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92)
작가귀환-192화(192/250)
“이런 또라이 새끼가!”
모니터를 보던 팀장이 벌떡 일어났다. 방을 비추는 CCTV로 12번이 발작하듯 자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만.”
대전한솔학원엔 여러 후보가 있었다. 그중에서 저놈을 고른 이유는 놈의 포트폴리오가 가장 뛰어났고, 소극적인 성격이란 메모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 놈들이 한 번씩 터지긴 하지.”
사무실을 운영하다 보면 인간 군상에 맞게 맞춤형으로 대할 필요가 있었다. 놈이 지랄한다고 바로 반응했다간 그걸 학습해 버릴지도 몰랐다.
대전까지 가서 데려온 수고가 아깝긴 해도 놈이 적응에 실패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였기에 다시 의자에 앉으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세상이 네 맘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란다, 꼬마야.”
아마도 저놈은 부모의 품에서 어떤 어려움도 없이 자랐을 것이다.
그게 요즘 세대라지만 이곳엔 저 녀석의 부모가 없다. 절에 찾아왔으면, 그곳의 규율과 규범에 따라야 하지 않는가?
“언제까지 하는지 두고 보자고.”
그는 12번 작가의 방으로 가는 전기를 끊어 버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과 자기 숨소리만 들려오는 고요 속에서 강인하게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헐, 12번 모니터 나갔는데? -1】
【벌칙 받았나 봐요. -2】
【자기가 때려 부순 것 같지 않았음? -1】
【반항해 봐야 손해만 볼 텐데. 안타깝군요. -4】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행동 강령을 어기면 살벌한 벌칙이 기다린다.
11번조차 펑펑 울게 만들었던 그걸 이겨 낼 사람이 있을까?
인내심이 강한 수행자라고 할지라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11번이 작게 웃었다.
“부질없는 짓을 하네.”
여긴 지옥이었다. 지옥에선 관리자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 탈출하는 방법은 오직 100포인트를 모으는 것뿐.
그걸 위해서만 살아가야 하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나마 이 지옥에서도 몇 줄기 빛이 있었는데, 예쁜 애들 얼굴 보는 거랑 특식이었다. 가끔은…….
【제가 겪어 봐서 아는데, 정말 힘들거든요. 불 꺼지면 이상하게 잠도 안 와요. -11】
【고생하셨겠어요. -7】
이렇게 7번과 대화도 할 수 있다.
“흐흐흐, 얘도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건 확실한데.”
이런 오해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면서도 11번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나오는 법을 몰랐다.
【제가 벌칙 받은 건 7번 작가님 탓도 있으니까, 나중에 여기서 우리 둘 다 나가게 되면 밥 한번 사세요. -11】
【나갈 수만 있으면 기꺼이 사죠! -7】
더 말을 섞기 싫었는지 7번이 작업에 집중하는 걸 보면서 11번은 씨익 웃었다.
“부끄럽나? 역시 귀엽다니까.”
같은 공간 같은 환경에서 작가들은 자기만의 생각을 하며 오늘도 작업에 매진했다.
독자들은 이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작품에 몰두하고 있는 걸 모를 것이다.
특히 4번은 이제 점차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연재를 하면 독자나 경찰이 알아봐 줄 것이라고 여겨 왔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실망감이 커지면 소설에도 감정이 묻어난다.
【4번 작가님, 요 며칠 분량이 너무 늘어집니다. 더 타이트하게 하세요. 애써 얻은 기회를 이렇게 날려 버리면 아깝습니다.】
팀장이 알아차릴 정도였으니 독자는 더 민감하게 받았을 것이다.
사실 지루한 부분은 팀장이 알아서 싹 다 날려 버리고 있었지만, 그걸 모르는 4번은 우울함이 더 커져만 갔다.
애초에 그는 숙련된 작가가 아니었고 이런 상황에서 겪는 슬럼프에 대항할 노련함이 없었다.
“한심한 놈.”
풀 죽은 표정의 4번을 보면서 팀장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본래 연재란 게 장기전이다. 처음 몇 권은 신나서 쓰다가도 그게 매일, 몇 달 이어지면 점차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쉰다고 나아질까? 이건 계속 쓰면서 이겨 내는 수밖에 없다.
이제껏 수많은 작가들을 보며 그는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벌써 처지는 거냐.’
묵묵하게 끝까지 작품을 완성하는 작가가 진짜 작가다. 이 핑계 저 핑계 대 가면서 요리조리 연재를 안 할 궁리만 하는 놈들은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요 몇 달 눈빛이 좋던 4번도 모든 신인 작가가 마주할 벽에 다다랐다. 그 벽을 부수든 뛰어넘든 자기만의 방법으로 지나가야 비로소 기성작가가 될 수 있었다.
‘7번 반만큼만 하면 되는 건데.’
그녀를 보면 기특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작가를 찾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거기에 실력도 일취월장하고 있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같은 사람인데 왜 누군 하고 누군 못 하나?
팀장은 이 모든 게 정신력에서 기인한다고 믿었다.
극한의 상황에선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이제 놈들은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데 그조차 못 하면 쓸모가 없다.
“차기작까지 정신 못 차리면…….”
4번은 정리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며 그가 입을 꾹 다물었다.
