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80)
작가귀환-180화(180/250)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의 머리 바로 옆까지 왔다. 쪼그려 앉는 것 같더니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잘 들어. 너는 입주 자격이 없어.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뜻이야. 그때 죽을 정도로 때렸는데 운이 좋아, 아직 살아 있는 걸 보면.”
팀장이 혀를 찼다. 여자만 데려오려고 했는데 이 거머리 새끼가 여자한테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지켜보는 게 곤욕일 정도로 지저분한 새끼였는데, 일단 그대로 두면 일이 커질 수 있어서 데려왔다.
“하루야. 딱 하루 더 지켜보며 안 죽으면 그땐 운명이다 생각하고 기회를 줄게. 얌전히 있어, 생각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나는 토막 치는 게 편해.”
인원이 늘어서 장비가 더 필요했다.
팀장은 차로 이동해서 ‘전자랜드’에서 물건들을 샀다. 어차피 그놈이 죽어도 언젠간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는 장비였으니 아깝진 않았다.
몇 시간 후 돌아와서 방에 장비를 설치하는데,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진 자세 그대로 이준영이 있었다.
“죽었나?”
그 말에 이준영이 ‘읍읍읍읍!’ 하며 몸을 틀어 댔다.
“질긴 새끼네.”
‘뒤통수가 피로 흥건한데 뇌진탕이나 뇌출혈이 심하진 않은 건가?’
팀장은 장비 세팅을 끝내고 옆방으로 이동했다.
여자도 같은 모습으로 의자에 묶여 있었다.
깨어난 걸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의만 확인하면 된다. 생리 현상을 무한으로 참을 순 없는 거니까.
“입주를 환영합니다. 두 시간만 참으세요. 곧 편해질 겁니다.”
이준영은 예정에 없던 놈이지만 이 여자는 선택받았다.
부르르르르.
여자가 어깨를 사시나무처럼 떨어 댔다.
무서운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이곳에 온 모든 작가들이 겪었던 일이고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것도 경험으로 안다.
장비를 세팅한 그가 수건에 약품을 적셔서 여자의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으읍!”
버둥거리던 그녀의 몸이 축 늘어지자 그는 익숙하게 구속을 풀고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그러곤 더러워진 옷을 잘게 자른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이제 깨끗한 옷을 침대에 올려 두고 오물과 넝마를 치웠다. 일어나면 행동 강령을 보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이 일사천리였다.
아홉 번의 연습이 있었고 이제 열 번째다. 두 사람을 한 번에 잡아 오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남자만 무력화시키면 여자는 어렵지 않았다.
특히 10번의 경우 순한 양처럼 온순해서 더 편했다.
그가 자신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아직 10번과 11번 방은 다른 작가에게 공유하지 않았기에 작가들은 신입이 들어온 걸 몰랐다.
인터넷을 열었다. 뉴스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두 사람이 실종되었으니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괜찮나?’
그가 경찰서를 드나들 순 없었기에 기사가 나기 전까지 정확한 정보를 손에 넣을 순 없었다. 수사 방향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보려면, 계속해서 모니터를 해야 했다.
몇 시간 후.
침대 위 여자가 꼬물꼬물 일어나는 게 보였다.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옷부터 입었다. 그러곤 한참을 앉아 있었다.
몸을 들썩이는 걸 보면 우는 것 같은데, 확대 기능이 없어서 정확히 볼 순 없었다.
그는 그녀를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계속해서 인터넷 기사를 뒤졌다. 종이 신문과 달리 인터넷은 수시로 속보가 뜬다.
‘당분간은 서울 말고 지방으로 다녀야겠어.’
아무리 가출, 실종이 많은 나라라지만 서울에서만 집중적으로 그러면 의심을 받을 게 분명했다. 상대적으로 서울에 작가가 많겠지만 찾아보면 광역시에도 있을 거다.
그가 11번 모니터를 봤다.
‘저놈이 죽으면 유서를 만들어서 자살로 위장하면 되겠네.’
그도 작가들과 생활하다 보니까 짧은 스토리 하나 떠올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흑심을 품은 남자가 여자를 어떻게 해 보려다 안 되니까 우발적으로 죽였고,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되면 공개적으로 여자는 죽은 사람이 된다.
‘이 방법도 괜찮은데?’
