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26)
작가귀환-226화(226/250)
“…….”
“…….”
“크흠! 죄송합니다.”
브라키오 작가가 휴지로 입을 닦았다.
“괜찮으세요?”
나는 그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룸에 먼지가 많은가 봅니다.”
“소개받아서 온 곳인데 죄송합니다. 다른 델 갈 걸 그랬네요.”
“이왕 온 거 그냥 마시죠.”
그가 앉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잘 몰라서 이것저것 시켜 놨습니다.”
테이블 위엔 위스키가 종류별로 있었다.
“안 딴 건 계산 안 한다니까 편하게 드세요.”
“네, 그런데…… 우리끼리만 마십니까?”
“혹시 더 필요하신 거라도…….”
“아닙니다. 저도 번잡한 거 싫습니다.”
여길 와 보고 알았다. 진짜 강남 한복판에 룸이 100개가 있는 지하 공간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진 짐작할 수도 없었다.
“완전히 별천지네요. 처음 와 봤는데 이런 세상이 있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저도 룸은 별로 즐기지 않습니다. 주로 바에 가거나 혼자 마시죠.”
“아,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그쪽으로 했을 텐데요.”
아니, 그랬어도 여기로 왔을 거다. 나는 지금 그를 관찰하고 있다.
‘내가 있던 곳이랑 방 크기가 거의 같아.’
지금도 눈만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곳. 저기 벽을 걷어 내면 변기가 있을 것이고 이쪽으론 책상, 작은 침대가 딱 들어맞는다. 창문도 없고 퀴퀴한 냄새도 익숙했다.
“이런 델 유지하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네요. 얼마나 들까요, 한 달이면?”
“모르죠. 우선 이것부터 따겠습니다.”
능숙하게 발렌타인을 잡는 그를 보며 나는 다시 물었다.
“아까 물어보니까 여기가 24시간 영업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침이나 낮에도 손님이 있다는데, 대단하지 않아요?”
“그렇습니까?”
그가 스트레이트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그러곤 말했다.
“처음엔 조금 입에 머금고 향만 음미해 보세요. 역하면 말씀하시고요. 잔 바꿔서 얼음 조금 타 드리겠습니다.”
“안주는 없이 먹나요?”
“처음엔 그냥 즐기시는 게 좋아요. 음식 맛 섞이면 비싼 술인데 아깝잖아요. 이게 면세점에서 사도 한 잔에 5만 원은 넘을 텐데, 여기선 훨씬 비싸겠죠. 저도 참 오랜만에 보네요, 30년산은.”
그가 잔을 들었다. 건배 없이 각자 위스키를 흘려 넣고 입을 다물었다.
크, 쓰다. 그냥 그것밖에 없다. 이 비싼 걸 왜 마시는지 모르겠다.
“어떻습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 있죠. 물 충분히 마시세요.”
그가 다른 위스키를 집어 들었다.
“발렌타인은 이렇게 약간 방치해 둘 겁니다. 방금 그 맛을 잘 기억해 두세요. 이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면 입문에 성공하신 겁니다.”
“에어링이 이렇게 빨리도 되나요?”
“아뇨. 그냥 탁한 냄새가 빠지는 거죠. 오래 밀봉되어 있었으니까요.”
“하긴 그렇게 갇혀 있었으니 저 녀석도 답답했겠어요.”
“……위스키는 오크가 가장 중요합니다. 숙성이 생명이죠. 모든 것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란 게 있는데, 특히 술은 인내심이 요구되고 그중에서도 위스키는 그냥 술이라고 할 수 없는 예술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재미있네요. 예술.”
“사람도 마찬가지죠. 하루아침에 뭔갈 이룰 순 없지 않습니까? 다 시간이 필요하고 숙성이 되어야죠.”
“언제부터 위스키를 즐기셨어요?”
“저도 고수들에 비하면 얼마 안 됐습니다. 금전적으로 여유도 없었고요. 덕분에 오늘 호사를 누리네요. 이것도 드셔 보세요. 일부러 절반만 따랐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가는 금방 골로 가겠지만, 두 잔까진 괜찮다. 그간 이사라 덕분에 강제로 나도 주량이 늘었다.
