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40)
작가귀환-240화(240/250)
사건은 언제나 예고 없이 터진다. 단발성으로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복합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오늘은 그 둘 다였다.
“미친…… 뭐 하는 거야?”
퇴근 후 사무실로 돌아온 팀장은 모니터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4번 방에 설치해 둔 CCTV가 나갔다. 컴퓨터로 보이는 캠 화면엔 4번 작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깽판이라도 친 건가?”
어이없다는 듯 채팅창을 봤다. 별다른 건 없어 보였는데 갑자기 왜 그랬을까?
일단 복도를 가로질러 4번 작가의 문 앞에 갔다.
쾅쾅!
“무슨 일입니까?”
“…….”
안에선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대답은 없었다.
“뭔갈 노리는 거라면 실수하는 겁니다. 나는 작가님의 수작에 넘어갈 만큼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풀어 줘! 여기서 나가야겠어! 숨이 안 쉬어진다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공황이 온 걸까? 비명처럼 고함치는 4번 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팀장은 흐음, 고민했다.
‘비상식량을 넣어 둬서 몇 주는 버틸 텐데.’
그렇다고 덜컥 들어가자니 위험부담이 있었다.
“작가님, 그러다가 죽어요.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무엇도 누릴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으실 텐데 왜 이러실까요?”
“몰라! 이제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아! 차라리 죽여!”
4번 작가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그가 어떤 심정인지 절절하게 느껴질 만큼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만 특혜를 줄 순 없었다. 병에 걸렸다? 그러면 죽는 거다. 공황이 왔다? 이겨 내지 못하면 이곳에 머물 자격이 없다.
“오늘 하루만 봐드리겠습니다. 만약 내일도 똑같다면 일주일 소등합니다.”
먹을 게 있다고 해도 어둠 속에서 7일을 버틴다는 건 제정신인 사람도 미치게 할 거다. 그만큼 기운을 빼 놔야 제압도 쉬웠다.
“싫어! 싫다고! 싫어어어어!”
비명을 뒤로하고 거칠게 바깥 문을 닫은 그가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얌전하다가 갑자기 이러네.’
원래 이상했던 1번이나 3번 혹은 6번이 그랬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4번은 성실하고 차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일주일이면 괜찮아지겠지.’
안에서 농성할 것을 대비해서 마련한 것이 외부 전원 차단이었다. 전기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도시가 싫어서 훌쩍 무인도 같은 곳으로 처박힌 사람이라고 해도 최소한 빛은 있어야 산다. 죄수를 가둔 감옥에서도 독방엔 빛이 든다. 그만큼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 요건이 빛이라 할 수 있었는데 시력을 상실하면 두려움과 공포는 몇 배가 되고 시간은 더디게 갈 것이었다.
또한 무료함은 어떻게 견딜 것인가?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못 견디는 사람이 과반수인데 무작정 잠을 청해 본다고 한들 이틀이 지나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질 거다. 그 상태로 뭔가를 먹었으면 생리 현상까지 해결해야 하는데 거기서 오는 자괴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쯧, 자기 무덤을 파고 앉아 있네. 그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쓸 생각은 안 하고.”
어차피 못 버티는 놈들은 가차 없이 내보내는 게 좋다. 한 놈이 골치 아프게 하면 나머지 전체를 돌보는 게 어려워진다.
그가 노트를 펼쳤다.
‘4번이 들어온 지 얼마나 됐더라.’
앞으로를 위해 작가들을 관찰하며 얻은 중요한 정보를 꼼꼼하게 기록해 두어야 했다. 사람을 가두면 초반엔 엄청난 분노를 보이다가 곧 포기하거나 좌절하는데, 이런 상태로 몇 달이 지나야 4번처럼 공황이든 정신적 문제든 나타나는 건가? 이런 자료는 후에 들어올 작가들에게 더 쾌적한 정신 상태 유지를 위해 사용된다.
