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85)
작가귀환-185화(185/250)
미국 하면 드는 생각은 백인과 흑인, 할리우드와 햄버거 정도가 다인 내게 라스베이거스는 충격적인 몸집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은 내가 얼마나 좁은 공간에서 살아왔는지 여실히 비웃었고, 더 많이 보고 느껴야 한다며 여행을 추천하는 많은 이들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이곳은 향락과 도박의 도시다. 진성이와 진국이가 아니었다면 내가 절대로 올 곳은 아니었지만, 이것도 다 경험이겠거니 하고 돌아다니는 중이다.
여기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전무했고, 동양인 중에선 중국어가 자주 들렸다.
김 PD 일행은 LA로 갔다. 그래서 우리는 진성, 진국, 나와 수현이 전부였다. 비스트 몬스터 막바지에 합류할 거다.
그러면 중요한 건 뭐다?
‘예선은 무조건 통과해야 하는데.’
떨어지면 우린 여기서 팀원들이 올 때까지 무력하게 방치되어 있을 예정이었다.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었다. 의외로 수현이 영어를 좀 했다. 손짓, 발짓을 동원하긴 했지만, 그 정도면 훌륭했다.
호텔은 안전했고 우린 자유 시간이었기에 뿔뿔이 흩어졌는데, 40분쯤 돌아다녔을 때 진성이와 진국이가 보였다.
“…….”
아이돌인데 파친코를 하고 있었다.
저래도 되나? 미국이라서 괜찮나? 괜히 도박했다고 손가락질받으면 곤란할 것 같은데?
노파심에 다가가는데 고맙게도 두 사람이 먼저 개털이 돼서 일어났다.
“아오, 다신 안 해!”
“이거, 사기 아닙니까?”
“우릴 물로 보는 거겠지. 저 안에 칩 같은 거 있을걸. 절대 딸 수 없는 구조야.”
“형님, 얼마 잃었어요?”
“만 오천 원.”
“크으, 저도 이만 원 날렸어요. 그거면 붕어빵이 몇 마리인데.”
스케일 보소. 괜히 걱정했다.
“어? 형님.”
진성이 나를 발견했다.
우리 셋은 자연스럽게 합류해서 구경을 다녔는데, 화장실 갔던 수현이 돌아왔다.
“대표님은 한 게임 안 하세요?”
“저는 워낙 운이 없는 놈이라서요.”
그건 내 10년이 증명한다.
“에이, 대표님처럼 운 좋은 사람을 제가 못 봤는데요. 재미로 해 보세요. 이것도 추억인데. 또 언제 와 보겠어요?”
최근 2년만 보면 그렇게 보이겠지.
“아까 바꿔 놓은 칩이 있는데 좀 드릴게요.”
“이게 다 얼만데요?”
“한 3만 원? 그 정도 될 거예요.”
그 정도라면……. 나도 작가니까 취재한답시고 도전해 봐? 고민하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쳤다.
촤르르르륵.
바닥에 칩이 떨어졌다. 수현이 곧장 반응하며 움직였는데, 진성이 더 빨랐다.
“뭐 하는 짓?”
진성이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흑인의 팔을 잡았다.
“왜 길을 막고 있어?”
여긴 거짓말 조금 더 보태면 축구장만 하다.
“냄새나는 것들이.”
히죽 웃으며 두 손으로 자기 눈꼬리를 찢었다. 저게 동양인 비하 동작이란 걸 나는 이때까지도 몰랐다.
“이런 개자식이!”
수현은 알았나 보다. 그가 폭발하려는데, 저쪽에서 한 무리의 흑인들이 더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너희는 뭐야?”
“저놈들이 시비 걸었어?”
영어는 알아듣지 못해도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진 알겠다.
저들 숫자가 상당히 많았기에 수현이 버럭 외쳤다.
“헤이! 가드!”
여긴 호텔이었고 도박장엔 언제나 덩치들이 있다.
순식간에 우르르 보안 요원들이 모여들자 흑인들이 쳇, 바닥에 침을 뱉었다.
“너희 운 좋은 줄 알아.”
“너네 나라로 돌아가!”
“노란 원숭이들! 겁먹은 거 봐!”
이 나라엔 총이 있고 저들은 취해 있었다.
“…….”
나는 대표로서 우리 아이돌과 직원을 지켜야 했다.
“저런 쒸벌 넘들이 뭐라는 거야?”
