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79)
작가귀환-179화(179/250)
무한리필 삼겹살집에서 1차를 하고 다 같이 2차로 노래방엘 갔다.
데이라는 오늘 기분이 매우 좋았다. 평소엔 작품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었는데, 지금은 누굴 붙잡고 말해도 다 통했다.
고기도 맛있었고 술이 들어가니까 부끄럽지만, 마이크 잡고 노래도 불렀다.
특히 그녀는 모임장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나이 차이는 좀 났지만, 그의 친절함과 상냥함이 좋았다. 사람들을 이끄는 매력도 있었고, 여자들에게 술을 권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게 있다면, 옆자리에 딱 붙어 앉은 필모 작가였다.
같은 커뮤니티에서 활동해 와서 몇 번 다른 모임에서 봤는데, 오늘은 너무 적극적이었다.
‘자꾸 몸이 닿아.’
저쪽 자리가 더 넓은데 왜 밀어 대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좋은 모임에 올 수 있었던 거, 제 덕인 거 아시죠? 한 잔 하시죠.”
필모 작가가 맥주 캔을 들었다.
“아, 네…….”
그녀는 아까부터 봤다. 필모 작가는 저렇게 캔만 따 놓고 술은 입에만 대고 내려놓는다.
저럴 거면 왜 아깝게 딸까?
고깃집에서도 계속 그랬다.
“제가 추천하지 않았으면 작가님은 못 들어왔어요. 사실 다른 작가들도 많았는데, 특별히 작가님을 추천했거든요.”
“……고마워요.”
모임장이 노랠 부르고 있었다. 어쩜 노래도 잘한다. 자연스럽게 그쪽을 보려는데, 필모 작가가 얼굴을 그녀 귀에 바짝 대더니 외쳤다.
“우리, 바람 쐬러 갈래요? 술 마셨더니 좀 더운 것 같은데!”
갑자기 소름이 돋아서 그녀는 정색하고 말했다.
“아뇨!”
거의 끌어안듯 붙어 앉아서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았다.
“화장실 다녀올게요.”
그녀가 급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혹시 따라올까 봐 서둘러 여자 화장실로 뛰었다.
“으……. 싫다.”
화장실에 앉아서 치를 떨었다. 초대해 준 건 고맙지만 필모 작가는 작가로선 손톱만큼도 매력이 없었다. 친구로 지내는 것도 글쎄.
‘술도 안 마셨으면서.’
뻔뻔하게 덥단다.
부르르 떤 그녀가 일어나며 생각했다.
‘3차도 가는 건가?’
처음이라서 술자리가 얼마나 이어질지 몰랐던 그녀는 혹시 3차에 간다면 모임장 옆에 앉아야겠다고 다짐했다.
1시간 뒤.
아쉽지만 모임장은 내일 작업을 위해 이만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여자 셋도 다음 주에 보자며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남은 작가들도 뿔뿔이 흩어졌는데, 순식간에 둘만 남겨진 그녀가 필모 작가에게 말했다.
“저도 가 볼게요. 오늘 즐거웠고 고마웠습니다.”
“데려다줄게요.”
“네? 왜요?”
“같은 방향이잖아요.”
“…….”
“가죠.”
그가 먼저 성큼 걷기 시작했다.
“……괜찮은데…….”
분명 들었다. 하지만 그는 듣지도 않았다. 다음 주에 또 봐야 하는데, 이대로 뒤돌아 가긴 뭐해서 그녀도 뒤따랐다.
‘이런 사람이었구나.’
아깐 다른 사람 노래할 때 호응도 안 해 주고 지금은 자기 말만 하고 걸어가 버렸다.
고깃집에선 누가 구워 놓은 것만 쏙쏙 집어 먹고…….
‘버스 타자.’
혼자 있고 싶었다.
“저! 이쪽이에요!”
“아닌데요?”
“버스 타려고요.”
“왜요? 지하철이 더 빠른데.”
“그냥 밖을 구경하면서 가고 싶어서요.”
“그러면 같이 타죠. 나는 중간에 내리면 되니까.”
“……그러세요.”
