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18)
작가귀환-218화(218/250)
“이거……?”
“수상한데?”
“우연치곤 너무 기막히지 않나?”
밖에서 팀원들이 소란스러웠지만, 안에선 전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한중의 경장은 점점 더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이 사람은 절대 아니야.’
연쇄 작가 실종 사건 범인은 맹수였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용의주도한 사냥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자는 쥐새끼였다. 전혀 다른 종이란 거다.
‘지금도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어. 지금까진 이 사람이 가진 몇 개의 카드 중에서 그럴듯한 걸 던져 준 거고.’
나머지 카드에도 실종 작가와 연관성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확신했다. 이제 더 얘기해 봐야 나올 것도 없을 것 같았다.
*
*
*
가끔은 현실이 더 소설 같을 때가 있다. 더 황당하고 어이없으며 잔인하기까지 하다.
이번 일이 딱 그러했다.
“그래서…… 수사가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는 겁니까?”
“네…….”
“잠은 좀 주무십니까?”
한중의 경장은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내가 본 그 어떤 날보다 초췌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았다.
“흠…….”
그녀가 돌아가고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무래도 잘못 짚은 것 같은데.’
그녀가 말했다. 용의자는 웹소설을 세 페이지 넘기는 것도 힘들어했다고.
그런 사람이 팀장? 내가 아는 그놈이라면 3페이지 정도는 속독으로 몇 분이면 끝내 버린다.
‘공식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
마침 오늘 조력자를 만나기로 했다. 세상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대표님, 시간 괜찮으세요?”
“어, 왔어?”
예진이 들어왔다.
“그 경장님은 뭐라세요? 범인이 잡혔다고들 하던데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네.”
“아, 그래도 안심이에요. 요즘 어찌나 흉흉한 소문이 돌던지.”
그의 신상을 공개하라며 커뮤니티가 난리가 났다.
이미 과거 행적이 탈탈 털리고 있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공공의 적이 되어 연일 뉴스에 오르내렸다.
‘안심이라.’
진범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아니라면? 팀장 놈은 뉴스를 보며 얼마나 좋아하고 있을까?
내 촉이 말하고 있다. 그놈은 이렇게 쉽게 잡힐 위인이 아니라고.
“잠실 가신다고 하셨죠?”
“어, 곧 나가야지.”
“제가 같이 가 드릴까요?”
“아니야. 택시 타면 돼.”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서 예진이 알 필요까진 없었다. 지금도 일이 얼마나 많은데 괜한 걱정거리만 늘릴 거다.
오늘 연재분을 확인한 뒤 길을 나섰다.
작가 생활을 오래 하려면 번아웃을 조심해야 한다고들 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겠지만 매일 반복되는 업무가 쌓이면 사람은 점차 지쳐 가고 처음 느꼈던 활력이나 투지도 무뎌져 간다.
하지만 나는 그럴 여유도 없었다.
회사 일도 바빠 죽겠다. 최종 결정권자의 자리가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모르고 살았다. 그냥 알아서 다 굴러가는 게 아니라 내 선택 하나하나가 모든 것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공과 사를 구분하려는 거다.
사랑, 복수 이런 건 내 개인적인 염원이었으니까.
“정현우 대표님?”
약속 장소에서 10분쯤 기다리자 중년의 사내가 왔다.
“아, 제가 정현우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차인근입니다.”
그는 오른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듣기론 자료 조사를 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번엔 범죄 스릴러 장르를 쓸 계획이라서요.”
“그러면 드라마도 나오고 그러는 겁니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죠.”
“오! 제 딸아이가 정말 좋아하겠습니다! 하하! 녀석이 이번에 지리산 엘프도 엄청 재미있게 봤다고 하더라고요.”
저 말이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조사를 상당히 하고 나온 것 같았다.
“약소하지만 제 성의입니다.”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에 약속한 것보다 좀 더 넣었다.
“고맙습니다.”
그가 웃으며 봉투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노트북을 꺼내 모든 것을 기록할 준비를 했다.
오늘은 전초전이다. 우선 그를 파악해야 한다. 아군이 되어 줄 것인지, 아니면 그냥 조언자로 남을 것인지.
“제 소설 속, 가상의 악당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부터 저와 이 빌런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해 주시면 됩니다.”
“그거 재미있네요.”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겁니다. 저는 형사님의 조언을 받아서 디테일과 개연성을 완성할 생각이에요.”
“이제 형사 아닙니다. 그만둔 지 벌써 4년인데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20년 넘게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정년까지 얼마 안 남으셨지 않으세요?”
“그거 버티려다가 가족을 잃게 생겼더라고요.”
“아…….”
“뭐가 가장 중요한지 늦게라도 알아차려서 천만다행이었죠. 아니었다면 골방에서 혼자 술이나 마시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가 고독사했겠죠.”
그의 입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대표님께서도 이른 나이에 자수성가하셨으니 더 일에 집착하실 수도 있겠지만, 늦기 전에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많이 만들어 두시길 바랍니다.”
“새겨듣겠습니다.”
“자, 그러면 돈 받았으니까 일해야죠! 시작합시다.”
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이제 그걸 위해 직접 발로 뛴다.
“지역은 서울, 멀어도 수도권을 벗어나지 않을 것 같고요. 최소 30명 이상을 개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면서 10년 동안 외부에 노출되지 않을 곳이 필요합니다. 범인은 사람을 가둬 두고 즐기는 성향이거든요. 그런 곳이 있을까요?”
“음, 30명이라. 많은데요?”
“추가로 창문도 없고 무척이나 조용합니다.”