이제까진 은둔형 외톨이를 최우선으로 찾아다녔다. 연애하고 있으면 까다롭고 가족과 함께 살아도 어려웠다.
그런데 관계를 조금만 이용하면 덮어씌울 수 있지 않나?
완전범죄가 되는 거다.
한참을 봤지만 기사가 뜨지 않자, 그는 긴장을 풀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다리를 꼬아 책상에 올렸다.
‘조금만 쉬자.’
그에게도 고된 시간이었다.
작가를 새로 들일 때면 평소의 몇 배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것이 피로로 쌓이고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는다.
1시간 남짓 선잠을 잤을까?
눈을 뜬 그가 모니터를 봤다. 10번과 11번은 여전했고 작가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한 자릿수와 두 자릿수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지난 데이터로 이제 더 효율적인 플랜을 세울 수 있게 되었으며, 웹툰 작가 지망생이 들어왔으니 새로운 웹툰을 한 작품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였다.
“어……?”
기사가 떴다.
【도심의 실종. 의문투성이. 그들은 어디로 갔나?】
【이십 대 남녀의 실종. 경찰. 가족의 요구로 사진 공개.】
【실종자를 찾습니다. 이름 김수정…… 이준영…….】
【과연 누가 범인인가?】
다양한 접근의 기사가 순식간에 속보를 점령했다.
“…….”
꿀꺽, 위기감에 절로 침이 넘어갔다.
‘이렇게 빨리?’
아무래도 여자 가족이 애타게 찾는 것 같다.
“으음…….”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지만, 세상에 완벽한 건 없었다.
“좋지 않은데.”
그가 팔짱을 끼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저들을 풀어 줄 순 없었다. 이미 의식이 돌아왔었고 그렇다는 건 죽을 때까지 이 사무실에 귀속되었다는 거다.
어떤 생각을 떠올렸는지, 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까 여자의 옷을 조각내서 담아 두었던 큰 봉지를 들고 그 안에서 쓸 만한 것들을 추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장갑을 착용하고 마스크와 모자까지 했다.
깨끗한 봉지로 몇 가지 물건을 옮긴 그는 다시 한번 침착하게 생각했다.
‘이 정도면 증거가 되겠지.’
아까 오물 눌어붙은 머리칼도 조금 잘라 두길 잘했다.
옷 일부와 머리칼, 핸드폰이면 그녀를 특정할 수 있을 거다. 이걸 적당한 곳에서 누군가가 발견하게 두면 끝난다.
어디가 좋을까?
‘평소엔 인적이 드물지만, 가끔 관광객이 찾는 곳. 주변에 저수지 같은 끔찍하고 두려운 일들이 벌어졌을 것만 같은 장소가 있으면 더 좋아.’
나이가 들면 다녔던 곳들이 늘어난다.
그는 머릿속에 적당한 곳이 떠오르자 차로 향했다.
*
*
*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끔찍한 경험이었다.
-닥쳐! 소리 지르면 죽여 버린다!
손찌검까지 당했다.
-죽고 싶어? 어! 어?
골목 안쪽으로 가서 대체 뭘 하려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상식으론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그걸 실행에 옮기려 했다.
자기 바지를 내리는 걸 보며 그녀는 정신이 마비되는 걸 느꼈다.
노상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사람인가?
누구라도 도와줘!
밀쳐 내려고 했지만, 힘이 얼마나 센지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그의 손을 깨물어도 봤지만 어림없었다.
이때 그림자가 하나 나타났다. 그러곤 타격음이 들렸고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
지옥에서 벗어났더니 또 지옥이었다.
“…….”
몸은 지켰지만 다른 의미로 몸을 빼앗겼다.
여기서 쉽게 나갈 수 없을 거라는 건 직감했다. 저기 저 모니터엔 사람들의 얼굴이 빼곡하게 있었고 벽엔 행동 강령이, 환경은 영화에서나 봤던 감옥과 비슷했다.
죄를 지어서 자신이 감옥에 온 건 아니다. 저 행동 강령만 봐도 그랬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지?’
그도 이곳에 끌려온 걸까?
