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62)
작가귀환-162화(162/250)
글자만 봤는데 악의가 느껴졌다.
가끔 장난도 치고 이것저것 요구도 하면서 무뎌졌지만, 팀장은 범죄자였다. 괜히 자극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어쩌라고.”
나름 열심히 했는데!
【제가 하는 말이 장난 같습니까?】
【아뇽 -3】
【진지하게 임하세요. 언제까지 봐드리지 않습니다.】
【눼에 -3】
이 와중에도 팀장을 살살 긁는 3번을 보면서 6번 작가가 키득키득 웃었다.
6번 작가는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 늘 소설만 쓰고 다른 작가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지난 실패를 만회하는 것밖에 없었고, 1번이나 5번처럼 성적을 내고 싶었다.
“등신들.”
팀장에게 깨지든 말든 3번은 사람으로 취급도 안 하는 그였기에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
그의 작업 스타일은 독특했다. 장르마다 분위기라는 게 존재하는데, 그는 무협의 진중함을 헌터물에도 쓰고 레이드물에도 입혔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진지한 소설이 나오는데, 이건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볍게 소비하려는 젊은 독자층은 답답하면 견디질 못하기 때문이다.
진지함과 답답함을 어떻게 잘 조율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흥행이 갈릴 것이다.
아무튼 다른 사람 일에 별 관심이 없는 그여서 7번이 아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팀장에게서 채팅이 왔다.
【이 소설, 살릴 수 있겠습니까?】
“……하.”
【아이돌물은 써 본 적 없는데요 -6】
【작가님이라면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앞부분을 쓴다고 해도 그걸 누가 이어서 쓸 건데요? -6】
【그건 찾아봐야죠.】
‘아, 또 다른 작가를 데려올 생각인 건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갈아 넣으려는 거냐…….’
팀장이 창의적으로 미쳤다는 건 인정한다. 이렇게 작가들을 가둬 놓고 작품을 생산한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범죄란 게 보통 상상만 하고 멈춰야 하는데, 그걸 실행에 옮기면 대참사가 나는 거다.
이런 시설을 만들고 사람들을 잡아 온다는 점에서 보통은 넘는 사람인 것만은 확실했다.
【시간 남으면 해 보죠 -6】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3번이 기본은 안 되어 있지만, 가끔 쓸 만한 아이디어는 생산하는 놈이었다.
게다가 직업이 아이돌이라면 여성 독자도 꽤 관심을 가질 것이다.
중요한 건 자칫 팬픽처럼 분위기가 흘러가면 폭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팀장도 그걸 아니까 자신에게 맡긴 거겠지.
‘아니면 사상 최강의 아이돌을 의식한 건가?’
요즘 팀장은 메멘토모리를 경쟁자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느낌이 그랬다.
메멘토모리의 작품들이나 강철의 부대를 보라고 하는 것부터가 그렇지 않나?
‘그 괴물을 어찌 이기려고.’
자존심 강한 6번 작가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작가가 메멘토모리였다. 특히 그는 남성향의 전반적인 장르를 다 섭렵했는데, 개인적으론 곤륜귀환을 가장 재미있게 봤다.
무협, 현판, 퓨전, 아이돌물까지 넘나드는데도 위화감이 없었다. 그럴 수 있다는 건 인풋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어느 경지에 올라서 뭘 써도 재미를 보장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데뷔 못 하면 죽는다라…….”
이건 팀장이 자신에게 보내는 경고일 수도 있겠다. 저번에 대차게 말아먹었으니 두 번은 없다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
*
*
어머니의 결혼식이 끝나고 며칠은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여러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서 이쪽을 보다 보면 저쪽도 검토해야 하고, 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을 만큼 사방에서 일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다 내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 ‘이왕이면 즐기자!’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었는데, 이런 내게도 꿀맛 같은 휴가가 주어졌다.
물론 당사자들은 오늘 모든 체력을 다 소진해야 할 거다.
“시청률 20% 넘었다던데.”
강철의 부대 결승전 녹화가 있는 날이다.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온 UDT.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해병대.
