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89)
작가귀환-189화(189/250)
미국에서 디엠이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도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집단이 있었다.
‘좋은데?’
버리는 카드라고 생각했는데, 5번의 원작으로 11번이 그린 웹툰이 그럴듯하게 나왔다.
하지만 곧장 칭찬해 줄 만큼 팀장은 바보가 아니었다.
【원작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의도와 전혀 다르다고 몇 번을 말해! 더 소년만화 감성이 들어가야지! 지금은 너무 거칠다고! -5】
5번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일본 만화 대가가 와야 할 것 같았다. 팀장이 볼 땐 이만하면 먹힐 것 같았다.
【게다가 배경도 지나치게 어두워! 우울하다고! -5】
11번의 성향 자체가 그러하니 이런 부분은 그에게 맡기는 것보단 다른 쪽에서 받아 주는 게 낫다.
그래서 팀장은 8번과 9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7번보다 작업량이 현저히 떨어지니까 남은 시간에 11번의 작품에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면 웹툰도 세 작품이 진행되는 거니까 나쁘지 않아.’
그는 원대한 계획을 품고 있었다.
아직 10명 정도밖에 작가가 없지만, 앞으로 30명, 50명 늘어나면 수많은 작품이 동시에 진행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건 그냥 작가 사무실 규모가 아니라 기업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인데, 지금 그 기틀을 잘 닦은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작가들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그도 많이 배우고 있었다.
【지나치게 생략해서 가독성도 떨어지니까, 이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해! 내 작품을 엉성하게 만들지 말라고! -5】
5번은 자신의 소설에 애착이 강했다. 그래서 계속 11번을 탐착지 않게 여겼는데, 그게 자극이 되었는지 11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오타쿠 새끼…….”
그렇다고 원작자를 존경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저놈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7번을 보며 그녀와 작업 시간을 맞추려고 하고 있었는데,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여러 가지로 7번의 노력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특히 11번처럼 평소에 게을렀던 사람은 ‘하면 되네?’ 하고 와닿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줬다.
【자, 이왕이면 피드백 수용해서 더 좋은 작품을 런칭할 수 있도록 해 봅시다. 싸우기만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습니다. 힘을 모아야죠.】
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11번은 모니터를 보았다.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은 이유는 이 모니터가 하나의 작은 사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자들이야 죽건 말건 상관없지만, 여자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보면 볼수록 이쁘단 말이야.’
7번은 어느새 그의 가슴에 깊이 자리했다. 10번 때문에 여길 왔지만, 이젠 10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였다.
그래서일까?
10번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7번 작가님, 이 부분은 이렇게 처리하면 되나요? -10】
7번은 그녀에게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것도 괜찮지만 두 번 일하지 않게 레이어를 따로 써서 작업해 두면, 나중에 색 입힐 때 한 번에 할 수 있어요. -7】
【잘 이해가 가지 않아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레이어를 써요? -10】
7번은 상냥하게 10번에게 기술을 알려 주었다.
온종일 작업만 하는 그녀에게도 이런 시간은 유희와도 같았고, 그나마 이곳의 작가들 중에선 10번이 가장 정상적이어서 친해지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감사합니다, 작가님! -10】
10번은 활짝 웃으며 배운 걸 곧장 써먹었다.
막히는 부분이 있어도 이곳에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으니 바로바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없었는데, 7번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그녀는 6번 작가의 ‘이번 생은 최강으로 살겠다’ 웹툰 1화를 완성 직전까지 작업하고 있었는데, 속도가 빠르다 할 순 없었지만 누가 봐도 ‘괜찮다’ 할 정도는 그려 내고 있었다.
이렇게 작가들이 열심히 해 주니 팀장은 흡족할 수밖에 없었고, 부식을 줄 때 종합 비타민이나 마그네슘 성분이 들어간 영양제까지 챙겨 주었다.
