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82)
작가귀환-182화(182/250)
작가가 실종되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팀장이 관련되어 있나?’ 하고 의심했지만, 용의자가 나온 뒤론 김수정이 무사히 생환하기만 바랐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쪽 시장은 아직 마이너한 이미지가 컸는데, 이런 사건이 터지면 인식이 안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예진이 들어왔다. 뉴스를 껐다. 이제 내 방에도 번듯한 TV가 생긴 것이다.
“벌써 시간 됐나?”
“네. 손님들 오셨어요.”
흉흉한 분위기였지만 미리 잡아 둔 약속을 취소할 순 없었다.
오늘은 가까운 지인들이 모여 회사 이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우린 출판사로 시작했지만 웹툰, 드라마, 엔터 사업까지 확장했기에 손님들도 쟁쟁했다.
“오! 정 대표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지리산 엘프 감독이 반색하며 나를 반겼다.
넓은 연습실을 파티장으로 꾸몄다.
“기다리다가 목 빠지는 줄 알았어요.”
감독 옆에서 이사라가 나를 보며 눈을 흘겼다.
민 팀장이 블랙잉크를 데리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는 게 보였다. 디엠은 이제 가만 놔둬도 사람들이 몰리지만, 블랙잉크는 영업할 때다.
“바쁘실 텐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
지리산 엘프도 어느덧 종영을 앞두고 있었다.
높은 시청률과 함께 미국에까지 판권을 판다는 소식에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원작이 훌륭해서 다 잘된 거 아니겠습니까.”
좋은 일만 있으면 사람들이 만나서 얼굴 붉힐 일도 없었다.
오늘 자리가 특히 그랬다.
“오! 김 PD!”
만나는 사람마다 표정이 밝았다. 김 PD가 나를 슬쩍 옆으로 이끌었다.
“국장님 사인 떨어졌습니다.”
“아, 그러면 같이 가시는 건가요?”
“네! 스태프는 최소 인원으로 구성했지만, 다들 베테랑이라 걱정 안 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면 두 팀으로 나눠서 다녀야겠네요.”
“두 사람이 경기 나갈 때 잠깐 일정 맞춰서 응원하는 그림도 담으려고 합니다. 콘서트가 마지막이고요.”
미국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자주 다닐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기에 이번에 가서 최대 효율을 뽑아 와야 했다.
“블랙잉크는 잘 준비하고 있습니까?”
“노력 중입니다.”
“기대가 큽니다. 디엠과도 좋았지만, 여돌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까요.”
“하하! 확실히 밀어주십시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김 PD와는 거의 한 식구나 다름없었기에 이런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저기 영웅이 모습도 보였고 웹툰 작가들도 왔다.
김 PD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요즘, 웹툰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더라고요. 혹시 카메라 울렁증 없으신 분 계십니까?”
“어후, 저는 연재만으로도 잠이 부족해 죽을 것 같습니다.”
“저도요.”
“카메라라니, 생각만 해도 정신이 나갈 것 같아요.”
작가들이 손사래를 치자 김 PD가 쓰게 웃었다. 예능감 좋은 웹툰 작가 몇 명만 더 있으면 재미있는 걸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니, 일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나 보다.
그가 다른 작가를 찾아 나설 때, 나는 이사라와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벌써 올해도 반년이 지나고 있어서 하반기 일을 빠르게 추진해야 했다.
“전에 말씀하셨던 그 라면이요. 시제품 반응이 좋아요.”
“그렇습니까? 저도 먹어 보고 싶군요.”
“매운 거 못 드시면서.”
“그래도 맛은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쉽게도 이사라는 미국에 같이 가지 못하지만, 한국에서 그녀가 할 일은 너무나도 많았다.
“아버지께서 2차 전지와 반도체, 자동차 전장 사업에 투자하시겠다고 해요.”
“잘 생각하셨네요.”
“원래 그렇게 쉽게 큰일을 결정하시는 분이 아닌데, 대표님 말씀엔 쉽게 순응하시는 걸 보면 신기하다니까요.”
“저는 사심이 없으니까요.”
권력을 쥐면 온갖 사람이 모여들 것이다. 그런 이들 중 다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할 것이지만, 나는 그냥 정보만 준 거다.
“그 사심 조금은 가져도 될 것 같은데요?”
“하하!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죠.”
“이미 송충이는 아니신 것 같은데요?”
여기 모인 사람들을 보며 이사라가 웃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다. 나는 이제 웹소설 작가라고만 부르기엔 너무 많이 커 버렸다.
지금도 원천은 소설에서 나오지만, 추진한 것들이 맞물려 돌아가 수익을 창출할 때쯤엔 은퇴를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후회는 없다. 그만큼 지겹게 써 댔으니까.
유쾌한 파티가 진행되고 있는데 태훈이 급히 들어왔다.
“경찰이요?”
사색이 되어 말하는 태훈을 보며 내가 의아한 얼굴로 눈을 깜빡거리다가 그와 함께 스윽 밖으로 나왔다.
“어디에 계세요?”
“일단 주차장에 계시라고 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사람도 많은데 경찰이 드나들면 없던 소문도 생겨날 것이다. 심지어 기자들까지 와 있잖은가!
내려가자 두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관악서에서 나왔습니다.”
“아, 예. 정현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희가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데, 공조 요청이 들어와서 자료를 넘겨받았거든요. 두 케이스 간에 연관성은 전혀 찾을 수 없었지만, 혹시나 해서 왔습니다.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도움이 된다면 제가 얼마든지 도와야죠. 근데 두 케이스라니요?”
“대표님 소속 아카데미 작가 실종 사건과 이번에 김수정 씨 실종 사건입니다.”
“아…….”
“친분도 없고 지역도 다르지만, 작가라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요. 거기에 더해서 저희가 조사해 보니까, 실종된 작가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요?”