진국이 팔을 걷어붙이고 소리치자 흑인들은 혀를 날름거리며 웃다가 사라졌다. 보안 요원들 무서운 건 아는 것 같았다.
“가자, 너희는 공인이야. 문제 일으켜선 안 돼.”
생각 같아선 놈들을 잡아다가 볼기짝을 쳐 주고 싶었지만, 이렇게 오늘 또 하나 배운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었다.
‘TV에서만 보던 인종차별을 이렇게 쉽게 당하는구나.’
개에게 물려 봐야 손해다.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현인의 말씀을 곱씹으며 호텔로 올라갔다.
*
*
*
김 PD는 흐뭇하게 구성원들을 보았다.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순 없었지만, 디엠 셋과 여가수 둘의 조합은 어딜 가나 시선을 끌었다.
‘확실히 아이돌 다 됐네.’
스태프까지 20명이 넘었기에 잘 통솔해야 했다.
“장비 다 확인해!”
“네!”
주로 거리에서 버스킹을 할 예정이었기에 가수들은 일상복 차림으로 콘셉트를 맞췄다. 그래도 얼굴에서 빛이 난다.
규리는 이번 기회에 꼭 제2의 전성기를 보고 말겠다는 각오로 왔다.
섭외가 들어왔을 때 신인 아이돌과 함께란 말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디엠’이란 얘기에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도 강철의 부대 애청자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업계에서 소문이 하나 돌고 있었다. 메멘토모리 정현우 대표가 하는 일엔 JJ 그룹이 지원을 아끼지 않고, 그래서 무조건 잘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색해 보니까 그랬다.
나도 솔로, 더 퀸, 조폭집 막내아들, 지리산 엘프까지 라인업이 대단했다.
그 흥행을 이 버스킹이 이어 간다면, 침체기에 빠졌던 자신의 커리어가 다시 빛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웃으며 김 PD에게 말했다.
“힘들진 않으세요?”
“저는 본래 이렇게 빡세게 굴러야 사는 것 같은 사람입니다. 하하! 그래도 미국은 오랜만이라 기분은 참 좋습니다.”
“국장님과 담판을 지으셨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요.”
두 사람 얘길 듣고 있던 츄는 규리보다 한 살 어리지만, 앨범은 한 장 더 냈고 데뷔도 2년 빨랐다. 소속사에서 좋은 기회가 왔다기에 그냥 온 케이스였는데, 그녀도 미국은 처음이라 떨렸다.
‘다들 숫기가 없네.’
디엠 셋은 이제 막 데뷔한 보송보송한 아가들로 보였다. 먼저 말을 걸기 전엔 대화도 없었다.
이럴 땐 선배로서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 역시 그리 싹싹한 성격이 못 돼서 아직 빛을 보지 못했다.
“이동합니다!”
오늘은 호텔에 가서 휴식하고 내일부터 버스킹이 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피부에 오이라도 하나 더 얹어야 했다. 시차 적응도 해야 하고 목도 풀려면 어서 욕조에 몸을 담가야 한다.
지민은 형들이 없어서 자신이 임시 리더를 맡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평소엔 진성이나 진국을 따라다니면 뭐든 다 일사천리였는데, 두 사람 빠졌다고 빈자리가 너무도 컸다.
세찬과 해진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얼굴이 잔뜩 굳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 김 PD에게서 연락이 왔다. 로비로 내려가니 김 PD와 규리, 츄가 있었다.
“내일 아침 7시에 곡 맞춰 보겠습니다. 촬영 들어가면 리허설 없이 가는 거라서 미리 해 놔야 해요.”
김 PD의 말에 츄가 물었다.
“촬영은 몇 시인데요?”
“오후 1시요. 여기서 이동하면 1시간쯤 걸립니다.”
미국에서 동양인의 버스킹이 통할까?
김 PD에게도 이건 도박이었다. 이런 호텔에서야 다들 친절하지만, 거리에선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랐다.
스태프가 수십 명 있는데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가수가 노래할 때 아무 반응도 없으면 프로그램은 망하는 거다.
“내일부터 잠자리가 불편할 수 있어요. 계속 버스로 이동해야 하니까, 오늘 충분히 여독을 푸세요. 푹 주무셔야 합니다.”
여기까진 비행기로 왔지만 내일 버스킹이 끝나면 버스로 라스베이거스까지 간다.
