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61)
작가귀환-161화(161/250)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온 그가 모니터들을 바라보았다.
아홉 명의 작가가 있었다.
사람이 모여 살다 보면 아플 때도 있고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7번 같은 경우 아직 연재를 시작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다른 작가들은 매일 연재하는 웹소설 작가다.
‘비축분을 항상 마련해 둬야겠어.’
이제까진 연참하느라 최대한 몰아쳤지만 7번이 앓아눕는 걸 보고 나니까 다른 작가들도 대비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것 말고도 그는 잡생각을 정리하느라 한참을 고민했다.
생각과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매우 달랐다. 준비할 때는 완벽하다고 여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뜻대로 안 되는 게 너무도 많았다.
‘이달은 그렇다 치고 다음 달엔 승부를 봐야 하니까, 더 철저하게 준비하자.’
2번의 로맨스와 7번의 웹툰, 4번과 6번의 웹소설까지 6월은 진검 승부를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글세상이 아닌 다른 플랫폼을 선택했다.
망할 지리산 엘프 드라마 때문에 그게 끝나기 전까진 글세상에서 원작을 넘어서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플랫폼도 있으니까 너무 한곳에 목을 맬 필욘 없었다.
5번이 채팅했다.
【콜라가 없으니까 글이 안 나온다. 식사권 대출 좀 해 줘 -5】
이렇게 시시콜콜한 요구를 다 들어주다간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동물이 아닌 사람이다. 작은 행복을 챙기지 못하면 무기력해지고 마음이 병들면 몸에 영향이 간다.
【이번만입니다.】
【요시! 좋아!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5】
콜라 정도야 얼마든지 협상 테이블에 올려 줄 수 있었다.
산책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무리한 요구는 들어줄 수 없지만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물품은 괜찮다.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겠지.’
채찍질이라도 하면 마음이 편할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작가들을 최대한 건강하게 오래 부리려면 작은 부분부터 챙겨야 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클래식을 검색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곡 모음’ 같은 거였다.
그걸 스피커에 흘려보냈다.
【갑자기 뭐임? -1】
【듣기 좋네요 -2】
【이제 음악도 틀어 주는 건강? -8】
작가들이 곧장 반응하는 걸 보며 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 병원에 가도 이런 음악이 로비에서 흘러나오면 마음이 조금 안정되지 않나?
【이봐, 음악을 틀 거면 우리 니코짱 노래로 해. 유키짱과 듀엣 한 버전이면 더 좋고 –5】
그게 뭔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일과 시간엔 음악을 틀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그가 7번 CCTV 모니터를 보았다. 깊이 잠들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
복잡한 감정이 그의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이건 좋지 않다. 언제나 냉정하게 저들을 바라봐야 했다.
마음을 다스리려는지 그가 작가들의 원고를 열었다.
어차피 편집부터 교정 교열은 다 그가 맡아야 했다. 작가들도 소설을 쓰면서 현실을 잊겠지만, 그도 이렇게 글을 보며 푹 빠져 있는 시간이 좋았다.
이 절차를 거치면 타인의 작품이 자신의 것으로 둔갑하는 기분도 들었다.
‘이 자식은 계속 맞춤법을 틀리네. 일부러 이러나?’
몇 번이나 고쳐 줬는데 변화가 없었다.
그가 1번에게 채팅했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 때문에와 덕분에의 차이를 왜 계속 혼동하십니까?】
【내가 그랬나? -1】
【주의하세요. 이런 거 하나가 퀄리티를 만드는 겁니다.】
7번 때문인가 조금 날카로워진 그의 심기를 느꼈는지 1번도 별말 없이 순응했다.
그래도 작가들의 소설이 제법 완성도가 높아졌다. 처음 왔을 때는 엉성했는데 계속 쓰다 보니까 적응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몇 작품 더 하다 보면 저 메멘토모리처럼 능숙하게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로맨스가 관건인데.’