천만다행으로 정류장에 가자마자 버스가 왔다.
먼저 타면 엉덩이를 뚫어지게 보고 있을 것 같아서 머뭇거리자 그가 올라탔다.
그가 성큼 걸어가더니 창가에 앉아서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
몇 정거장만 참으면 된다. 여기서 다른 자리에 앉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 거다.
뒷문 근처에 나란히 앉았는데, 그가 말했다.
“나중에 따로 밥 한번 사세요.”
“네?”
“아까, 고맙다면서요.”
“아…….”
‘인사치레였는데 이렇게 생색내는 사람도 있구나.’
그냥 다음 주부턴 나오지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녀에게 그가 말했다.
“그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요?”
“아까 내 의견 말이에요. 술 안 마시는데 술값 더치하는 건 부당하잖아요. 내일부터 모임장이 물어볼 건데, 계속 이럴 순 없으니까요.”
‘아까 고기 제일 많이 먹지 않았나?’
오늘은 무한리필집이었다지만 다음엔 어딜 가게 될지 모른다.
중국집에 간다고 치면 짜장면 먹는 사람은 짜장면값만 내고 안주로 탕수육 먹는 사람들이 더 내야 하나?
나중엔 이런 것도 얘기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연애할 때도 다 그렇게 하자고 할 것 같아.’
나는 피자 두 조각 먹었으니까 나머지는 네가 다 내.
벌써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좋은 게 좋겠죠.”
벗어나고 싶었다.
“아! 전 여기서 내릴게요! 나온 김에 뭐 좀 살 게 있었는데 깜빡했어요!”
버스가 정류장에 서는 타이밍에 맞춰 그녀가 일어났다.
치이이익!
“허억…… 허억…….”
급히 내린 그녀가 숨을 골랐다.
“진짜 싫다…….”
그렇지만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어서 말을 섞기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버스가 떠났으니까 이제 끝이야!’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버스가 섰다.
그러곤 그가 내렸다.
“……?”
이 순간엔 정말이지 닭살이 돋았다.
필모 작가가 위풍당당하게 걸어왔다. 하도 황당해서 그녀는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그가 오더니 입을 열었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마침 오늘이 좋을 것 같아서. 난 너 정도면 내 여자 친구로 괜찮다고 판단했어. 어때? 이런 기회 쉽게 안 올 텐데. 제법 괜찮은 남자거든, 내가.”
‘지금 고백하는 건가?’
급히 내려서 번화가도 아니었다. 쌩쌩 달리는 차만 있었고 사람도 없다.
“오빠라고 불러도 좋고.”
씨익 웃는 그를 보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녀는 꾹 참았다. 그러곤 후우, 숨을 내쉬며 단호하게 말했다.
모질지 못한 성격이지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연애할 여유가 없어요! 저는 작품이 먼저예요! 저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시길 바랍니다!”
“아까 즐거웠다며.”
“네?”
“부끄러워서 그래?”
“…….”
“너는 아직 어려서 모르는 것 같은데, 남자는 다 쓰레기야. 아까 그 모임장도 여자 만나려고 나오는 거라고. 왜 남자 넷 여자 넷으로 맞췄겠냐? 짝지으려는 거잖아.”
“그게 무슨…….”
“남자 중에서 내가 제일 나아. 그러니까 잘 선택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진짜라니까? 민식이 있지? 안경 쓴 애. 걘 그림도 잘 못 그리면서 아는 척 오진다니까? 얼마나 피곤한데.”
“저, 가 봐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허릴 숙여 인사하고 그녀가 급히 걸었다. 저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가 따라붙었다.
“언제 밥 살 건데?”
“……나중에요!”
“그러니까 나중에 언제.”
“모르겠어요!”
“하! 지금 장난하나. 뭔데?”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
*
*
“본명 이준영. 나이 스물여섯. 군대 전역 후 대학은 휴학 상태이며, 필모라는 가명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해 왔습니다. 신장 169에 체중 85kg 정도로 추정되며, 이게 마지막 CCTV 영상입니다. 피해 여성을 따라 내렸다는 버스 기사의 증언도 확보했습니다.”
