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76)
작가귀환-176화(176/250)
도입부까진 같은 사람이 썼다. 이건 확실했다. 그런데 회가 넘어갈수록 분위기가 확확 변했다.
내용이 달라졌다는 게 아니다.
‘작가가 바뀌었다?’
버스를 타 보면 기사마다 성향이란 게 있지 않나? 어떤 사람은 섬세하고 세심하다면 어떤 사람은 거칠었다.
게다가 내용도 파격적이었다.
‘작가를 가둬?’
제목을 보고 설마설마했는데, 소설을 읽을수록 위화감이 들었다.
마치 내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옮겨 둔 것 같지 않은가?
“허어…….”
나는 죽어서 과거로 왔다. 이건 나만의 비밀이고 과학적으로 설명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도 그랬다.
다른 점이라면 소설에선 죽어서 자기가 쓴 소설에 들어가는 설정이었는데, 죽기 전까지 처절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묘사가 남 일 같지가 않았다.
내가 경험했으니까 더 와닿는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전형적인 소설 빙의물이라고 한다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필력이 들쑥날쑥한 것만 빼면 재미있는 소설이야.’
도입부에서 보여 준 강력한 몰입도가 서서히 약해졌다가 1권이 넘어가자 조금 안정되었다.
변화무쌍한 필력에 내가 적응한 것일 수도 있다.
‘다작을 하니까 이렇게 된 건가?’
이해할 수 있다. 작가도 사람이라서 몇 작품을 동시에 하다 보면 어떤 부분에선 힘이 빠지거나 타협하는 때가 온다. 나 역시 다작을 하니까 안다.
“신기하네…….”
누군가 내 삶을 보고 판타지 소설로 쓴다면 이렇게도 변환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현실이고 이건 소설이었다. 그래서 더 재미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후.”
아침이 되어 버렸다. 5권을 꼼짝도 하지 않고 읽어 버린 거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었다.
작품은 굉장히 처절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악의’는 지속적으로 표출되었고, 무조건 살아남겠다는 강력한 원동력은 독자의 이탈을 막았다.
조금만 더 필력이 따라 줬다면 이 작품이 1위를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러기엔 작가가 ‘이번 생은 최강으로 살겠다’에 더 공들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웹툰을 찾아갔다. 우리 작품들과의 비교도 해야 했지만 순수하게 독자로서 웹툰 버전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3화까지 보았을 때 감탄했다.
웹툰은 소설 이상이었다. 컷 하나하나에 집요함이 느껴졌고, 어느 그림 하나에도 열정을 쏟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아카데미에서 나온 웹툰보다도 몇 단계는 수준이 높았다.
‘생명을 갈아 넣었네.’
예진이 말했었다. 앞으론 이렇게 못할 거라고.
내 생각에도 그러했다. 이런 퀄리티를 맞추려면 일주일도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소설과 웹툰은 전혀 다르다. 소설은 독자가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근데 그게 막상 그림으로 표현되었을 때 만족감을 주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 되어 버린다.
한데 이 웹툰은 소설에서 낼 수 있는 상상력을 초월해 버렸다.
눈빛 하나, 주름과 손동작까지도 완벽했다. 아까 소설을 보면서 생각했던 그 처절함이나 간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래서 소설 순위가 그렇게 높았던 거구나.’
냉정한 평가를 해 보자면 회귀작가전 소설은 앞은 괜찮았지만, 뒤로 갈수록 힘이 빠져서 10위권 밖에 있어야 할 수준이었다.
그런데 웹툰 덕분에 계속 치고 올라가는 거다.
‘다른 작품을 웹툰으로 만드는 게 훨씬 나았을 것 같은데. 이미 준비하고 있으려나?’
소설 완성도로 봤을 때 이전 작품이 훨씬 좋았기에 아쉬웠지만, 웹툰만 놓고 보면 올해 본 것 중엔 가장 좋았다.
아마 예진도 봤다면 우리 웹툰 팀을 더 채찍질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웹소설 두 작품, 웹툰 한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챙겨 봐야 할 것 같아서, ‘즐겨찾기’에 등록해 두고 이제 침대에 누웠다.
