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55)
작가귀환-155화(155/250)
【궁금했지만 시험 기간이라서 억지로 여기까지 보고 잠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까 마차였다.
“허억-!”
학교 가야 하는데?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여주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마차는 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황제의 13번째 후궁이었다. 앞에서 12명이 죽어 나가지만 않았으면 앞으로 꽃길만 걷자! 룰루랄라 했을 건데 소설 내용을 알고 있으니까 도착하면 죽음뿐이었다. 대체 황제의 부인은 왜 죽어 나갈까? 정말 소설에 들어온 걸까? 여주는 마차 안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궁에 도착하니까 대신들이 반겨 주었다. 곧 죽을 후궁이었지만 그들은 한 줄기 희망을 기대했다. 한껏 예쁘게 치장하고 황제로 보러 갔다. 우와! 잘생겼다! 하지만 황제도 부인이 계속 죽어서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더 써야지! 어서!”
팀장은 3번 작가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3번 작가는 더 떠오르지 않는지 머리를 쥐어뜯다가 침대로 가더니 벌러덩 누워 버렸다.
“이런 개…….”
쓰기 시작한 지 1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뻗나? 짧은 시간에 세 작품이나 쓴 건 칭찬할 일이었지만, 이게 소설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까 화가 난다.
“하아……. 내 팔자야.”
‘저 자식은 7번의 지구력을 보며 뭐 느끼는 것도 없는 건가?’
“그래도…….”
몇몇 부분은 재미있었다. 일단 판단은 2번 작가에게 맡기자.
그가 3번의 소설들을 2번 작가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뭔…. -2】
“그래, 알아. 황당하겠지.”
하지만 이런 도입부는 2번의 머릿속에서 절대 나올 수 없었다. 그 고지식함을 깨야만 하는 거다.
【하나 잡아도 좋고 다 뒤섞어도 되고 어떻게든 살려 보세요.】
눈높이가 같아야 피드백이 의미가 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야 어떤 부분에서 재미를 찾아야 하는지 아는 거다.
필력이 차이 나도 방향만 맞으면 된다는 뜻인데, 2번의 잔뜩 찌푸린 인상을 보아하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왕세자나 황제를 진국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좀 더 편해질 겁니다.】
【진국이로… -2】
2번 작가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는 걸 팀장은 더 몰아쳤다.
【사랑을 하는 겁니다. 그 과정이 재미있으면 되는 거고요. 작가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여주에 작가님이 빙의하세요. 그런 다음 진국과 사랑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극한 직업에 자괴감이 잠깐 들었지만, 팀장은 애써 아무렇지 않으려고 했다.
소설에 들어가는 설정도 좋았다. 4번의 것을 베낀 것 같은데, 3번은 표절에 대해서 어떤 죄의식도 없는 놈이었다.
【작가님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사무실에서 여성향 감수성은 오직 작가님만 살릴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건 설정이 너무 장난 같은데… -2】
【그건 작가님이 독자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린 겁니다. 작가님이라면 할 수 있어요.】
어떤 웹소설이든 줄거리만 놓고 보면 다 유치한 거다. 거짓말을 진짜로 믿게 하는 시점부터가 재미있는 거고.
팀장은 그걸 알고 있었다.
1번의 군대 축구도, 5번의 아포칼립스도 다 허구 아닌가?
【알았어요. 해 볼게요. -2】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으로 팀장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점점 더 베이비시터가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처음 사무실을 차릴 때는 가차 없이 작가를 대해야지 생각했었는데, 막상 해 보니까 이렇게 고될 수가 없었다.
‘저 새낀 아직도 누워 있네. 자냐?’
3번 작가를 보면서 감정을 추슬렀다. 성질 같아선 문 열고 들어가서 엉덩이를 걷어차 주고 싶었지만, 매사에 화를 풀었다 간 작가들이 엇나갈 수도 있었다.
2번만 해도 공포보단 사랑이 먹혀들지 않았나?
이따금 넋 놓고 7번을 바라보는 남자들도 있었으니, 그들의 마음이 더 기울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후.”
그가 일어났다. 오늘은 새로운 작가를 데리러 간다.