놈을 확실히 눌러 버릴 수 있는 장르도 로맨스였고 놈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할 분야도 로맨스였다.
그래서 2번 작가의 소설이 매우 중요했는데, 문제는 그가 로맨스 전문 편집자가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봐도 이게 과연 어떤 수준의 작품인지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엔 남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8번에게 2번의 소설을 보냈다.
【뭔데영? -8】
【보시고 순수한 감상만 말해 주세요.】
【제가 왜영? -8】
【트리트먼트 넣어 드리죠.】
【콜! -8】
어차피 7번이 뻗어 버려서 웹툰 팀 작업이 멈췄다. 머리가 없으면 손발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재밌어영 -8】
【어느 수준으로 보입니까?】
【그냥 재미있는뎅 -8】
웹소설을 안 보던 사람은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재미있다니까 가능성은 올라갔다.
【문제점은 없습니까?】
【설명이 조금 많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재미있었어영 -8】
【잘 읽힌다는 거죠?】
【넹 -8】
그래, 이만하면 됐다. 시장에 나가 봐야 진짜 성적이 나올 것이다.
웹소설 쪽으론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8번이 무난하게 읽을 정도면 가독성이 확보됐다는 뜻이고, 그건 웹소설을 처음 읽는 누구나 술술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4번과 6번의 소설도 중요하지만 로맨스로 격차를 벌린다.’
웹소설 시장을 평정하려면 메멘토모리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가 그렇게 여러 문제를 처리하고 있을 때, 4번 작가는 7번이 일어나지 못하는 걸 보며 신경이 쓰였다.
‘거슬려.’
그의 목표는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작에 모든 걸 걸고 있었고, 어떻게든 자신이 갇혀 있다는 메시지를 세상에 내고 싶었다.
‘많이 아픈가?’
살면서 누굴 좋아해 본 적은 없었다. 훗날 정상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몇 달 7번을 지켜봤더니 미묘한 감정이 속에서 꿈틀댔다.
이뤄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채팅 몇 마디가 전부이고 등신처럼 얼굴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왜 가슴이 욱신거리는 걸까?
‘빨리 털고 일어나야 할 텐데.’
그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7번은 그 존재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빌어먹을 외모 지상주의 때문이라고 해도 좋고, 7번의 밝은 성격 덕분일 수도 있었다.
유일하게 관심 없는 사람은 5번 정도이려나?
‘음, 앞부분을 좀 수정할까?’
마음이 달라지니 보는 눈도 바뀌었다.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도입부에 더 간절함과 처절함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작가의 감정과 작품은 철저하게 구분되어야 하지만 작가의 경험은 자산이 된다. 특히 소설은 작가의 삶과 인생을 얼마나 녹이냐에 따라 독자가 느끼는 바가 다른데, 그도 이걸 처음 배우는 중이었다.
‘대사 하나, 지문 한 줄. 이런 게 쌓여서 감정선을 만드는 거야.’
그렇다고 구구절절 설명으로 때울 순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독성이고 그래야 한 명의 독자라도 더 읽을 것이다.
그는 목숨을 작품에 맡긴다고 여겼다. 수사관이나 다른 실종자의 가족, 지인이 보고 이상함을 느낀다면 여기서 나갈 가능성을 만들 수 있었다.
‘6번은 이런 계획을 전혀 모르는 것 같으니까 내가 해야 돼. 그게 7번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니까.’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사무실에 있을 순 없었다.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인데 이렇게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가 더 집중할 때 힐끔 7번을 모니터로 본 3번이 콧등을 찡그렸다.
그도 7번이 아픈 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왜 아프고 그러냐.’
타인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그였지만 7번만큼은 특별했다.
요즘은 웹소설이나 웹툰을 보다가 질리면 7번의 얼굴을 구경하는 게 그의 소소한 취미가 되었다.
왜 사람들이 아이돌에 빠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 거다.
“음…….”
