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14)
작가귀환-214화(214/250)
그의 아침은 단순하다. 여느 직장인처럼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회사에 간다.
회식을 즐겨 하는 편도 아니었고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일 잘하는 사람. 딱 그랬다.
기획팀에 있었으니 작가 관리가 주 업무였고, 플랫폼과 협상해서 작품 프로모션을 정한다든지 소속 작가 신작을 도와주다 보면 하루는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퇴근 후엔 그의 비밀 일과가 시작됐다.
그걸 아는 사람은 없었고, 언제나처럼 오늘도 책상에 앉아 업무를 봤다.
평온한 오후.
어제처럼 별거 없는 하루일 줄 알았는데, 오늘은 달랐다.
“뭐야, 저건?”
뉴스가 시끄러웠다. 후배가 의자를 주욱 밀고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그놈, 잡혔나 본데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던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오늘 검거되었습니다. 아직까진 강력하게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데요. 알려진 것만 다섯 건 이상의 실종이나 살인과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하…….”
어이가 없었다.
‘이건 뭐 우주의 기운이 도와주고 있는 건가? 저놈은 뭔데 용의자가 되었나?’
“이제 귀찮은 일 없겠네요. 그 한중의 경장인가 하는 여자도 안 오겠고요.”
“……잘됐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에겐 최고의 시나리오였기에 그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감춘 채 일에 집중하려고 했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자백하진 않겠지.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간혹 범죄자들 중엔 과시하려고 없는 일도 만들어 내는 자도 있었지만, 이번 일은 모르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세상에서 오직 그만이 현장을 재현할 수 있었다.
‘마음을 놓을 때는 아니야.’
진범이 아니란 걸 밝혀내면 수사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경찰이 바보가 아닌 이상 저 사람의 말에 허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뭣보다 실종자들은 지금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대답을 못 하지 않겠는가?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선배님! 날도 우중충한데 맥주 한잔 하실래요?”
“아니, 오늘은 빨래가 밀려서.”
“아, 네. 고생하셨습니다!”
귀가하는 그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
*
*
한중의 경장은 취조실에 앉아 있는 사내를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 사람이 아니잖아!’
기자가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진 모르겠지만 연쇄 실종 사건의 범인이 저 사람이라고 벌써 뉴스에까지 나가 버렸다.
이렇게 되면 경찰은 무조건 범인을 확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네가 죽인 건 맞다 이거지?”
“네……. 근데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니까요.”
“다시. 왜 죽였어?”
“아, 그…… 돈을 좀 빌렸는데 하도 갚으라고 지랄을 해 대서…… 홧김에…….”
“얼마나 빌렸는데?”
“50만 원이요. 진짜 갚으려고 했거든요.”
“피해자는 얼마나 알고 지냈고?”
“고등학교 때부터니까 꽤 됐죠.”
“작가 지망생이란 건 알았어?”
“뭐 웹소설인가 뭔가 한다는 건 알았죠. 뜨면 대박 터진다던데. 게임도 만들고 드라마도 되고. 그 지리산 엘프? 그것도 웹소설이었다면서요. 맨날 메멘토모리인가 뭔가 하는 작가 얘길 얼마나 해 대던지. 귀에서 피 나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거 들어준 것만 쳐도 50만 원어치는 되겠네!”
“그런 얘길 어디서 했는데?”
“편의점이요.”
팀원이 사진 두 장을 내밀었다.
“알아?”
“몰라요. 누군데요?”
김수정과 이준영이었다.
“진짜 몰라?”
“그렇다니까요!”
팀원은 다른 세 장의 사진도 더 보여 줬다.
“박경우, 김중빈, 유한호. 셋 다 몰라?”
“제가 어떻게 알아요?”
“이 사람들도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었어.”
“그래서요?”
“5월 13일 오후에 어디에 있었지?”
“하, 형사님은 그날 뭐 했는지 아세요? 몇 달이 지났는데!”
“6월 11일엔?”
“와…… 진짜 어이없네.”
“알리바이가 있어야 할 거야. 잘 생각해 봐, 그날 뭐 했는지.”
안쪽이 보이는 거울을 사이에 두고 취조실을 보던 한중의 경장은 한숨을 내쉬며 옆의 조정환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아니잖아요. 그렇죠?”
