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69)
작가귀환-169화(169/250)
이놈은 마치 그 메멘토모리처럼 시대를 반걸음 앞서가는 생각을 가끔 한다.
원래 있던 것들을 조합하거나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하는, 들으면 참신한 스토리를 잘 뽑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슬슬 작가를 충원해야겠어.’
지금까진 6월에 집중하느라 외부 활동을 못 했다. 2번과 4번, 6번의 웹소설, 7번의 웹툰을 세상에 내는데 괜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런칭부터 하고.’
그간 작가들의 원고를 최종 검토하느라 하루 4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었다.
이곳의 웹소설 작가들은 글이 빠르다. 하루 1편으론 여기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렇게 여러 작가가 최소 2편씩 쓰면 팀장이 하루에 봐야 할 분량이 엄청나게 쌓였다.
당연하게도 연재 중인 1번과 5번의 소설도 계속 봐야 했다. 놈들이 본문에 무슨 장난을 쳐 뒀을지도 몰라서 꼼꼼하게 훑어야 했고, 혹시라도 재미가 떨어지면 보수도 해야 했다.
메멘토모리 때문에 빛을 못 봐서 그렇지 1번과 5번의 소설도 최상위권 아니던가? 이들이 벌어 준 돈이 사무실 유지 비용을 벌써 상회하고도 남았다.
“…….”
3번 모니터를 보았다. 놈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아직도 처먹고 있네.’
눈엣가시 같은 놈이었지만 아이스크림을 깨물어 먹든 핥아 먹든 신경 꺼야 이쪽 속이 편하다.
‘바닥에 흘리지나 마.’
그는 깔끔한 성격이라서 작가들이 시궁창처럼 방을 쓰는 걸 못 견뎠다.
뭐, 딱히 어지를 것도 없었지만 밥 먹다가 흘리는 놈도 있었고 책상에 코딱지를 묻히는 등신도 있었다.
특히 5번은 일주일씩 안 씻는 때도 있어서 이불과 베개가 썩어 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세탁권을 쓰지 않는다. 참으로 지독한 자식이었다.
‘청결 때문에라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빨래와 소독을 해야 하나?’
인간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7번이 심하게 아픈 뒤론 그의 마음도 조금 약해졌다.
3번을 제외하면 다 귀한 작가들이라서 연재 중엔 잘 보살펴야 했다.
‘괜히 그랬다가 그걸 당연한 걸로 인식하면 곤란한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게다가 시스템을 이용하기 시작하는 놈들이 생겨날 것이다.
5번이라면 한 달에 한 번 빨래만으로도 만족해 버릴 것이고, 그러면 놈에겐 세탁권이 무용지물이 된다.
욕구와 욕망을 무기로 작가를 통제하는 그에게 교환권 하나가 무력해지는 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닥친 일이 너무도 많았다. 집중해야 했다.
그가 그렇게 몰두하고 있을 때,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7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흔들리고 있는 거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아이스크림은 처음 나오는 특식이었다.
‘이까짓 게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생각할 때는 이런 간식은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매우 귀찮다.
실제로 아이스크림은 거의 녹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냉동 보관을 오래 해서 꽝꽝 얼려 두었거나 가까운 거리에서 사 왔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이걸 맛보게 해 놓고 미끼로 쓰려는 게 아니라면 그저 베풂이었고,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니었으니 단순히 기분을 냈다는 거다.
설마 3번이 올 때 메로나라고 했다고 그걸 들어줬겠는가? 누가 봐도 극히 가능성 낮은 얘기였다.
그녀는 살짝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아이스크림 너무 맛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웹툰 런칭하면 기념으로 그거 주시면 안 될까요? -7】
【그게 뭡니까?】
【31가지 맛 아이스크림이요. 그중에서 저는 초콜릿무스를 좋아해요. -7】
【나는 오렌지 샤베트 -1】
【오오! 저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2】
【나도 초코! -3】
【저는 딸기로 하죠 -4】
갑자기 다른 작가들이 우르르 붙었다. 이곳에서 맛본 아이스크림이 너무도 좋았던 것 같았다.
