 없다고 맞았고 집에선 쓸모없다며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선 작가다.
그녀의 손이 키보드 위로 올라갔다.
‘이렇게 하는 건가?’
채팅 시스템은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뭐부터 하면 됨? -8】
【소설과 웹툰을 읽으라고 했습니다.】
【이미 볼 건 다 봤는데. 그냥 일하면 안 됨? -8】
【원하신다면…….】
그가 7번 작가와 대화하라고 했다. 겉으론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그녀였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활발했었다. 이렇게 얼굴 보면서 채팅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님이 메인인가여? -8】
【그런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7】
【저는 배경하고 채색 잘해여. 인물은 아직 초보고여 -8】
【그래요? 콘티 보실래요? -7】
【있으면 주세여 -8】
모니터 속 7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파일은 팀장을 통해서 전해졌다.
‘올, 괜찮은데?’
콘티가 꽤 세세했다. 내용도 신선했고.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어때요? -7】
【재밌어여 –8】
7번은 예뻤다. 학교 다닐 때 저렇게 생긴 여자애들은 인기를 한 몸에 받았었다.
정확히 그 반대 지점에 그녀가 있었다. 말 한번 건네 본 적도 없이 다른 세상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선 저렇게 예쁜 사람이 동료였다.
‘어쩌면 저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볼까?’
그녀는 이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조울증이 있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다행이다! 이 콘티 하루 걸렸거든요. 이렇게만 하면 일정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7】
【제가 배경 그리고 색 입히는 것까지 하면 되는 거죠? -8】
【명암도요 –7】
【그건 기본이고여 -8】
【그래 주시면 제가 스케치하고 펜 터치까지 해서 5일 잡을게요. -7】
【안 돼여, 늦어여. 4일 반나절엔 끝내야 일주일에 칠 수 있어여 -8】
【음, 알겠어요. 노력해 볼게요. -7】
【대신 식자랑 편집은 제가 할게여 -8】
【정말요? 그래 주시면 고맙죠! -7】
이 사무실에 들어온 작가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일을 시작하는 8번이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7번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걸 물끄러미 보던 1번이 채팅했다.
【둘이 뭐 하심? -1】
하지만 7번과 8번은 웹툰 얘기에 푹 빠져서 1번을 무시했다.
콘티를 짠 작품으로 정할지 아니면 다른 작품도 해 볼지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팀장은 흡족한 듯 웃었다.
‘의외인데?’
‘너무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서 미쳐 버렸나?’ 하고 오해했었는데, 원래 그런 여자였던 것 같았다.
생긴 건 음침했지만 작업만 잘하면 외모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식판을 닦았다. 배식을 하기 전에 8번을 떠올렸다.
차에 태울 때 맡았던 쾨쾨한 냄새가 떠올랐다. 눅눅한 곰팡내와 비슷했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녀에겐 여기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더 좋아졌다.
7번의 식판엔 밥과 반찬을 조금만 떴다. 식탐이 많지 않아서 늘 남기는 여자다.
반대로 8번은 듬뿍 떠 줬다. 잘 적응해 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담겼다.
‘둘이면 되겠지?’
웹툰은 그도 초보라서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진 모르겠지만 7번과 8번이 별말이 없는 걸 보니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배식을 끝내고 돌아오니 모니터에 8번이 미친 듯이 밥을 먹어 치우는 게 보였다. 넉넉하게 담았다고 여겼는데 벌써 바닥을 보였다.
다른 작가들도 놀랐는지 멍하니 8번을 보고 있었다.
식판을 들더니 국물까지 후루룩 마신 8번이 소매로 입가를 스윽 닦았다.
【돌도 씹어 드시겠네 -1】
저렇게 먹는데 왜 뼈밖에 없을까?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튼 다음부턴 더 양을 늘려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팀장이 오늘 연재될 소설 원고를 체크했다. 신입을 데려오고 이렇게 마음이 편한 날도 없었던 것 같았다.
‘감자나 고구마도 식단에 추가해야겠어.’
이건 생각지도 못한 변화였는데, 8번의 먹성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시점이었다.
*
*
*
엊그제 매서운 추위에 몸살을 앓았던 것 같은데, 완연한 4월의 밤바람이 불고 있었다.
우린 옥상에 모였다. 진성과 진국이 출연한 강철의 부대가 첫방을 하는 날이었다.
뿌우-!
장난감 피리 같은 걸 불기도 하고 고깔 같은 걸 머리에 쓰기도 하며 블랙잉크 멤버들이 신이 나 있었다.
디엠 애들은 익숙한 듯 자리를 세팅했고. 삼겹살을 올릴 불판 여러 개가 동원됐는데, 아이돌도 먹고 사는 건 다 똑같다.
“대표님, 이거요.”
보라가 폭죽을 하나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나는 행군까지 본 마당이라 첫방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달랐다.
일단 새로운 콘텐츠였고 오늘 방송이 나가면 큰 이슈를 몰고 올 것이 분명했다.
‘5%만 넘어도 된다고 했었는데.’
그 정도 시청률을 보고 투자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아는 미래가 틀어질 수도 있었기에 조마조마했다.
더 퀸에 이어 나도 솔로까지 연타석 홈런을 쳤는데,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지 초유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낮에 김 PD가 직접 내게 전활 걸어서 편집이 아주 잘됐다며 자화자찬을 하기까지 했으니 이제 까 봐야 했다.