이 사무실에서 7번이 가장 잘해 주고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돕기 위한 팀원을 구해야 했다.
그가 사무실을 나서자 침대에 누워 있던 3번 작가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의자에 앉았다.
더 써 보려고 했지만 김이 새서 오늘은 집필이 힘들 것 같았다.
모니터를 보던 그가 채팅했다.
【식사권 하나만 빌려줄 분? -3】
【미친, 그건 불가능. 행동 강령 안 봄? -1】
【아, 그런가? 돈가스 먹고 싶은데. -3】
【먹고 싶으면 소설을 쓰라고. 아오. -1】
【쓰고 있거든요! -3】
1번이 원래 까칠하다는 걸 알기에 그는 다른 친구를 찾았다. 가끔 심심해 미칠 것 같으면 이렇게 관심을 끌기도 했다.
‘내가 준 소설이 마음에 들었나? 오늘은 봐주네?’
잡담 금지였지만 살살 떠보는 건 3번의 재능이었다.
【7번 작가님은 남자 친구 있어요? -3】
개인 정보를 물어보는 건 금기 사항이었지만 남자들은 태클을 걸지 않고 눈동자를 반짝이며 모니터를 보았다.
7번이 풋, 웃으며 답했다.
【아니요. -7】
【오! 잘됐네요. -3】
【뭐가 잘됐다는 거죠? -7】
【우리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 없어요? -3】
【아니아니, 뭐가 잘됐냐고요. -7】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로 집요한 성격? 아무나 골라 봐요. -3】
【왜 골라요. 물건도 아닌데. -7】
3번도 정상은 아니었다. 원래 그런 편이었는데 여기 오고 나선 더 심해졌다.
【1번 VS 5번! 지구상에 남자가 이렇게 둘만 남았다면? -3】
질문은 3번이 했는데 모니터 속 1번과 5번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변했다.
【이렇게 당연한 걸 질문이라고. -1】
【상대가 사람이 아닌데? 짐승은 반칙이지. -5】
【뭐? 죽을래? -1】
【이번 라운드는 무난하게 내가 이기겠군, 후후. 편하게 선택해라, 여자. 답은 정해져 있으니. -5】
이게 뭐라고 다들 이렇게 진지한 표정일까?
“킥킥……!”
재미있다는 듯 웃던 3번이 7번을 독촉했다.
【10초 안에 선택 안 하면 탈모 옴. -3】
【뭐라고요? -7】
【무조건 머리 빠짐. 아무튼 진짜 대머리 됨. -3】
궁지에 몰린 7번을 도우려는 듯 8번이 나섰다.
【그냥 혼자 살랭. 머리 벗겨져도 혼자면 상관없징. -8】
【그 얼굴로 귀여운 말투 쓰지 말아 줄래요? 소름 끼치니까. -3】
【머랭. 님은 거울 안 봄? -8】
8번의 물타기에도 3번은 꿋꿋했다.
【탈모까지 5초. -3】
【탈모까지 3초. -3】
의외로 이런 거에 약했는지 7번은 괴로워하다가 선택했다.
【5번요! -7】
그녀의 선택에 모두가 놀랐다. 1번은 반응조차 할 수 없는지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후후, 보는 눈이 있군. 하지만 나는 너의 마음을 받아 줄 수 없다, 여자. 내가 감정을 느끼는 대상은 2D뿐이거든, 후후. -5】
3번도 결과가 의외였는지 머뭇거리다가 푸핫! 웃더니 재빨리 다음으로 넘어갔다. 언제 팀장이 제재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4번 VS 6번. 10초 안에 선택 안 하면 밤에 침대 밑에서 바퀴벌레 나옴.】
앞선 것이 최악 대 차악이었다면 이번엔 평범과 무난이라서 고르기 어려웠다.
그녀가 왜 1번 대신 5번을 골랐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시간 따윈 없었다.
【4번이요.. -7】
【감사합니다 -4】
【놀고들 자빠졌네. -1】
【어이어이, 패배자는 빠지라고. -5】
이렇게 화목한 시간은 처음이었다. 별거 아닌 일에 다들 하나가 되어 게임을 하고 있다니? 여전히 선택의 이유가 궁금했지만 진도부터 나가야 했다.
