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16)
작가귀환-216화(216/250)
그렇다고 다 끝났다는 건 아니다. 기분이 들뜨긴 하지만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작가가 플롯을 짜듯 그도 여러 계획을 짜 둬야 했고, 플랜A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서 플랜B부터 C까지 만들어 두는 편이 좋았다.
‘저쪽에 이목이 쏠려 있을 때 나는 내 할 일을 하면 돼.’
이제까지는 공격적으로 연재 일정을 짜 뒀는데, 앞으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눈에 띄면 곤란하다. 1번 작가는 1번대로 4번은 4번대로 간다.
‘특정 플랫폼만 고집할 필요도 없고.’
이런 생각을 하며 메일함을 열었다.
“어라?”
광고 메일 사이에서 특이한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희는 KBC 교양국입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웹소설에 시청자의 관심이 높다고 판단하여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메일 확인하시면 유선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KBC라…….”
아마도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거나 인터뷰 정도 딸 것 같긴 한데, 전이었다면 얼굴 팔리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갑자기 고민이 됐다.
‘이렇게 숨어만 사는 게 맞나?’
차라리 의심을 없애 버리는 편이 좋을까?
편집자나 기획자가 작가로 전환하는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6번이나 4번 작가의 작품 정도는 그도 노력하면 흉내는 낼 수 있었다.
5번은 워낙 한쪽으로 치우친 글을 써서 감당하기 어렵지만…….
무엇보다 그는 사무실의 모든 작가들 작품을 다 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매일 편집해서 올리지 않나? 하다 보니까 2번 작가 덕분에 로맨스까지 영역을 넓혔다.
“흐음…….”
그냥 무시해 버릴 게 아니라 생각해 볼 문제였다.
나머지 메일은 이렇다 할 게 없다.
컴퓨터로 해야 할 확인 작업을 마친 그가 작가들의 채팅창을 보았다.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그가 출근하면서 자리를 오래 비우는 일이 많아서인지 1번이나 3번이 잡담을 많이 한다.
그래도 3번에게 완장을 채워 줘서 녀석이 시누이 역할을 하고 있긴 한데, 언제 한번 기강을 잡아야 하긴 했다.
특히 4번 같은 경우는 얼굴만 봐도 헛된 기대를 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나갈 수 있을 리 없잖아. 바보같이.’
100포인트를 모으면 자유? 그런 거짓말을 믿는 것 자체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보여 준다.
【어이, 3번, 특식은 언제 나오지? 콜라가 필요하다. -5】
【그걸 내가 어떻게 암? 그리고 콜라는 특식에 포함 안 됨. -3】
【네가 말 좀 해 줘 봐. 너는 그와 친하잖아. 여기선 술, 담배도 안 하는데 뭐라도 즐길 거리가 있어야지! -5】
【인정. 사람을 이렇게 몰아세우기만 하면 지쳐서 나가떨어진다고. -1】
웬일로 1번과 5번이 의기투합했다.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이 합치면 3번도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채팅을 보던 팀장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놈들은 어떤 즐길 거리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공지했다.
【새로운 교환권을 발행하겠습니다. 콘텐츠 한정으로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애니, 만화, 영화, 원한다면 성인물도 가능합니다.】
【오오오옷! 정말인가? 19금도 된다는 거냐? -5】
5번이 반색했다. 다른 남자 작가들도 내색은 안 했지만 반기는 분위기였다.
온종일 CCTV로 감시당하면서 살다 보니까 욕정을 풀 방법이 없었다.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3대 욕구 중에 성욕도 포함되지 않나?
【짐승…….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러고 싶을까? -2】
2번 작가가 얼굴을 찌푸렸다. 채팅창에 자신의 의견을 쓰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어이, 나를 그런 취급하지 말아 줄래? 내가 원하는 니코짱 19금은 예술의 경지를 넘어섰다고! 그건 작품이야! 신성한 거라고! -5】
가축도 가끔은 들판에 풀어줘서 뛰게 해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 좁은 방에서 자의로 살면 몰라도 타의에 의해 그렇게 구속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거다. 그래서 감옥이란 게 있는 거 아닌가?
