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13)
작가귀환-213화(213/250)
한중의 경장이 새로운 시각에 눈뜨고 있을 때, 3번 작가는 짜증을 부렸다.
【아, 그게 아니라니까! 제목도 너튜브고 소재도 너튜브면 너튜브에 집중해야지! 왜 구구절절 다른 얘기만 하는데? -3】
3번은 작가들을 몰아붙이는 것이 천직이었다. 당하는 작가는 기분이 나빠서 더 열심히 했고, 가르치는 3번은 필력이 부족하지만 아이디어가 좋았다.
【잘 봐. 내가 시놉시스가 뭔지 보여 줄 테니까. 생각만 많이 한다고 재미있는 게 만들어지진 않는다고! -3】
작가들의 시선이 채팅창으로 향했다. 3번은 꼴 보기 싫지만, 그의 즉흥 창작 능력은 인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다른 사람의 능력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이게 뭔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요즘 유행하는 너튜브? 거기에 쓰는 거였다. 웬만한 사람은 이게 다 D급 정도인데, 나는 죄다 F급이었다. 능력치는 말발, 외모, 소화 능력, 안무, 후광 등등 여러 가지인데, 타고난 그것들을 오직 나만 올려 줄 수 있었다. 이걸 알고서 얼마나 좋았을지 상상해 봐라. 나는 이제 너튜브 안에선 신이나 마찬가지인 거다. 누구든 성공하고 싶으면 내게 잘 보여야 했다. 이제 세상 예쁜 애들은 다 내 거다. -3】
여전히 미친놈이었다. 이걸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나?
그런데 묘하게 계속 보게 된다. 가독성도 없고 문장력도 형편없지만, 매우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다. 예쁜 여자가 다 제 것이라니?
‘돌았나.’
최근에 들어온 13번은 어이없다는 듯 모니터를 봤다.
3번의 작품 세계가 이어졌다.
【우리 반에 음침한 애가 있었는데, 나는 얘를 돕기로 했다. 녀석의 이마에 떡하니 박힌 잠재력 S란 표식을 본 것이다. 이게 웬 떡? 얘랑 계약해서 얘가 알아서 돈을 벌어 주면, 나는 개꿀이잖아? 그래서 학교 끝나고 따라갔다.
“왜 따라와?”
“우리 집 이쪽인데?”
“아니잖아. 너 대흥동 살지 않아?”
“그걸 어떻게 알았어? 너, 나 좋아하냐?”
“……그, 그건.”
전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얘가 내 말을 듣는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오늘부터 너는 변신의 여왕이 되어야 한다. 뷰티계는 네가 점령해라. -3】
‘너의 너튜브가 보여!’와 같은 스토리였지만 전혀 다른 주인공의 성격 때문에 보는 사람도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뷰티 여신을 포섭한 뒤 나는 옆 반 일진을 찾아갔다. 얘는 다른 일진과 달리 애들을 괴롭히진 않고 학교에선 매일 잠만 자는데 싸움은 최고라고 했다. 그래서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건드린다. 내가 더 위대한 남자다.
“뭔데?”
“너, 나와 한 달만 작업하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남자로 만들어 줄게.”
“미친 새끼.”
“그래, 나와 미쳐 보지 않겠어?”
나의 낭만에 반했는지 놈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내 크루에 합류했고, 이제 나를 건드리는 놈은 없어졌다. 싸움의 신은 한 달간의 훈련을 마친 뒤 고수들을 찾아가서 하나씩 격파할 예정이었다. 본랜 그냥 처맞겠지만 내가 있으니까 괜찮다. 놈은 전투 성장 S급이었다. 얘가 싸울 때 나는 영상을 찍기만 하는 것으로도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3】
“또라인가…….”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소릴 냈다.
그런데 황당한 건 이 졸렬한 텍스트를 보면서 이미지와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는 거다. 그게 더 자존심이 상했다.
【어이어이, 부족하다고! 매력적인 여캐가 있어야지! 히로이이이인! -5】
작가들은 익숙한지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13번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뭔가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데, 왜 계속 이걸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3번의 소설이 이어졌다.