이 기분을 가장 쉽게 떨쳐 버리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데뷔 못 하면 죽음】
그렇다고 2번이 쓰는 것처럼 간질간질한 소설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10년 차 연습생. 오늘도 지하 연습실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번번이 데뷔조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그에겐 다른 꿈이 없었고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매일 미친 듯이 노래하고 춤을 췄다.
밤 11시가 넘어서 나가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열심히네.”
이번에 데뷔하는 민주다. 8년이나 함께했지만 이제 민주는 데뷔하면 스타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편하게 대화하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그는 어느 순간부터 민주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축하해. 데뷔조.”
“고마워. 너도…….”
‘언젠간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녀도 그가 곧 쫓겨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연습생은 딱 10년까지만 봐준다. 그게 바로 올해였다.
축 처진 어깨로 집에 가는데 갑자기 트럭이 인도로 돌진했다.
“허억!”
피하려 해 봤지만 늦어 버렸다. 콰앙! 몸이 날아갔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거면 그간의 10년은 뭐였을까?】
“오, 나 좀 쓰는 듯!”
3번 작가가 자신의 원고를 보며 흡족한 듯 웃었다.
확실히 전보다 소설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놀라운 발전이었다.
여기서 멈춘 것만 해도 그랬다. 원래는 의식의 흐름대로 쭉 쓰는 타입이었는데, 드디어 그가 고민이란 걸 하기 시작한 것이다.
“빙의? 회귀?”
고민하다가 머리를 좌우로 저었다.
“그건 너무 뻔하잖아.”
【눈을 떴다. 살아 있었다.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죽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런데 아른거리는 시야에 뭔가가 보였다.
-시한부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앞으로 3개월 안에 데뷔조에 들지 못하면 죽습니다.
시한부라니?!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환각을 보는 걸까? 다시 잠이나 자자 하고 생각할 때였다.
-서브 미션 : 1개월 안에 재활에 성공하라. 못 하면 사지가 마비됨.】
주인공은 미션을 성공할 때마다 가창력, 아우라, 외모 상승, 체력 상승 같은 걸 얻으면서 최고의 아이돌로 성장하는 스토리였다.
여기까지 다 쓰고 싶었지만, 지구력이 다했다.
“후…… 재미있는데?”
할 일 다 했다는 듯 늘어지게 의자에 기댄 그가 웃었다.
어차피 끝까지 쓰지도 못할 걸 그는 알고 있었기에 욕구만 해소하면 됐다.
“민주와의 로맨스까지 완벽해. 크크, 졸라 떠서 민주랑 결혼하는 거지.”
7번과 민주를 겹쳐 보면서 그가 만족한 듯 흐흐흐 웃다가 침을 흘렸다.
추릅, 소매로 침을 닦는데 팀장에게서 채팅이 왔다.
【이어서 더 쓰세요.】
‘에엥?’
그가 황당하단 눈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다 쓴 건데? -3】
【더 쓰라고 했습니다. 부탁하는 거 아닙니다.】
헐, 괜히 시작해서 귀찮게 됐다.
“……쥐어짜는 건 내 스타일 아닌데.”
흥이 올랐을 때 파파팍! 토해 내는 건 재미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작품에 디테일을 더하는 건 매우 힘겨운 일이었다.
그걸 할 수 있었으면 진즉에 스타 작가가 됐겠지!
“아우……싫은데.”
마음이 고스란히 글에 담겼다.
【병원에서 나온 주인공. 보상으로 받은 가창력하고 체력, 민첩으로 춤과 노래가 늘었다. 다른 연습생들도 놀라고 회사 관계자들도 놀랐다. 당연히 데뷔조에 뽑혔다. 데뷔하자마자 빌보드 1위가 되어서 세계적인 가수로 우뚝 섰다. 끝!】
할 만큼 했다는 듯 으아, 기지개를 켜는 그에게 팀장의 채팅이 왔다.
【죽고 싶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