【게임도 됩니까? -3】
【온라인이 아니라면. 작업에 지장이 없는 한에서.】
【오오오! -3】
당근을 줄 때는 채찍을 보여선 안 된다. 팀장은 최대한 너그러운 사람처럼 작가들을 달랬다.
이들은 가짜 범인이 잡힌 걸 모른다. 알아서 좋을 것도 없다. 그저 어제와 같은 하루가 오늘도 계속되고 내일은 작은 행복을 따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단순함 속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지.’
인간의 뇌는 멀티가 안 된다.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사람은 그저 처리 속도가 빠를 뿐이지 동시에 해결하는 게 아니다.
계속 그런 생활을 반복하면 뇌는 과부하가 걸리고 수명이 단축된다.
뭐든 집중할 때는 하나씩 하는 것이 베스트란 거다.
‘이번 신작만 제대로 만들고.’
대대적인 변화를 사무실에 줘야 할 것 같았다.
동물원 돼지나 축사의 돼지나 갇혀 사는 건 매한가지다. 그런데도 동물원에 있으면 구경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돼지도 그럴 거다. 죽기 전까진 환경이 나쁘지 않으니까.
그가 인터넷에서 인테리어를 검색했다.
작가들의 방에 창문은 없지만, 벽에 커튼이나 블라인드라도 달아 두면 보기엔 좋지 않나?
그렇게 착시를 주는 거다.
‘불편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낫지 않아?’ 몇몇 소품으로 그렇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면 성공이었다.
【음반 같은 거도 되는 거죠? -2】
【물론입니다.】
2번은 디엠의 진국에게 빠져 있으니 다루기 쉽다. 그런데 속을 모르겠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자연스럽게 7번을 보았다.
‘필요한 게 없나?’
남들은 한마디씩 하고 있는데 그녀는 묵묵히 작업만 했다. 분명 채팅을 봤을 건데.
‘왜 내가 신경을 쓰고 있는 거냐.’
당장 여기서 나가서 거리를 보면 화려하고 예쁜 여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강남 아닌가?
그에 비해 7번이 아름답다고 할 순 없었지만 이런 한정된 공간에서 계속 보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건 좋지 않아.’
그가 일어났다.
친절은 여기까지. 그는 보모가 아니었다. 이만큼 해 주면 받아 내야 할 것이 있다.
막 나가려는데 4번이 질문했다.
【종이 신문을 볼 수 있습니까? -4】
팀장이 피식 웃었다. 작가니까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아야 하는 건 맞지만 속이 너무 훤히 보이지 않나?
【원한다면.】
그게 스스로를 얼마나 깊은 바닥으로 떨어뜨릴지 몰라서 저럴 것이다.
*
*
*
한중의 경장은 사흘간 한숨도 자질 못했다. 용의자 심문이 계속되고 있어서였는데, 범죄심리학 전공할 때 밤새워 공부하는 건 일도 아니었기에 익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건 지금 극도의 불합리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닌데. 왜 이렇게 되어 가는 거지?’
추가 심문으로 용의자가 자잘한 범죄를 계속해 왔다는 걸 알아냈다.
그가 2년간 변변한 직업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절도가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제 장물 처리가 쉬워졌는데, 뭐든 훔쳐서 중고로 싸게 팔면 돈이 된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절대로 다섯 명 넘는 작가 지망생을 납치해서 큰일을 도모할 사내가 아니란 거다.
그런데도 팀은 그를 연쇄 실종과 어떻게든 엮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 사내가 싫었다. 갱생조차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쓰레기가 사회에 버젓이 돌아다니면서 계속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안 된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이고 죄는 죄였다. 그가 자신이 하지 않은 일까지 뒤집어쓰면 진범은? 실종자들은?
“오늘도 쉽게 끝나진 않을 것 같은데. 들어가시죠, 경장님.”