“더 부드러운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목 넘김도 좋죠. 그래서 애호가들 사이에선 두 가지 위스키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들 합니다. 조니워커 같은 술은 펀치력이 훨씬 강하고요. 비가 오는 날은 더 부드러워집니다.”
“습도 때문인가요?”
“감성도 영향이 있고요.”
“오, 그건 몰랐네요.”
“소주도 어떤 날은 달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무더운 여름에 참으로 먹는 시원한 막걸리는 더할 나위 없는 청량함을 느끼게 해 줄 거고요.”
“확실히 말씀을 잘하시는 걸 보니까 소설도 그래서 잘 쓰셨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이제 막 시작한 초보일 뿐입니다.”
“저도 2년 차인데요. 아참, 작가님 만나면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요. 작가님 작품 중에서 회귀작가전을 재미있게 봤거든요.”
“이번 생은 최강으로 살겠다가 더 낫지 않던가요?”
“제 취향엔 이쪽이 더 좋았어요. 간절함이 와닿았달까? 처절한 걸 좋아하거든요.”
“그랬군요.”
“작품을 읽다 보면요. 주인공이 계속 구해 달라는 신호를 보내잖아요.”
“…….”
“어떤 숨은 의도가 있는지 몰라서 직접 뵙게 되면 여쭤보려고 했어요. 저는 정독해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랬습니까?”
그가 술을 따랐다. 깊은 눈이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기도 했고 무심한 것 같기도 했다.
“저 말고도 몇몇 독자도 그렇게 느꼈는지 댓글에 있던데. 완결 때는 속 시원하게 풀어 주실 거죠?”
“그래야죠…….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보셨습니까?”
“작품 초반부터 ‘탈출’이나 ‘자유’라는 단어 사용이 지나치게 많더라고요. 중반부로 가면서 조금씩 다른 단어로 대체되긴 하는데, 굳이 여기서도 이런 표현을 써야 했나? 싶은 지점이 있어서 턱턱 걸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일부러 하신 거라면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오늘 처음으로 그의 눈매가 약하게 떨렸다.
‘모르고 있었네.’
여길 오면서 내가 죽었던 날을 계속 기억해 내려고 해 봤지만, 팀장의 얼굴이나 목소리는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이자가 그놈이라면 나만 아는 무언가로 시험을 해 봐야 했고, 그 과정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도주하면 안 된다.
“저는 두 번째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한 잔 더 해도 될까요?”
“물부터요. 많이 헹구는 버릇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처음엔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취하면 다 똑같아지거든요. 그 지경이면 그냥 소주 마시는 게 나아요.”
“물부터, 명심하겠습니다.”
“나중에 한 종만 마실 때는 이렇게까지 하실 필욘 없지만, 지금은 알아 가는 과정이니까 냄새도 맡아 보세요. 맛도 맛이지만 향에서 취향이 갈리기도 합니다.”
“회사 생활은 오래 하셨어요?”
“꽤 했죠.”
“어느 쪽이 맞으세요?”
“작가 생활이 길지 않아서 아직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회사는 계속 다니실 생각이세요?”
“소설로만 먹고살 수 있단 확신이 들면 그때 고민해 봐야죠. 아,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천천히 드시고 계세요.”
“네.”
소변기는 안에도 있는데 밖으로 나가겠다는 건 다른 볼일이 있다는 뜻이겠지.
타악.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나는 기다리고 있는 차인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막 나갔습니다.
-알겠습니다. 확인할게요.
브라키오 작가는 내가 막 온 거로 알겠지만, 사실 나는 이미 3시간 전에 와서 차인근과 얘길 나눴다. 그러곤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내 몸이 기억하고 있어. 이런 구조가 맞아.’
문밖 좁은 복도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그 간격이나 천장의 높이, 이런 것들은 건물마다 조금씩 다를 수도 있겠지만, 닭장에서 살던 닭은 비슷한 곳에 갇히면 익숙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닭이었고 이 공간은 나를 소름 돋게 했다. 3시간 내내 체감하는 중이었다.