【결승전! 5번 VS 4번!】
이젠 페널티도 걸지 않는 3번이었다. 그래도 7번은 곧장 선택했다.
【4번! -7】
【와아아아! -8】
【쳇. 한마디 했다고 삐치긴. 나는 너의 마음을 받아 줄 수 없는 남자라고. -5】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는데? -1】
【어이어이, 최악의 남자. 꼴등은 짜져 있어. -5】
【이 돼지 새끼가! -1】
퍼억-!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라?”
3번 작가는 1번의 주먹이 모니터로 날아오는 것까지 봤다. 그 이후 1번의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뭐랴? 왜 암것도 안 보여 헐? -1】
화를 이기지 못하고 모니터를 부순 것 같았다.
“크크, 넌 큰일 났다.”
꼴좋다는 듯 3번이 웃어 댔다. 곧 팀장이 1번에게 가서 처절한 응징을 할 것이다.
한바탕 놀고 나니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채팅창은 아직도 시끄러운 것 같지만 그는 아까 썼던 원고를 불러왔다.
“역시 빌런이 있어야 재미있지.”
싸가지, 멍청이, 오타쿠, 평범녀 등등을 경쟁자로 놓고 여주가 경합을 벌이는 것으로 추가했다.
“훨씬 좋네. 난 좀 천재인 듯?”
팀장에게 파일을 보내 놓고 그는 흐뭇하게 모니터를 봤다.
【저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4】
【별 뜻은 없었어요. -7】
【….아…. 그렇습니까… -4】
정작 탈락한 6번은 신경도 안 쓰는데 4번이 묘하게 패배자의 얼굴이었다. 1번의 모니터는 아직도 까맣다.
*
*
*
2박 3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수색대는 죽기 직전까지 훈련에 매진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오랜만에 푹 쉬었다.
작가들이라서 그런지 만나면 늘 소설 얘기였고 나와 7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눈을 마주친다든지 살짝 손끝을 스친다든지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떠올려 보면 그녀의 웃는 얼굴만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을 생각할 때 이렇게 가슴이 따듯해지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인데, 내가 갇혀 있을 때 그녀가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어 준 것과도 비슷했다.
‘밖에서 보면 비극이라도 로맨스가 있다면 버텨 낼 수 있지.’
이건 내가 경험해 봐서 안다. 짝사랑도 사랑이라고 있는 것과 없는 건 천지 차이였다.
생각해 보니까 그때 이런 감정을 품었던 건 나 혼자였나? 남들은 어떻게 이겨 낸 거지?
어쩌면 나 말고도 7번을 좋아한 사람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모두에게 다정했고 예뻤으며 밝았다. 나같이 어두운 놈이 감히 그녀의 빛에 닿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만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해요?”
진성이 내 얼굴을 봤는지 물었다.
“어, 일어났냐?”
“그냥 눈만 감고 있었어요.”
“자야지. 피곤할 텐데.”
오늘 아침에도 해 뜨기 전에 일어나서 훈련한 진성 패거리였다.
차라리 군대의 일과가 편할지도 모를 정도로, 진성이는 요 며칠을 참으로 알차게 썼다.
물론 그건 진성이 얘기고 태훈은 맨 뒷자리에서 시체처럼 쓰러져 있었다. 저게 정상일 거다.
나는 몸을 돌려 물었다.
“댕댕이 작가님이 너 계속 쳐다보던데.”
“알죠. 그렇게 보는데.”
“아는구나.”
그럼 됐다. 선택을 강요하는 건 선 넘는 거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남녀가 알아서들 하겠지.
“영웅이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건데요.”
“다음 주 첫방이잖아. 지금이 제일 바쁠 때겠지.”
어느덧 지리산 엘프를 시청자에게 공개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도 긴장되지만 영웅이는 여러 부담에 밥도 안 넘어갈 거다.
“형님.”
“어?”
“어젯밤에요. 새벽에.”
흠칫.
“1시 좀 안 돼서였나?”
이놈이 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