“그건 확인 중에 있습니다만, 실종 신고가 접수된 세 명이 웹소설, 웹툰 지망생이었습니다. 박경우, 김중빈, 유한호 씨 아십니까?”
“전혀요. 혹시 사진 있습니까? 얼굴을 보면 알지도 모릅니다. 제가 가르친 학생이 워낙 많아서요.”
“아, 여기 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내가 아는 얼굴은 없었다.
“음……. 모르는 분들이네요.”
“단순 가출일 수도 있겠지만,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수사를 확대할 생각입니다.”
“어떤 부분이요?”
“주로 혼자 살았다는 점, 어떤 징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 소설이나 그림을 그렸다는 게 이상하죠. 무엇보다 이런 케이스는 여성이 피해자가 많거든요? 이번 김수정 씨처럼요. 그런데 실종자들이 남성이란 것도 이상하죠. 도박이나 마약, 불법적인 단체에 연루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 사이비 종교 단체도 뒤지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가 내게 명함을 주었다.
“뭐든 좋으니까, 혹시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곧장 전화드리겠습니다.”
*
*
*
성수동에서 돌아온 형사들이 회의에 합류했다.
“만나 봤어?”
“네, 특별한 점은 없습니다.”
전보다 인원이 많아진 만큼 이번 사건은 반드시 해결해야 했다.
수도권 연쇄 실종 사건 팀장을 맡게 된 조정환은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용의자는 이쪽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이건 가출이라고 보기 힘들어.”
김수정, 이준영 말고 실종된 3명의 방 사진이 나왔다. 바로 어제까지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생활감이 있었고, 정리한 흔적도 없었다.
전기밥통에 말라비틀어진 밥도 그대로였다. 멀리 떠날 생각이었다면 이런 것들부터 치웠으리라.
팀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장기 밀매일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여성만 실종되었다면 유흥 쪽을 집중적으로 뒤지겠지만, 성인 남성들이 다수야. 자네들이라면 이들을 데리고 뭘 하겠나?”
“음, 섬 노예나 새우잡이 배에 태우겠죠.”
“맞아,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모든 곳들을 탐문해야 돼. 그나마 젊은 사람들이니까 시골 같은 곳에 있다면 눈에 띌 거야.”
한둘이면 우연이다. ‘회사원이 실종되었다.’라고 한다면 해당 직업을 가진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다? 그것도 웹소설이나 웹툰처럼 매우 희귀한 직업군이라면 뭔가 있다.
“이들이 함께했을지도 모를 모임이 더 있나 알아보고. 거주지에서 뭐 없어진 건 없는 거지?”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확인했지만 사라진 건 없었습니다. 박경우는 핸드폰도 집에 뒀어요.”
“자살하는 사람도 핸드폰은 들고 나가는 시대야. 내 경험상 가출은 절대 아니야.”
팀장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릴 때 팀원이 자료를 들추며 말했다.
“실종자가 더 있을까요?”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한 해 2만 명의 실종 신고가 들어온다. 이제 7월이니까 반년 치만 뒤져도 1만 명이고 수도권 한정이라고 해도 수천 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다 확인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더 큰 문제는 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거란 거다.
실종자들 공통점은 일정한 직업도 없었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사라진다고 해도 가족이 자취를 발견하지 않는 한 모르고 넘길 것이었다.
“한전에 가서 최근 전기세 3개월 이상 밀려서 공급 끊어진 집들 확인해 봐. 작가니까 컴퓨터가 안 되면 아무것도 못 할 거야.”
그들에게 컴퓨터는 가족이자 친구일 것이다.
“제가 바로 가 보겠습니다.”
“김 형사는 이 형사랑 같이 국과수 가서 김수정 유류품에서 다른 DNA 나온 거 없나 확인하고.”
“네!”
“실종자들 주변에 원한을 가질 만한 이가 있는지 찾아봐.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거 뒤져 보고. 그 이준영이도 평소에 인터넷에서 욕 많이 하고 다녔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사람들하고 싸웠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게 원한이 쌓였을 수도 있는 거잖아. 아 참, 실종자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게임도 조사하고.”
김수정, 이준영을 포함하면 벌써 다섯이고 이세호까지 묶으면 여섯이었다. 이건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형사들이 각자의 업무를 가지고 흩어지자 홀로 남은 팀장은 보드 판을 보며 펜으로 수도권 연쇄 실종 사건이라는 글자에서 ‘수도권’을 지우고 앞에 ‘작가’라는 글자를 썼다.
‘핵심은 이거야.’
작가 연쇄 실종 사건.
초점을 어디에 맞추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뀐다. 그는 실종자들이 하나같이 무언가에 엮여 있으리라 생각했다.
‘돈, 치정, 원한.’
셋 중 하나 때문에 범죄가 일어난다고 한다면, 이들에게 접촉할 수 있는 누군가가 대부업을 했을 수도 있고 고액 알바를 미끼로 어딘가에 데려가서 범죄에 쓸 수도 있었다.
‘일정한 수입 없이 생활을 해야 했었을 테니까.’
큰 부채는 없었다지만 20대는 몇백만 원 때문에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
‘철저하게 혼자 사는 사람을 노렸어.’
실종자들을 조사할수록 의심이 확신이 되어 갔다. 오랜 수사 경력이 말해 주고 있다. 이건 범인이 있는 케이스라고.
‘대체 왜 그랬을까?’
모든 범죄는 동기가 필요하다. 하다못해 묻지 마 범죄도 사회나 세상에 대한 악의가 있었다.
동기를 추정할 수 있으면 범인의 다음 목표를 알 수 있고 수사망을 좁힐 수 있었다.
“왜……?”
보드 판에 붙은 사진들을 보며 그가 미간을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