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197)
작가귀환-197화(197/250)
실종자들은 글과 그림을 파던 사람들이었다. 당장 수익을 내진 못하더라도 몇 년씩 훈련하던 이들이었고, 그 가능성이 제법 높이 쳐줄 만했다.
이건 현직에 있는 전문가들에게서도 비슷한 의견을 얻을 수 있었는데, 최근 유명세를 얻고 있는 웹툰 작가에게 실종자들의 포트폴리오를 보여 주니 잠재력이 매우 높다고 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계속 썼다면 머잖아 데뷔할 수 있었겠는데요? 물론 흥행은 장담할 수 없겠지만요.
팀장은 실종자 프로필을 유심히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팀원들이 하나둘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윗선에서 난리야. 이달 안에 뭐라도 건지지 못하면, 우리가 책임져야 할지도 몰라.”
신입 팀원이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옆의 사수가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뭘 어떻게 돼. 팀 분해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지.”
옆에서 다른 고참이 팔짱을 끼고 말을 이었다.
“어쩌면 그냥 수사를 중단할지도 모르고.”
신입이 놀랐다.
“중단한다고요? 아직 아무도 찾지 못했는데요?”
“그러니까 그러는 거야. 뭐 나오는 게 없으니까 단순 실종으로 가 버리면, 각 관할로 이관해서 흐지부지. 언제까지 고급 인력을 답도 안 나오는 곳에 계속 투입할 순 없잖아. 이런 케이스는 꽤 돼.”
물론 단순 가출이었고 나중에 찾아보니까 어느 시설 같은 곳에 자진해서 들어간 거면 그만큼 맥 빠지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실종자가 사고를 당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팀이 꾸려진 이상 실적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팀원이 얼추 모이자 팀장이 일어났다.
“나는 이 사건, 단순한 연쇄 가출로 보지 않아.”
가출은 피해자들이 자진해서 나간 거고 실종은 가해자나 용의자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것에 따라 수사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 쪽은 어때?”
일을 분담해서 하고 있기에 보고가 이어졌다.
“전혀 특정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제가 놓치고 있는 소규모 단체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런 곳까지 다 합치면 수백 개거든요.”
“수백이든 수천이든 해야 하면 계속 파야지.”
“더 범위를 넓혀 보겠습니다.”
“좋아. 섬 지역은, 수색해 봤어?”
“신안부터 흑산도, 원양어선 명단까지 다 뒤져 봤는데, 애초에…… 실종자들이 그런 곳에 가서 힘을 쓸 사이즈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요즘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노예를 부리기보다는 그냥 외국인들 쓰면 안전하고 싸게 할 수 있답니다. 그쪽으로 들어가던 인신매매 조직도 사실상 사라졌고요.”
“마약은?”
팀장의 시선을 받은 팀원이 자료를 정리해서 건네주며 말했다.
“전담반과 공조해서 알아보고 있는데, 이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술가들이 마약에 손대는 일이 정황으론 맞지만, 웹소설 작가가 그랬다간 연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던데요? 정신이 맑아야 한다고 술조차 입에 대지 않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연재라…….”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이젠 소설을 매일 써서 그때그때 플랫폼에 올린단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컨디션이 중요할 터.
‘이렇게나 흔적이 없을 수가 있나.’
남은 팀원이 입을 열었다.
“단체로 밀항한 게 아니라면, 조직 쪽과 엮인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몇몇 팀이 장기로 보이스 피싱과 불법 도박 사이트를 수사 중인데, 그쪽에 새로 흘러든 사람은 없다고 보고 있고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까?
모든 방향이 막힌 지금, 무언가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면 팀이 위기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우선……. 가장 최근 실종자의 행적에 더 집중하지. 놈은 반드시 어떤 흔적을 남겼을 거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사방이 CCTV에 블랙박스인데 잡히지 않았을 리 없어. 우리가 보고 지나쳤을 수도 있으니까 다시 돌려 보자고.”
영상기록물 수사는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였다. 며칠 분량의 CCTV를 계속 보고 있는 건, 눈 뜨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다.
그래도 해야 한다.