그가 노트에 글자들을 채우고 있는데 컴퓨터에서 소리가 났다. 누군가 개인 채팅을 보낸 것이다. 힐끗 눈으로 확인한 그가 입맛을 다셨다. 다른 작가였으면 무시하고 있다가 답변했겠지만 7번이었기에 노트를 치웠다.
-팀장님, 계세요?
-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언제나 웃상이었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표정도 무뚝뚝했고 뭔가 참는 것 같았다.
-배가 아파요.
-그날 시작한 거 아닙니까?
-아니요. 아직 한참 남았어요.
-증상이 어떻습니까?
-배 속을 누가 손으로 잡고 쥐어짜는 것 같아요.
-어느 지점을요?
-아랫배 쪽이요. 미안해요. 웬만하면 참아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앉아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아서요.
-기다리세요. 진통제를 갖다드리겠습니다.
오늘 무슨 날인가? 평소엔 아무 일 없다가 왜들 이러나?
어쨌든 그녀가 아프다니까 서둘렀다. 뭘 잘못 먹었을 린 없다. 이곳에서의 식단은 생각보다 균형이 잘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단백질 위주의 고열량은 아니지만 본래 소식이 더 건강에 좋다고 믿는 그였다. 게다가 여기선 운동량이 부족하니까 과식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두 개 드시고 이따가 필요하면 두 개 더 드세요.”
“고마워요.”
문을 사이에 두고 팀장은 그녀의 거친 호흡을 들었다. 그가 노파심에 물었다.
“혹시 맹장 수술한 적 있습니까?”
“없어요.”
“음…….”
“왜요? 설마 제가 맹장 터진 건가요?”
그는 경험이 있기에 머리를 흔들었다.
“아닐 겁니다. 그랬다면 그렇게 서 있지도 못하니까요.”
말을 하고 나니까 나중에 맹장 터진 작가가 나타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대비를 해 둬야 할 것 같았다. 병원엔 절대 못 가는데 어떻게 치료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서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저 너무 무서운데 조금만 같이 있어 주실래요?”
“금방 약 기운 돌 겁니다.”
“그때까지만요.”
“……이번만입니다.”
왠지 지친 기분에 그가 문에 등을 대고 앉았다. 이곳에 자신을 포함해서 열네 명의 사람이 있지만 늘 혼자인 것 같았다. 자신은 관리자일 뿐이라고 벽을 두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경계심 때문에 그런 걸까?
그런 그의 귓가에 나른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저 잘하고 있는 거죠?”
“네. 이대로만 하면 다음엔 훨씬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거든요.”
이 여자는 자신의 처지를 알고 하는 말인가?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하고 싶어요.”
“지금도 충분합니다. 남은 건 경험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이 늘 거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뭐든 처음이 어렵습니다.”
“팀장님도 그런가요?”
“저요?”
“힘든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다 감당할 수준이었다. 이게 버거웠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없습니다.”
“강한 사람이네요, 팀장님은.”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마음먹기에 달린 거죠. 얼마나 타협하느냐. 자기 관리를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 그런 것들이 나를 만드는 겁니다.”
“게으른 사람 싫어하시죠?”
“그런 편입니다.”
“그럴 것 같았어요.”
그녀가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무척이나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4번 작가님이 아까부터 안 보이시던데 괜찮으세요?”
“며칠 지나면 좋아지겠죠. 다들 힘들 때가 있으니까. 무뎌지는 과정입니다.”
“…….”
그녀의 대답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아직도 안 좋습니까?”
“……네.”
“음, 이상하네요. 두 알이면 괜찮아져야 하는데.”
“…….”
“아파요?”
“……네. 흐으…… 흐윽…….”
거친 그녀의 호흡에 그가 일어났다.
“누워 보세요.”
“이렇게 앉아 있는 게 더 편해요.”
웅크리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그의 마음이 좋질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지?’