【지나가던 오타구가 있어서 줘 패 줬다. 이런 벌레들은 패는 맛이 있다. 뀨잉! 뀨잉! 비명을 질렀다. 더 흥이 나서 밟아 줬더니 몸을 부르르 떨며 좋아했다. -3】
“푸웃……!”
5번을 저격하려고 쓴 것 같은데, 자신도 모르게 무방비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빨갛게 변한 5번의 얼굴이 함께 보여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심심할 때 패 줄 오타쿠도 길들였고, 이제 세 번째 동료를 찾아 나섰다. 이쯤 되니까 뷰티 여신도 실력이 제법 늘어서 나도 화장을 해 줬는데, 외모가 +3이 늘어서인지 지나가는 여자들이 내게 추파를 던졌다. 과연 존잘남의 세상은 이런 거였나? 어딜 가나 내게 친절했고 뭘 하든 잘됐다. -3】
“…….”
이놈은 진짜 광기였다. 그냥 막 갈겨 대는 게 아니라 자기 욕망을 고스란히 넣고 있었다. 의식의 흐름대로만 따라가니까 사족이 없고 순수하게 자극과 대리 만족만 있었다.
“으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스토리 쪽으로 약했던 그는 3번의 소설을 보면서 신음했다.
이런 새끼도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데, 나는 왜 안 되는가?
답은 3번이 직접 내놨다.
【겉멋 부리지 말고 이렇게 쓰라고. 사람들이 우리 소설을 왜 보겠어? 시간 보내려는 거잖아. 이왕이면 즐겁게, 신나게! 그러면 딱 그거만 해 주면 되지, 뭘 궁상떨고 앉았어? -3】
자기한테 하는 말도 아닌데 죄다 가시처럼 가슴에 틀어박히고 있었다.
【어이어이, 캐릭터가 멋 부리지 않으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5】
【오타쿠가 찾아왔다. ‘하야쿠 하야쿠!’ 하길래 500원을 주고 500대를 패 줬다. 그랬더니 1,000원을 내게 줬다. 그걸로 메로나를 사 먹었더니 시원해졌다. 바닥에 엎어져서 울고 있는 녀석에게 메로나 봉지를 던지며 여름이었다, 말해 주니까 좋아서 기절했다. -3】
【테메-! -5】
둘이 뭐라고 하는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왜 500원을 줬는데 1,000원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런 정신 나간 점이 눈길을 끌긴 했다.
【그래서요? 어떻게 끝나요? -7】
【어이, 저 녀석에게 말려들지 말라고! 더 날뛴다! -5】
7번의 관심이 즐거웠는지 3번이 후후, 웃더니 끝을 향해 달려갔다.
【100명의 너튜버를 모아서 잠재력을 다 키웠더니 내게 기연이 일어났다. 전부 F급이던 능력이 모두 S급이 된 것이다. 해금이었나? 나는 지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 된 것인가? 밖에 나가서 떠들기만 해도 사람들이 엎드려 울었다. TV에 나갔더니 시청률이 100%가 나왔다. 내가 입으면 명품 패션이 되었고, 심심해서 노래했는데 빌보드 1위가 되었다. 이것저것 하다가 지겨워져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 끝. -3】
“…….”
13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뭘 본 거지?’
아까까진 괜찮았는데, 이런 마무리는 뭐냐.
【언제나 마무리는 해피엔딩! 기분 나빠지려고 웹소설 보는 사람은 없다는 걸 명심해! 다른 작가들도 새겨듣고! 이런 기본도 안 지키니까 1등을 못 하는 거라고! 어후, 힘들어. 오래간만에 집필했더니 목이 마르네. -3】
잠깐 화면에서 사라졌던 3번이 턱에 물을 흥건하게 묻히고 돌아왔다.
이후로도 뭐라고 계속 떠들었지만, 13번은 채팅을 보지 않았다.
‘기본.’
그림의 기틀은 인체의 이해와 색, 빛에 의한 명암과 캐릭터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요즘 웹툰을 보면 그런 것은 죄다 무시하고도 인기 있는 작품이 많았다.
