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01)
작가귀환-201화(201/250)
“매워요? 제육은 거의 안 드셨네.”
“아닙니다. 맛있습니다.”
팀장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뉴스를 보고 나니까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다니.’
그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본래 위스키가 아니면 다른 주종은 즐기지 않았지만, 오늘은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쪼로록.
잔을 비우자 조금 막힌 게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겁먹을 필욘 없어. 흔적을 남기진 않았으니까.’
그랬다면 당장 사무실로 경찰이 들이닥쳤을 거다.
‘경찰도 답이 없는 거야.’
요즘 조금씩 삐걱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일종의 경고였을 수도 있겠다.
쪼로록.
술잔을 채웠다. 아주머니가 작은 접시를 가져왔다. 달걀부침 2개가 반숙으로 나왔다.
“고맙습니다.”
“이사 오셨어요?”
“아닙니다.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따듯할 때 드세요.”
친절한 아주머니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진 그가 TV를 봤다.
‘그래, 누가 관심을 갖겠어.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데.’
뉴스엔 미국에서 있었던 공연 소식이 흘러나왔다. 한국 아이돌이 큰 무대에 섰다는데, 저쪽에 있던 여자애의 고개가 TV로 돌아갔다.
한창 아이돌에 관심이 많을 나이일 거다. 관심 없던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어디론가 전활 걸었다.
“형님, 접니다.”
-오랜만이네! 요즘 어떻게 지내? 퇴사했단 얘긴 들었는데.
“쉬고 있어요.”
-왜 재능을 썩혀? 우리 회사에 자리 알아봐 줘?
“아뇨, 그냥 쉬고 싶었어요.”
-언제 소주 한잔하자.
살갑게 안부를 물을 사이까진 아니었기에 본론을 말했다.
“형님 회사는 괜찮아요?”
-우리야 뭐 늘 비슷하지.
“요즘도 작가들 잠수 타고 그래요?”
-언제 적 얘길 하나, 이 친구. 하하! 종이책 시절이 아니잖아. 맨날 연재해야 하는데 어떻게 잠수를 타.
“그렇네요. 작가 관리가 더 쉬워졌겠어요.”
몇 마디 더 나눠 봤지만 특별한 얘긴 안 나오는 것 같았다. 경찰이 드나들면서 뒤숭숭했다면 그 얘길 빠뜨리진 않았을 거다.
“또 연락드릴게요.”
경찰이 냄새를 맡았다면 출판사들부터 뒤졌을 것이다. 업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
‘그렇다는 건.’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
하긴 어느 미친놈이 작가를 납치해서 글을 쓰게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겠나?
특히 경찰은 워낙 강력 범죄를 다루다 보니까 더 그런 쪽으로만 파고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아.’
쭈욱, 술이 달아졌다.
“잘 먹었습니다.”
“벌써 가시려고요?”
팀장이 계산을 하고 나갔는데, 제육은 거의 그대로였고 소주도 반병이나 남았다.
“입이 짧으시네.”
그녀가 앉자 딸애가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그냥……. 뭔가…….”
“멀쩡하기만 하던데.”
여고생은 남자의 얼굴이 계속 떠오를 것 같았다.
*
*
*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미국은 어떠셨어요?”
역시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집이 최고다. 비행기에서 지겹도록 잤는데도 집에 오니까 늘어졌다.
“후…….”
내일부터 일상으로 돌아갈 거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늘 사람들과 같이 있다가 혼자가 되어서인지 적막함이 낯설었다. TV를 켰다.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종 사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또 신고가 들어왔다고요.
-제가 나와 있는 곳은 주택가입니다. 12시가 되기 전인데도 인적이 전혀 없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실종자가 발생했다고 추정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귀가하던 길에 실종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주변 CCTV가 없어서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실종 신고는 가족이 했을 건데요.
-네, 다음 날 아침 실종자 어머니가 밑반찬을 가져왔는데 사람이 없었던 거죠. 최근 발생한 몇 건의 실종 사건도 주로 혼자 사는 사람에게 일어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요즘 1인 가구가 많잖아요.