‘아앗, 이러면 안 되는데!’
어린애들처럼 이럴 줄은 몰랐다. 너무 보채면 그가 싫어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알겠습니다. 웹툰이 성공적으로 런칭되면 제공해 드리죠.】
‘오옷? 이렇게 쉽게?’
【헐, 그럼 나동 딸기! -8】
【아무거나 -9】
【콜라 맛으로 -5】
6번만 관심 없다는 듯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역시 여긴 시골이 아니야.’
일부러 그 브랜드 아이스크림을 고른 것이다.
‘프랜차이즈가 주변에 있을 만한 규모의 도시.’
작가를 아홉 명이나 가둬 두면서 드나들 때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그런 곳이 뭐가 있을까?
‘으으, 이건 모르겠네.’
【나는 바닐라 -6】
잠깐 집중력이 풀렸는지 6번도 채팅에 참여했다.
개돼지처럼 팀장에게 놀아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남들 다 먹는데 자신만 빠지면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이번 작품으로 반드시 탈출한다.’
그는 용기가 생겼다. 평생을 소설 조루로 살아갈 것 같았는데, 그게 나았다. 벌써 5권을 썼고 이제 6권이다.
살면서 이렇게 길게 써 본 적이 없었다. 여기서 나갈 수만 있으면, 웹소설로 성공해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제일 잘 썼어.’
1번과 5번의 소설이 잘 팔리는 걸 보면 그것보다 잘 쓴 자신의 소설은 메멘토모리도 넘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전에도 잠깐이지만 반짝해 보지 않았던가?
‘7번은 웹툰이니까 상관없고.’
플랫폼 1등은 어차피 1명이다. 저 바보들은 마치 가족이라도 된 것처럼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미련한 거다. 다 경쟁자였고 넘어야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돌아가면서 1등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혼자 하면 1년인 것을 9명이 사이좋게 하면 9년이다.
실제로 100포인트를 채우려면 몇 배는 더 걸린다. 플랫폼이 다르거나 장르가 완전히 구분되면 몰라도 남성향의 1, 4, 5번은 그의 라이벌이었다.
‘떠들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써! 평생 여기 처박혀 있을 거냐? ……아니지. 이놈들이 이래 주면 나는 좋은 거잖아.’
고작 9명밖에 없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이곳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1등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럴 만하니까 팀장이 데려온 거다.
그는 생각을 털어 버리고 집필에 열중했다.
밖에서는 온갖 유혹에 시달린다. 커뮤니티를 할 수도 있고 TV나 게임에 시간을 허비한다.
여기서도 다른 놈들을 보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간다.
선택과 집중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걸 알아차린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번엔 반드시…….’
그의 눈동자에 불꽃이 튀었다.
*
*
*
“아주 좋습니다. 재미있어요.”
애착 작가 모임.
6월 런칭 예정작들을 다 같이 모여서 보고 있었다.
11번이었던 김철수의 차기작은 전작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보완해서 더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거듭났다. 특히 히로인이 잘 살아났는데, 아마도 신도림 작가와의 연애가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하하!”
김철수 작가를 보면서 다른 작가들이 부럽다는 듯 입을 모았다.
“연타석 홈런 치시겠어요!”
“축하해요! 이번에도 잘되시겠어요!”
“대단하다, 와……!”
그 반응에 김철수가 뒤통수를 긁었다.
“홈런은요. 안타죠. 5위 안에 들어야 진정한 대박이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이번 작품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김철수는 지난 작품으로 근 1억을 벌어 갔다. 대학생인 그의 신분으로 연 1억 수익을 냈다는 건 엄청난 거다.
연예인이나 몇몇 특수한 직업 말고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좀 도와줄까?’
내가 김철수에게 말했다.
“돈 다 쓴 건 아니죠?”