그러면 뭐가 중요한 건가? 그저 재미만 있으면 되나?
‘그게 정답일지도…….’
그러면 그 재미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스크롤을 올려서 아까 3번이 쓴 소설을 다시 읽어 보았다.
역시 그려지는 장면들이 있다. 주인공이 얼마나 신이 나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으음…….”
13번은 오늘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
*
*
퇴근 후 팀장이 들어왔다.
요즘 경찰 때문에 심기가 곤두서 있었는데, 하루 동안 작가들이 뭘 했는지 채팅창을 훑어보다가 피식 웃었다.
“말은 잘해요.”
3번이 작가들에게 설교한 건 재능이 있어서 타고나거나 그게 아니면 10년쯤 깨져야 깨달을 수 있는 경지의 어떤 것들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신인이 저걸 보고 뭔가를 느낀다는 건 어려울 거다.
‘근데 왜 500원을 주고 때린 거지?’
이 부분은 그도 알아낼 수 없었는데, 그렇다고 3번에게 물어보기도 그랬다.
‘미안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오락실에 있는 그런 기계쯤으로 여기는 건가?’
어쨌든 저놈 머릿속을 따라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핵심만 살폈는데, 클리셰의 맥락을 짚어 내는 건 여기 있는 작가들 중에서 가장 나았다.
그걸 풀어낼 문장력만 있었다면 저놈은 상위 1% 작가였을 거다.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계속 반복하고 그렇게 굳어지는 것들이 클리셰가 되지.’
모든 이야기의 원형은 하나의 뿌리에서 두 가지 기둥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인간사에서 가지를 치고 경험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둔다. 내가 겪었던 신비한 일을 후대에 전하기도 하고, 애틋한 사랑 역시 큰 사건이다.
반대로 두 번째는 꿈이 주를 이룬다.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지만, 왠지 그랬으면 하는 것.
1,000년 전 사람들은 인간이 하늘을 나는 것을 상상했을 거다. 2,000년 전 사람들은 망망대해 바다를 보며 누군가는 반드시 건너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는 불가능하던 것들이 지금은 다 이뤄졌다. 그리고 지금도 우린 그런 상상들을 한다.
머잖아 누군가는 화성에 갈 것이고, 또 누군가는 외계인을 만날 수도 있다. 그것이 판타지다.
웹소설이 등장하기 전엔 이 구분이 확실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경계가 허물어져서 이제 주인공은 어떤 환경이나 배경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다.
단순한 회사 이야기도 재미만 있다면 웹소설 플랫폼에 올릴 수 있고, 고리타분한 백설 공주식 로맨스 스토리도 최신 감성을 입히면 유행이 된다.
“이걸 빨리 깨달으면 인기 작가가 되는 거야.”
모니터의 작가들 얼굴을 보면서 그가 타이르듯 중얼거렸다.
직접 말해 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지속적으로 알려 줘야 했다.
3번이 이런 쓸모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잘 팔리는 것도 아니니까 어려운 거지.’
그는 많은 작가들을 봐 왔다.
이제 어느 정도 벽을 넘었다고 생각했던 작가도 차기작에서 좌절했고, 거기서 멈추면 작가 인생은 끝이 났다.
버티고 버텨서 간신히 다시 벽을 마주해도 그 벽이 언제 깨질진 아무도 모르기에 평생 고뇌하고 고민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너희는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이 사무실에선 밖에서 10년을 1년에 몰아서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1~6번의 실력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후반에 들어온 작가들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그들도 어느 수준까진 곧 따라잡을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명분이 전쟁을 일으키고, 환경이 사람을 키운다.
그는 그렇게 믿었기에 이 사무실을 계획했다.
처음엔 이런 생각도 했었다.
집단 창작이 쉽지 않을까? 하나의 머리로 어렵다면 두셋이 붙어서 한 작품을 완성하면 나을까?
하지만 작가의 속을 일부 들여다본 그였기에 집단 창작은 시커먼 결말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혼자라면 못 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