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15)
작가귀환-215화(215/250)
“어땠어?”
“뭐가요?”
“동네 어땠냐고.”
“좋았어요.”
“그런데 왜 이사 갔어? 계속 살지.”
“월세가 비싸서요.”
“그게 전부야? 지금 사는 곳하고 3만 원 차이밖에 안 나는데?”
“3만 원이면 일 년에 얼마인데요.”
“박경우 몰라?”
“모른다니까요.”
“김수정은?”
“아! 진짜! 모른다고 했잖아요!”
사람의 기억은 왜곡되고 말은 실수할 수 있다.
경험 많은 형사들은 반복된 질문을 수시로 던지며 용의자의 말을 과연 믿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데, 여기서 말려들면 아무리 단단한 거짓말의 탑을 세워도 조금씩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네.”
“뭐가 이상한데요.”
“김수정, 봉천동에 살았었거든. 그 시기가 너랑 겹치고. 미인이라서 눈에 띄었을 건데.”
“봉천동 사는 사람을 제가 다 알아야 합니까?”
“미인이었다니까. 너, 여자 좋아하잖아. 막 강간할 정도로.”
“안 했다니까!”
“봉천동, 살기 좋지. CCTV도 없고 외졌고 골목도 좁고.”
“……하. 환장하겠네. 이보세요, 나는 진짜 그건 모른다니까요. 뭘 의심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건 맞아요. 근데 그것뿐이라고요.”
“우발적으로? 그랬어? 칼을 준비해 갔잖아.”
“그걸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 그렇구나. 그랬을 거야. 하지만 썼지. 네 말을 들어 보면 다 걔들 잘못인데. 칼도 쓰게 한 그 사람 탓이고.”
“고작 50만 원 때문에 닦달하면 얼마나 짜증 나는지 아세요?”
“너는 고작 그 50만 원이 없어서 사람을 죽였고.”
“…….”
“500만 원이면 더한 짓도 하겠다. 그치?”
“이건 우리나라가 잘못된 거예요.”
“어째서?”
“출소하면 한 푼도 없는데 어떻게 먹고살아요? 지원을 해 줘야 자립도 하고 그러죠. 그냥 내몬다니까요?”
“너한테 당한 피해자들은 무슨 죄인데?”
“지금 그 얘길 하려는 게 아니잖아요.”
“알았어. 그래서 억울했어? 세상에 너를 알려 주고 싶었지?”
“죗값을 다 치렀으면 새 삶을 살게 해 줘야 할 거 아니에요.”
“일할 거 많잖아.”
“없어요. 하다못해 알바도 사람 가려서 뽑는다고요.”
“네가 사장이면 전과자를 뽑고 싶겠어? 뭘 훔쳐 갈지도 모르고 50만 원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데?”
사내의 얼굴색이 붉어졌다. 점점 짜증을 참지 못하고 있는 거다.
지이이잉.
한중의 경장이 핸드폰을 꺼냈다.
“……잠시만요.”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가 급히 나가자 조정환 팀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취조실을 봤다.
‘뭔가 더 있는 게 확실해.’
*
*
*
뉴스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잡은 겁니까?”
아직도 그놈의 음성이 악몽이 되어 나를 깨운다.
-모르겠어요.
모른다고?
“작가 지망생을 살해했다고 뉴스에 나오던데요?”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다섯 건의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는진 확인하지 못했어요. 본인도 강하게 부정하고 있고요.
내 숙원이라면 그놈을 잡는 거였다. 단순한 복수심을 넘어 사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으니까 더 파 보면 뭐가 나올 거예요. 기다려 주세요.
한중의 경장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놈이 진범이 아니라면 더 복잡해지는데.’
10년간 경찰의 수사를 피해 온 팀장이 이렇게 쉽게 잡힌다는 것도 이상하고, 한중의 경장의 목소리도 석연치 않았다.