그리고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수색대가 오늘 최강을 가린다.
내 말에 진성이 씨익 웃었다.
“30% 넘기면 좋겠는데요.”
욕심이 과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기세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군대를 소재로 한 예능이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을 줄은 나 빼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잘해라! 파이팅!”
“다치지 마!”
진성이와 진국이가 대기실로 뛰어갔고, 나와 예진이가 차에 남았다.
스태프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1시간 안에 촬영이 시작될 것 같았다.
우린 서해에 와 있었다. 인근에 민가조차 없었고, 해가 지면 가로등 불빛도 멀찌감치 보일 오지였다.
이런 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방송국 놈들은 참 대단했다.
“6월 런칭 소설들 목록 뽑아 왔어요. 지금 보실래요?”
“그래, 고마워.”
예진도 늘 일에 치여 산다. 우리 이사님 없었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을 거다. 빨리 성공해서 다 보답해 줘야지.
‘라인업이 좋네.’
아카데미 학생들 작품이 다섯, 애착 작가들의 작품이 넷이었다.
객관적인 기대작을 뽑으라면 11번 작가였던 김철수 작가의 차기작이 되겠다.
내 개인적으론 7번 그녀의 작품이 눈길이 간다.
24번이었던 김희애도 런칭을 앞두고 있었고 21번 이명한도 칼을 갈고 있었다. 특히 이명한 작가는 글이 매우 빨라서 이미 8권이나 써 놨다.
“대부분 초콜릿 페이지로 가는 거지?”
“네. 신도림 작가랑 김철수 작가님 작품 웹툰은 7월쯤 런칭할 것 같고요.”
“그러면 소설 오픈을 미뤄서 맞추는 게 낫지 않아?”
“그럴까도 했는데, 소설이 먼저 나와서 웹툰을 밀어주는 형태도 좋을 것 같다고 플랫폼에서 요청했어요.”
“음, 그런가?”
지금은 과도기였다. 무엇이 정답인지 아무도 몰랐고 많은 실험이 필요했다.
“그러지 말고 편수가 적어도 좋으니까 웹툰을 6월로 동시 오픈해 봐.”
“그러는 편이 좋겠죠?”
“응.”
“바로 연락해 볼게요.”
사실 이런 일은 팀장 놈이 다 알아서 했기에 나는 뭐가 더 효율적인지 잘 몰랐지만, 지난 1년의 경험으로 미뤄 볼 때 따로 하는 것보다는 동시에 해야 시너지가 클 것 같았다.
‘애착 작가를 더 찾아야 하는데.’
재능마켓 공모전 이후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잠잠했다.
‘놈이 아직 본격적으로 활동하진 않는 것 같긴 하지만…….’
나 때문에 미래가 틀어져서 팀장 놈의 앞길이 막혔을 수도 있다. 내가 애착 작가를 선점했고 재능마켓 공모전도 놈에게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종된 작가가 있는 걸 보면 놈의 사무실이 가동했을 것 같다.
그곳에 누가 얼마나 잡혀 있는진 몰라도, 내가 아니면 그들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10년이나 유지한 걸로 봐선 끈기 하난 인정해 줘야 할 놈이었다.
“혹시 아카데미 지원자들 원고, 내가 못 본 거 있으면 줄래?”
“그걸 다 보시려고요? 수백 개가 넘는데요?”
“글 쓰다 막힐 때 겸사겸사 보려고.”
“아……. 사무실 가면 정리해서 드릴게요.”
“고마워.”
예진에겐 사실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게 참 누구와 공유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온전히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고 숙명이었다.
거창한 단어까지 떠올려야 할 만큼 그놈과 나는 운명으로 엮여 있었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것이다. 저번엔 내가 당했지만, 이번엔 절대 지지 않을 거다.
이사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리산 엘프, 해외에서 상당히 많은 문의가 오고 있어요!
“벌써요?”
-네!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무려 80개국이 넘어요! 대박이죠? 영웅 씨 비주얼이 세계에 통했나 봐요!
“와…….”
-반응이 왜 그래요?