*
*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열기를 더해 가는 몬스터와의 싸움! 대망의 결승전 무대를 곧 여러분 앞에 선보입니다!】
수백 명의 관중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예선이 몬스터의 척추, 본선이 몬스터의 심장을 공략하는 것이었다면, 결승은 모든 것을 아우르며 몬스터를 격추해야 했다.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릴 것 같습니다. 오늘,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승이 치러집니까?】
【총 7단계의 장애물을 통과해서 목표 지점에 도착하면 승자가 됩니다!】
【중복으로 통과한 사람이 있다면요?】
【그러면 타워 오르기로 진짜 영웅을 가려내게 됩니다! 저기 타워가 보이십니까?】
【허! 저는 저게 관제탑인 줄 알았습니다! 저걸 오르는 거군요! 끔찍합니다!】
【높이 30미터의 탑입니다. 먼저 올라가서 종을 치면 우승하는 거고요. 하지만 저 탑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진 아직 모릅니다.】
【미국의 참가자들과 한국의 참가자들이 눈에 띄죠?】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선과 본선에서 나란히 1, 2위를 기록했던 진성과 진국에게 큰 기대를 걸어 보는데요. 오늘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 줬으면 합니다!】
주변이 시끌시끌했다. 수많은 카메라가 돌아가며 관중을 찍었고, 선수들은 대기실에서 명상도 하고 몸도 풀면서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
이곳에서도 단연 진성과 진국은 스타였다.
처음엔 무시하던 사람들도 이젠 두 사람을 강력한 우승 후보로 여기고 있었다. 의식할 수밖에 없었고 힐끔거리며 눈동자에 담았다.
우린 대기실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밖에서 기다렸다.
졸지에 김 PD도 관람하고 있었는데, 촬영감독이 가수들을 찍고 있었다. 두 예능이 한 장소에서 카메라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만 잘 넘기면 되는데요. 둘 중 한 명은 결승까지 갈 수 있겠죠?”
지민의 말에 나는 경기장을 보았다.
세상에……. 하루 쓸 장비를 이만한 규모로 만들다니. 역시 돈이 좋긴 한가 보다.
보고만 있어도 아찔한데, 뭉게뭉게 안개까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놔서 살벌한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잘할 거야. 어제 너희가 그랬던 것처럼.”
그랜드캐니언의 마지막 무대는 큰 호응을 끌어냈다.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줄은 나도 예상 못 했다.
디엠의 노래가 미국에서 먹혔다는 뿌듯함이 들었지만, 미국에 온 진짜 목적을 상기하면 이건 예선전에 불과했다.
“6시 안에 끝나야 할 텐데요.”
김 PD는 저녁 라스베이거스 버스킹을 앞두고 초조하게 시계를 보았다.
결승전까지 보고 넘어가면 좋겠는데, 자칫 여기 일정이 길어지면 가수들은 먼저 출발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에겐 조금이라도 더 많이 카메라에 담는 것이 중요했다.
“큰 문제만 없으면 밤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 같은데요. 결승에 오른 사람이 별로 없어서요.”
예선 때 수백 명이 참가한 것치곤 결승은 소수 정예만 남았다.
오래 기다리지 않게 되어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겐 좋지만, 무대를 기획한 사람들에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도 언젠가 이런 거 한번 으리으리하게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연말에 아이돌 올림픽 같은 게 있지만, 저기 보이는 몬스터는 10배 이상 제작비를 써야 할 것이다.
“제가 로또 당첨되면 투자할게요.”
“하하!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팔짱을 끼고 김 PD를 보며 웃다가 스태프들이 바삐 움직이는 걸 보곤 말했다.
“이제 시작하려나 봅니다.”
“오! 저쪽으로 더 가까이 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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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승도 역시 이전과 마찬가지로 기록이 가장 나빴던 참가자부터 진행하게 됩니다!】
【그 차이가 상당한 것 같죠?】
【아무래도 첫 주자가 가장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첫 주자가 끝까지 가지 못한다면 다음 사람이 여전한 부담을 끌어안을 거고요.】
【맞습니다. 장애물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기 때문에 앞선 참가자들이 공략한다면 뒤는 수월해지죠.】
【참가자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이 열기! 느껴지십니까? 엄청납니다! 이곳이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후끈했을 것 같은데요!】
【한국엔 찜질방이란 곳이 있다고 하던데, 기회가 되면 꼭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한국 선수들의 선전으로 한국이 좀 더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 같군요? 객석에서도 그들의 국기를 흔드는 사람이 보입니다.】
【교민들이 많이 온 것 같은데요! 과연 진성과 진국! 오늘도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것인지!】
장애물을 올려보고 있으면 정신마저 아득해질 것 같은데 진성과 진국은 침착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오, 재미있겠다.”
“그쵸? 본선 때보다 훨씬 좋은데요?”
“저녁에 참치 찌개 먹을래?”
“아직 참치 남았어요?”
“응, 한 개.”
“좋죠!”
두 사람이 한국말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저쪽에선 흑인들이 이를 갈고 있었다.
“저 자식들, 경기장을 분석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연하겠지. 멍청해 보이지만 의외로 분석가들이었어. 그게 아니라면 그런 기록이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놈들의 운도 오늘로 끝이야. 저 탑 보이지? 저게 마지막일 것 같은데, 저건 클라이밍 경험이 없으면 오르는 게 불가능해.”
“우리에겐 축복이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저 탑까지만 가자고.”
암벽등반이 취미인 두 사람이었기에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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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에 도전하는 참가자들의 늠름함을 보십시오! 대단하지 않습니까? 오늘 인류 최강자가 탄생합니다!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육중한 몬스터의 조명이 적색 위주로 바뀌면서 박력 있는 음악이 흘렀다.
미국까지 와서 이런 장애물 경기를 보고 있는 내가 새삼스러웠지만, 우리 애들이 나간 이상 꼭 우승했으면 했다.
“잘하자! 아자!”
워낙 거리가 멀어서 진성이가 봤을진 모르겠지만, 팔을 흔들어 주었다.
‘어쩌면 저 녀석들은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간첩 잡겠다고 고시원에 처박혀 있던 진성이가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세상,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