“하하! 쫄보라 은행에 그대로 있습니다!”
“차기작으로 더 모아서 집부터 사세요. 아파트로요.”
“와…… 내가 아파트라니, 믿기질 않네요.”
지금은 4억이면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있다. 대출받고 하면 내년엔 장만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엔?
‘폭등하지.’
내가 아는 미래가 틀어진대도 집은 남으니까 안전할 거다.
“웹툰도 나오고 하면 수익이 늘어날 거예요. 꼭 집부터 마련하는 겁니다. 아시겠죠?”
내가 강조하자 김철수는 신도림을 보았다. 둘 사이에 눈빛으로 어떤 의미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신도림이 얼굴을 붉혔다.
“저…… 대표님.”
21번 이명한이 물었다.
“네.”
“저는 다른 작품 하나 더 할까요?”
“아뇨. 조급한 마음인 건 알겠지만, 런칭해서 성적 나올 때까진 섣불리 다작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얼마 안 남았잖아요.”
남이 하면 다 좋아 보이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겠지만, 시장이 어떻게 평가할진 까 보기 전까진 누구도 모른다.
“잘되면 하나만 하는 게 좋아요.”
“후…… 알겠습니다.”
작가의 성향과 성격이 작품에도 영향을 끼친다. 중단편에 어울리는 사람과 장편 호흡에 맞는 이가 있었는데, 글이 빠른 이명한은 초장편 하나만 잡으면 훨씬 수월하게 이름을 날릴 수 있다.
이게 머리론 알아도 혼자선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어서, 나 같은 타인이 종종 상기시켜 주는 것이 좋다.
‘이것도 다 그놈한테 배운 거지만.’
팀장 그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이렇게 애착 작가들이 모이면 절로 그놈이 더 생각났다.
【고작 이렇게밖에 못 합니까?】
놈은 나를 수시로 갈궜다.
【그냥 죽여 드릴까?】
무섭게 협박도 했었다.
【1번이란 숫자가 아깝네.】
빈정거릴 땐 자존감이 뚝뚝 깎였다.
그놈과의 10년은 증오만 남았다. 나쁜 감정이 그쪽으로 다 쏠리니 남은 것들이 7번에게 향한 것 같기도 하다.
“……?”
나도 모르게 7번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표정으로 나를 일깨워 줬다.
“아, 잠깐 생각 좀 했습니다. 계속하죠. 이번엔 강하나 작가님 작품입니다.”
나는 이미 그녀의 작품을 수없이 보고 또 봤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도 매우 중요했다.
세상에 100%라는 건 없었다. 내가 알던 강철의 부대도 조금은 다르게 진행됐고, 지리산 엘프 드라마는 원래 없던 거였다.
이렇듯 앞으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최선을 다해서 최고를 만들어 대비해야 한다.
“다들 아시다시피 로맨스 판타지 장르이고 남주와 여주의 여행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소소한 재미를 주는가, 두 사람의 감정선이 어떻게 살아나느냐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다음 주 연재 전 마지막 점검이기에 그녀도 바짝 긴장했다.
“첫 작품이고 로맨스 기반이라서 7권 이내에 완결 예정이고 해피 엔딩으로 맺을 겁니다.”
내 말에 이명한이 눈으로 원고를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여성향은 권수가 적군요.”
“그렇다고 쉬운 건 아닙니다. 사랑, 하나로만 스토리를 끌어간다는 게 장난 아니거든요.”
“어우, 저는 죽어도 못 해요.”
종이로 읽는 감이 또 다르기에 우린 원고를 출력해서 보고 있었다.
다들 펜을 하나씩 들고 있어서 오타가 발견되면 표시를 해 주었다.
작가가 그렇게 봤는데 남이 보면 또 오타나 맞춤법 오류가 튀어나온다.
“…….”
원고에 집중하는 작가들을 보았다. 이건 작가들만 할 수 있는 품앗이의 일종이었다. 내 작품도 아닌데 공들여 봐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
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살피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프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