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90)
작가귀환-190화(190/250)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꼭 있어야 하나?”
남들은 라스베이거스의 유흥을 즐기느라 3일도 짧게 느껴지겠지만, 우린 딱히 할 게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호텔 로비 커피숍에 모여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결승전이 이틀이나 남았기에 벌써 지치는 기분이었다.
물론 노트북으로 글이라도 쓰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가겠지만, 미국까지 왔는데 그러고 싶진 않았다.
“왜요?”
“그럼 놀러 가실래요?”
진성과 진국의 말에 내가 웃었다.
“거기 가 볼래?”
“어디요?”
“애들 버스킹 한다면서.”
“엥? 그래도 돼요?”
“안 될 건 뭔데?”
“하긴 그건 그렇네.”
지민을 포함한 디엠 애들은 어제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치고 오늘 라스베이거스로 넘어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지는 우리가 있는 이곳관 좀 다르다. 미국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인 그랜드캐니언에서 버스킹을 하고 넘어온다고 했다.
“합류해서 내일 같이 넘어오면 되는 거 아니야?”
“좋은데요? 저도 거기 가 보고 싶었는데.”
“오오! 협곡 수색합니까?”
아니, 수색이 아니라…….
“가볍게 챙겨서 다녀오자. 여긴 노잼이야.”
도박사들이 들었다면 거품 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나는 정말 이쪽엔 관심이 없었다.
“좋습니다!”
“바로 가죠!”
프로그램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기에 김 PD에게만 알리고 택시를 탔다.
버스정류장까진 그리 멀지 않았는데 배차 간격이 상당했다.
“2시간 남았네.”
“아후, 이런 거 보면 한국이 진짜 살기 좋다니까요.”
남은 시간을 보내려 근처 식당에 가는데 진국이 멈칫했다.
“어? 여기도 로또가 있네?”
“그럼, 사람 사는 덴데 없겠냐.”
진성의 말에 진국이 판매점으로 들어갔다.
“야! 어디 가!”
진성이 따라 들어가자 먼저 식당으로 이동했다.
의외로 나는 이곳 음식이 꽤 입에 맞았다. 그냥 어딜 가나 햄버거면 덥석덥석 먹고 있다.
일행 것까지 주문하곤 앉아 있는데, 진국이 돌아왔다.
“오! 여기 맛있어 보이는데요?”
진국이 말을 하며 내 반대편에 앉았다. 그러곤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대표님도 한 장!”
“이게 뭔데.”
“로또잖아요.”
“……고맙네.”
사람 수에 맞춰서 복권을 사 온 것 같았다. 진성이 옆에서 팔짱을 끼고 투덜댔다.
“그게 되겠냐.”
“흐흐, 그냥 재미있잖아요.”
진국이 나를 보며 물었다.
“대표님은 당첨되면 뭐 하고 싶으세요?”
그러고 보면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였다. 나는 돈이 생기면 뭘 하려고 하지?
‘웹툰을 더 만들고……. 코인이나 사려나?’
딱히 없네.
“음…….”
내가 답을 못 하자 진국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예요? 다들 한 번쯤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요?”
진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안 해 봤는데?”
“허얼……. 그러면 만약 형이 당첨되면 그 돈 제게 주세요!”
“내가 왜?”
“제가 사 줬잖아요!”
“그럼 다시 가져가든가. 필요 없다니까 억지로 줘 놓고.”
“아니, 그건 아니고!”
애초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기에 나와 진성이가 피식 웃었는데 진국이 말했다.
“그래도 혹시나 당첨되면 엔빵!”
엔빵이고 뭐고 이게 되겠냐. 마침 음식이 나와서 복권을 지갑에 넣어 놓고 잊었다.
“으음.”
배부르게 먹었더니 버스에서 잠이 솔솔 왔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는데 눈을 뜨니까 창밖에서 엄청난 풍경이 우릴 집어삼키고 있었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이래서 작가들은 여행을 다녀야 하나 보다. 이걸 글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직 한참 남았어요. 더 주무세요.”
