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08)
작가귀환-208화(208/250)
12번과 13번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놈들을 데려올 때 뭔가 흘린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경찰이 나선 것도 그렇고 출판사에 도움까지 요청했다면, 쉽게 볼 문제가 아니었다.
‘놔줄 순 없으니.’
당분간 몸 사리는 정도론 곤란했다.
경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 한다. 그들이 어떤 패를 쥐었는지, 의심하는 건 무엇인지 파악해야 흔적을 지울 수 있었다.
“음.”
고민이 깊어졌다.
이대로 숨어 있으면 불안하긴 해도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언제 문을 뜯고 경찰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악몽에 시달릴 거다.
밖으로 나가 동향을 살핀다면? 그들을 휘두를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감이 좋은 경찰을 만난다면, 결과는 예측할 수 없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위험하긴 마찬가지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차를 몰고 대형 마트에 갔다.
유통기한이 긴 시리얼을 제일 큰 거로 13박스 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에너지바도 샀다.
지출이 아깝진 않다. 다만 이걸 사용하게 될 그날이 두렵다.
애써 만든 사무실이 파괴되는 게 아쉬워서라고 스스로 달래 보지만, 사실은 작가들이 몰살하는 참사가 그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일지도 몰랐다.
사무실로 돌아온 그가 작가들에게 공지했다.
【오늘 저녁, 비상식량을 배급할 겁니다. 이것은 절대 낭비해선 안 됩니다. 만일 예정된 시간에 음식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그때 사용하시면 됩니다.】
작가들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왜? 무슨 일인데? 무섭게 왜 이래? -1】
【멀리 떠나실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7】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끼면 일주일 이상은 버틸 겁니다. 만약 제가 구치소 같은 곳엘 들어간다면, 풀려날 때까지 그 정돈 걸리겠죠.】
【더 걸리면? 그러면 우린 굶어 죽으라는 거야? -1】
【조심 좀 하지 그랬습니까? -3】
【그냥 우릴 풀어 주면 안 되나요? 절대 말 안 할게요. -10】
그건 안될 말이었다. 살면 다 같이 살고 죽으면 다 같이 죽는다.
【제겐 유능한 변호사가 있습니다. 일주일이 넘는 일은 없어요. 비상시를 대비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절대 그 전에 소비하지 마세요. 행동 강령입니다. 어기면 합당한 벌을 받을 거예요.】
【참 피곤하게 산다. 그냥 자수하지? 누구 죽은 사람도 없잖아. -5】
【그래요. 제가 탄원서도 써 드리겠습니다! 자수하세요! 몇 년이면 다시 나오지 않겠습니까? -4】
4번이 화색이 되어 5번을 거들었다.
‘그게 되겠냐. 멍청하긴.’
인간은 이성을 잃으면 바보가 된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답은 딱 나오는데 작가란 놈들이 그것도 모르나.
【여러분과 저는 하나입니다. 헛물켜지 마세요. 어설프게 하다 그만둘 일이었으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그리고 4번과 5번 작가님, 선동하지 마세요. 경고합니다.】
팀장의 변화를 보던 7번은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1번과 3번은 지루하던 차에 잘됐다는 듯 실실 웃으며 채팅에 참여할 생각을 하는 것 같았고, 4번은 절망에 찬 얼굴이었다. 6번은 딱히 관심이 없는 듯 작업 중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던 사람이 만일을 대비하고 있어. 이건 기회가 왔다는 뜻이잖아?’
그를 저렇게 만들 수 있는 건 경찰밖에 없었다.
‘열셋이나 납치했으니까 당연하지. 우리나라 경찰이 얼마나 유능한데!’
잘 모르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이 당했을지도 모른다.
납치 과정에서 잘못된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실수했고 경찰이 추적한다면 조만간 빛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행이야. 여기서 죽을 때까지 있을 순 없어.’
대체로 작가들 표정이 좋았는데 희망이 있으면 사람은 오지에서도 견딜 수 있다.
이때 13번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전장치를 하나 더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3】
그가 팀장에게 개인 채팅을 걸었다.