내가 걱정하는 건 작가 살해범을 잡았으니까 실종은 흐지부지 묻어 버릴 가능성이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
뉴스 보며 놀랐던 심장이 빠르게 식었다. 내 몸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일단은 잊자.
본업으로 돌아왔다.
요즘 나는 위스키를 공부한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맛이나 풍미, 뭔갈 설명하려면 결국 마셔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위스키를 만들거나 하는 건 아니었기에 겉핥기 정도만 알아도 될 것 같지만, 그러면 ‘더 위스키’라는 제목이 동떨어진 느낌을 줄 수 있어서 최대한 아는 척을 해야 했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가 될 위스키마다 가진 분위기를 맞춰 볼 욕심까지 내다 보니까 공부할 게 많았다.
우선 그간 좀 더 설정을 늘렸다.
아버지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던 주인공은 결국 아버지가 ‘블랙’이라는 코드명으로 활동했던 사람이란 걸 알아낸다.
주로 정치, 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던 브로커였는데, 바뀐 정권의 희생양이 되었고. 주인공은 아버지가 남긴 위스키로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 가며 진실에 접근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거 자칫 잘못하면 더럽게 재미없는 루트를 탈 수도 있었다.
웹소설은 어디까지나 킬링 타임용으로 인식하는 연령대가 많았기에 너무 무거워서도 안 되고 계속 고구마만 먹어도 곤란했다.
결국 에피소드마다 계속되는 사이다가 터져 줘야 하고 주인공은 계속된 보상을 거머쥐어야 하는데, 이게 정리되어야 집필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볍게, 더 가볍게.’
결과적으로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거겠지만 그건 이면에 숨기고 주인공의 성장과 성공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반 소설과 웹소설의 다른 점이 바로 이거다.
무엇을 조명하느냐, 어떤 것에 중점을 두느냐가 초반 스코어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이야기가 생겨나는 거야. 그게 소설의 원천이지.’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때 사건 자체보다는 사람을 먼저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10병의 위스키에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만든다고 하면, 10명의 인생이 거기에 겹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그건 한 사건으로 향한다.
‘이런 식이라면 팀장 그놈도…….’
작가 살해라는 사건이 아니라 실종된 사람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놈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놈이 노리는 대상이 명확하다면 함정을 깔거나 선수를 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더 위스키’를 구상 중이라서 더 이런 쪽으로 심취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작업하는 작품에 모든 것을 맞춰 따라갈 수밖에 없다.
지리산 엘프를 쓸 때는 내가 최대한 엘프가 되어 세상을 봐야 했고, 사상 최강의 아이돌을 쓸 때는 디엠 멤버가 되어 무대에 오르는 꿈도 꿨다.
‘놈을 자극하지 않고 끌어낼 방법이 있을까?’
그놈도 뉴스를 봤을 거다. 경찰서에 있는 용의자가 진범이 아니라면, 팀장 놈은 지금쯤 큭큭 웃으며 즐기고 있겠지. 아주 재미있을 거다.
바로 이럴 때 사람은 방심한다.
‘수사가 한창이라서 신규 작가를 영입하려고 하진 않을 거야. 아무리 대범해도 지금은 몸을 사리겠지.’
그렇다면 이미 나와 있는 정보로 놈을 추적해야 했다.
내가 경찰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수사 기법을 배운 적도 없었기에 상식선에서 생각하는 것만으론 버겁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작가 아닌가?
마침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한중의 경장도 협조적이긴 했지만, 그쪽과 너무 접촉하면 되레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현우라고 합니다.”
곧장 전활 걸어 봤다.
-아! 잘 지내셨죠?
그는 고시원 건물주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취재요? 아, 작가라고 하셨었죠! 몇 명 소개해 드릴 사람이 있긴 한데, 워낙 바쁘다 보니까 응해 줄진 모르겠네요. 한번 알아볼게요. 강력 범죄 쪽인 거죠? 알겠습니다. 내일까지 연락드릴게요.