“……아직 모르지. 자넨 현장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래. 저놈들이 얼마나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는지. 잡았다가 속아서 놔준 경우가 태반이라고. 특히 저놈은 고작 50만 원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자백했잖아. 거주지도 일정하지 않고 소년원에 들락거렸어. 뭘 못 하겠나?”
사기, 강간미수, 절도, 폭행으로 전과만 해도 화려하다.
“제 전공이 범죄심리학이었는데요.”
“책에서 배운 거랑 현실은 달라. 보라고. 저놈. 저렇게 뻔뻔하잖아. 뭘 잘했다고? 이번에 들어가면 20년은 살 텐데 전혀 두려움이 없어.”
“자포자기한 거죠. 하지만 실종 사건은 자기가 한 일이 아니니까 억울해하는 거고요.”
“우연으로 보기엔 좀 그렇잖아?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 많은 것도 아닌데. 50만 원에 사람도 죽이는 놈이라면 일반 상식을 잣대로 들이대면 안 돼. 돈이 목적이 아닐 수도 있고.”
마침 팀원이 그 방향으로 심문하고 있었다.
“웹소설 쓰는 걸 언제부터 알았다고?”
“한 2년 됐나.”
“그러면 피해자가 다른 웹소설 지망생하고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교류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겠네? 50만 원이나 빌려줄 정도면 꽤 친했다는 거잖아? 이런저런 얘기도 했을 거고.”
“친하긴……. 그냥 동네에서 오다가다 마주친 건데요.”
“그런데 50만 원을 빌려줘?”
“……뭐 학교 다닐 때도 가끔 그랬으니까…….”
“아, 상습적으로 갈취했다는 뜻인가?”
“아니, 빌렸다니까요!”
“좋아, 언젠간 갚으려고 했다, 이거지?”
“당연하죠.”
“다시, 피해자가 다른 웹소설이나 웹툰 지망생과 알고 지냈단 얘긴 들었어?”
“그런 애들이 모이는 커뮤니티가 있단 건 알았어요. 근데 저는 그런 음침한 새끼들, 관심 없거든요.”
“음침한지 아닌진 어떻게 알고?”
“그냥 그렇잖아요. 찌질하게 이상한 소설이나 쓰고.”
“그 찌질한 애가 자꾸 돈 달라고 하니까 확! 죽여 버렸고.”
“뭐…….”
“생활비는 어디서 구했어? 빌린 50만 원은 진즉에 다 썼을 건데.”
“노가다 했어요.”
“증명할 수 있어?”
“……그, 새벽에 나가면 차에 타잖아요. 그거 했어요.”
“인력사무소도 안 끼고?”
사내가 갑자기 당황했다. 들은 건 있어서 둘러댔는데 깊이 아는 건 아니어서 허점이 드러났다.
“……했다니까요.”
“가서 뭐 했는데?”
“벽돌도 나르고 이것저것 잡일하고 그랬죠.”
“얼마 받고?”
“7만 원? 8만 원 줄 때도 있고요.”
지켜보던 팀장이 웃었다.
“봐, 다 거짓말이잖아.”
심문은 12시간 동안 이뤄질 때도 있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건데 벌써부터 거짓말투성이였다.
아무렇게나 던지는 말들을 다 증명해 내지 못하면, 저놈은 점점 더 불리해질 거다.
“어떤 부분이 거짓말이죠?”
“초짜들이 인력사무소 안 끼면 요즘은 일도 못 나가. 10만 원이나 12만 원쯤 받아서 일부 떼 줘야 하고. 7만 원은 한참 전 얘기지.”
“아…….”
“소년원 같은 곳에서 주워들은 얘길 지껄이는 거야. 출소한 지 2년이 넘었는데 뭐로 생활비를 충당했겠어?”
“여기저기에서 빌렸겠죠.”
“그것도 한계가 있어. 2년이라고.”
이때 팀원이 들어왔다.
“어때?”
팀장이 묻자 팀원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자주 월세를 밀리긴 했어도 내긴 했답니다.”
“얼마인데?”
“보증금 50만 원에 월 18만 원이요.”
“관리비 포함해서?”
“네.”
그러면 1년에 최소 200만 원 이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돈을 어디서 났을까? 전과가 많아서 제대로 된 일자린 찾기 힘들었을 거다.