【만일 당신이 일주일 후에도 돌아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요. 다 죽을 순 없잖아요. 제가 할 수 있습니다. -13】
막상 지르긴 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진 모르겠다.
팀장도 채팅을 보면서 ‘흐음’ 하고 생각했다.
‘이놈을 믿을 수 있나?’
그 문제를 넘긴다고 해도 일주일 후 자동으로 그가 밖에 나오게 할 시스템이 어렵다. 그랬다가 놈이 배신하고 탈출하면 끝장이었다.
‘가장 협조적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안 가.’
만일 그래야만 한다면 13명 중 누가 가장 좋을까?
‘그나마 7번이…….’
그녀는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했다. 모두에게 친절한 성품이긴 하지만 특히 보내오는 눈빛이나 행동이 그랬다. 그걸 모르면 남자도 아니다.
‘외부인을 끌어들일 순 없으니까.’
어떤 전자적 제어를 해 두고 밖에서 신호를 주면, 7번의 방문이 열린다.
그러면 7번이 밖으로 나와서 작가들 밥만 챙겨 줄 수 있으면 되겠지.
외부로 나가는 문을 하나 더 달아서 안에서 못 열게 해야겠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직접 다 공수하려면, 상당한 품이 들겠지만 필요하다면.
‘못할 것 없겠지.’
영화에선 본 것 같은데 외부 신호로 문이 열리는 전자 장치부터 알아봐야겠다.
‘남대문에 가면 전문가가 있으려나? 아, 2차 비상식량도 더 사 둬야겠다. 얼추 한 달 치면 될까? 만일 7번이 다른 마음을 품는다고 해도 날 제압하긴 어려울 거야. 작가들 도움을 받지 못하게 방마다 도어락을 하나 더 달아 둬야겠군.’
죽이는 건 그냥 놔두면 되니까 쉬운데 살리는 건 이렇게나 힘들다.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손길이 많이 갈수록 더 가치가 있다.
‘연재가 멈추면 안 되니까.’
놈들이 예뻐서 그런 게 절대 아니라는 듯 그가 입맛을 다셨다.
그렇지만 그의 표정을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을 완전히 무시한다곤 못 할 것이다.
‘당연하잖아. 내가 잡혔다고 인기 작가들이 죄다 연재 중단을 하면 더 의심받을 거니까.’
브라키오로 작품을 더 늘리는 것도 그만해야겠다.
‘오늘부로 모든 욕심을 버리고 철저하게 안전 주의로 간다.’
메멘토모리 때문에 잠시 승부욕에 눈에 멀었었다. 경찰 얘기에 찬물을 뒤집어뜬 것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이 사무실은 하루 이틀 쓰려고 기획한 게 아니다. 10년, 20년 가려면 무엇보다 유지력이 필수였다.
‘실수가 더 있어선 안 돼.’
그는 차분하게 할 일을 계획한 뒤 실행에 옮겼다. 그러면서 밖에선 인맥을 활용해 경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 갔는데,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르고 넓게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일주일을 그렇게 움직여 보니까 가만히 있어선 안 될 것 같았다.
보안에 필요한 것들을 대강 모아 놓은 다음 출판사로 향했다.
“잘 생각했어. 사람이 일을 하고 살아야지. 오래 쉬면 기계든 사람이든 녹슬어.”
워낙 유능한 그였기에 복귀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면 다음 주부터 바로 시작해.”
“감사합니다, 대표님.”
“다시 잘해 보자고.”
이 업계는 워낙 인력난이 심했다. PD가 되겠다고 뛰어드는 사람은 간혹 있었지만, 3년을 버티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그처럼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받는다.
‘우리 출판사엔 협조 요청 한번이 전부였나.’
직원들을 만나며 조심스럽게 동향을 살폈다. 그 누구도 그를 의심하진 않았다.
‘아직은 그냥 떠보는 수준인 거야.’
그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경찰이 더 깊이 파려고 했다면 몇 단계를 더 진행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 정보만 요구하는 건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다. 다 합치면 수백 명은 넘을 텐데, 그런다고 해서 뭐가 나올까?