어느덧 아침이 되었다. 5시간은 잘 수 있으려나. 몸은 고됐지만 재미있었기에 만족한 상태로 눈을 감았다.
*
*
*
“왜 그렇게 풀 죽어 있어요?”
식당을 찾은 예진이 댕댕이 작가의 등을 보며 물었다.
“아, 이사님.”
오후 1시. 일 때문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온 예진이 댕댕이 작가 맞은편에 앉았다.
거의 손을 대지 않았는지 식판의 음식이 그대로였다.
“고민 있죠?”
“네…….”
“세븐팀 작가의 회귀작가전을 봤나요?”
“어떻게 아셨어요?”
바로 그거 때문에 밥도 안 넘어가고 있었다.
사실 댕댕이 작가는 준비하는 웹툰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만한 퀼리티도 있었다.
그런데 어제 신작 웹툰을 보고 나서 완전히 수렁에 빠져 버렸다.
우물 밖에 거대한 바다가 있다는 걸 처음 목격한 개구리의 심정이었다.
그래, 개구리.
“히잉…….”
어디 구석에 가서 숨고 싶었다.
예진은 그런 댕댕이 작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누구라도 그럴 거예요. 작가님은 작가니까. 그래서 더 아픈 거예요. 그냥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돈이 우선이었겠지만, 그게 아니니까. 그래서 그래요.”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는 예진을 보며 댕댕이 작가가 눈시울을 붉혔다.
예진은 화가 나면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었지만, 이런 면도 있기에 모두가 따르는 거다.
“장르도 다르잖아요. 작가님은 지금처럼만 하시면 돼요. 나중엔 더 잘하실 거잖아요? 핵심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표님께서도 항상 말씀하시잖아요.”
1년 차의 재능으로 10년 차 노력까지 한 사람을 이길 순 없다. 그랬으면 대학이나 고등교육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기업에선 왜 경력자를 우대하고?
“제 친구 얘긴데요.”
댕댕이 작가의 표정이 조금 풀어진 걸 보면서 예진이 말을 돌렸다.
“전교에서 1등 하던 애였거든요. 3년 내내 반에서도 1등이었고요. 하필이면 걔랑 단짝이라서 제가 계속 비교당했었어요. 엄마도 맨날 걔 반만큼만 하라고 타박하셨고요.”
그래서 더 다른 곳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산이 근처에 있다면 편한 길을 도모하는 게 사람이니까.
“그래서요?”
“물론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갔죠.”
“그랬구나.”
뭔가 반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댕댕이 작가는 쩝, 입맛을 다셨다.
예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름이었나, 연락이 왔어요. 그 친구한테. 집 앞에 찾아왔더라고요.”
“갑자기요?”
“네, 갑자기. 대학 간 뒤론 소원해져서 못 봤었는데.”
그 친구는 예진을 보자마자 펑펑 울었다.
“평생을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만 모인 곳에 가 보니까 그게 보통이었대요. 그 안에서도 진짜 천재가 있는 거였고, 거기선 노력만으론 인정받을 수가 없다고 해요. 진짜 천재들이 너무 많아서.”
“아…….”
“저는 작가님도 그 진짜를 본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요. 그런 사람을 실제로 보고 뭔가를 느꼈다면, 거기까진 올라갔다는 거잖아요? 저도 그 웹툰을 보면서 감탄했지만, 좌절하진 않았거든요. 모르니까.”
작가가 세월을 견디는 방법은 몇 가지 없었다.
눈과 귀를 닫고 내 길만 묵묵히 걸어가든가, 동시대 천재의 작품을 보며 괴로워하고 이겨 내 마침내 뛰어넘어야 한다.
전엔 TV만 끄면 되는 시대여서 모르고 넘어가면 쉬웠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 나도 언젠간 된다는 생각으로 담담하게 지금을 인정하고 버텨야만 한다.
“고마워요.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이제 식사하실 수 있어요?”
“…….”
예진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했다.
“회귀작가전도 훌륭했지만, 저는 아쉬운 부분도 있던데요?”
“어떤 부분이요?”