성욕으로 점철된 그 두려운 눈빛이 떠오를 때마다 입술이 벌벌 떨렸지만, 혹시 죽은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무서웠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밖에 나갔던 팀장이 돌아와서 10번이 된 그녀에게 이곳에서 적응하는 법을 설명하고 또 시간이 흘러 하루가 지날 때 팀장은 남자를 내려보고 있었다.
“대단한데?”
머리의 피는 말라붙어서 더 흐르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란다고 자세도 바꾸지 않았다. 오줌은 찔끔찔끔 싼 것 같지만 이만하면 굉장히 좋은 상태였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읍읍읍!”
살았단 생각에 남자가 꿈틀댔다. 하지만 팀장은 다른 생각이 있었다.
“얌전히 있어.”
차분해진 그의 옷을 장갑 낀 손으로 말끔하게 벗겨 냈다. 그걸 고이 큰 봉투에 담았다.
이것들로 어떤 증거를 조작할진 나중 일이지만, 어쨌든 이놈이 살아 있어야 수사에 혼선을 줄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
머리카락도 자르고 입에 물렸던 재갈도 풀었다. 타액으로 범벅이 되었으니 더 좋다.
그의 몸을 일으켜서 침대에 앉혔다. 그러곤 약품으로 재워 버렸다.
축 늘어진 그에게 간단한 응급처치를 해 줬다. 뒤통수를 소독하고 오물을 닦아 주었다.
한동안이 될지 아니면 계속될진 모르겠지만, 그에겐 11번이란 이름도 부여했다.
‘여차하면…….’
이놈 육신이 모든 사건을 마무리해 줄 것이다.
*
*
*
뉴스는 빠르게 달아올랐다가 더 빠르게 식는다. 내일이 되면 새로운 소식에 묻히고, 어제를 기억하는 건 가족이나 피해자밖에 없다.
이번 사건도 그랬다.
실종 사흘 차에 김수정의 유류품 일부를 확보한 경찰은 용의자를 이준영으로 특정했다.
김수정의 속옷에서 이준영의 DNA가 나온 것이다. 실수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범벅이었고, 저수지를 찾은 낚시꾼은 두 사람을 목격하진 못했다고 전했다.
기자가 움직였다.
【이준영이, 걔. 고등학교 때도 문제 많았어요. 여자애들을 주로 괴롭혔고요.】
【제가 상병 때 걔가 일병이었는데 영창을 갔거든요. 저 말고 걔가요. 소아성애 성향을 보였거든요. 그런 만화책 있잖아요. 일본에서 해적판으로 만든 거. 그걸 부대에 들여와서 보고 있었더라고요.】
【음침했어요. 모임에서 잘 어울리지도 않고 여자들 가슴이나 엉덩이만 노골적으로 빤히 보고. 그래서 저도 몇 번이나 짜증 났었어요. 어느 순간부턴 치마도 못 입겠더라고요. 그리고 그거 아세요? 말할 때 옆 사람 툭툭 손으로 치는 거. 여자들한테만 그런다니까요?】
이준영의 자취방에선 다량의 피규어가 발견되었고 그의 컴퓨터엔 엄청난 양의 음란 동영상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런 것들의 상당수는 일반적이지도 않아서 뉴스에 제대로 내보낼 수도 없는 것들이 많았다.
왜인진 몰라도 여자 스타킹과 팬티도 그의 서랍 안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틀 뒤 그 스타킹의 주인이 옆집에 사는 여자란 게 밝혀지며 결정적으로 그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작가님은 11번입니다. 오늘부터 작업에 합류하게 되실 거고요.】
팀장이 큭큭 웃었다.
세상 돌아가는 게 참 재미있다. 경찰은 이준영이 김수정을 죽이고 잠적했다고 보고 있었다.
‘스타킹은 왜 훔친 건데?’
어쨌든 그 덕분에 일이 쉬웠다.
【유념하실 건 10번 작가님을 알은척해서도, 관심을 두어서도 안 됩니다. 만약 그것을 어길 시 작가님의 발가락을 하나씩 자르겠습니다.】
11번 작가가 기겁하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10번 작가가 이놈을 보면 충격받을 수도 있어서 며칠 텀을 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격리할 순 없었고, 상황 돌아가는 것도 괜찮아서 결정했다.
【다시 말하지만, 작가님은 새로 목숨을 얻은 겁니다. 과거의 쓰레기 같던 나를 버리고 다시 시작하세요. 그것만이 살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