‘저 사람이 팀장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있던 사무실은 이 구조가 맞아.’
복도나 옆방에서 간혹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아니었다면, 여긴 쥐 죽은 듯 고요할 것이다.
불을 끄면 뻗은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울 것이었고, 저기에 철문만 달면 안에선 절대 탈출할 수 없었다.
‘이런 게 100개나 있다니…….’
서울이 아니라 전국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돈이 있고 함께해 줄 사람도 있었다.
‘발품을 팔아야겠지만, 영업을 안 하는 곳만 찾으면 돼.’
이렇게 성업 중인 가게는 작가들을 가두기엔 무리다.
점차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가슴이 떨려 왔다.
“죄송합니다.”
그가 돌아왔다.
“아닙니다.”
“더 드셨습니까?”
“아니요. 취하면 곤란하니까요. 이제 시작인데.”
“옳은 자세입니다. 취하려고 마시는 술도 있지만, 위스키는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1~2만 원짜리가 아니잖아요. 오늘은 이왕 온 거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엔 꼭 주류 백화점 같은 곳에서 사셔서 즐기세요. 이건 30~40만 원이면 될 겁니다.”
발렌타인을 들고 말한 그가 새 잔에 술을 따라 내게 주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그런 건가요?”
“그렇기도 하고 기분도 좋잖아요. 이렇게 오래된 것을 새 잔에 마시면요. 참나무가 긴 시간 숙성시킨 술을 우리 몸이 완전히 분해해서 무로 돌린다는 게 꽤 멋지지 않습니까?”
“허망하기도 한데요?”
“멋진 예술이 탄생하고 누군가에게 즐거이 소비되었으니 뜻은 이룬 겁니다. 절대 헛짓은 아니죠.”
“저희랑 비슷하네요. 언젠간 잊힐 작품이겠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즐겁게 하니까요.”
나는 팀장의 입버릇을 몇 가지 알고 있다.
주로 채팅으로 소통했지만, 스피커도 사용했었다. 목소리는 기계음으로 변조했지만, 말투나 사용하는 단어는 어쩔 수 없이 같을 것이다.
그걸 알려면 더 많은 말을 하게 해야 한다.
“알아보니까 싼 위스키랑 비싼 위스키는 가격 차이가 엄청나게 심하더라고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물론입니다. 그 디테일이 수많은 걸 결정하니까요. 그렇지만 뭐든 무뎌지면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자주 접할 필욘 없습니다. 보급형도 그만의 매력이 있는 거니까요.”
확실히 위스키를 대하는 그의 자세는 진심인 것 같다. 억지로 정중하려 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그래도 술은 묵히면 좋아지니까 편하네요. 이름도 생기고 라벨도 달고. 우린 좀 다르잖아요? 실패하면 불려 보지도 못한 이름과 함께 사라지니까요.”
“어느 직업군이나 비슷한 겁니다. 단순 노동이면 모르겠지만 예술에 근접할수록 더 그렇고요.”
“웹소설도 문학이나 철학처럼 예술에 묶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언젠간 그런 작품이 나올 겁니다. 100년 후엔 지금의 작품 중에서 어떤 것들이 가치를 인정받을지 모르는 일이고요. 연재 시장이 이래서 어쩔 수 없이 매일 글을 공장에서 찍어 내는 것처럼 몰려서 쓰다 보니까 어렵지만, 후엔 점차 다양하고 많은 작가가 생겨나겠죠. 그러다 보면 이 위스키처럼 제대로 숙성된 작품이 탄생할 거고요.”
“술은 술이잖아요. 사람은 그러기 힘들고요. 제가 아카데미를 운영해 보니까 가르쳐서 되는 부분은 한계가 있더라고요.”
“당연합니다. 사람도 극한까지 몰리지 않으면 잠재력이 발현하지 않거든요. 아카데미가 어떤 강제성을 학생들에게 부여하는진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론 어려울 겁니다.”
“극한……. 보통은 거기까진 가지 않죠.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다른 일을 찾을 거고 재능의 벽을 느끼면 그냥 포기해 버리니까요.”
“뭐……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
작가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