옆에서 진성이 말했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밖을 바라보았는데, 절경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나중엔 중국도 가 봐야 하나?’
나도 엄연한 무협 작가인데 내로라하는 산 몇 개는 봐 둬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까진 내 상상에 의존했던 묘사를 떠올려 보며 그게 얼마나 미흡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어마어마하네.”
내 말에 진성이 대답했다.
“군장 하나 꾸려서 며칠 탐험하면 진짜 재미있겠죠?”
“……아니.”
나는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었기에 진성의 의견은 가볍게 뭉개 주고 다시 풍경을 감상했다.
“근데 형님, 애들이 잘하고 있을까요?”
“왜? 걱정돼?”
“소심한 녀석도 있으니까…… 이번 일이 좋은 추억으로만 남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서요.”
“보면 알겠지.”
우릴 태운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촬영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어차피 예능이었고 사람이 많은 곳에 무대를 꾸며야 했기에 눈에 바로 띄었다.
“늦진 않았나 보다.”
진국이 당장 달려가려고 하자, 내가 녀석의 손목을 잡았다.
“방해하지 말자.”
버스킹이 시작하면 가도 될 일이었다. 디엠만 있는 게 아니니까, 우리 때문에 감정 기복이 생겨선 곤란했다.
한참 떨어져서 자릴 잡자 진성이 저쪽을 보며 말했다.
“사람이 꽤 모이는데요?”
100여 명쯤 무대 인근에 있었는데, 관광객들은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오, 하려나 보다!”
내가 알기로 오늘이 세 번째 무대였다. 그간 녀석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전혀 모르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됐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한국에서 온 가수 디엠과 츄, 규리입니다.
지민의 말에 진성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자연스러운데?”
“뭐라고 했는데요?”
“몰라. 근데 전혀 겁먹지 않고 있잖아.”
지민은 영어를 하고 있었다. 발음이 어떤진 몰라도 사람들이 집중하는 걸 보면 괜찮은 것 같았다.
-오늘 들려드릴 첫 곡은 히어로입니다. 편히 즐겨 주세요.
거대한 협곡을 배경으로 두고 한국 가수가 노래한다.
미국, 중국, 인도 등 각국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가수들은 노련하게 버스킹을 했다.
“오…… 잘하는데?”
솔직히 놀랐다. 목소리가 여기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는데, 떨림도 없었고 그렇다고 악을 지르는 것도 아니었다. 주로 지민과 여가수 둘이 노랠 하고 세찬과 해진이 가벼운 안무나 랩을 했는데, 혼성 그룹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우와…….”
발매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머라이어 캐리의 신곡인 만큼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다.
협곡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뚫어 버릴 것 같은 고음 파트는 규리와 츄가 맡았고,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려가자 몇몇 사람들도 따라 불렀다.
“노래 좋네.”
“그러게요. 쟤들은 언제 저걸 연습했지? 나는 처음 듣는 노랜데.”
가족이나 다름없이 살아왔으니 서로 뭘 하는지 다 아는 디엠이었다.
‘고생 많이 했네.’
진성이가 모를 정도로 지민과 세찬, 해진은 그간 자신들만의 사투를 벌여 왔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부끄럼을 타는 세찬도 지금은 기성 가수처럼 표정이나 눈빛 관리를 잘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잘한다!
아무래도 발음이 완벽하진 않겠지만, ‘아는 노래’가 주는 힘은 매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제부터가 진짜야.”
시작은 좋았지만, 한국 노랠 하는 순간 반응은 싸늘하게 식어 버릴 수도 있었다.
‘여기서 가능성을 보여 줘야 하는데.’
빌보드 1위까지 올라가는 아이돌이 되려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 했다.
곡만 좋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으며, 잘생겼다고 차지할 수 있는 명예가 아니었다.
-이번 곡은 한국 드라마 지리산 엘프의 OST입니다.
순수하게 한국말로 부르는 노래. 아직 미국에서 방영하기 전이라 여기 사람들에겐 생소한 음악일 것이다.