‘방구석이 가장 편한 사람들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군.’
어쨌든 경찰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건 그에게 매우 좋은 일이었기에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나 경각심을 푼 건 아니어서 계속 할 일을 진행하는 한편 정보를 모았다.
경찰에 아는 사람은 없어도 업계엔 많아서 언제 누가 다녀갔는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한중의 경장. 프로파일러인가?’
요즘 경찰도 격변하는 시대를 반영해서 선진 수사 기법을 동원한다는 얘길 들었다.
프로파일러도 그러하다. 몸만 쓰던 경찰이 이제 두뇌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인데, 과연 그 머리가 잘 돌아갈진 모르겠다.
몇 주간 업무를 보면서 한중의라는 이름을 지속적으로 들은 그는 후배와의 술자리에서 재미있는 얘길 들었다.
“그런 소문이 돌았다고?”
“네. 정치권에서 일을 키워서 무슨 추문을 덮으려고 그러는 거라던데요?”
이번 실종 사건을 최악의 연쇄살인으로 포장하려고 한단다. 그런데 그러려면 사체가 한 구라도 나와 줘야 한다.
“음모론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자극적인 걸 좋아하잖아요.”
“그러면 일단 다른 사건하고 붙여서 그냥 다 터뜨려 버릴 수도 있겠는데?”
“아마 그게 가장 쉽지 않을까요? 그러면 우리도 귀찮은 일이 사라지겠죠. 그나저나 선배님 복귀하셔서 일이 확 줄었어요. 그동안 죽는 줄 알았거든요.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어후.”
“여전하네.”
“작가들 등쌀에 신입들 다 관두고 그나마 쥐꼬리만큼 연봉 올려서 간간이 지원하는 애들 키워 올리곤 있는데, 그마저도 연차 쌓이면 대기업으로 이직해 버리니까.”
“마셔.”
“네, 선배님!”
작가와 PD는 동반자이자 가족처럼 끈끈한 사이가 될 수도 있지만, 갑질하기 가장 좋은 상대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PD 혼자서 50명 가까운 작가를 관리하다 보니까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다 있는데, 그중에 한두 놈만 진상이어도 피로도가 확 올라간다.
“최 작가하고 남 작가는 내가 관리할게.”
“오! 정말입니까? 하하! 그래 주시면 오늘은 제가 쏘겠습니다!”
출판사마다 악명 높은 작가가 있고 그런 작가를 계속 데리고 가는 이유는 그들이 인기가 높기 때문이었다.
최 작가와 남 작가는 몇 년 전부터 직원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 되어 왔는데, 그런 폭탄을 처리해 준다니 후배로선 기뻐서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최 작가는 아직도 새벽에 전화해서 한 시간씩 붙들고 있지?”
“네, 술만 마시면 그래요.”
“남 작가는 수시로 연락 안 되고?”
“그렇죠. 연재 시간 넘기는 건 이제 그러려니 하는데, 계속 퇴근도 못 하고 대기 타야 하니까 사람 돌겠어요. 연재 시간도 밤 10시잖아요! 자기 생각만 한다니까요?”
“그래도 매출 3위잖아.”
“휴우, 그렇죠. 제 월급의 한 부분을 그 작가가 벌어 주고 있으니까 뭐 할 말은 없네요. 꼬우면 글을 써야 하는데.”
“마셔.”
후배는 오늘 일찍 취할 것 같았다. 그간 얼마나 쌓였으면 저럴까. 그 심정 백번 이해하기에 그도 사무실을 만들지 않았나?
그런데 막상 13명을 가둬 놓고 지내다 보니까 밖에 있는 작가들의 행패는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그가 최 작가와 남 작가를 맡겠다고 한 것도 가장 큰 이유는 이제 자신이라면 그들을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복귀 선물로 회사에 도움을 주는 모양새도 챙기면서.
“어라?”
후배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누구야, 이 시간에? 설마 최 작가야?”
“아니요. 그 사람인데요? 전에 왔다던 경찰. 한중의?”
“받아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