-그렇지만 실종자들이 집 근처에서 소식이 끊어진 점이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산이나 바다, 하다못해 번화가의 골목에서 취객을 노리는 편이 더 쉽고 안전하지 않았을까?
평범한 범죄였다면 말이다.
-또한 수도권이나 광역시에서 발생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어떤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이루려고 대상을 물색했다면, 도서·산간이 더 쉽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실종자들은 주택가나 골목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경찰은 특수팀까지 구성해서 대응하고 있지만, 목격자나 단서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해당 지역 실종자들을 보신 분이나 사건을 목격하신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실종이라는 키워드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영아나 유아 실종에 대해서도 수사가 시작되었다. 특히 미취학 아동이 주목받았는데,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는 경우가 대상이었다.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죠?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으니 장기매매나 인신매매 같은 소문 때문에 사회 불안감을 조성할 필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주변에서 갑자기 연락이 끊긴 사람이 있다면, 한번 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얼마나 더 많은 실종자가 있을지 몰랐다.
나는 뉴스를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결이었지만 끊임없이 도망치고 있었고, 아침이 되었을 때는 땀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트라우마라니까.”
현재의 삶에선 벌어지지 않았던 일임에도 내 기억 속 10년은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전화가 걸려 왔다.
-대표님, 일어나셨어요?
“응.”
-예정대로 오전 미팅할 수 있으시죠? 정 힘들면 오후로 미룰게요.
“괜찮아. 정말이야. 막 일어나서 목이 잠겨서 그런 거야.”
-알겠어요. 10시에 뵐게요.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고시원에선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여긴 이 방에서 나가지 않아도 다 해결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게 돈의 맛인가.
“오랜만입니다.”
차 팀장부터 민 팀장, 예진과 몇몇 조직장들이 모였다. 미국 일정도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회사 일을 추진해야 했다.
“콘서트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그 덕분에 일본 일정도 수월하게 잡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정규 1집 발매에 맞춰서 단독 콘서트를 할 수 있도록 알아보려는데 어떠세요?”
민 팀장의 말에 모두가 침을 삼켰다.
과연 디엠이 그만한 관객을 동원할 수 있을까?
그런 우려가 섞여 있었다.
“콘서트 동영상이 벌써 100만을 넘겼고 그간 업로드한 영상들도 반응이 좋았어요. 일본 팬도 상당해서 만 명 정돈 모이지 않을까요?”
“그러면 차라리 그 콘서트에서 쇼케이스를 하는 건 어때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블랙잉크가 축하 무대를 해 주고 이번에 미국에 같이 갔었던 규리, 츄 씨도 모시면 그림이 좋을 것 같아요.”
“공연장 확정하는 대로 소식부터 알리죠. 꾸준하게 콘서트 준비로 연습하는 짧은 영상도 올려서 기대감을 높이고요.”
이번 콘서트 영상이 만약 천만 뷰가 되면, 그중 일부만 와도 쇼케이스는 대성공일 것이다.
민 팀장이 대형 스크린에 자신의 화면을 띄웠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확연히 디엠의 영상이 조회수가 높죠. 너튜브 한정이지만 숫자를 무시할 순 없어요. 상승세도 가파르고요.”
가까운 미래에 숏폼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사람들은 도파민의 맛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자극적인 짧은 영상을 찾을 것이다.
우리 애들이 그에 대응할 수 있다면, 지금부터도 유행을 만들 수 있었다.
“그 건은 민 팀장님께서 계속 노력해 주세요.”
디엠의 일이 일단락되자 예진이 말했다.
“대표님께서 투자하셨던 게임 회사들 있잖아요.”
“네.”
“그쪽에서 연락을 해 왔어요. 게임에 삽입될 음악이나 주제곡에 우리 가수들을 써도 좋다고요. 한 업체는 디엠을 캐릭터화해서 콜라보를 하면 어떻겠냐고 했고요.”
“좋은데요?”
확실히 뜰 게임만 투자했기에 디엠에겐 오히려 기회가 될 거다.