“실종 당일까지의 모든 행적에 대한 CCTV 다 확보하고. 혹시 지난 며칠 사이에 실종자가 접촉했거나 아니면 누군가 실종자를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수상한 사람을 봤단 목격자가 있다면 무조건 찾아.”
얘길 듣고 있던 팀원 하나가 손을 들었다.
“팀장님.”
“말해.”
“이건 그냥 제 느낌인데요. 말도 안 된다는 거 알지만, 시도는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뭔데?”
“실종자들이 전부 작가 지망생이었다면, 만약 누군가 그들에게 접촉하려고 할 때 가장 좋은 미끼가 뭐겠습니까?”
“……데뷔?”
“맞습니다. 우리도 인터넷에 가상의 작업물 같은 걸 올려 볼까요?”
신입이 눈을 반짝거렸다.
“함정수사를 하자는 건가요?”
“말하자면 비슷하겠지.”
해서 손해 볼 방법은 아니었다. 잠입 수사처럼 위험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타깃이 될 만한 재능이 보여야 할 텐데. 여기서 그림을 그려 봤거나 소설을 써 본 사람?”
팀장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
*
*
예진은 경찰의 방문을 받았다.
“……그래서 저희가 협조 요청을 드리는 겁니다. 혹시 학생들에게 누군가 접촉하면 알려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하필 대표님이 출장 중일 때 이런 골치 아픈 일이 생기다니.
“그러면 형사님께서는 지금 누가 작가들을 납치하고 있다고 보시는 거예요?”
“단정할 순 없지만, 가능성은 열어 두고 있습니다.”
팀장은 예진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대기업 비서실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여자다. 메멘토모리라는 회사가 콘텐츠 쪽에서 급부상하고 있다는 걸 듣긴 했지만, 소설이나 만화 회사에서 일할 사람으론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말했다.
“작가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부탁드립니다.”
“그런데요.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뭐죠?”
예진이 노트북에 화면을 띄워 보여 주었다.
“저희 아카데미 출신들은 표지에 모두 이렇게 회사 로고가 찍혀요. 그러면 우리 소속 작가라는 뜻이라서, 다른 회사가 접촉하지 않거든요. 실제로도 앞서 연재했던 학생들에겐 컨택이 오지 않았고요.”
“으음…….”
그게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려고 팀장이 머뭇거렸다. 한국말이긴 한데, 너무도 생소한 영역이라서 이해가 쉽지 않았다.
옆에서 팀원이 그걸 정리해 줬다.
“불가침이란 말씀이시군요.”
“맞아요. 여기도 상도란 게 있으니까요. 저희 학생들에겐 형사님들이 기다리시는 그 연락은 오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범인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가 이 바닥을 안다고 하면, 더더욱이요.”
그렇다고 회사 로고를 빼란 부탁을 할 순 없었다.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피해를 줄 순 없다.
팀장이 난처한 표정을 하자 예진이 말했다.
“도움이 못 된 것 같아 죄송합니다.”
팀장은 한숨을 쉬며 사무실을 둘러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 더 물어보겠습니다. 귀사의 매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소설과 만화입니까?”
“……하반기엔 모르겠지만, 현재까진 그래요.”
“아, 오해하셨다면 미안합니다. 제가 워낙 이쪽에 무지해서 그렇습니다.”
예진이 웃었다.
“전보다 시장이 커져서요. 저희 대표님 작품이 계속 흥행한 덕도 있지만, 소설이 웹툰이 되고 그게 또 드라마까지 되다 보니까 배고픈 작가는 옛말이 되었죠.”
서울 한복판에 이런 신축 건물을 확보하려면 돈이 상당히 들 거다. 거기에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플랫폼까지 있다.
그 모든 기반을 소설과 만화가 차지한다고 하면…….
‘돈이 된다는 건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금까진 작가들을 데려다가 육체 노동을 시키거나 몸 자체를 노리고 사건을 저질렀을 확률을 높이 봤다. 그런데 그게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면?
-영리한 아이였어요.
마지막 실종자 어머니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울렸다.
“그…… 대형 플랫폼에서 1위를 하면 어느 정도의 매출이 나옵니까?”