여자는 아무래도 그가 모르는 질환이 있을 수도 있단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 검색해 봤다. 하지만 아랫배 통증의 대부분은 음식 문제거나 장 질환 또는 변비였다.
“화장실은 언제 갔습니까?”
“자주요……. 물을 많이 마시니까요.”
“아…… 네.”
물이 잘못됐을 린 없었다. 우리나라 수돗물을 못 믿겠으면 식당이나 카페에도 가면 안 된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아픕니까?”
“배꼽 옆인데요. 좀 더 아래……. 아깐 쿡쿡 쑤시기만 했는데 지금은 찢어지는 것 같아요. 못 움직이겠어요.”
그가 이마를 찌푸렸다. 증세로 검색해 봐도 마땅한 답이 없었다.
우리 애가 배가 아파요! 누가 이런 질문을 하면 애들은 원래 자주 아프다는 답이 달려 있다. 근데 이게 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성장통이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요인이 있다. 왜, 그렇게 아파하는 손주 배를 손으로 살살 문질러 주는 할머니가 있었으니까 약손이란 말까지 생기지 않았겠는가?
‘가스가 찼나? 설마 진짜 맹장이 터지려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를 죽도록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가 해외 동영상 플랫폼에 들어가서 다시 검색했다. 우리완 다르게 해외엔 오지에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미국만 해도 가까운 병원에 가려면 몇 시간을 차 타고 가야 하는 곳이 지천이었다. 그런 곳에선 어떻게 응급처치를 하나 찾아봤다.
‘장비가 부족해.’
그가 시계를 봤다. 아직 문 연 약국이 있을 것 같긴 하다.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없는 삶이란 이토록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마취가 문제인데.’
소염진통제, 항생제, 수액부터 거즈까지 최대한 많이 사 둬야 할 것 같았다.
“계속 같은 부위가 아픕니까?”
“……네. 하아, 하아…….”
상태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방금 이부프로펜 계열 진통제를 먹었으니까 최소 2시간은 지나야 다른 성분의 약을 먹을 수 있다. 과용하면 간에 무리가 갈 수도 있고, 그러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들어가겠습니다. 문에서 떨어지세요.”
혹시나 해서 말했지만 털썩 쓰러지는 기척이 났다.
그가 문을 열었다. 역시나 그녀는 문 옆에 시체처럼 늘어져 있었다.
“작가님……!”
그가 급히 그녀를 품에 안아 부축했다.
“하아…… 하아…… 팀장님…… 저, 너무…… 아파요…….”
“정신 차리세요!”
온몸이 젖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너무 위험해 보였고 단순한 몸살감기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흐으…… 팀장님…… 살려 주세요……. 팀장님…….”
그녀의 손이 힘없이 들려 그의 앞섶을 잡았다. 그러나 그것도 버거웠는지 곧 떨어졌다.
“작가님! 작가님!”
그는 그녀를 부르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녀를 안아 들고 침대에 눕혔다. 그리곤 서둘러 문을 닫고 자신의 사무실로 갔다.
응급 상자를 열었다.
‘이런…….’
종합감기약과 수면유도제, 진통제나 소화제, 소염제나 구내염약 같은 것들은 있었지만 그녀에게 효과가 있을 만한 약은 없다.
‘일단은 나가서…….’
약국이 안 되면 24시간 하는 동물병원에 가서라도 뭔가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한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콰앙-!
문을 닫고 빠르게 차에 탔다. 이렇게 당황해 본 적도 별로 없었다. 그녀의 고통이 자신에게 전해진 것만 같았다.
빠아아앙!
거칠게 튀어 나가는 그의 차를 향해 뒤에서 경고음을 울렸지만, 그는 속도를 더 올렸다.
“…….”
“…….”
그리고 이걸 지켜보는 사람들도 긴장했다.
“어딜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걸까요?”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두 분은 여기 계세요! 저 사람, 다시 돌아올 것 같습니다!”
차인근이 서둘러 차에 탔다.
작가귀환