“블랙잉크도 그 콜라보에 참여할 수 있게 추진하세요. 돈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신생 게임 회사들이야 어떻게든 주목을 받아 보려고 이런 궁리를 했겠지만, 그 게임들의 파급력을 아는 나로선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드라마 건은 따로 이사라 대표님과 미팅하셔야 하고요. 웹툰은 순차적으로 런칭할 건데, 가장 유의미한 소식은 재능마켓 매출이 올랐다는 거예요. 요즘 신규 독자 유입이 많아지고 있어요.”
“잘됐네요. 이유가 뭐예요?”
“입소문을 탔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독점 대표작이 나온 것도 아니고 이슈도 없는데 갑자기 지표가 올랐거든요.”
슬슬 풀리려나 보다.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고 신경 쓰지 않아도 잘될 때도 있다.
차 팀장이 말을 받았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재능마켓에 관한 이미지가 좋습니다. 신인이 데뷔하기에도 좋다는 말도 나오고 있고요. 지난 공모전 수상작들이 꾸준한 성적을 내 주는 것도 이유겠고요.”
플랫폼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운영이 따라오지 못하면 금방 외면당한다.
그런데 차 팀장은 유능했고, 나 역시 돈이 아닌 독자 유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모난 구석이 없었다.
“모바일 사용 빈도가 어떻게 되죠?”
“64% 정도입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모바일 사용자가 늘어날 거예요. 효율적이고 쉬운 UI를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PC 게임조차 모바일로 옮겨 오는 시대가 올 것이다. 아직은 와닿지 않아도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후발 주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빠르게 다가올 겁니다. 지금에 안주하지 말고 그 너머를 봐야 해요. 아, 그리고 내년 상반기엔 웹툰이라는 상호를 쓸 수 있도록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나라별로 권리 확보하는 걸 목표로 가 보죠. 필요하다면 현지 법인도 세우고요.”
차 팀장이 빙긋 웃었다.
“그렇게까지 넓게 보시는 겁니까?”
“당연합니다. 우리가 재미있으면 다른 사람도 재미있는 거잖아요. 우리는 일본 만화를 보며 자란 사람들이지만, 앞으론 우리 웹툰을 보며 자라는 세상 아이들이 많아질 겁니다.”
웹소설과 웹툰, 드라마와 영화, 게임과 음악이 하나로 묶이는 콘텐츠 사업은 종장엔 엔터테인먼트까지 흡수할 것이다.
그 어떤 산업보다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분야였으며, 이미 우린 그 틀을 잡아 가고 있었다.
“이번에 미국 가서 느낀 건데, 우리 음악도 조만간 세계에 먹힐 겁니다.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소설, 웹툰도 받아들여질 거고요. 연예인이 주도하는 한류도 있겠지만, 콘텐츠도 무시할 수 없게 더 노력해 봅시다.”
앞으로 반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승부처였다.
*
*
*
소녀는 학교에서 잘나가는 부류가 아니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죽는다. 지극히 폐쇄적이며 보수적인 마을이었고, 특히 여성의 삶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
학교에서 돌아온 그녀는 작년의 어제처럼 소파에 앉아 늘 같은 모습으로 TV를 켰다.
인기 많은 애들은 어울려 다니며 술이나 마시겠지만, 그녀를 불러 주는 사람은 없었다.
채널을 돌리던 그녀가 멈칫했다.
“오!”
머라이어 캐리가 노랠 하고 있었다. 신곡 ‘히어로’는 몇 달째 인기를 끌고 있었기에 그녀도 자연스럽게 흥얼거렸다.
“LA에서 한 건가.”
꿈의 도시. 죽을 때까지 가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곳. 그래도 이렇게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에 TV를 본다.
아쉽게도 무대는 그리 길지 않았다.
“벌써 끝났어.”
채널을 돌릴까 하다가 흥이 식지 않아서 좀 더 보기로 했는데, 동양인 남자들이 무대에 서 있었다.
“……?”
솔직하게 말해서 첫인상은 ‘뭐야?’, 뜬금없었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