팀원이 다가와 말하자 한중의 경장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러다가 제가 없을 때 끝나 버리면요?”
“그렇게 쉽게 자백하겠습니까? 여태 버틴 놈인데요. 심문은 체력전이에요. 저놈이든 우리든 끝까지 남는 쪽이 이기는 겁니다.”
“그가 진범이라고 보세요?”
“반반입니다. 처음엔 아닌 것 같았는데 파면 팔수록 뭐가 나오잖아요. 저 새끼한테 실종자들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죽여서 어디 묻어 놨다고 해도 계속 히죽히죽 웃으면서 거짓말할 자식이에요. 저런 부류는 절대 믿어선 안 됩니다. 동정하는 순간 말려요.”
그가 그녀를 설득하듯 말을 이었다.
“몇 년 전에 경기도에서 부녀자 살인 사건이 있었는데, 목격자가 여고생이었거든요? 제가 담당했었어요. 심문하면서도 그 누구도 걔가 범인일 거란 상상조차 못 했어요. 대충 그림이 나오죠? 시골에 사는 순박한 학생.”
“네.”
“그런데 걔 방에서 범행 도구가 나왔어요. 공예용 커터칼이요. 날 두꺼운 거. 그걸로 그냥 목을 그은 거예요. 걔가 왜 그랬는지 아세요?”
“……원한이 있었나요?”
“그냥이요. 그냥 했대요. 별 이유도 없고 원한도 없고. 저놈은 그런 부류인 거예요. 호랑이가 토끼를 사냥한다고 잘못된 건가요?”
“사냥터가 아니면, 시스템이 그걸 허용하지 않으면 안 되죠.”
“어제 저놈이 한 말이에요. 자기가 호랑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반사회적 인격 장애예요.”
“어려운 말로 하면 그렇겠지만 그냥 개새끼잖아요. 안 잡혔으면 저놈이 한 짓들은 다 묻혔을 거고요. 그래서 저는 더 해도 좋다고 봐요. 작가들 없어진 것과 연관이 있든 없든 저런 놈은 영원히 사람들에게서 격리되어야 해요.”
그의 눈동자에서 분노가 심하게 일어나는 걸 보면서 그녀가 말했다.
“수사에 개인적인 감정을 넣는 건 좋지 않아요.”
“알아요. 알죠. 근데 저는 호랑이와 토끼가 오순도순 사는 마을의 경비견이거든요. 냄새가 나요. 저놈이 살인이 처음이라고요? 말도 안 되죠. 이미 고기 맛을 본 놈인데. 제가 무조건 토끼를 지켜야 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어쩔 수 없잖아요.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진 분명하죠.”
취조실엔 조정환 팀장이 직접 들어가 있었다.
본래 그가 나설 자리가 아니었지만, 사회적 관심이 한껏 쏠려 있었고, 계속 새로운 게 나와 버리니까 강수를 둔 거다.
“……그 여고생 있잖아요.”
나란히 서서 취조실을 보던 팀원이 말했다.
“몇 년 있으면 출소해요. 개 같은 게 뭔지 아세요? 걔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 피해자 자식과 남편도 같은 동네에서 산다는 거예요. 토끼들이 호랑이가 풀려났다고 복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속이 썩어 들어가면서도 아무것도 못 하는 거예요. 오히려 호랑이는 아무렇지 않게 살 텐데.”
“피해자들에겐 더 많은 안전장치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호랑이가 떠나야죠. 아니면 한곳에 가둬 놓고 자기들끼리 잡아먹게 하든가.”
그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프로파일러는 이성과 감정을 분리해야 했다.
법이 심판했고 형기를 마쳤다면 호랑이도 토끼가 될 수 있어야 했다. 그게 대한민국 사법부의 시각이었다.
‘이게 현장을 뛰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겠지.’
저놈은 나쁜 놈이니까 더 나쁜 짓을 했을 거다. 저놈은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구분은 해야 한다.
팀이 쫓던 케이스와 관련이 있는지를 말이다.
그때였다.
-와아아악!
사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팀장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