블랙잉크 애들까지 합류해서 옥상은 더욱 북적거렸다. 잠깐 남는 시간에 고양이와 놀기도 하고 서로 수다도 떨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보니 잘 적응한 것 같았다.
진성이가 상추를 한가득 씻어 왔다. 저런 걸 보면 군복이 아니라 앞치마가 훨씬 잘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없어. 앉아.”
“마늘만 썰고요.”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는 진성을 보면서 나는 그저 웃었다. 그사이에 예진이 다가왔다.
“이 대표님도 오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차가 막히시나?”
예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문가를 바라보는데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조금 늦었습니다!”
애착 작가들이 도착했다. 7번, 그녀도 함께였다.
케이크와 과일 등을 사 왔는데, 블랙잉크 애들을 보면서 꺄아-! 예뻐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더 퀸을 본 것이다.
“벌써 우리보다 유명하네.”
진국이 투덜거리며 작가들에게 자릴 안내해 줬다.
7번이 내게 몰래 눈인사를 건네며 멀어졌다. 우린 공식적으로 비밀 연애 중이라서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민 팀장과 매니저들, 아이돌과 작가들까지 모이니 옥상이 꽉 찼다.
미성년자들은 음료수, 어른들은 맥주를 들었다. 드라마 본방 사수 할 때도 이랬던 것 같은데, 오늘 주인공은 진성과 진국이어서 녀석들이 한마디씩 하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뒤가 더 재미있으니까 계속 챙겨 봐 주세요!”
디엠 팬 카페엔 진즉에 소식이 전해졌다.
사상 최강의 아이돌로 디엠을 접한 이들은 꽃미남 군단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겠지만, 그것도 오늘 방송이 나간 뒤엔 180도 바뀔 것이다.
“디엠! 최고로 가자!”
“가자!”
잔들이 부딪히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시작한다!”
“와! 떨려!”
“우리 진성이! 잘생겼다!”
막 광고가 끝났을 때 지각생이 도착했다.
“으악! 아직이죠?”
이사라가 양손에 샴페인을 들고 나타났다.
“지금 시작해요!”
예진이 손을 흔들자 이사라가 황급히 뛰어와서 내 옆에 앉았다.
“진성 씨! 진국 씨! 축하해요!”
이사라가 소리치며 팔을 흔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화면으로 모였을 때 사회자가 말했다.
-이제까지 이런 프로그램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강을 가리는 서바이벌! 그 화려한 무대의 막이 지금 오릅니다!
나는 몇 번이나 감동을 받으며 본 모습들이 섬네일처럼 지나갔다.
주로 진성과 진국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는데, 이건 우리 애들이라서 밀어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지금까지 촬영한 분량의 주인공이 누가 봐도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태훈 씨도 왔으면 좋았을 것을.’
전직 백화점 보안 요원은 내일 있을 촬영 때까지 절대 안정을 취하며 무조건 베스트 컨디션을 만든다며 두문불출한단다. 더는 민폐 캐릭터로 남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와, 다들 무시무시한데요?”
“여기서 탈락하진 않죠?”
“하하! 비밀입니다!”
사람들이 궁금해했지만, 진국인 PD와의 약속을 지켰다.
출연자들과 관계자들은 방송이 나갈 때까진 절대 녹화 진행 상황을 알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그게 얼만큼 법적 효력이 있는진 몰라도 의리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진성과 진국이 발설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제가 전역한 진 좀 됐지만, 아이돌한텐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아이돌이요? 아이돌이 참가했다고요? 하, 이거 실망인데요? 최고의 대원만 모아 놨다고 들었는데요.
-저 자신과 싸울 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솔직히 관심 없거든요.
몇몇 출연자의 인터뷰가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진성과 진국을 겨냥한 인터뷰가 노골적으로 전파를 탔는데, 나도 촬영장에서 보지 않았다면 저 화면을 보며 절로 고개를 끄덕였을 수도 있겠다.
“아오! 열 받네? 진성이 형! 저 사람들 다 밟아 줬죠?”
얌전한 해진이 울컥할 정도였으니 말해 뭐 할까.
“흐흐흐,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진국이 너스레를 떨자 안심이 됐는지 해진이 콜라를 벌컥 마셨다.
지민과 해진은 술을 즐기지 않았다. 반대로 진국인 벌써 2캔째였다.
부대를 소개하면서 출연자들의 기 싸움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첫 번째 미션 장소로 향했다.
일부러 그랬는지 30분 정도 지났는데, 진성과 진국의 수색대는 공공의 적처럼 편집됐다. 첫 미션에서 탈락할 것 같은 부대 1위에 뽑히기도 했다.
“김 PD님도 참, 장난이 심하시다니까.”
내가 웃으며 말하자 이사라가 웃었다.
“그게 그분 인기의 비결이죠. 지금까진 상당히 좋아요. 시청률 얼마나 나오고 있나 전화해 볼까요?”
“1부 끝나면 하죠.”
“그래요.”
우리 둘 다 여기에 투자했기에 시청률은 곧장 돈과 직결된다. JJ 그룹 광고도 많이 넣어 놔서 이 프로그램의 성공이 그녀의 입지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제 다들 까무러치겠네.’
화면 안의 진성이가 모두를 놀라게 할 출격을 대기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