“수도권으로 한정한 이유는요?”
“범행 대상 물색과 이동의 편의성 때문입니다. 아, 에어컨이나 난방 기구가 없이도 내부 온도가 일정합니다.”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네요.”
“그런 것들이 범인의 철두철미한 캐릭터를 잘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긴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확인 후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 30명은 남녀 구분이나 노소도 상관없습니까?”
“젊은 성인들입니다.”
“목적은요?”
“그걸 파악하는 게 우리의 일이죠.”
“아, 독자가 추리하게 하는 그런 건가요?”
“비슷합니다.”
작가를 착취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활동비가 필요하시다면 추가로 지원도 가능합니다.”
“허허, 그렇게까지요?”
“제겐 소중한 일이니까요.”
그도 작은 수첩을 꺼내서 이런저런 메모를 했다. 상당히 믿음직했는데, 역시 이런 일은 나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단 전문가가 나서야 했다.
단편적이지만 상당히 구체적일 수도 있는 정보를 공유한 뒤 내가 말했다.
“범인은 남성이며 나이는 40대 정도입니다. 적으면 30대 후반에서 많아도 50대 초반이 넘지 않을 거고요.”
내가 아는 팀장의 인상착의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긴 해도 10년을 살았는데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게 있지 않나?
“그러면 그…… 주인공(?)이라고 해야 하나. 범인을 상대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경찰은 아닐 테고. 피해자의 가족이려나요?”
“그건 아직 설정 중에 있습니다. 이 작품 특성상 누구라도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범인은 하나니까요.”
“누구라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고 들리기도 하는군요.”
“정확하십니다.”
“범인이 이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가 있나요? 유년 시절의 학대 경험이라든지.”
“그것도 친절하게 내보이진 않을 생각입니다. 후반부가 되면 모르겠지만요.”
“원래 단순무식하게 가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제가 겪어 본 바론 범죄자들은 자기가 당했으니까 갚아 준다는 피해망상을 가지고 살지만, 알고 보면 그냥 태생이 그런 놈들이에요. 사람 같지도 않은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런 놈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저도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게 무서웠고요. 그냥 나쁜 놈은 나쁜 놈인 겁니다.”
전엔 그랬지만 앞으론 빌런도 서사와 사연을 가지는 쪽이 더 흥행에 도움이 된다.
진짜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이러는 건 아니지만, 팀장 그놈은 단순히 미친놈은 아니었다.
목적이 돈이었다면 훨씬 많은 기회가 있었을 것이고 원한이었다면 이미 여럿 죽이면서 풀지 않았을까?
학창 시절에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면 그놈들을 타깃으로 하지 대한민국 모든 일진을 때려죽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하, 이거 오랜만에 불타오르는데요? 실제로 그런 놈과 수 싸움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케이스가 있었습니까?”
“없죠. 사람 30명을 먹여 살리는 게 쉽습니까?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죠. 아참, 범인에게 조력자가 있습니까? 공범이라든지요.”
“없습니다.”
“허…… 혼자서 30명을 케어하려면 보통 일이 아닐 건데요.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뭡니까? 하루 이틀은 몰라도 10년이나 하다 보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을 겁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가장 합당한 놈의 목적을 만들어 내야겠죠. 보는 사람이 단 한순간도 시선을 뗄 수 없게요.”
“역시 세상엔 그냥 얻어지는 건 없나 봅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해서 소설을 쓰는 줄 몰랐어요. 대단하십니다.”
아니다. 경험한 게 아니라면 보통은 그냥 인터넷 보거나 책 사서 공부한 다음 쓴다.
그에게 살짝 미안했지만, 팀장 그놈을 잡는 건 모두를 위해서니까 웃어넘기자.
“아직 커피가 남았는데, 더 궁금하신 거 없으십니까?”
“다 내려놓으셨는데, 평안하십니까?”
“……하하! 그럼요! 내 평생 미운 아빠로 살다가 최근엔 딸자식이랑 해외여행도 다녀왔습니다. 이제 손주 재롱이나 보고 오래오래 살고 싶어졌습니다. 놈들하고 싸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뭔지 아십니까?”
그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한 놈 잡는 데 인생을 거는데, 그놈들은 끝이 없다는 겁니다. 잡아도 잡아도 계속 나와요. 송장에 구더기가 꼬이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 그걸 막아 보겠다고 인생을 바쳤으니.”
“옳은 일 하신 겁니다.”
“알죠. 사명감도 있었고요. 박봉이었지만 그거 하나로 버텼습니다. 내 자식이 끔찍한 범행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더 치열했고요.”
나는 직업적인 귀천을 떠나서 모든 장인을 존경한다.
그도 당신의 분야에선 장인이었다. 꼭 필요할 때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
히어로.
의사, 변호사, 소방관, 경찰……. 하다못해 주방 싱크대가 터지면 그걸 고쳐 주는 사람도 영웅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전혀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내 소설을 보고 누군가는 위로를 얻었으면 한다. 직접 가서 안아 줄 순 없지만 간접적으로나마 행복을 주고 싶었다.
“그러면 잘 부탁합니다.”
“네, 이른 시일 안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와 헤어지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문득 그가 말했던 ‘안식처’ 개념을 떠올렸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전활 걸었다.
이렇게 허물없이 연락을 할 수 있는 것만 봐도 그녀는 내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작업 중이에요?”
-네, 막 초고 끝났어요!
“밥은요?”
-퇴고하고 먹으려고요.
“그러면 같이할래요?”
-악! 저 안 씻었는데!
“기다릴게요. 천천히 해요.”
오늘은 그냥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