댕댕이 작가의 눈이 커졌다.
“남성향 작품이다 보니까 로맨스의 비중이 없잖아요. 남자들은 재미있게 봤겠지만, 저는 그 부분이 못내 그랬어요.”
“아…….”
“남자들은 오글거린다고 싫어하겠지만, 우린 또 그런 게 재미있어서 보잖아요. 낭만도 좋지만 저는 사랑이 더 편해요.”
“저도요!”
“그래서 저는 작가님의 그림이 좋아요.”
“헤헤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드세요. 기운 차려야 더 열심히 그림 그리죠! 이제 런칭, 얼마 안 남았다고요!”
“네!”
밥을 숟갈로 크게 뜬 댕댕이 작가가 입에 넣고 꾸역꾸역 넘기다가 물었다.
“아, 그런데요. 저희 작품, 언제 어디서 런칭해요? 원래 재능마켓에서 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려고 했는데, 어제 초콜릿 페이지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것 때문에 이따가 대표님과 회의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댕댕이 작가의 표정을 읽은 예진이 가볍게 웃었다.
“작가님도 초콜릿에 연재하는 게 좋으시죠?”
“아, 뭐……. 저는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누가 대형 플랫폼을 마다하겠나. 회귀작가전 웹툰만 보더라도 초콜릿에 연재했으니까 이만큼 독자를 모은 것이다.
“저희가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의논해 볼게요.”
일단 먹기 시작했더니 순식간에 식판을 비웠다.
댕댕이 작가가 식당을 나서자, 예진은 보리차를 떠서 홀로 앉아 턱을 괴고 생각했다.
그녀 역시 밥을 먹으러 왔지만, 식욕이 사라져 버렸다.
‘대표님이 남자라서…….’
매출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초콜릿에 들어갈 수 있다. 어차피 재능마켓은 플랫폼이 더 커져야 하고, 그건 시간이 약이었다.
그런데 가장 큰 걸림돌이 ‘남자 작가의 로판’이라는 거다.
이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치명적이었다.
‘파혼이지만 괜찮아’가 아무리 재미있다고 한들 독자들이 까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껌으로 전락해서 질겅질겅 씹힐 것이다.
남성향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재미있으면 뜨고 아니면 말고지만, 여성향 작품은 훨씬 더 애정과 정성을 쏟는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그 사랑과 관심이 뿌리가 되어 이렇게 시장을 키웠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아…….”
이건 그냥 대표가 로판을 써서 그런 거다.
“욕 많이 먹을 텐데.”
대표님은 실패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대표는 가장 완벽한 천재였다. 그러니까 남자가 로판까지 쓰겠다고 달려든 게 아닌가?
작가로서도 사업가로서도, 거기에 사람 보는 안목까지.
그 나이에 이룰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한 부분에서도 뛰어났다.
그렇기에 공개적으로 욕을 먹었을 때, 어떤 상처를 받을지 모르겠다.
일부가 아닌 전부다. 평점은 테러를 당할 것이며 전작에까지 몰려와서 악플을 달 수도 있었다.
한창 지리산 엘프가 잘되고 있는데, 그것마저 헐뜯는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뿐인가?
아카데미 사업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예진이 고민하는 거다.
단순하게 작품이 안 팔려서 망하면 차기작을 하면 그만이지만, 안티가 생기면 그들은 곱게 보내 주지 않을 것이다.
‘댕댕이 작가님한테도 영향이 갈 거고.’
웹소설에 이은 웹툰까지 화마가 번질 것이다.
오히려 그게 더 큰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소설은 안 보는 사람도 웹툰은 본다. 그림에 큰 애정을 갖는 독자가 많을 터인데, 원작자가 남자라고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까?’
대표님을 뵙기 전에 정리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번 사안은 쉽지 않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릴 때, 누군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여어, 안녕?”
진성이었다.
“식전인 거야, 후인 거야?”
“그냥…….”
그녀의 표정을 본 진성이 픽 웃더니 몸을 숙였다. 그러곤 그녀의 팔을 잡았다.
“……왜?”
진성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그녀가 일어나자 진성이 말했다.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