작가는 지식과 경험을 작품에 녹인다. 그 덕분에 작가가 뭘 하든 그건 다 취재가 되고 알리바이다.
더 위스키의 내용도 아버지의 죽음을 추리하는 과정이니까 명분도 있었다.
‘필요하다면 직접 발로 뛰어서라도…….’
놈을 찾아야 했다.
*
*
*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팀장은 TV를 보며 웃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놈이 뭘 하던 자식인진 모르겠지만, 된통 당할 것 같았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경찰은 없는 죄도 만들어서 갖다 붙이곤 했었다.
최근 들어서 나아졌다곤 하지만 그게 완전히 다 사라졌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놈이 뒤집어써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기사를 검색하며 새로 알아낸 정보가 있었다. 용의자가 살해한 사람은 동창이자 친구였으며 살해 동기는 고작 50만 원이었다.
피해자는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었으며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사람을 무참히 살해했으니 사회적인 공분을 사고 있었고, 벌써 신상 공개를 하라는 여론까지 들끓었다.
특히 웹소설 커뮤니티들에서 난리가 났다.
-그 새끼, 일진이었다면서?
-벼룩의 간을 빼 먹지!
-50만 원에 사람을 죽이냐? 편의점에서 알바만 해도 벌겠네!
-나 그 학교 나옴. 걔, 1학년 때부터 유명했음. 뒤가 없는 놈이라서 선생님들도 피하던 놈이었고, 물건이나 돈 없어지면 다 그놈 소행.
-피해 작가님이 썼던 소설 링크 걸어 둘게요. 이제 유작이 되어 버렸네요.
https://www.gulpia.com/?NaPm=ct%3Dku25foqo%7
-애도…….
상위 5% 정도를 제외하면 웹소설 작가들은 대부분 궁핍하게 살았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꿈을 위해 작품을 이어 가는 사람들이었기에, 이번 사건이 공감되었고 분노했다. 남 일 같지 않았던 거다.
소문도 돌았다.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라던데요?
-작가들만 노렸다는 얘기도 있음.
-왜 작가만 노려요?
-만만하니까? 혼자 사는 사람도 많고, 밖에서 볼 땐 우리가 뭐 하는지 잘 모르기도 하니까.
-하, 진짜 개자식이네.
이틀 후 또 한 번 이슈가 터졌다. 인천에서 발생했던 ‘퍽치기 사건’의 진범이 그로 밝혀진 것이다.
야심한 시각이었고 흐릿한 CCTV가 전부여서 미제로 남을 뻔했는데, 그의 집에서 나온 후드티와 신발, 모자가 CCTV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둔기로 뒤통수를 맞았던 취객은 아직도 의식불명이었다.
피해자의 지갑엔 고작 6만 3천 원이 들어 있었고, 그가 쓰던 지갑은 용의자가 ‘중고나라’에 헐값에 팔아 버렸다.
이 모든 것을 자백한 용의자는 한 건의 살인과 한 건의 강도로 입건되었지만, 사람들은 그게 끝일 리 없다고 여겼고 공식적인 경찰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특수본 팀장 조정환입니다.
사회적 관심이 많은 사건이었기에 기자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연신 터지는 셔터를 잠깐 기다렸다가 조정환 팀장이 말했다.
-용의자는 전과 7범이었고 출소 후 2년 동안 직업 없이 생활해 왔습니다. 주로 강도나 절도로 연명했으며, 수도권 인근에서 발생했던 몇몇 사건들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무엇보다 용의자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 날이 너무도 많다는 점에, 우리 수사팀은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한 건의 살인과 한 건의 강도 행각을 자백했음에도 죄책감이 없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 지속적인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을 종합해 보면 여죄가 더 있을 것으로 판단. 최근 2년간의 미해결 범죄에 용의자의 DNA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물어뜯기 딱 좋은 놈이 경찰에 잡혀 버렸다.
“하하하……!”
팀장은 TV를 보며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