될 줄 알아서 그랬다.
영웅이 얼굴을 보면 엘프 그 자체잖아? 미의 궁극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거다.
“좋아서 그러죠.”
-흠, 묘하게 미지근한데요. 어쨌든 바로바로 추진할게요. 빠르면 중동이나 일본은 몇 달 안에 방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게다가 놀라운 게 뭔 줄 아세요?
“또 놀랄 게 있어요?”
-미국 BHC에서도 연락이 왔다는 거예요!
“아, 그렇습니까?”
-이번엔 뜨겁게 반응해 줘도 될 일이라고요!
“아! 그렇습니까!”
-하, 참.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시네. 우리 드라마가 미국 안방에 진출하는 거라고요! 조건을 더 따져 봐야겠지만, 미국 시장이 얼마나 뚫기 어려운데요! 우리가 손해 보면서도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고요!
그녀가 흥분할 만큼 좋은 일임에는 분명했다. 근데 왜 이렇게 놀리는 게 재미있지?
“그래도 손해는 보면 안 되죠. 500원이라도 달라고 하세요.”
-지금 500원이 문제냐고요! 후,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나중에 다시 통화해요.
내가 킥 웃자 예진이 물었다.
“이 대표님이세요?”
“응. 우리 드라마가 미국에서 방영될 수도 있대. BHC에.”
“와! 이거 엄청나게 좋은 일 아니에요?”
“그렇겠지?”
“잘됐네요!”
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한국을 넘어 미국까지 간다는 건 분명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디엠이나 블랙잉크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려는 야심 찬 계획이 있는 나로선 펄쩍 뛸 만큼 두근거리는 일은 아니었다.
잘되면 좋고, 이런 마음이랄까?
김칫국부터 마시는 성향이 아니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미국 시장에 나간다고 반드시 잘되리란 보장은 없는 거니까.
“조건이 안 좋은 모양이야. 엎어질 수도 있어.”
“그래도 축하해요!”
“고마워. 다 네 덕분이야.”
“제가 뭐 한 게 있다고요.”
“너 없으면 난 하루도 못 버텨.”
“……치.”
부끄러운지 얼굴을 돌리는 예진을 보면서 나는 웃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 이제 하려나 보다.”
부산함이 10배가 된 촬영장을 보면서 우리도 차에서 내렸다.
내 응원이 얼마나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진성이와 진국이가 꼭 이겼으면 좋겠다.
“수색대 힘내세요!”
예진이 두 손 모아 소리치자 저 멀리에서 용케도 알아듣고 진성이가 팔을 흔들었다.
-녹화 10분 전입니다!
-10분 전입니다!
스태프들이 시끌시끌했다. 시청률이 잘 나오면 관계자들도 흥이 난다. 출연자들의 긴장감이 팽팽해졌고, 구급차까지 대기해 있었다.
“벌써 마지막 녹화네.”
“그러니까요.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 알았으면, 몇 주 더 늘렸어도 됐겠어요.”
“다음 시즌부턴 그러겠지.”
강철의 부대가 디엠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효자가 되어 주었다.
확신이 없으니까 짧게 끝냈지만, 다음부턴 더 길게 편성할 거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욘 없었다. 그때가 되면 디엠은 훨씬 더 높은 곳에 올라 있을 거니까.
녹화가 시작됐다.
김 PD가 확성기를 들고 대원들에게 말했다.
-결승전은 서해안 작전입니다. 지난 미션의 1위인 수색대에겐 사전에 정보가 나갔었습니다.
해병대와 UDT도 오늘 여기서 죽겠다는 각오를 했는지 눈빛이 살벌했다. 그만큼 큰 화제 몰이를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아마 동기들에게 전활 엄청나게 받았을 거다. 해병대 같은 경우엔 전우회에서도 연락했을지 모르겠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거다.
-오늘 결승전 미션은 총 3단계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고무보트를 끌고 저기 보이는 지점을 탈환하는 것입니다.
모두의 고개가 개펄로 향했다. 까마득하게 작은 점처럼 보이는 깃발이 바닷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