중간중간 도시에서 버스킹을 하며 계속 이동하는데, 잠시 들르는 호텔에선 잠깐 눈을 붙이거나 씻을 뿐 빠듯한 일정에 맞춰야 했다.
월드 스타가 되면 전용기 타고 편히 다니겠지만, 보통의 연예인들은 이리도 가혹하다.
‘그래도 오지에 가서 도마뱀 먹고 모기에게 뜯기는 것보단 낫잖아.’
츄는 그렇게 생각하며 방으로 올라갔다.
김 PD가 전활 걸었다.
“네, 대표님! 저희 잘 도착했습니다! 걱정 많으셨죠?”
지민과 아이들이 눈을 빛냈다. 강가에 내놓은 새끼 오리들 같았다.
‘귀엽네.’
규리는 그런 셋을 보다가 말했다.
“간단하게 뭐 좀 먹을래요?”
기 싸움을 할 건 아니었지만 츄가 사라지자 편해져서 얘들과 친해지는 것이 좋겠단 판단이었다.
“네.”
대화가 길어지는지 김 PD도 가 보라는 듯 손을 흔들자 규리가 먼저 일어났다.
연예계에서 선배를 무시할 순 없었기에 셋도 그녀와 식당으로 향했다.
규리는 영어를 잘했다.
그녀의 리드로 샐러드와 음료를 주문했다. 카메라가 붙지 않은 걸 확인한 그녀가 말했다.
“편하게 말할게요. 나 이번에 꼭 떠야 돼. 그러려면 분량이 필요한데, 자기들은 신인이니까 잘 모르겠지만 나는 벼랑 끝이거든. 내일 아침에 우리 맞춰 볼 때 후렴은 내가 할 수 있을까? 꼭 그렇게 하자는 건 아니고 분위기만 거들어 줘.”
세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이런 이야길 대놓고 할 줄은 몰랐다.
민 팀장이 있었으면 콧방귀를 뀌었겠지만, 지금은 진성조차 없었다. 하지만 지민도 그간 본 게 있었다.
“그건 PD님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으음, 당연히 그래야죠. 그냥 나는 내 의견을 말하는 거니까 오해하지 마요.”
규리가 한발 물러섰다. 쉽게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빡빡한 애들이었다.
‘이번에도 허탕 치면 재계약 못 할 건데.’
벌써 시집갈 생각은 없던 그녀였기에 최선을 다할 마음이 있었다.
“어차피 고음 파트는 내가 하게 될 거예요. 츄 씨는 허스키한 보이스니까.”
해진이 불쑥 말을 잘랐다.
“지민 형도 고음 잘합니다.”
“아, 그러시구나.”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디엠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강철의 부대만 보고 온 거니까.
세찬도 입을 열었다.
“저희도 절박합니다, 선배님.”
원래 이런 말 안 하는 애인데 열 받은 것 같았다.
지민은 한숨을 내쉬며 규리에게 말했다.
“뜻은 알았습니다. 저희가 시차 적응이 안 돼서 피곤한 것 같아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정중하게 꾸벅 인사를 한 지민이 두 사람을 데리고 떠나자 규리는 다리를 꼬고 입맛을 다셨다.
“이걸 혼자 다 먹으라고?”
손도 안 댄 샐러드가 푸짐하게 올려져 있었다.
*
*
*
“어, 저 새끼들?”
사막이 좋은 점은 아무리 큰 규모의 시설을 세워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어제 그놈들이네!”
비스트 몬스터 예선전. 우린 엄청난 규모에 한 번 놀라고 익숙한 얼굴들에 또 한 번 놀랐다.
“흐흐흐, 하늘이 우릴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진성이 저들을 보며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얘는 원래 이런 애였다. 최근엔 정상인 척했지만 가장 수상한 녀석이었지 않았나?
저쪽에서도 우릴 발견했는지 어제처럼 또 손으로 눈 양쪽을 찢었다.
“하, 얼척없네.”
진국이 주먹을 꽉 쥐었다. 성질 같아선 당장 뛰어들고 싶겠지만, 여긴 미국이고 카메라까지 있으며 예선전에서 주먹다짐을 했다간 쫓겨날지도 몰랐다.
“기다려 봐. 갚아 줄 순간이 올 테니까.”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관중이 수천 명쯤 되는 것 같았다. 예선전에 참가한 사람도 수백이다. 벌써 힘 빼다간 여기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저 잡것들을…….’
겉으론 애들을 말리고 있지만 나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