“소설이요, 웹툰이요?”
“둘 다요.”
“플랫폼마다, 작품마다 다르지만 메가 히트가 아닌 일반 히트로 1위를 하면 월 1억은 될 거예요. 하지만 이것도 한 달에 몇 편을 연재하느냐에 따라 달라요. 웹툰은 그 10배까지도 나오지만, 제작비가 들어가니까 실제로 순익은 소설이 높고요.”
“월…… 1억이요……?”
“와…… 그렇게 나요?”
박봉에 시달리는 형사들이 듣기엔 저세상 얘기였다.
“이건 단순 계산이고요. 저희 대표님처럼 드라마가 되거나 하면, 순간적으로 30배에서 50배까지도 매출이 올라요.”
팀원이 혀를 내둘렀다.
“로또네요! 로또!”
예진이 피식 웃었다.
“그냥 운만으로 차지할 수 있는 자린 아니에요.”
“아, 실례했습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괜찮아요. 사실 아직은 저희 쪽 시장이 대중적이진 않거든요. 대표님께선 향후 우리 시장이 100배는 더 커질 거라고 전망하시지만, 몇 년이 걸릴진 모르는 일이죠.”
수억 원이 움직이는 시장. 하지만 일반인은 잘 모르는 분야. 게다가 앞으로 훨씬 확장할 전망이 높다고 하면?
“말씀 감사했습니다. 종종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도움이 된다면요.”
예쁘게 웃는 예진의 얼굴을 잔상처럼 뇌리에 남기며 두 사람이 건물을 나왔다.
성수동 뒷골목.
여긴 옛날부터 소규모 금속 공장이나 하청 공장이 많았다. 그래서 물가도 저렴하고 오래된 식당이 즐비하다. 당연히 건물도 대부분 노후됐다.
그런데 이 옛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메멘토모리 사옥만 빛이 났다.
“왜 여길까?”
“네?”
팀장이 건물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렇게 잘나가는 회사가 왜 여기에 건물을 올렸을까?”
서울 한복판이지만 이 동네는 콘텐츠 회사가 들어서기엔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도 작업복 입은 사람들이 더 많이 길에 보였다.
“싸니까 들어왔겠죠.”
“홍대나 신촌, 하다못해 대학로가 낫지 않았을까? 글과 그림이잖아.”
“부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또 모르죠. 투자 목적으로 왔을지도. 압니까? 천지개벽할지.”
“여기가?”
팀원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 동네가 변하려면 강산이 몇 번은 바뀌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어떡하죠? 떡밥 뿌리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괜한 소문이 나면 용의자가 종적을 감춰 버릴 수도 있었다.
“더 알아보자고.”
*
*
*
아, 집에 가고 싶다.
여행이 이렇다. 처음엔 좋지만, 날짜가 지나갈수록 최고급 호텔도 내 방구석만 못하다.
“건배합시다! 대박을 위하여!”
“위하여!”
오늘, 지상 최강의 인간으로 인증받은 진성이가 맥주를 쭉 들이켰다.
진국이도 잘했지만 역시 진성을 넘을 순 없었다. 내가 볼 때 진성이는 어떤 방면으론 인간계 최강이 맞다. 보통 사람은 겨루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아오! 도중에 떨어지지만 않으면 내가 우승했을 텐데!”
진국이 아깝다는 듯 말했다. 진성이 그런 진국을 보며 코웃음 쳤다.
“실수하지 않는 것도 실력이야. 전쟁터였어 봐. 넌 아까 죽었다고.”
“맞습니다, 맞아요! 전 아직 수행이 부족합니다! 크흐흐흑!”
중간 정산을 하는 기분이랄까? 진성과 진국의 몬스터 때려잡기도 끝났고, 나머지 애들의 버스킹도 막을 내렸다.
이제 남은 건 무대다.
“여기까지 왔는데, 협곡 수행 가시죠!”
어이, 너 아이돌이라고.
“좋지! 식량은 자급자족이다!”
“거기에도 더덕 같은 게 있을까요?”
“뱀은 있지 않을까?”
얘까지 왜 이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