브리핑에 반장이 물었다.
“어디로 끌고 간 거야?”
“보시다시피 편의점 안쪽 골목까지의 영상은 확인되나 안쪽 골목으로 접어든 이후론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주자된 차량 블랙박스는?”
“연식이 오래된 차량이 많아서 주차 중 녹화가 되는 블랙박스는 없었습니다.”
“거참, 그러면 어디로 갔다는 건데? 혹시 근처에 월세방 같은 게 있는 건가?”
“영장이 나와도 모든 집을 다 수색하긴 어렵습니다. 탐문하곤 있지만, 소득은 없고요.”
“목격자도 없어?”
“아직은 그렇습니다.”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날 모임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 행적은 다 파악했는데, 두 사람이 귀가하지 않았다.
“그 김수정 실종자는 이준영하고 자주 연락하던 사이인가?”
“인터넷에서 얼마나 접촉했는진 아직 확인 중에 있습니다. 통화 기록은 없고요.”
실종자들 사진이 보드판에 붙어 있었다.
아직은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단언할 수 없었지만, 사진만 놓고 보면 김수정은 인기가 많을 외모였다. 반면 이준영은 정반대였다.
“이준영이 김수정을 이날 모임에 초대했다고 합니다. 이준영의 자취방은 이틀째 비어 있고요.”
“차량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은?”
“둘 다 면허가 없습니다. 현재로선 이준영이 김수정을 납치, 감금했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날 모임에서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이나 사라지기 직전의 동선을 보면 사심이 있었던 것이 확실하고요. 노래방에서도 성추행에 가까울 정도로 치근덕거렸답니다.”
“하, 참. 어딜 간 거야?”
보통 이런 사건은 며칠 있으면 알아서 해결된다.
젊은 혈기에 욱해서 저질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이 돌아올 거다.
성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계획범죄가 아니면 서울에서 즉흥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긴 불가능하다.
“인근 빈집은?”
“탐문하면서 부동산도 돌고 있습니다.”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택시를 탔을지도 모르니까, 근처 도로 CCTV 따서 기사들 수소문해 보고. 핸드폰은 둘 다 꺼져있다고?”
“그렇습니다.”
“후……. 최악의 상황은 없어야 할 건데.”
남자가 여자에게 마음이 있었는데 그걸 여자가 받아 주지 않자 남자가 무력을 썼을지도 모른다.
범죄가 일어나는 전형적인 패턴이었는데, 김수정이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9시간 후.
반장 앞에 다시 모인 형사들은 지친 얼굴이었다.
“실종 추정 지점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1시간 거리 모텔을 포함한 숙소, 놀이터, 화장실까지 다 뒤져 봤지만 없었습니다.”
“공개수사로 전환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골든 타임이 곧 끝나 가는데요.”
범인은 궁지에 몰리면 피해자를 살해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준영을 용의자로 특정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반장은 신음했다.
김수정이 멀쩡한 모습으로 귀가했다는 연락이 오면 천만다행이겠는데, 점점 불길한 생각이 엄습했다.
막말로 어느 야산에서 이준영이 김수정을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어 버리면, 몇 년이 지나도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산이 아니라 바다나 강이라면? 어디까지 떠내려 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제발 살아 있어야 할 텐데.”
모두가 초조해지고 있었다.
*
*
*
이준영은 눈을 떴다.
“읍읍읍……!”
그런데도 캄캄했다. 입에 뭔가 잔뜩 들어와 있어서 소릴 지를 수도 없었다.
손은 뒤로 꽉 묶여 있었는데, 너무 아파서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씨발! 뭐야!’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다.
마지막 기억이라곤 뭔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것뿐. 수면 마취를 했다가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들자 오한이 엄습했다.
“읍읍읍읍!”
의자가 덜컹거렸다. 발도 모아서 묶어 놔서 몸을 흔드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기우뚱!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쿠웅!
“……커헑……!”
뒤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말도 못 하게 아팠다. 입을 떡 벌리고 천장을 향해 의자와 함께 누워 있을 때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