“통장 내역은?”
“깨끗합니다. 부모와는 6년 전부터 연락을 끊었고요. 신용불량이라 카드도 발급 못 했습니다. 이 형사가 주거지 근처 성인 오락실이나 주점 같은 곳을 돌면서 탐문하고 있습니다.”
“방에선 나온 거 없고?”
“워낙 쪽방이라 별건 없을 것 같습니다. 장롱 하나 없어요.”
팀장이 팔짱을 꼈다.
“웹소설 작가들은 데뷔하기 전까진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해. 반대로 말하면 생활할 돈은 있단 거거든. 스스로 벌었든 집에서 지원을 해 줬든. 저놈이 빌붙기 좋단 얘기야. 통화 내역 나왔어?”
“아직이요.”
“좋아. 나오면 그거부터 파 봐.”
놈의 인생을 다 보진 않았지만, 학창 시절부터 소위 ‘일진놀이’를 하면서 막살았을 거다.
소년원까지 들락거렸으면 건드리는 사람도 없었을 거고, 또래 아이들에겐 공포로 군림했겠지.
웹소설 지망생들은 좋은 먹잇감 정도로 보였을 건데, 조금만 윽박질러도 원하는 걸 얻었을 거다.
“사람 죽이는 거, 쉽지 않거든. 실수로 교통사고를 내도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 저놈 봐. 웃고 있잖아. 보통이 아니야.”
그건 한중의 경장도 인정했다. 저 사내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사이코패스이거나 소시오패스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실종 사건 범인이라는 건 아니다.
그녀가 생각하는 실종 사건의 실체는 좀 더 치밀하고 거대하며 계획적이었다.
들어간 비용도 만만찮을 것이고, 실종자들을 먹이고 입히려면 시설도 필요하다.
그런 일을 저런 얼간이가 했다고?
이어지는 심문에 눈길을 돌렸다.
“강간미수로 1년 실형 살았었잖아.”
“그 얘긴 왜 해요? 이미 죗값 다 치렀는데.”
“그렇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옆방 여자였다고?”
“아, 술에 하도 꼴아서 기억도 안 나요. 그냥 우리 집인 줄 알고 들어갔어요. 문 열어 둔 걔 잘못도 있잖아요.”
기억이 안 난다면서 잘도 말한다.
“빌려준 50만 원 달라고 한 사람도 잘못, 한여름에 더워서 문 열어 둔 여자도 잘못. 그래?”
“뭐…… 저도 갚으려고 했다니까요? 근데 그 새끼가 하도 지랄을 하니까, 욱해서.”
“여자는 언제부터 노렸고?”
“형사님, 노리다니요. 그냥 그날 술 때문이었다니까요.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다고요.”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방음도 거의 안 됐을 건데.”
“모를 수도 있죠. 요즘 세상이 얼마나 각박한데요.”
“담배 피우지?”
“네.”
그가 담배를 꺼내 내밀었다.
“얼마나 펴?”
“한 갑 정도?”
“돈이 어디에서 나서?”
“……후, 그냥 없으면 안 펴요. 길에 장초 있으면 주워 피우기도 하고.”
수입이 없으면 담뱃값도 부담이었다. 연기 자욱해지는 취조실을 보면서 한중의 경장이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뭘 저렇게 숨기지?’
그녀가 보기에도 저 사내는 비밀이 많았다. 게다가 대답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능숙했다.
담배를 준다고 저렇게 편하게 피울 수 있나? 살인 사건으로 조사받는 사람이?
‘전혀 떨질 않아.’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심리적으로 불안하면 눈 밑, 손가락, 다리가 떨리곤 한다.
눈동자를 불안하게 데굴데굴 굴리기도 하고 입술도 변색된다.
하지만 저 사람은 마치 제집에 있는 것처럼 편했다.
“세상이 만만할 거야. 사람을 죽여 보면 사회가 별거 아니란 기분이 들거든. 여차하면 그냥 죽여 버리면 된다는 생각이 드니까. 사형도 말만 사형이지 집행되지 않잖아. 쟤들은 그걸 알아. 잃을 게 없어서 막살고. 최악이라고 해 봐야 익숙한 감옥이 전부고.”
팀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침 취조실 팀원도 핵심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봉천동 알지?”
“알죠, 오래 살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