사무실에선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없다. 젊은 작가들이라서 몸이 버텨 주고 있지만, 치명적인 병환이 들기 전에 미리 건강을 챙겨야 했다.
본랜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지만, 기특하게 작업에 몰두하는 걸 보니 절로 마음이 갔다.
‘반응 좋고.’
신작들을 모니터하는 그가 미소 지었다.
2번과 4번, 6번의 작품이 나란히 초콜릿 페이지 상위권에 걸려 있었다. 이제 한순간에 작품을 말아먹지만 않으면 계속 순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덩달아 매출도 꽤 높게 잡히고 있었다. 1번과 5번이 글세상에서 벌어들이는 금액과 비슷한 액수가 들어올 예정이었다.
이래서 플랫폼을 고루 점령하는 게 좋다. 이 중에서 압도적인 작품 하나가 터져 주면 메가 히트작으로 등극하겠지만, 아직 그 정도의 기량을 보이는 작가는 없었다.
‘이제 슬슬 가 볼까?’
그가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오늘은 지방에 가야 한다. 한동안 서울에서만 작가를 수급했더니 뒤통수가 간질간질하다.
보통 사람이 생각할 땐 작가를 어디서 구해야 하나 난감하겠지만, 그는 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었다.
데뷔한 작가들이 그 전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 되짚어 보면, 매우 간단히 역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탄 차가 서울을 빠져나갔다. 대전까지 시원하게 질주하니 기분도 좋아졌다.
‘여긴가.’
목적지에 차가 멈췄다.
번화가의 이면도로에서 그가 위를 올려보았다.
12층 건물의 8층엔 미술 학원이 있었다.
아직 대학엔 웹툰 학과 같은 것들이 개설되지 않아서 학생들은 주로 학원에 몰려 있었다.
나중엔 웹툰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도 생기겠지만, 지금은 몇몇 미술 학원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곳도 업계에선 나름 알아주는 학원이었다.
“…….”
시계를 보니 밤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보통 12시 전까지 학생들이 늦은 작업을 하고 간다는 걸 사전에 파악하고 왔기에 그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톡톡. 톡.
손가락으로 핸들 윗부분을 두드리던 그가 무언갈 발견하고 얼굴을 조금 숙였다.
‘쟤들인가?’
우르르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얼굴을 꼼꼼하게 기억하곤 또 기다렸다.
어느덧 새벽 1시.
그는 떠나지 않았다. 인적이 점차 없어지는 것을 보다가 40분이 더 흐른 뒤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썼다.
그러곤 빌딩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8층까지 올라간 그는 미술 학원을 발견하곤 몇 가지 장비를 설치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면 각도가 중요했다.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그가 차로 왔다.
인근 숙소에서 자고 갈 수도 있었지만, 작가들 밥 챙겨 주려면 서둘러 올라가야 했다.
*
*
*
버스에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미국에 처음 와 본 사람들은 차로 이동할 때 모두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네.”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세찬이 말했다.
삭신이 다 쑤셨다. 계속 자려고 노력했는데 이젠 잠도 안 온다.
해진도 그랬는지 세찬을 보며 앓는 소릴 했다.
“아직 해도 안 떴어.”
“으으…….”
가로등조차 없는 길이다. 창밖을 봐도 보이는 건 없었다.
이때 김 PD가 뒤쪽으로 건너왔다.
“1시간 30분만 참아. 곧 주유소야. 여기선 주유소가 휴게소 역할도 하니까 쉴 수 있을 거야.”
1시간 반을 곧이라고 할 수 있나? 황당했지만 별수 없었다. 그만한 스케일과 싸우는 중이었으니까.
끔찍할 만큼 지루했던 시간도 언젠간 흘러가기 마련이다.
오후가 되자 버스는 두 번째 버스킹을 위한 장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이곳 숙소에서 자고 간단 소식에 모두가 반색했다.
“버스킹은 오후 5시에 할 겁니다. 그때 여기 현지인들이 저녁을 먹으려고 나오거든요.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을 때예요.”