게다가 저들이 부르는 노래의 원곡은 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이 불렀기에 그 버전을 이겨야 했다.
아, 원곡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인가?
“잘해라…….”
꿀꺽. 침을 삼키며 진국이 두 손을 꼭 쥐었다.
‘성장한 건가?’
첫음절만 들어도 뭔가 달랐다.
본래 지민은 다재다능한 싱어송라이터였는데 부족한 게 있다면 자신감이랄까? 그게 음색에도 묻어서 박력이 없었는데, 지금은 모두를 흠뻑 빠져들게 할 정도로 표정 연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어서 세찬의 차례. 지민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노래하는 세찬을 보며 몇몇 여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본래 세찬은 한국에서도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후렴으로 진입하니 츄와 규리가 호흡을 맞추며 화음을 이뤘다. 해진도 그루브를 타면서 한 몸처럼 즐겼는데, 만들어진 동작이 아니라 진짜 노는 것같이 보였다.
“좋네요.”
진성도 애들의 변화를 느꼈는지 말했다.
“잘해. 전보다 훨씬.”
진국은 잘 모르겠는지 웃다가 손으로 머릴 긁적거렸다.
“그러면 우리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쟤들만 레벨 업 하면 곤란한데.”
진성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넌 노래 파트도 없잖아.”
“아, 그런가?”
“우린 춤이나 열심히 추는 게 도와주는 거야.”
대사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묘사가 없으면 허전할 것이다.
배경이 예술의 경지까지 올라갔다고 해도 캐릭터가 매력 없으면 심심한 것처럼 디엠도 각자의 캐릭터에 맞게 버무렸고, 지민과 해진, 세찬의 성장은 전체적인 밸런스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잘한다!
-무슨 노랜진 모르겠지만 좋다.
-한국 노래겠지?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긍정적이었다.
어차피 버스 시간 때문에 무료한 시간을 때울 겸 있는 사람들이 다수였다곤 해도 그들의 응원을 끌어냈다는 건 잘했단 거다.
이어지는 곡은 디엠의 타이틀곡이었는데, 여가수들이 참여할 수 있게 편곡했다.
나도 처음 듣는 버전이어서 호기심 있게 바라보는데,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김 PD다.
어색하게 웃으며 머릴 숙이자 그가 후다닥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오셨으면 전활 하시지요!”
“방해하기 싫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두 분 마침 잘 오셨는데, 앵콜곡으로 디엠 완전체 무대 한번 하는 건 어떻습니까?”
“어? 그래도 돼요?”
“네! 됩니다! 무조건요!”
김 PD는 어딘가 다급한 표정이었다. 그의 눈매에서 초조함을 읽은 내가 진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
“저희야 좋죠. 몸도 근질근질했는데.”
진성의 말에 김 PD가 저쪽으로 손짓했다.
“그러면 이따가 자연스럽게 와 주세요. 가수들이 여러분의 등장에 깜짝 놀라는 것부터 편집하겠습니다.”
김 PD가 예상했던 것만큼은 그림이 안 나왔나?
앞선 무대들을 못 봐서 판단이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었기에 곡이 끝나길 기다렸는데, 박수가 더 커져 갔다. 처음보다는 한결 익숙해진 관객들이 느긋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어느덧 마지막 곡.
지민이 건반을 치고 규리와 츄가 듀엣을 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고음이 잘 어울리는 무대였는데, 그녀들의 이름이나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랠 잘하는 실력파였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멋졌다.
-와아아아! 좋다!
-앵콜! 앵콜!
-한 곡 더 하자!
사람들의 환호에 지민이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하다가 김 PD와 이야길 하곤 깜짝 놀랐다.
이제 우리 차례다.
“어? 형!”
“형!”
“허얼? 어떻게 오셨어요?”
놀라는 녀석들 표정이 카메라에 담기고 사정을 들은 지민이 관객들에게 말했다.
“저희 디엠이 모두 모였습니다. 앵콜곡으로 저희의 타이틀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