캘리포니아!
LA에서 시작된 버스킹 여정이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버스킹은 총 4회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대도시를 기점으로 현지인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담는 것이 김 PD의 목표였다.
“짐 풀고 1시간 뒤에 만나요.”
거실이 꽤 넓었기에 가수들은 빠르게 휴식을 취하고 모여서 연습을 했다.
어제와 같은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진 않았기에 매우 신중한 표정들이었다.
카메라는 가수들이 밥 먹는 것까지 다 담으며 일상에서의 재미도 찾으려고 했고, 캘리포니아 곳곳의 명소도 소개해야 했기에 자유 시간은 길지 않았다.
“후…… 어제보다 여긴 더 넓은데?”
가수들은 무대로 사용될 곳을 보며 긴장했다. 양쪽에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었고 지금도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 1시간 후면 저들의 눈과 귀를 잡아끌어야 한다.
‘눈빛들이 좋네.’
김 PD는 가수들을 보며 웃었다.
어제처럼 망하면 내일은 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오늘이 중요했다. 도약해야 했고, 자신감을 얻어야 한다.
‘그래도 두 번째라 이건가.’
경험이 이렇게 소중하다. 어젠 잔뜩 얼어 있던 가수들이 오늘은 누가 보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거리에서 연습하고 있었다.
여가수들조차 거울 대신 악보를 보고 있었고, 살짝 헝클어진 머리칼이 더 자연스럽게 보였다.
‘기대되는데?’
김 PD는 가수들을 보다가 장비를 점검하러 갔다.
이때 꼬마 하나가 지민에게 다가왔다.
“한국 사람이에요?”
다소 서툴지만 꼬마는 한국말을 썼다.
“응!”
“우와! 우리 엄마도 한국 사람이에요!”
7살쯤 되었을까? 꼬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지민은 그런 꼬마를 보며 얼굴이 풀어졌다.
“노래하려고요?”
“응.”
“멋지다! 우와!”
저쪽 레스토랑에 꼬마의 부모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에일리! 방해하면 안 돼!”
엄마의 목소리에 지민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린 방청객이지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가수에겐 매우 소중한 일이었다.
“구경할래?”
“네!”
지민이 꼬마에게 휴대용 방석을 주었다.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꼬마가 두근두근한 표정으로 무대를 기다렸다.
지민은 건반 앞으로 가서 음향을 조율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하나, 둘.”
관객은 한 명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를 마쳤다. 이제 두 번째 버스킹을 할 차례가 되었다.
김 PD가 왔다.
“어때요?”
“좋습니다.”
사석에선 말을 놓지만, 카메라가 돌 땐 김 PD도 캐릭터 중 한 명이었다.
이게 다른 예능 PD와 그가 다른 점이었다. 그는 카메라에 얼굴이 잡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선곡은 그대로 가죠?”
“네.”
오늘은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을 편곡해서 포문을 열 생각이었다.
어제 깨달았는데 동양인이 아무도 모르는 노래를 하고 있으면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 그래서 미국이 사랑하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곡을 골랐다.
‘당연한 거야.’
홍대 한복판에서 아프가니스탄 가수들이 그들의 노래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멈출까?
그런데 그들이 조용필 노래라도 하면 ‘오? 뭐지?’ 호기심이 들지 않을까?
“안녕하세요.”
지민이 말했다.
“네! 안녕하세요!”
꼬마가 까르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저희는 한국에서 온 가수입니다. 오늘은 여기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을 합니다.”
한국의 팬 문화는 대단히 친절하다. 떼창도 해 주고 호응도 엄청나다.
하지만 여기선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었으니 오직 실력으로만 부딪혀야 했다.
“저는 디엠의 지민.”
그가 가수들을 소개했다.
-와아아아아!
꼬마가 격하게 손뼉을 쳐 주자 지민의 연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